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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법(6)

운영자 2021.01.11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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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법


며칠간 강가의 퇴락한 집 구석방에서 있다 보니까 허리가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냉기가 방바닥을 감돌았다. 그 냉기에 등어리 근육이 굳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석고붕대를 한 것 같이 둔감해지고 움직일 때 전기가 이는 것 같았다. 아파트에서 안락한 생활에 길들여 졌던 허리는 이삼일의 변화에도 아프다고 아우성을 쳤다. 강가 마을의 길거리에 있는 요양병원을 찾아갔다. 일단 엑스레이라도 찍어보고 의사가 서울의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면 갈 생각이었다. 친구가 나를 시골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 정형외과 의사가 없는데 내과의사한테라도 진료를 받으실래요?”

카운터에 있는 간호사 같아 보이는 여성이 말했다.

“그러죠”

“기다리세요. 치료받으신 후에 여기서 수납하셔야 합니다.”

돈을 내라는 소리 같았다. 잠시 후 나는 원장실이란 플라스틱 팻말이 붙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육십대 쯤으로 보이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내가 아픈 증상을 간단히 얘기했다.

“주사나 한 대 맞고 가세요”

의사가 시큰둥하게 결론을 내렸다.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낭만적인 관념 속의 자상한 시골 의사가 아닌 것 같았다. 항상 대하는 노인의 얼굴이 지겨운 듯 말을 걸면 혼이 날 것 같았다.

“저 엑스레이라도 찍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의사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럴 필요도 없어요. 찍고 싶으면 도시의 큰 병원에 가서 찍어요. 주사나 한 대 맞고 가요.”

그럴 필요도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변호사인 나는 의사의 법적 설명의무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의사는 추레해 보이는 두 노인을 빨리 방에서 내보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친구가 옆에서 의사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한 공손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저 무슨 주사인가요? 그 허리에 놓는다는 아픈 주산가요?”

“진통제라니까요. 그거나 한 대 맞고 가시라니까.”

마스크를 단단히 쓴 의사는 두 노인과는 일분일초도 더 말하기 싫은 것 같았다. 우리는 병원에서 쫓기듯 밖으로 나왔다. 겨울의 냉냉한 바람이 강가 마을을 소리치며 달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몇 분을 가면 소문난 팥죽집이 있어. 거기서 따끈한 팥죽을 한 그릇씩 하지.”

친구가 내게 권했다. 잠시 후 우리는 강가의 큰 신축건물인 팥죽가게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미국 포드사에서 생산되는 빨간 페인트 칠을 한 멋진 트럭이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면서 말했다.

“원래 이 팥죽 가게는 마을의 구석 허름한 집에서 두 노인이 정성스럽게 만들어 팔던 거야. 찾아오는 손님들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하니까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어 유명한 맛집이 된 거야. 돈을 무지무지하게 벌었어. 아들이 팥죽집을 물려받아 가게를 대형으로 확장해서 기업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포드회사에서 나오는 짐칸이 달린 저 빨간색 멋진 트럭을 팥죽집 아들이 타고 다녀. 미국에서도 기름을 퍼 마신다는 저 차는 힘이 좋아도 기름값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타지 않아. 그런데 팥죽집 아들은 기름을 퍼 마시는 저 포드 트럭을 몰고 이 시골을 누비고 다녀.”

주유소 앞에 붙어 있는 기름값을 일원이라도 따지는 검소한 친구는 그런 행동들이 마땅치 않은 것 같았다. 팥죽집에 들어가서 잠시 마스크를 벗고 팥죽을 먹을 때였다. 친구와 나는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팥죽을 반쯤 먹었을 때였다.

“마스크를 하고 팥죽을 드세요. 아까부터 봤는데 먹는 게 너무 느려요. 다른 손님 보세요. 빨리 팥죽을 먹고 바로 가잖아요?”

카운터에 있던 팥죽집 아들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원인모를 경멸의 표정에 불쾌한 어조였다.

“나 여기 자주 오는 단골인데 알죠? 내가 아버지 어머니도 아는데”

“알긴 알죠. 그렇지만 저는 보건소의 지시를 철저히 따릅니다. 근처의 다른 가게들은 적당히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아저씨가 변호사라도 나는 괜찮아요. 정부의 지시대로 하니까.”

팥죽집 아들이 시큰둥한 어조로 대답했다. 팥죽 한 그릇이지만 더 이상 고객과 손님의 관계가 아니었다. 나는 남은 팥죽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는 가난했던 부모가 만들때의 정성과 따뜻함이 없었다. 팥죽 가게에서 나올 무렵이었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면서 내가 물었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우리가 뭘 잘못했죠?”

“노인들이 너무 말이 많았어요.”

팥죽집 주인 아들이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팥죽을 반그릇 먹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았다. 분노를 삭히면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일본의 소노 아야코 여사가 쓴 ‘늙어가는 법’이라는 책의 내용을 떠올렸다. 좋은 노인이 되려면 다른 사람이 불손하게 대해도 그 앞에서 화를 내거나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화를 내는 자체가 이미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었다. 그리고 건방을 떨거나 불손한 젊은 사람이라면 그 자체의 인격의 문제니까 개의치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났었다. 더 따지고 싶고 가르치고 싶었다. 반성해 보니까 모자란 나의 인격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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