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고독은 즐겨야

운영자 2024.01.29 10:06:19
조회 108 추천 3 댓글 0

텔레비젼 화면에 온화한 얼굴의 낯이 익은 노인이 나타났다. 나와 친한 고교동기다. 중학교도 같이 다녔다. 곱게 익은 듯한 백발이 단정하다. 노인이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올해 육십구세입니다. 혼자서 산 지가 이십사년이 됐습니다. 혼자서 산다는 게 불편해 지는 건 몇 번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였습니다. 처나 자식을 보호자로 적으라고 하는 데 저는 없었습니다. 자식들은 모두 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대기업의 임원으로 일을 하다가 퇴직을 하고 나왔습니다. 그 후로 책을 내기도 했고 신문에 컬럼을 쓰고 있습니다.”

그의 부드럽고 느린 듯한 그러나 발음이 정확한 목소리에는 그의 차분한 인격이 담겨있었다. 그는 나와 마음을 교류하는 친구였다. 그는 고독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 말을 들어주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노년의 봉사와 그 소개하는 역할을 방송에서 맡은 것 같았다. 그의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온기가 화면 밖으로 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그와는 영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에게 고독은 잘 어울리는 익숙한 옷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혼자 살지만 그의 내면은 꽉 차 있는 것 같았다. 그에게 고독은 보라빛 노을이 아니라 당당한 있음 같아 보였다.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고독을 즐기는 것 같아 보인다고까지 할까. 그는 절대자 앞에 단독자는 아닐까.


핵가족이 다시 해체되고 핵 개인이 너무 흔해진 세상이다.

청년들은 결혼이 선택사항이 되고 내가 묵는 실버타운을 보면 반 정도는 배우자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 노인들이다. 바닷가 포구마을로 가 보면 혼자 살다 죽은 노인들의 껍데기 같은 빈집들이 즐비하다. 시대의 바람이 혼자 살다가 혼자 죽는 쪽으로 불고 있는 걸 실감한다.

인간은 홀로 태어나고 홀로 죽어간다. 살아가는 데도 혼자서 살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닐까.

사람은 저마다 이 세상에 자기 짐을 가지고 나온다. 그 짐마다 무게가 다르다.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거역하지 말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꿋꿋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인생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파도치는 동해의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삶의 마무리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 아닐까.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나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라는 생각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서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면 그 인생이 그 죽음도 초라하고 쓸쓸하기 마련이다.


어젯밤 유튜브 화면을 통해 청소업체에서 고독사한 사람이 살던 방을 치우는 걸 봤다. 시신이 썩어서 해골 상태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방에는 소주병이 뒹굴고 살을 파먹은 벌레들의 껍질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얼룩진 침대 위에 미쳐 치우지 못한 손가락뼈가 몇 마디 남아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 고독사는 흔한 일 같다. 죽은 지 이주 만에 발견된 여성 탈랜트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참 예뻤던 탤런트였다. 그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국민들 세사람 중 한 명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핵개인화 되어가는 것이다.

오래전 ‘날마다 일요일’이라는 일본 소설에서 읽었던 한 장면이 기억의 벽에 달라붙어 있다. 혼자 사는 노인이 죽은 후에 시신이 부패할까 봐 시장에 가서 커다란 비닐과 대형냉장고를 샀다. 죽기 직전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냉장고 안으로 들어기 위해서다.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고독 속에서 죽는 모습들을 더러 봤다.

화류계의 사생아라고 비관을 하면서 세상에 대해 복수라도 하듯이 범죄를 저지르다 노년에 적막한 방에서 목을 매 죽은 사람을 봤다. 평생 바르지 못하게 살다가 마지막에 노숙자 보호시설에 울다가 저세상으로 건너가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 감옥에서 출소 후 몇 달 만에 자살한 사람의 시신을 직접 처리한 적도 있다. 화장장에는 나 혼자였다. 사랑을 하거나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은 죽음도 메말라 있었다. 전과가 많은 노인이 노숙자 합숙소 구석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사는 걸 봤다. 젊어서 고압선에서 감전이 되어 평생 독신으로 산 그 노인에게 강아지는 가족이었다. 자기는 먹지 못해도 강아지에게는 우유를 사서 먹였다. 밤이면 강아지를 가슴에 품고 잤다. 강아지에 대한 사랑은 그 노인이 살아가는 이유였다.

나의 어머니는 임종 직전 외아들인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살아보니까 고독이 참 힘들더구나.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니? 잘 견디다 오너라”

어머니는 마지막 힘을 다해 아들인 나의 팔을 한번 쓰다듬고 저세상으로 훌쩍 건너가셨다. 나는 요즈음 고독을 견디는 게 아니라 즐기려고 노력한다. 여러형태로 기도를 하면서 수시로 그분을 만나면 고독하지 않다. 고래같이 다가오는 겨울 파도들이 수많은 친구의 방문같이 느껴진다. 오늘저녁도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동해역으로 내려오는 외로운 친구가 있다. 따뜻한 재즈가 출렁이는 까페로 데리고 가야겠다.

추천 비추천

3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갑 절대 안 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20 - -
3358 종교 장사꾼 운영자 24.05.20 23 0
3357 주병진 방송을 망친 나는 나쁜 놈 운영자 24.05.20 28 0
3356 대도를 오염시키는 언론 운영자 24.05.20 16 0
3355 세상이 감옥보다 날 게 없네 운영자 24.05.20 20 0
3354 악인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운영자 24.05.20 19 0
3353 서민의 분노와 권력의 분노 운영자 24.05.20 18 0
3352 쥐 같은 인생 운영자 24.05.20 20 0
3351 좋은 사람의 기준을 깨달았다 [1] 운영자 24.05.13 81 2
3350 너도 도둑이지만 윗놈들이 더 도둑이야 운영자 24.05.13 48 0
3349 국무총리와 도둑 누가 거짓말을 했을까. 운영자 24.05.13 47 0
3348 도둑계의 전설 운영자 24.05.13 36 1
3347 바꿔 먹읍시다 운영자 24.05.13 34 0
3346 반갑지 않은 소명 운영자 24.05.13 39 0
3345 대도 사건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운영자 24.05.13 32 0
3344 재판을 흥미성 보도자료로 만듭니다. 운영자 24.05.06 64 1
3343 부자들의 비밀금고 운영자 24.05.06 72 2
3342 죄 값 이상을 강요할 권리가 있나? 운영자 24.05.06 53 0
3341 입을 틀어막히는 분노 운영자 24.05.06 55 0
3340 변호사로 정상이라고 생각합니까 운영자 24.05.06 60 1
3339 도둑 일기 운영자 24.05.06 61 1
3338 숯불 나르는 청년의 외침 운영자 24.05.06 56 1
3337 당신은 꽂히면 바로 내 지르는 사람이야 운영자 24.04.29 88 1
3336 아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세요 운영자 24.04.29 69 1
3335 도대체 저의가 뭡니까? 운영자 24.04.29 75 1
3334 기억 사진첩 속 어떤 재판광경 운영자 24.04.29 65 1
3333 내가 체험한 언론의 색깔 운영자 24.04.29 70 1
3332 변호사란 직업의 숨은 고뇌 운영자 24.04.29 73 1
3331 저세상으로 가는 법 운영자 24.04.29 78 1
3330 인권변호사의 첫걸음 운영자 24.04.22 98 1
3329 깨어있는 시민의 의무 운영자 24.04.22 86 1
3328 죄수가 전하는 사회정의 운영자 24.04.22 96 1
3327 이민자의 슬픔 운영자 24.04.22 99 1
3326 강도에게 성질을 냈었다. 운영자 24.04.22 90 1
3325 외국의 감옥 운영자 24.04.22 90 1
3324 벗꽃 잎 같이 진 친구 운영자 24.04.15 123 1
3323 조용한 기적 운영자 24.04.15 130 2
3322 감옥은 좋은 독서실 운영자 24.04.15 106 1
3321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 운영자 24.04.15 104 1
3320 미녀 탈랜트의 숨겨진 사랑 운영자 24.04.15 123 1
3319 두 건달의 독백 운영자 24.04.15 109 1
3318 명품이 갑옷인가 운영자 24.04.15 99 1
3317 나는 될 것이라는 믿음 운영자 24.04.15 107 1
3316 오랜 꿈 운영자 24.04.08 116 2
3315 그들은 각자 소설이 됐다. 운영자 24.04.08 135 1
3314 나이 값 [1] 운영자 24.04.08 194 1
3313 검은 은혜 [1] 운영자 24.04.08 187 3
3312 실버타운은 반은 천국 반은 지옥 [1] 운영자 24.04.08 200 2
3311 늙어서 만난 친구 운영자 24.04.08 109 1
3310 그들을 이어주는 끈 [1] 운영자 24.04.01 323 2
3309 그가 노숙자가 됐다 [1] 운영자 24.04.01 209 3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