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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작품 전시회

운영자 2021.03.22 10: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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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작품 전시회




서늘한 바람이 부는 인사동 거리에 저녁 어스름이 서서히 내리고 있었다. 나는 뒷골목의 낡은 건물의 가파른 목조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계단이 삐걱거리는 신음을 냈다. 이층은 자그마한 전시실이었다. 보는 사람이 없는 텅 빈 전시실의 벽에는 자그마한 작품들이 수줍은 듯 걸려있기도 하고 부끄럼을 타면서 선반 위에 몇 개의 매듭작품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전시회는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작품발표회였다. 몇 년 전이었다. 한 여의사가 수감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서 내게 조언을 구했다. 나는 그녀에게 재소자들의 ‘그림 교실’을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말했다. 한없이 길게 늘어진 진공같은 시간을 이겨내는 데 예술은 또 하나의 구원일 것 같았다. 그 여의사는 교도소장의 허가를 얻어 재소자중 예술적 재능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골라 미술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화구와 물감을 들고 감옥으로 가서 재소자들이 작품을 만들게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들의 전시회였다. 선반에 놓인 매듭목걸이 옆에 이런 글이 보였다.

‘처음 해 보는 매듭에 손에 물집이 잡히고 갈라지는 고통이 있었지만 한 가닥 한 매듭 실을 엮으면서 잘못 엮였던 내 삶의 묶임을 풀어봅니다.’

그 위 벽에 작은 그림 한 점이 보였다. 하얀 접시 위에 파란 포도와 붉은 포도가 어우러져 있는 정물화였다. 그 밑에 이런 글이 보였다.

‘백색 형광등 앞에서 붓과 종이를 앞에 놓고 눈을 감으면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이십 오년 전인 그 시절은 눈물나도록 순수하고 행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행복했던 그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그들의 진정한 참회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성경책을 그린 작은 그림 한 점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벽에 걸었다. 어떤 간절한 마음으로 그 성경을 그렸을까. 아마도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죄수의 말이 있다.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감옥의 철창 안에서 보면 높은 담벼락 밑에 피어있는 먼지 덮인 잡초들이 보여요. 빗방울이 작은 감옥의 창문으로 떨어지는 날이면 교도소 담벼락 밑의 길이라도 걸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감옥생활이죠.”

그의 말에서 나는 작은 꽃들이 바람에 물결치는 들판을 걸어보는 게 어떤 즐거움인지 깨달았다. 그가 말 중에 이런 말도 했었다.

“여기 감옥 안에 살아도 죄수들이 보는 게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철창을 통해 하늘에 있는 흰 구름을 보죠. 그런데 또 다른 사람들은 바닥에 있는 진흙탕물을 봐요. 어떤 쪽을 보는게 중요한가 깨닫습니다. 진흙탕 쪽으로 눈길이 향하는 사람들은 이 안에서 새로운 범죄 수법을 개발해 나가면 다시 한탕을 하려고 하죠.”

눈 덮힌 대전 교도소의 접견실에서 그와 여러 시간 얘기를 하고 해가 설핏해지는 저녁 돌아온 적이 있었다. 십자가에 올라가기 전 예수가 갇혀있던 감옥을 가 본 적이 있다. 예수는 제사장이었던 가야바의 집 물탱크에 갇혀있었다. 사도 바울이 잡혀 있던 로마의 지하 감옥을 가 보기도 했다. 그 감옥 안에서 이천년이 넘게 생명력을 가진 바울의 글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글이 기독교 자체가 되었다. 감옥 안에서도 그림을 그리던가 글을 짓든가 아니면 뭔가 열정을 쏟아 제작하는 일은 그들의 영혼을 구하는 것 같다. 나의 스승격인 백년전에 살았던 한 믿음이 좋았던 노인은 그가 남긴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뭔가 생산하라. 곡식을 생산하든지 시를 짓든지 그림을 그리든지 어떤 것이든 이마에 땀을 흘리는 노동으로 돈을 벌라. 빼앗거나 훔치거나 그냥 얻는 돈은 가치가 없지만 노동의 결과인 돈은 정말 귀한 것이다.’

오래전 살았던 순박한 노인의 투박한 말이지만 그 말은 내 영혼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깨닫고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에게 감옥은 또 하나의 수도장일 수 있다. 그 환란 안에서 성경을 읽고 노동을 하면서 한 단계 진보한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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