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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기대치

운영자 2020.01.13 15:12:54
조회 162 추천 1 댓글 0
개인 의원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의사로 나이가 먹어가면서 그는 쉬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쉬지 못하고 일주일 내내 진료실을 지켰다. 아내가 아직 쉴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건강이 남아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고 다그친다는 것이다. 장가간 아들의 아파트도 사주어야 하고 시집간 딸도 의사 아버지가 계속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를 보면 콧김을 뿜으려 힘겹게 마차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차 안에는 다 성장한 아들과 딸이 타고 있고 엄마는 마차 앞에 앉아 채찍을 들고 있는 모습이 연상이 됐다. 결혼한 여성들은 남편이 어떤 지위에 올라야 하고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한다는 꿈이 있는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젊은 시절 나는 아내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아내 앞에서 잘난 척을 많이 했다. 과시하고 때로는 거짓말을 했었다. 순진한 아내는 거짓도 진실같이 들어주었다. 그럴수록 아내가 희망하는 그런 남편이 되기 위해 허세를 부리고 내 능력에 부치는 자리와 돈을 바라보기도 했다. 내가 아닌 나를 살아왔다고나 할까. 마흔 살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나는 누구인가? 자유로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능력이 부족한 인간이 과한 욕심을 끌어안고 끙끙대고 있었다. 정상적인 걸음을 걷지 않고 남보다 위로 보이려고 발돋움을 하고 걷기도 하고 허세를 부리면서 발을 옆으로 길게 뻗고 오리처럼 어기적어기적 걷기도 했다. 나는 아내가 꾸는 꿈속의 남편이 아니었다. 성공이 힘들 것 같은 왜소하고 초라한 남자였다. 남들의 시선과 평판에 꽁꽁 묶여 자유롭지도 못했다. 나의 철학과 가치관이 없이 세상에 흘러 다니는 통속적인 판단기준을 차용해서 부평초 같이 세상의 표면을 떠도는 인간이었다. 증권 중개사를 하다가 마흔에 사표를 내고 그림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린 고갱같이 나만의 세계를 찾아 침잠하기로 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치과의사를 하던 고교동기는 갑자기 의원 문을 닫아걸고 산속으로 들어가 인도인 라즈니쉬의 명상철학에 몰입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이혼을 당하기도 했다. 나는 그 친구의 자유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어느 날 기둥 같던 남편이 없어져 버리면서 가정이 무너지는 걸 보는 아내의 허망함도 알 것 같았다. 인생의 궤도수정을 한 나는 경전들과 명상서적 그리고 고전들을 나의 방에 가져다 놓고 그 세계로 빠져들었었다. 가족의 의식주 해결을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노동만 하기로 했다. 그 외는 아무 때나 집을 떠나 배를 타고 세계의 바다를 흐르기도 했다. 처음에 아내는 ‘사회통념’을 따르라고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나는 그 사회통념이라는 말 자체가 구역질이 났다. 속인들의 어리석은 생각과 욕심이 평준화 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혼을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아내는 어느 날 내게 남편에게 가졌던 모든 꿈과 희망을 내려놓기로 했다면서 당신 마음대로 살라고 허락을 했다.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이따금씩 떠오르는 생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크로키를 하듯 순간적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며칠 전 내가 단골로 다니는 안과 의원에서였다. 서울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다시 동경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또 박사학위를 취득한 공부벌레 의사였다. 그의 책상 위에는 그가 밑줄을 치면서 꼼꼼하게 본 내 수필집이 놓여있고 그 옆에는 중요문장을 메모한 공책까지 있었다. 그는 나의 고교선배이기도 했다. 그가 나를 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엄 변호사 수필집을 꼼꼼히 봤어. 예전의 고시에 붙은 사람과 결혼한 부인의 기대치가 있었을 텐데 그렇게 살 수 있었다는 게 쉽지 않은 얘기야. 부인이 대단한 사람이야.”

나는 그의 말 행간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역시 그에게서도 채찍에 의해 마차를 끌고 가는 늙은 말의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었다. 그는 칠십대 중반인 지금까지 평생 진료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너무 오래 갇혀있다가 보니까 가장 편한 곳이 그곳이라고 했다. 그 의원 문을 나서면서 혼자 생각해 보았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음을 내는 거문고의 현 같아야 하지 않을까. 한쪽의 기대치가 상대방을 묶는 족쇄여서는 안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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