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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의 꿈

운영자 2020.12.28 10: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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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의 꿈


일요일 낮에 초등학교 육학년인 손녀가 왔다. 추운 길을 걸어서 오느라고 귀가 빨갛게 되고 손이 차다. 손녀의 귀를 나의 손으로 덮어주고 얼음장 같이 된 손을 만져주었다. 손녀가 내 옆으로 오더니 뜨개질 바늘로 짠 작은 주머니에 나의 이어폰 박스를 넣으려고 대 본다.

“작네, 실을 풀어서 조금 크게 떠야겠다.”

손녀는 거실로 나가더니 자기가 짠 주머니의 실을 풀어버리고 코바늘로 다시 짜기 시작했다. 이제는 키도 훌쩍하게 커서 숙녀티가 나기 시작한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나누는 그때그때 훈훈한 사랑의 모습을 써 두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서가에 꽂아둔 나의 일기장에서 백일 무렵 손녀의 모습을 찾았다. 십이년전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유월말경 손녀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백일이 지난 손녀가 우리집으로 와서 두 달째 묵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누워있는 손녀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기저귀를 찬 빨간 다리가 공중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다리의 움직임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렇게 손녀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손녀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를 알아보는 것 같이 히죽 웃는다. 잇발이 하나도 없는 빨간 잇몸이 드러난다. 녀석이 허리를 비틀면서 반응을 보인다. 나는 손녀의 허리를 양쪽 손으로 잡으면서 “할아버지가 우짜 해줄까?”라고 하면서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다. 녀석은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순간 긴장하는 표정이다. 본능적인 자기방어다. 다리도 낙하직전의 공수부대원 같이 딱 들어 올린다. 손녀를 가슴에 안고 방과 거실을 오간다. 젖 냄새가 나면서 따뜻한 손녀의 부드러운 기운이 나의 몸속으로 배어 들어온다. 나의 영혼과 손녀의 영혼이 부드러운 물처럼 섞이는 것 같다. 나는 음악방송을 튼다. 감미로운 발라드곡이 방 안의 공기속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나는 손녀와 함께 춤을 춘다. 손녀는 내 가슴에 매미같이 달라붙은 채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전에는 사랑을 준다는 것이 그렇게 기쁜 것인지 몰랐다. 나는 백일이 지난 손녀을 안고 혼자서 할아버지의 희망 사항을 말하고 있었다.

“다미야, 소녀가 되면 할아버지가 예쁜 청바지고 사주고 엠피스리도 사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

손녀에게 뭔가 해 줄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일 것 같았다. 내가 혼잣말을 계속했다.

“다미야, 네가 예쁘고 착한 대학생이 될 무렵이면 할아버지가 차도 사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때까지 살지 그리고 손녀에게 선물을 줄 능력이 될지 모르겠구나.”

백일 된 아기인 손녀는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어 있었다. 일기 속의 손녀는 시간의 바다 속에서 아직도 백일이 갓 지난 아기로 남아 있었다. 현실의 손녀는 백육십오센티의 훌쩍 큰 키에 할아버지를 위해 뜨개질을 하는 어른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손녀의 뒤에는 얼마 전 낙원악기상가에 가서 사 준 전자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이따금 손녀가 와서 피아노를 칠 때 뒷 통수 라도 보기 위해서 거실에 놓아두었던 것이다.

“요즈음은 왜 피아노를 치러 오지 않니?”

내가 손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과학고를 들어가는 게 저의 목표가 됐어요. 그렇게 하려면 초등학교 졸업 전에 중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다 마쳐야 해요. 수학 공부가 너무 바빠요. 아빠가 다른 것 하지 말고 수학에 전념하래요.”

“과학고에 들어가서 뭘 하려고?”

내가 손녀에게 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사에서 일하는 우주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손녀의 꿈이었다. 나는 손녀가 정말 그 의미를 알고 가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자연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문학을 좋아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손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성적이고 하얀 느낌이 드는 예리한 과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손녀가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되어 덧없는 인생의 트랙을 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손녀가 트랙을 벗어나 푸른 초원을 유유히 거닐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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