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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나

운영자 2020.06.01 11:28:05
조회 107 추천 1 댓글 0
나는 대법원 판결 선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소가 거의 백퍼센트 확실하다고 보았다. 나의 사건 의뢰인은 내가 상대방의 돈을 먹고 재판을 그르쳤다는 사유로 민형사소송을 걸었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당당했다. 그런 사실이 없으니까 주저함이나 거리낌이 있을 수 없었다. 일심과 이심의 열두 명 이상의 판사와 검사들이 신중한 심리와 조사를 거쳐 나의 결백을 증명해 주었다. 대법원이 다른 판결을 낸다는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었다. 선고가 나는 날이었다. 나는 당연히 나올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면의 깊은 속이 검은 연기로 차오르는 듯 답답했다. 그 검은 연기 속에서 누군가가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서 그 존재가 전하는 메시지를 묵살해 버렸다. 오후에 내게 재판결과가 전해졌다. 나의 패소소식이 전달됐다. 법에 무지한 지나가는 사람이 재판을 한다고 해도 그런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억울했다. 그러나 그게 세상이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나의 내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감지했다. 그 존재는 나의 이성이나 생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다른 것 같았다. 종종 교회나 자선단체에서 어떤 선행을 함께 하자고 동참을 요구했다. 힘들게 사는 독거노인을 돕고 전과자나 노숙자를 돕는 명분 있는 일이다. 그런 선행을 하는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으면 나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때도 이상한 게 있었다. 내면의 어떤 존재가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나는 껍데기만 따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내면의 그 존재는 이성이나 논리 또는 감정이 아니었다. 나의 마음하고도 다른 것이었다. 그 존재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더러는 좋은 메시지도 전해주곤 했다. 대학입시를 치르는 날이었다. 오전시험이 끝났다. 오후에 나머지 반을 치러야 끝이 날 예정이었다. 오전시험을 치르고 점심을 먹으러 걸어갈 무렵 내면의 그 존재가 ‘너는 합격’이라고 알려주었다. 고시를 치를 때도 비슷했다. 떨어질 때마다 나는 꼭 합격해야 할 이유와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합격이라고 자기최면을 걸때마다 내 속의 그 존재는 ‘너는 불합격’이라고 미리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다 마지막에 가서 ‘너는 이제야 합격’이라고 내면에서 알려주었다. 감정이나 이성보다 내면의 그 존재가 알려주는 게 항상 더 정확한 것 같았다. 내면의 더 깊은 곳에는 또 다른 파충류 같은 서늘한 존재가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게 만드는 악마 같은 존재다. 뿌리가 깊게 틀어박힌 그 존재가 가장 강력한지도 모른다. 그걸 뽑아버리려고 애를 쓸수록 더 강력하고 끈질기게 내면에 박혀있다. 죽을 때까지 거기 잡혀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나의 작은 밀실에서 조용하게 앉아 나의 내면을 바라볼 때가 있다. 주의 깊게 바라보면 내 안에서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게 나의 영일수도 있고 정신세계의 책에서 말하는 ‘진아’일수도 있다. 우물 같이 깊은 그 안 어디에서 누군가 나의 본체인 영을 관찰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를 찾는다. 정신세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진아는 하얀 스크린 막 같은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렇게 무색인 막 위에 삶의 희로애락의 여러 영상이 투영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뒤에 있는 하얀 스크린이 본체인데도 나오는 장면에만 몰입되어 잡혀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영은 이성과는 또 다른 존재라고 한다. 뇌는 세상을 감지하지만 영은 하나님을 감지한다고 한다. 필라멘트 같은 인간의 영에 전류같은 하나님의 영이 접속하면 인간의 내면이 등불같이 환하게 빛을 뿜어낸다고 했다.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영이 와서 머무는 공간이라고 했다. 그래서 개개의 인간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 것 같다. 더러 악령들이 들어와 인간을 기계같이 부리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 영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걸 다루는 게 종교가 아닐까. 세상만 바라보고 밖으로만 돌던 내가 요즈음은 내안의 나를 찾아보려고 더러 애써 보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힘들다. 육은 죄의 본능에 잡혀있고 뇌도 자유로운 영혼을 막는 뚜껑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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