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고교동기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급히 만나자는 것이다. 그를 만나 들은 얘기는 아내의 암이었다. 몸 전체에 전이가 되어 몇 달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암은 저 세상에서 보내는 초대장 같았다.
“우리 부부가 왜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는지 몰라.”
그가 후회가 가득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부부가 회사에 열심히 다니면서 개미같이 모았다. 아끼고 아껴서 아파트도 사고 임대료가 나올 상가도 마련해 이제부터 편안한 노후를 지낼 예정인 것 같았다. 남편인 친구는 주민센터에 가서 기타를 배우고 더러 골프를 즐겼다. 그의 아내는 영어에 능통했다. 외국계 회사에서 이사까지 올라간 능력 있는 여성이었다. 그들이 헤어질 때가 된 것이다.
“아내가 나한테 그렇게 헌신적으로 해 줬는데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
그의 후회가 이어졌다. 그 부부와 여러 번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아내를 퉁박을 주곤 했다. 버릇인 것 같았다. 아내는 잠자코 남편의 핀잔을 받고 있었다.
“그 때 그때 먹고 마시고 여행을 다니면서 돈을 쓰고 즐길걸 그랬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는 안다. 그 이틀 후 상을 당한 또 다른 고교동기가 있어 장례식장을 찾았다. 입구의 안내판에 아직 젊음이 남은 코가 오똑한 여성의 사진이 비치고 있었다. 친구의 아내였다. 남편과 삼십년 간 국수를 만들어 파는 가게를 하다가 갑자기 죽었다. 혼자 자다가 피를 토했는데 기도가 막혔다는 것이다. 그들 부부는 잉꼬부부로 소문이 났었다. 풀이 죽어있는 남편은 마치 날개가 한 개 부러진 새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아내들을 먼저 잃는 친구나 선배들이 종종 보였다. 예전에 죽어가는 아내를 보면서 선배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집사람 침대 옆에 있으면서 반성을 많이 했어. 맨날 술먹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곤 했지. 그러다가 바짝 말라서 죽어가는 아내를 보니까 좋은 옷 한 벌 사입히지 못했던 게 가슴에 걸리네”
헤어질 때가 되면 ‘좀 더 잘해 줄 걸’ 하고 모두들 깨닫는 것 같다. 나는 아내와 노년의 삶을 위해 장성 쪽에 있는 편백 나무 숲이 있는 마을의 땅을 조금 사두었다. 숲에서 뿜어나오는 향기가 그윽한 곳이었다. 한 오십대의 남자가 혼자 그곳에 들어와 집을 지어 살면서 작은 동산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의 노후를 아름다운 숲속에서 신선같이 살려고 한 것 같아 보였다. 그런 숲속에도 세상의 싸움이 들어와 있었다. 요즈음의 시골인심은 예전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패가 나뉘어 싸웠다. 그도 어느 한 편에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도로포장이나 물길을 만드는 일상적인 문제에서도 마을 사람들은 사사건건 감정이 대립 됐다. 어느 날 우리 부부가 그 마을 찾아갔을 때였다. 마을 이장이 우리에게 이렇게 전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가 마을로 온 그 양반 심하게 싸움만 하다가 어느 날 자다가 갑자기 죽어 버렸어요. 혼자 살다 죽었으니 그 양반이 지은 집은 산 위에서 혼자 폐가가 되어 버렸죠.”
나는 산 위에 버려져 있는 그의 집으로 가 보았다. 정성을 들여 황토로 지은 오두막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진흙으로 바른 벽의 위쪽에 투명한 유리창을 만들어 계곡 아래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성격이 아기자기한 사람 같았다. 혼자 있을 때 작업을 하기 위한 여러 공구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오두막의 구석에는 그의 침실이 있었다. 침대가 놓여있고 그 옆의 옷걸이에는 오래된 양복부터 점퍼까지 그가 입던 옷들이 걸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오두막을 짓고 살아보려던 초기에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가 버린 것이다. 병원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혼자서 자연인으로 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오늘 아침도 성경을 읽고 나서 책을 통해 백년전 살던 한 노인의 말을 듣는다.
‘인생은 짧고 한계가 있네, 늘 죽음의 언저리에 서 있기도 하고. 그러니 추악한 싸움이나 독점욕으로 힘들게 살 필요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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