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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히면 구더기가 되는 인생

운영자 2020.02.17 10:36:33
조회 178 추천 3 댓글 0
오래전 우연히 보았던 내셔널지오그래피의 한 프로그램 장면들이 기억 속에서 불쑥 떠올랐다. 인간의 죽음 이후의 육체의 변화과정을 과학적으로 촬영한 내용이었다. 죽은 백인 남자가 그냥 땅 위에 눈을 뜬 채 놓여있었다. 바짝 마른 눈 위로 파리가 날아와 앉았다가 갔다. 창자 속의 가스 때문에 시신의 배 부분이 풍선같이 부풀어 올랐다. 어느 순간 ‘펑’하는 소리를 내면서 터지고 배가 푹 줄어들었다. 그대로 놔둔 시신은 흙과 구더기와 벌레들 속에서 썩어갔다. 인간의 육신은 결국 구더기와 벌레들의 먹잇감이었다. 며칠 후 과학자가 작은 메스를 들고 시신 옆에 나타나 목을 절단한다. 마른 수수깡같이 시신의 머리가 가볍게 분리됐다. 과학자는 그 머리를 실험실의 솥에 넣고 끓여 살과 불순물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남은 두개골을 깨끗이 닦아 표본을 만들어 벽에 붙은 철제 보관함의 위에 얹어 두었다. 구멍 두 개가 훤히 뚫려있는 그 해골은 더 이상 존재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인간이 저렇게 될 수도 있구나 하고 속으로 경악했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인데도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공허한 해골 옆에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잘생긴 백인 남자가 바닷가에서 낚시를 들고 가족과 함께 미소를 지으면서 찍은 사진이었다. 무게와 질감이 다 빠져버린 그 백골이 그런 삶의 주체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불경을 보면 부처님은 말한다. 죽어서 부풀어 썩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너도 그렇게 된다는 걸 배우라고 했다. 아파서 고통 받는 노인을 보고 너도 그 길을 간다는 걸 인식하라고 했다. 세브란스 병원의 해부용 시신을 보관해 둔 지하의 넓은 방을 본 적이 있다. 가로 세로 반듯하게 놓여 진 수십 개의 탁자 위에 시신들이 잠을 자듯 누워있었다. 나는 시신들 사이를 걸으며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손과 발에 굳은 살이 두껍게 박힌 남자를 보았다. 일생 동안 힘든 노동을 한 사람 같았다. 스스로 해부용 의학 자료가 되기를 희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는 어떤 삶을 살다가 그 탁자 위에서 깊은 수면에 빠져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구석의 한 탁자는 의대생들이 해부실습을 하고 놓아둔 시신이 보였다. 조각난 몸속에 신경이 가느다란 전선줄 같이 팽팽하게 붙어 있었다. 따로 분리된 머리통이 옆에 놓여 있었다. 뇌부분을 보기 위해서 그랬는지 이마 위 쪽이 예리한 톱으로 잘려 있었다. 죽은 사람의 눈꺼풀이 열려 있었다. 눈동자가 허공을 향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눈동자를 보았다.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선한 눈동자였다. 호수같이 맑은 그 눈동자는 어떤 미련도 어떤 아쉬움도 없어 보였다. 육체의 소멸이란 그런 것이다. 어머니의 육신의 소멸도 그랬다. 화로에서 나온 어머니는 몇 조각의 뼈였다. 그 뼈들이 나를 젖먹이고 엎어서 잠재우고 키워 준 실체였다. 평생 변호사를 하면서 수많은 불쌍한 인생을 보았다. 노숙자 합숙소의 한 방에서 죽기 전에 서럽게 막 우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삶을 본인에게서 조금 들었었다. 어려서 거지였다고 했다. 깡통에 밥을 얻어다가 아직 불기가 남아 있는 버려진 연탄 위에 놓고 데워 먹었다고 했다. 십대부터는 친구들과 본격적으로 도둑질을 하기 시작했다. 소년원을 드나들면서 죽을 때까지 그는 범죄를 하는 바닥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에서 그는 울면서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형태의 죽음을 보았다. 내가 소송을 제기했던 재벌 회장님이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는 제목의 자신의 회고록을 내기도 했었다. 그의 일생은 돈 자체였다. 그는 일생 데리고 산 여자를 버렸다. 여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땅마저 빼앗았다. 법정에서 그 여자는 섹스의 도구였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법정에서 만난 내게 모든 걸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기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뱅이라고 변명했다. 내가 건 소송 때문에 회사의 주가가 내렸다고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는 소리를 전해 듣기도 했다. 그도 죽어서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인생은 무엇이었을까. 가지고 가지 못하는 돈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과 영으로 대화를 한다.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분이 묻는 것 같다. 나는 약간 시니컬한 마음이 되어 말한다.

‘정액이라는 더러운 물방울로부터 왔습니다.’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그분이 다시 묻는다.

‘흙과 구더기와 벌레가 있는 곳으로 갑니다’

‘결국 묻히면 구더기가 되는 인생, 겸허한 정신을 가지고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그 분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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