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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을 가지고 크라우드 펀딩

운영자 2020.07.13 14:42:28
조회 181 추천 2 댓글 0
암에 걸린 그 노인은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가까운 서해안의 바닷가에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 피서객이 몰리는 해수욕장이 가까운 그 땅은 수십 억의 가치가 있는 땅이었다. 그 땅을 사겠다고 사기꾼이 접근했다. 뒤에는 사채업자가 있었다. 사기꾼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받은 서류를 위조해서 사채업자가 그 땅을 담보로 잡은 것으로 만들었다. 사채업자가 신문광고를 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땅에 전원주택지를 판매한다고. 땅을 가지고 있던 노인은 기가 막혔다. 자기 소유의 해변가 땅이 경매가 되고 조각조각 분할되어 전원주택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분양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사채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일심 법원은 사채업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모든 서류가 합법적이라는 판결내용이었다. 변호사를 하다 보면 악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드물지 않았다. 진실보다 완벽해 보이는 서류를 보는 것이 판사들의 시각이기도 했다. 항소를 제기한 노인이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어떻게 저를 알고 오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떤 인연도 없었다. 소개자도 없었다.

“엄 변호사를 찾아가면 하나님이 돕는 사람이기 때문에 꼭 이길 거라고 말해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걸 믿습니다.”

그가 함께 온 아들과 함께 빌듯이 사정했다. 그 노인이 덧붙였다.

“저는 지금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변호사의 계약금으로 단 십 만원을 낼 능력도 없습니다. 그래도 사정합니다. 해 주십시오.”

수십억의 가치가 있는 재산을 가진 사람이 당장 한 푼도 없다고 말하는 게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재산가치로 치면 부자일 수도 있는 그의 아들은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건을 맡을지 아닐지는 저도 하나님한테 물어보고 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날 저녁 기도했다. 먼저 그 노인이 온 것이 하나님이 보낸 것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내가 할 사건인지를 물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건 나 자신을 그 분께 바치는 것이다.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 나 자신을 그 분께 맡기는 것이다. 그 분이 가라는 데로 가고 시키는 일을 하고 그게 믿음이라는 생각이었다. 두뇌로 계산하고 믿는 건 신앙이 아니다. 그 노인의 사건을 맡으라는 감동이 왔다. 이따금 내 속의 성령은 감동으로 생각으로 양심으로 내게 응답의 메시지를 전해주곤 했다.

‘일을 맡도록 하되 성공보수나 나중의 대가를 계산하지 말고 철저히 값 없이 해 주어라’

그런 감동이 다시 전해져 왔다. 성공하면 노른자 땅의 일부라도 얻을 수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주님은 그런 조금의 욕심도 가지지 말라고 내게 계시하는 것 같았다. 며칠 후 그 노인이 다시 내게 찾아왔다.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어떤 대가도 약정하지 않고 이 사건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노인과 사건계약을 했다. 한마디로 하면 무료변호약정이었다. 민사사건에서 또 큰 재산을 놓고 그런 계약을 하는 것은 내 경험에 비추어 봐도 터무니없는 행위였다. 그러나 나는 깊은 내면에서 오는 어떤 직감에 그냥 따르기로 한 것이다. 이년 가까이 법정에서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 단순한 개인 사채업자가 아니라 회사를 차려놓고 하는 전문선수들인 것 같았다. 겉으로 대표이사도 여러 명을 만들어 놓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크라우드 펀딩’이라고 해서 그 땅을 밑밥으로 삼아 도시의 여러 명에게 낚시를 던지고 있었다. 욕심을 아예 내려놓고 하는 소송에서는 특이한 체험을 하곤 한다. 심리를 할 때마다 상대방의 약점이 생생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돈이 걸려 있을 때는 보지 못하던 많은 것들이 디지털 영상처럼 리얼했다. 심지어 법정에 나온 상대방 변호사의 마음까지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상대방이 견고하게 쌓은 성의 약점이 발견될 때마다 집중해서 포격을 했다. 마침내 그들의 성벽이 부서지고 성문이 열렸다. 그리고 승리를 했다. 내가 이긴 걸 확인시키는 승소판결문이 나의 책상 위에 놓였다. 변호사로서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건 그 분을 위해서 이웃에 있는 힘든 사람을 대가 없이 도와주는 게 아닐까. 그게 사랑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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