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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친구

운영자 2020.06.15 10:00:16
조회 243 추천 4 댓글 0
고등학교 시절 나를 도와주고 이끌어주었던 친구가 있다. 성적이 우수하고 리더십이 있어 반장이었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 그는 내게 수학을 가르쳐 주었다. 과외나 학원보다 친구한테서 배운 셈이다. 베풀 줄 아는 성품이었다. 그와 아주 친해졌다. 그와 같은 대학 같은 과에 가게 됐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는 성적이 떨어지고 나는 실력이 조금 올라가게 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대학생 시절 같이 고시원에 있을 때였다. 콘크리트로 간신히 골조만 만든 이층 건물에 칸을 막아 닭장같이 좁은 방들을 만들어 고시생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삐죽 솟아 나온 철골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고 오십 여명이 공동으로 쓰는 재래식 변소가 두 개 건물 끝에 붙어있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화장실 앞에서는 줄을 서 있어야 했고 들어갔다 나오면 몸에 밴 냄새를 빼느라고 한참 동안 밖에 있으면서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건축공사장에서 노동자들이 먹은 임시식당인 함바보다도 못한 밥과 반찬이 나왔다. 우리들은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고깃국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곳에 묵는 사람들이 한번은 고시원 주인을 불러 따졌다. 고깃국이 아니라 그냥 멀건 기름 국물이었기 때문이다. 고시원을 경영하는 남자가 불쾌한 듯이 우리들에게 말했다.

“내가 오십 명 고기를 먹이려고 일주일에 한 번씩 얼마나 힘들게 고기를 사서 지고 산꼭대기인 여기까지 오는지 알아요?”

“고기를 얼마나 사오시는데요?”

그 말을 들은 고시원에 묵던 한 사람이 물었다. 곱슬머리에 낡은 청색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두 근이요”

고시원 주인은 그렇게 불쑥 말하고는 순간 멈칫했다.

“고기 두 근이면 일 킬로그램 남짓인데 그걸 짊어지고 오시나요?”

고시원 주인의 말문이 막혔다. 그 고시생의 날카로운 질문을 옆에서 들으면서 그가 검사나 변호사를 하면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들은 그곳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면 근처의 축대 위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나와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짝이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은 비유하자면 보리밥을 먹는 형편이지만 고시에 합격하면 나중에는 쌀밥 먹는 세상이 오겠지.”

우리는 미래의 화려한 꿈을 꾸면서 초라하고 힘든 현실을 견뎌 나갔다.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당시는 아직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지 않았을 때다. 정부의 관리가 도지사나 시장 군수로 임명되던 때였다. 5급 사무관인 그는 처음 보직이 지방의 부군수로 발령이 났다. 실력도 원래 좋지만 운도 좋은 친구였다. 그는 고시동기중 제일 빨리 4급 서기관이 됐다. 당시 서기관이면 지방도시의 시장으로 임명될 때였다. 고등학교 시절 모범생인 것처럼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성공하는 친구의 비결을 보는 것 같았다. 누가 도와달라고 하면 내일 같이 철저히 도와주었다. 어떤 반대급부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그들의 입에 의해 좋은 평이 저절로 나가게 하는 것 같았다. 청백리로서 자기 관리에도 철저했다. 그가 국장시절이었다. 부하들에게 추석 때 선물 세트 하나라도 줘야 하겠는데 돈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남에게 부탁을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전혀 관계없는 내가 추석 선물 세트를 사 준 적이 있었다. 그가 마지막에는 장관까지 올라갔다. 대통령과의 정치적 인연으로 그 자리에 간 게 아니었다. 주변 고위 공무원들의 평가에 의해 공무원으로서 끝까지 간 것이다. 고시원에 있을 때 그의 말이 떠올랐다. 장관을 하니까 이제는 쌀밥을 먹는 입장이 됐느냐고 묻고 싶었다. 친구가 장관을 하고 나온 지도 이제는 오래됐다. 그는 장관을 한 사실자체가 이제는 아주 불편하다고 했다. 지하철에서 과거 부하를 만나면 저 양반이 왜 지하철을 타나 하는 눈빛이라고 했다. 또 모임에 나가면 장관 출신이라 밥값을 내야 하는데 그게 부담이라고 했다. 그냥 행정사사무실을 내고 자문을 하면서 나머지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와 나의 인생을 보면서 생각한다. 모든 나무는 씨앗으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간다. 어떤 바위도 처음에는 단단해도 결국에는 먼지처럼 사라진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다. 육체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이제 자신 앞에 놓인 시간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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