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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와 돈

운영자 2010.10.22 10:22:13
조회 399 추천 1 댓글 2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변호사가 돈 많이 버는 방법’이란 제목의 책을 봤다. 모두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검사 출신 한 후배는 저질의 졸부 의뢰인을 만나면 속에서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엘리베이터까지 가서 허리를 숙이는 것도 돈 때문이라고 했다. 브로커를 썼던 친구변호사의 고백도 충격이었다. 커미션 받아먹는 재미에 중간에서 친 황당한 사기가 원인이었다. 어느 날 법원 앞에서 그는 납치됐다. 분노한 의뢰인은 그를 무릎 꿇리고 바닥에 휘발유를 뿌렸다. 사죄하고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산채로 화장해 버리겠다고 협박 하더라는 것이다. 공포에 질렸던 그는 변호사란 직업에 만정이 떨어진 것 같았다.

 

    병아리시절 사법부 고위직 출신 선배들은 하늘 같아 보였다. 그러나 퇴직 후 영혼을 판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면서 전관만으로는 존경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는 변호사를 ‘고용된 양심’이라고 했나보다. 나는 요즈음 돈과 역행하는 변호사를 좋아한다. 춥더라도 향기를 잃지 않는 매화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우연히 한승헌 변호사에 대한 얘기를 들었었다. 일이 있어 그 집을 찾아갔더니 복잡한 재래시장 안의 허름한 이층집에서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더라는 것이다. 변호사 간판만 달면 수입이 보장되던 시절이었다. 스스로의 사상과 의지로 만들어진 그런 가난은 청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감사원장을 역임하고 대통령과 친한 정권의 실세로만 인식하고 있던 내게 한변호사의 그런 과거는 의외였다. 싸늘한 바람이 불던 여섯 달 전 이른 아침 변협회관의 한 구석에서 후배들에게 얘기해 주는 그를 보았다. 그의 입에서 잠시도 유머가 떨어지는 순간이 없었다.

 

    “심각하고 엄숙한 세상에서 우리 변호사들은 남의 불행까지도 떠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난 그걸 벗어나기 위해 유머를 연구했어요. 현실에서 정신만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죠.”

 

    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가 몽둥이로 처참하게 얻어맞은 아픔과 정신적으로 더 처참했던 상황들 그리고 악명 높은 육군교도소 수감생활의 한들을 곰삭여서 유머러스하게 그는 말하고 있었다. 돈에 대한 철학도 이렇게 우회해서 표현했다.

 

    “저도 돈을 사랑하려고 했는데 돈이란 놈은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구요. 돈이라는 게 꼭 필요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이용해서 너무 많이 뜯으려고 하면 안되요.”

 

    귀중한 잠언이었다. 그는 의롭지 못한 재판을 보고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변호사의 임무를 알려주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고 했다. 기능적인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보편적인 지식인이 되라고 후배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위선적인 자기고백을 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는 겸손으로 끝을 맺었다.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닌 후배들에게 빛이 되는 이런 선배가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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