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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운영자 2022.10.17 1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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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오년전 나는 사법고시에 떨어지고 군법무관 시험을 쳐서 군에 들어갔었다. 그 시절은 고시에서 소수만 뽑았기 때문에 군사법원의 검사나 판사를 충원하기 위해 오년마다 한번씩 군 법무관시험을 실시했었다. 그 자질들이 고시에 합격한 사람보다 뒤떨어지지 않았다. 당시 군법무관 동기생 중에서 박시환 대법관도 국제형사재판관도 법원장도 법과대학장도 장군도 대형로펌대표도 나왔다. 젊은 시절 나는 군판사로 재판을 했었다. 계엄상황이었을 때는 군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재판을 했었다. 그런데 나는 아류로 매도당하고 판사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멸감을 느꼈었다. 같은 방에 있던 사법고시출신의 법무장교가 노골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

“같은 계급장을 달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똑같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를 짝퉁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일반법원의 판사들도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의 차별 프레임에 나도 모르게 세뇌되어 열등의식에 젖어 있었다. 나는 판사가 아닌 것 같았다. 군대 사회 안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육군사관학교출신만 장교로서 진급이 빠르고 장군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하나회’라는 장교집단은 군대에서 귀족중의 귀족 같았다. 보병 장교 한 사람이 내게 와서 이런 하소연을 했다.​

“저는 육사 출신이 아니예요. 그렇지만 장교로 임관되어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했어요. 육군본부에서 책상을 붙이고 같이 일하는 육사 출신이 나를 보고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똑같은지 나중에 두고 보자고 말이죠. 자기가 진급이 빨리 되어 내 상급자가 된다는 선민의식이죠.”​

그도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세상은 분야마다 불공정하고 차별 투성이였다. 능력이 있고 똑똑해도 어떤 출신이 아니면 외면당한다. 미대를 나오지 않은 친척 화가가 있었다. 독학으로 이룬 그의 그림을 뉴욕과 영국의 미술관에서 인정하고 구입했다. 그래도 그는 화단에 발을 붙이기 힘들다고 했다. 한 노동자 시인이 절규하는 글을 봤다. 명문대 학벌은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라고 했다. 좌우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선후배가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출세의 사다리라고 했다. 어디 출신이라는 말은 새로운 귀족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런 구분과 차별은 양파껍질같이 한이 없었다. 내가 대통령 직속의 정보기관에서 근무할 때였다. 한번은 중견 판사들을 초청해서 그들에게 정세브리핑을 하는 공식회의가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고위직 법관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고시를 칠 때는 다섯명만 뽑은 적도 있습니다. 요즈음같이 삼백명을 뽑으면 그 사람들은 법조인도 아닙니다.” ​

그는 자신이 명품인 걸 강조하기 위해 반짝거리는 후배판사들까지 짝퉁취급을 하는 것 같았다. 숫자가 많으면 그 안에 여러 종류의 인재도 숨어있다. 그가 깔보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대통령도 당대표도 배출됐다. 의사사회도 비슷한 것 같았다. 대학병원장을 지낸 분이었다. 그는 심장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인턴이나 레지던트들은 의사가 아니예요.”​

그는 의과대학 교수 출신인 자신만이 진짜의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의식들이 사회에 팽배해 있다.​

공수처법이 통과되자 검사들은 헌법재판소에 호소했다. 공수처 검사들은 진짜 검사가 아니라고. 헌법상의 검사는 자신들 뿐이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론은 간단했다. 검사에는 특별검사법에 의한 검사, 군사법원법에 의한 검사, 검찰청법에 의한 검사가 있다고 했다. 법이 다 똑같지 검찰청법만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보고 나는 갑자기 눈이 열리는 것 같았다. 나는 군사법원법에 의한 당당한 판사였다. 한번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판사는 판사가 아니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던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법조사회에서 소위 ‘성골’이었다. 최고의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왔다. 일찍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가 됐다. 학문적으로도 우수해서 법과대학장도 지냈다. 그는 직설적으로 대답하는 성격이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군사법원의 판사였던 나는 판사야 아니야?”​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인식을 내 앞에서 차마 직접 얘기하지 않는 침묵이었다. 내가 계속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법관만이 재판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나는 강아지를 재판했던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일반 법률을 적용해서 인간을 다루었어. 징역형을 선고하기도 했어. 내가 판사가 아니라면 나의 판결로 징역을 산 사람들은 뭔가? 허깨비에게 억울한 재판을 받은 건가?”​

내 말을 듣는 그의 표정이 심각해 지는 것 같았다.​

“법원조직법에 의한 판사와 군사법원법에 의한 판사는 다른가? 법에 우열이 있고 차이가 있는 건가? 지금 전국에 다섯 개의 군사법원이 있고 항소와 상고는 일반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맡고 있어. 행정법원 특허법원같이 군사법원의 판사는 담당만 군사분야인 게 아닌가?”​

듣고 있던 그는 나의 말에 납득이 가는 표정으로 변하면서 말했다. ​

“지금까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단지 나보다 실력이 없다고 생각해서 무시하고 너희들은 판사가 아니라고 여겼던 것 같아.”​

차별은 세상 어디서나 매연같이 들어차 있는 것 같다. 사무직은 노동자와 어울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노동자라도 기능직은 일반노동자와 다르다는 인식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도 설움을 가져온다. 모든 걸 진품과 짝퉁으로 분류해서 딱지를 붙이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그 결과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 전족을 차고 있는 것이다. 나와 친한 분이 그 전족을 어느 순간 단번에 깨뜨리는 걸 봤다. 그는 내게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학벌도 없고 그냥 가구 장사를 하고 살아왔어요. 항상 잘난 사람들에 대해 마음속으로 주눅이 들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걸어가다가 횡단보도 앞에서였어요. 하나님이 나를 인정한다는 소리가 강하게 들려오는 거예요. 그 순간부터 달라졌어요. 잘났다고 하는 판검사 너희들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확신이 들더라구요. 그 다음부터는 인생이 달라졌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눈을 덮고 있던 비늘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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