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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여자 살인 사건 19

운영자 2009.12.16 14:58:26
조회 2670 추천 1 댓글 0

19


  김용국은  전에 없던 새로운 사실들을 폭탄같이 터뜨렸다.

  “체포될 때를 가상해서 사실 시나리오를 세 개 짰었죠. 제1단계의 안은 정 사장이란 전혀 다른 제3의 인물을 만들어 우리가 살인을 의뢰했었다고 하는 거죠. 잡힌 첫날 그렇게 불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형사들이 집요하게 묻고 또 묻는데  정 사장의 정체에 대해 빈틈없이 다 댈 수가 없었어요.”


  수사란 범인들과의 머리싸움이었다. 처음에는 빠져 나가려고 애를 쓰다가 마침내 손들고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허탈하게 자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그런 수사심리상태를 상정하고 계획을 짠 것 같았다.


  “형사가 마기룡이가 마침내 다 불었는데 무슨 소리하느냐고 했어요. 그건 제2단계 씨나리오로 넘어가자는 기룡이의 간접적인 신호였죠. 우리가 형사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침내 허탈한 상태에서 자백하는 모습을 보이는 제2안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죠.”
 
  베트남에 있을 때 그들은 대학노트에 잡혔을 때 진술할 시나리오를 꼼꼼히 써서 서로 대본같이 익히고 연습했다. 그들은 치밀했다. 양파껍질같이 까면 또 거짓말들이 나오곤 했다.

  “시나리오의 제2안은 회장부인이 살인교사를 했다고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당시 매스컴에서 그렇게 보도를 할 때니까 사회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지는 거죠. 어차피 회장부인은 사위가 판사고 돈도 많았죠. 나이도 있으니까 그 정도면 우리가 물어도 충분히 법망을 빠져 나갈 거라고 우리는 계산했죠. 회장부인이 시켰다고 말했더니 수사가 급진전되더라구요. 형사나 검사가 한건 했다 싶었는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우리 진술대로 조서를 작성하더라구요.”

  그의 얼굴에는 얼핏 승리감마저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 시나리오의 제3안은 뭐였어요?”

  나는 그의 반짝이는 교활한 눈을 보면서 물었다.


  “그건 여대생을 납치할 때 동원했던 건달들에게 덮어씌우는 거였어요. 그런데 거기까지 가지도 않고 일이 끝난 거예요. 형사나 검사가 내가 한 진술에 퍽 만족했어요.”


  “왜 집안 어른이고 고모인 회장부인을 굳이 그렇게 했죠?”  

  “그 양반은 사람이 아니예요. 제가 도망가 있으면서 도움을 많이 청했어요. 그런데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거기다가 우리 집사람을 때리고 해서 감정이 생겼죠. 집사람을 달래고 위로해 줘야 할 사람이 그게 뭡니까? 그래서 오기로 덮어씌웠죠.”


  “그러면 회장부인이  주겠다고 약속한 살인청부자금 1억7천5백만원은 사실이 아니었어요?”

  “그거 다 제 거짓말이예요. 처음에 미행자금 5천만원 받았어요. 그리고 나중에 여대생을 죽이고 나서 내가 협박해서 더 받은 거죠. 회장부인이 법정에서 나한테 협박당했다고 진술했는데 그 말이 사실은 맞아요.”


  이상했다. 그의 말은 법정에서 회장 부인 측 변호사들의 추정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계부품처럼 맞아 들어갔다.
 
  “그러면 회장부인이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을 죽여 달라고 청부한 사실은요? 그리고 회사임원인 시동생까지 죽여 달라고 했다고 진술들도 거짓입니까?”


  “그것도 다 사실 제가 꾸며댄 거예요. 여대생 살인청부 하나만 얘기하면 신빙성이 없잖아요? 우리가 다 믿게하기 위해 덤으로 만든 얘기였어요.” 
  회장부인은 검사와 그들이 소설을 썼다고 외쳤었다.


  “그러면 이제 와서 밝히겠다는 진실은 뭐죠?”

  내가 속에서 은은히 피어오르는 분노를 자제하며 물었다.


  “살인청부의 점만 틀리고 나머지는 대충 맞아요. 또 사실 우리가 여대생을 처음부터 죽이려고 한 건 아니구요.”

  그의 번복한 말대로라면 회장 부인은 이제 무죄고 그들 역시 과실치사정도였다. 사실인지 그의 희망인지 정확지 않았다.
 

  “하루는 미행을 하던 마기룡이가 이렇게 힘들게 미행하지 말고 아예 그 여대생을 잡아다가 발가벗기고 비디오를 찍어 인터넷에 올려버리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기룡이한테 그래도 우리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죠. 기룡이는 그러면 그때 가서 약물을 쓰자고 했어요.”

  그들은 여대생에게 어떤 걸 강요했을까. 풀리지 않은 영원한 수수께끼였다. 소송에서 패소해 자존심이 상한 회장부인은 여대생 부녀에 대한 증오가 폭발직전까지 갔었다.


  “약물을 쓰다뇨? 죽이자는 거였어요?”

  내가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구요. 사채꾼들이 겁주는 방법인데 납치한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고양이한테 독주사를 한방 놓는 거예요. 고양이가 뒤집어 지면서 즉사하는 걸 보게 하면서 그 주사를 사람에게 찌르려고 하면 기겁을 해서 어떤 인간도 시키는 대로 다 하는 거예요. 여대생에게도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그 독약의 정체가 뭐죠?”

  수사기록을 보면 그 독극물이 살인청부의 유혹요소가 됐다.


  돈이 궁했던 마기룡은 먹으면 일주일 후부터 내장이 서서히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완전범죄가 가능하다고 유혹했다.

  그러나 마기룡은 체포되자 그건 시골장터에서 산 쥐약에 불과했다고 둘러댔었다. 병리학교수들은 마기룡의 말처럼 그런 독극물은 없다고 웃었다.


  “사실은 청산가리였어요. 마기룡이가 항상 그걸 가지고 다니면서 나한테도 겁을 줬어요.”

  은폐 세부적인 사실이 조금은 드러나는 것 같았다.


  “살인 후에 깊이 매장을 하지 않은 이유는 뭐죠?”

  난 그들이 낙엽만 덮은 채 황급히 사라진 이유가 궁금했다.


  프로살인자라면 철저히 매장을 했을 것이다. 마기룡은 프로인체 했지만 사실 그는 초보자 같기도 했다. 또 표독스런 회장부인의 닦달로 그들은 정신이 빠졌을 지도 몰랐다.
 
  “정말 죽이려고 했다면 왜 삽을 가지고 가지 않았겠어요? 데리고 가서 겁주고 사진 찍으려고 했으니까 가지고 가지 않은 거죠.”
 

  김용국은 ‘그것 봐라’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여대생을 산기슭에 데려가 바로 쏴 죽였다는 여태까지의 진술은 어때요?  그것도 사실과 얼마간은 틀리죠?”

  “그렇습니다. 사실 납치해 가자마자 죽인 게 아니고 좀 시간이 길었어요. 산에서 뒤집어 씌웠던 쌀푸대를 벗기고 얼굴에 온통 감아놨던 청 테이프를 뗐었죠. 꽉 붙어있던 테이프를 확 떼어내니까 털이 붙어 나오고 꽤 아파하더라구요. 그런데 우리가 실수해서 그만 눈에 붙은 테이프까지 떼어낸 거예요. 그 여대생이 우리 얼굴을 봤어요.”

  난 비로서 쌀 푸대 하나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그건 그때 없어진 것이다.


  “그때 여대생이 뭐라고 했어요?”

  “팔이 너무 아파요라고 소리치면서 울었어요. 마기룡이 그 자식이 실수해서 여대생 팔을 부러뜨린 거죠. 여대생이 울면서  돈은 요구하는 대로 줄 테니까 살려달라고 빌었어요. 저희는 당황해서 다시 테이프로 여대생의 입과 눈을 감았어요.  차라리 죽여 버리자고 기룡이가 그러더라구요. 제가 안 된다고 했더니 기룡이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어요. 무서워서 내가 산에서 먼저 내려와 차에 있는데 5분후에 기룡이가 왔어요. 뺨에 피가 묻어 있었어요.” 
  이제 김용국의 주장은 회장부인뿐 아니라 자기도 무죄였다.
 

  “말씀대로라면 총이 아니라 먼저 비디오카메라와 주사기를 가지고 올라갔어요 했는데 증거물을 보면 총만 있고 주사기하고 비디오카메라가 없던데 어떻게 된 거죠?” 
  총은 살인의 고의를 증명하고 비디오카메라는 그걸 부인하는 증거물일 수 있었다.

  “내가 정신이 없어서 깜빡 잊고 총만 가지고 올라갔는데 그것들을 가지러 다시 차로 내려온 사이에 마기룡이가 여대생을 죽여 버린 거예요.”

  그게 김용국의 한계였다. 누군가 원격 조정하는 얘기들을 열심히 얘기하다가 엉뚱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당황한 것이다.
 

  난처해진 그는 얼른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물고 늘어지다가 사실 항소심에서는 회장부인을 풀어줄려고 했어요. 그래서 교도소 이송버스 안에서 마기룡이에게 항소심에서는 사실대로 말해  풀어주자고 했더니 나보고 빨리 회장 측에서 피해자부모와 합의나 보게 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왜 합의가 되지 않았죠?”

  내가 물었다.


  “회장님이 합의를 하지 않고 변호사들을 시켜 그냥 무죄라고 내뻗어 버렸어요. 나도 이상하죠.”

  회장은 교사부분을 무턱대고 부인만 할 뿐 전혀 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여대생의 아버지를 자극하고 내게도 적의를 보여 더 회장부인을 공격하게 만든 점이 있었다.


  “그러니까 진실을 말하겠다고 위장하고 변호사인 내게 접근해서 거짓말을 입력시키고 철저히 이용한 거네요?”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재판이란 연극에서 그런 소도구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가 조금도 죄송하지 않은 얼굴로 말을 계속했다.


  “회장부인 담당 변호사가 나를 조용히 찾아와서 한번 그런 식으로 계속 가보라고 했어요. 형이 더 올라 갈 테니 두고 보라는 거죠. 사실 그때 제가 겁이 나서 또 다른 사람에게 물어봤어요. 그 사람은 말을 또 번복하면 불리하니까 그대로 뻗으라고 가르쳐주더라구요. 그래서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죠.”

  결국 그의 머릿속은 회장부인측 변호사의 판단이 맞다는 계산이 생겼을 것이다.


  “김용국씨! 최근에는  교도소로 누가 면회 왔죠?”

  내가 속으로 짐작을 하면서 한번 확인했다.

  “처하고 형수하고 왔어요. 내가 진술을 잘못해서 다 죽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면서 이제부터라도 말을 다시 바꾸겠다고 선언 했어요. 그랬더니 제 처가 펄쩍 뛰면서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된대요. 회장부인이 나오면 자기를 꼭 죽일 거래요. 그런데 옆에 있던 형수는 그러지 말고 말을 바꾸라고 시키구요. 지금도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니까요.”

  다시 강한 시도가 꿈틀대는 걸 느꼈다. 그렇게 하려면 마기룡이 관건이었다. 무기징역을 받은 그가 과연 협상에 응할까?  나는 마지막으로 마기룡을 만나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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