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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2019년 가을 대한민국 3 - 서초동 집회

운영자 2019.12.09 11:55:51
조회 106 추천 2 댓글 0
2019년 가을 대한민국


3


서초동 집회



2019년 10월의 토요일 밤이었다. 매주 토요일 서초동 네거리에서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촛불 대신 스마트폰의 플래쉬를 켜서 들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홀로 아리랑’이라는 곡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근처의 빌딩 화단 앞에 앉아 무대를 보고 있었다. 사십대쯤의 남자가 마이크를 들고 군중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여러분 광화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매국노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태극기를 전부 뺏어 와야 합니다.”

광화문 광장의 분위기와는 정반대였다.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역적이었다. 서초동 집회에서 얼굴이 익숙한 젊은 변호사를 보았다. 나라 전체가 둘로 쪼개져 있었다. 역사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랐다. 진영논리가 판을 치고 다른 진영과는 대화가 되지 않는 풍토였다. 내가 거기서 본 젊은 변호사에게 물었다.

“왜 광화문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매국노라고 하는 거죠?”

“미국을 어버이의 나라같이 생각하는 그 사람들은 이미 한국을 팔아먹은 거나 다름없죠. 미국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고들 아닙니까? 수십년을 미군부대가 왜 서울의 한가운데 주둔해 있어야 하는지 소수의 미군장교에게 왜 육십만 대군에 대한 지휘권이 있어야 하는지 그게 정말 주권을 가진 나라인지 우리 젊은 세대에게는 의문입니다. 또 미군이 이 땅을 떠날까봐 벌벌 떨면서 무릎 꿇고 가지 말아달라고 하는 기성세대의 행태가 너무 비굴하다고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산화 될까봐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그분들은 싸우는 거 아닙니까?”

내가 말했다. 그 젊은 변호사가 당장 이렇게 반발했다.

“언제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했습니까? 이승만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해서 4.19혁명이 일어난 겁니다. 박정희가 5.16혁명을 일으켜서 군사독재를 하고 인권을 탄압했습니다. 그 후로 유신독재가 있었고 군사정권은 전두환과 노태우로 연결되었습니다. 우리가 언제 자유민주주의였던가요? 그게 공허한 헌법상의 이념 아니겠습니까? 저희 세대는 나이든 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자유민주주의에서 살아오셨느냐고.”

“그래도 이 나라가 사회주의 정권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게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의 뜻인데.”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유럽을 보세요. 거의 다 사회주의 이념에 입각해 있습니다. 유럽은 폭력혁명과 공산당 독재를 배제한 의회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입니다. 독일은 사민당과 기민당이 서로 교체하면서 정권을 잡는데 사회민주당 좌파는 지금도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이념으로 하고 있잖아요? 북유럽도 복지를 위주로 하는 사회주의 이념입니다. 사회주의를 현실화하기만 하면 가장 이상적인 사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광화문 광장에 모인 기성세대는 어떻게 봐요?”

“저희는 그 분들은 의식이 미국의 반식민지화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의식을 깨끗하게 하기는 불가능하겠죠. 또 개발 독재 시대에 살아온 분이라 특권과 부정에 젖어 있다고 봐요. 한마디로 썩어 있는 데 자신들은 그걸 모르는 거죠. 자기들은 기득권을 다 누리고 있으면서도 평등을 얘기하면 논리도 대지 못하고 그냥 ‘빨갱이’라고 몰기만 하죠.”

젊은 변호사의 논리가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마음의 벽에 뭔가 억울하다는 응어리가 엉겨 붙는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전쟁으로 모든 게 파괴됐던 시대에서 맨손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공산당이 싫어한다는 부자계급도 친일파도 매판자본가 출신도 존재할 수 없었다. 못 먹고 못살면서도 경주마 같이 목숨을 건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중학교입시, 고등학교 입시. 대학입시. 취직시험을 보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정부는 독일로 간호사를 보내 몇 푼의 달러를 벌었다. 나와 동갑인 친척 여자는 독일 병원의 정신병동에서 제일 힘든 일을 했다. 환자들의 똥오줌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는 일이었다. 얻어맞기도 했다. 그러다 정신병을 앓게 됐다. 그녀는 칠십을 얼마 앞둔 지금도 폐인이 되어 있다. 잘살아보자는 대한민국을 위해 땅에 거름이 된 국민이었다. 친구들은 샘플 하나를 들고 세계의 오지를 떠돌면서 장사를 했다. 육칠십대인 우리들이 산업화의 핵심이었다. 동시에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운 세대였다. 최류탄을 맞으며 시위를 했고 감옥으로 끌려가기도 하고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수많은 청춘들이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바로 우리들이었다. 그런데 젊은 세대에게는 사대주의자고 부정과 비리에 젖은 적폐로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았다. 시대의 파도가 험했다. 세상은 이쪽 아니면 저쪽 중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어정쩡한 중간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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