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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서비스의 질

운영자 2010.10.11 17:03:26
조회 446 추천 0 댓글 4

    변호사인 나는 주택 한 채를 가진 할머니의 고소장을 써 준 적이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관리인이 보증금을 횡령한 사건이다. 한달 후 담당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고소장을 그 모양으로 썼냐고 화를 냈다. 범인의 주소도 쓰지 않고 범행일시와 장소도 빠졌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국민이 수사관 앞에서 사정만 대충 호소해도 조서를 작성하고 수사 해주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사법기관이 바쁘니까 어디 사는 범인이 언제 어디서 어떤 범행을 했다고 육하원칙에 따라 형식에 맞게 써오라고 했다. 

    사람들은 관례적으로 수사기관에서 시키는 대로 그렇게 했다. 난 그 형사에게 법원칙을 말하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국민이 수사까지 다 해 바치면 형사님은 뭘 하시느냐고 물었다. 형사는 발칵 화를 내면서 도대체 사법시험은 제대로 합격했는지 법조경험이 몇 년이나 됐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경찰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좀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법조생활 이십칠 년에 사법시험성적도 우수한 편이고 경찰에 친구 준영이가 있다고 대답했었다. 형사는 준영이가 누구냐고 물었다. 경찰청장 허준영이라고 하자 그는 “좋은 하루 되십시오, 충성”하고 전화를 얼른 끊어 버렸다. 국민들은 고소나 소송을 통해 법의 보호를 받는다. 그게 사법서비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사법기관이 오히려 서비스를 받으려고 한다. 

    권위의식의 극치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한번은 고생해서 쓴 고소장을 검사실에 접수시켰다. 결론만 바로 쓰면 이해하기 힘든 기업사건이라 좀 내용이 길었다. 검찰서기의 호령이 전해져 왔다. 그렇게 긴 고소장은 검찰총장이 부탁을 해도 안 읽을 거라고 욕을 했다. 참 높은 서기였다. 수고하는 많은 선량한 공무원 중에 극히 예외적인 경우지만 그런 권위의식이 아직도 남아있다. 변호사도 당하는데 법을 모르는 서민이 당하는 고통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사법서비스가 행정보다 많이 낙후됐다. 

    행정부는 진정서 한 장만 내도 국가의 비용으로 담당 공무원이 직접 조사를 하고 결과통보까지 친절하게 해 준다. 문장을 잘못 썼다고 트집 잡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사법부는 다르다. 국민은 사실 억울한 사정만 써내면 사법부도 그걸 보고 법이 무엇인지를 판단해 줘야 이상적이다. 그런데 법원은 지금도 법리까지 완벽하게 틀에 맞춘 서류를 요구한다. 일반인은 그 복잡한 법리를 도저히 알기 힘들다. 알아도 전문용어로 꽉 찬 법 문장으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국가에 돈을 내야 판사가 심리를 한다. 민사소송은 비용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 하기가 쉽지 않다. 

    법률구조제도가 있지만 다 혜택을 받는 게 아니다. 세금을 내는 국민은 생명과 재산에 대해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두툼한 법전이 국민을 보호해 주는 게 아니다. 법은 먼저 형사나 검찰, 법원의 직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다음 검사와 판사가 국민이 보는 법의 모습이다. 고소나 소송은 법의 보호를 요청하는 수단이다. 사법서비스는 공무원의 기계적인 일상이 아니라 그들의 소명이 되어야 한다. 국민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헤아려 그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제도와 사람이 제대로 되어야 정의가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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