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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70 - 백두산 원시림

운영자 2019.07.08 10:39:54
조회 103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70


백두산 원시림


김연수(金秊洙) 사장에게 어느 날 만주국 참사관인 진학문(秦學文)이 찾아왔다. 진학문은 특이한 인생경력의 소유자였다. 보성고보를 졸업한 그는 진주에서 교편을 잡았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는 유학시절 최남선(崔南善), 최두선(崔斗善) 형제와 친하게 지내면서 유학생 단체의 간부로 활동했다. 그는 장덕수(張德秀), 신익희(申翼熙), 김병로(金炳魯)와 함께 <학지광>이란 잡지를 만들었다. 

그는 와세다대학을 그만두고 도쿄외국어학교 러시아어학과에 입학했다. 궤도 수정한 그의 목표는 문학이었다. 그는 최남선이 창간한 잡지 <소년>에 수필이나 번역문을 기고했다. 그 시절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했다. 그는 타고르를 찾아가 시를 부탁해서 조선잡지 <청춘(靑春)>의 11월호에 실리게 했다. 

진학문은 김연수가 대주주인 동아일보의 논설위원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러시아문학의 본고장인 러시아행을 시도했다. 얼마 후 러시아에서 돌아온 그는 종로의 수송동에 ‘문화상회’라는 잡화상을 차렸다가 문을 닫고 브라질 이민을 갔다. 거기서도 오래 있지 않고 1년 만에 돌아왔다. 이후 그의 행적이 묘연하다가 어느 날 만주국 국무원 참사관이 되어 김연수 사장을 찾아왔던 것이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조선인이 백두산 삼림 벌채권을 얻었는데 추진능력이 없어요, 김 사장이 인수를 한 번 검토해 봐요.”

“무슨 말씀인지 설명을 해봐요.”

김연수 사장이 말했다.

“김여백(金汝伯)이란 조선인이 백두산 근처의 원시림 개발 허가를 얻으면 엄청난 사업이 될 것으로 알고 만주국 허가권을 따냈어요. 삼척기업(三拓企業)이란 목재회사를 만들어 조선에 판매하려고 했죠.

조선은 경성뿐 아니라 전국에 많은 건물들이 새로 지어지고 있어 목재가 필요하죠. 또 철선이 군함제조용으로 징발된 상태니까 항구마다 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나무들이 필요하죠. 그러니 백두산에서 나무를 벌채해 눈 쌓인 겨울에 산자락으로 밀어내리고 그걸 뗏목으로 만들어 강을 통해 떠내려 보내면 된다는 생각이었죠. 함경도의 나무들이 비싼 건축자재로 경성에서 팔리고 있잖아요? 만주국 정부로부터 벌채 허가를 얻은 원시림 9000만 평은 끝없는 숲의 바다요. 그런데 김여백이 막상 하려니까 자본도 기술도 없는 거지. 내가 중간에서 보니까 그냥 두면 일본 놈이 먹을 것 같아서 김 사장을 찾아온 거요.” 

“원시림 벌채사업은 경험도 없고 또 우리 삼양사의 입장에서는 기술도 없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개간사업들은 품이 많이 드는 반면 소득은 보잘 것 없었다. 만주 땅에 온 조선인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일확천금을 하려고 하지 산 속에 들어가 고생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백두산은 그래도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이 아닙니까? 김 사장이 민족기업인이라면 상징적으로라도 백두산에 관련된 기업을 하면 이미지에 맞지 않겠습니까?”

진학문이 물러나지 않고 강권했다. 다음날 허가권을 땄던 김여백이란 사람이 만주의 교포들과 함께 김연수 사장을 찾아와 사정했다.

“이 사업을 맡아서 해주실 분은 민족기업인 김연수 사장님밖에는 없습니다. 만주 땅은 물론이고 全 조선을 뒤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김연수 사장님이 삼척기업을 인수만 해주시면 개간사업에 투입되는 150가구 800여 명의 생명을 구해 주시는 일입니다. 지금 전쟁 중에 유랑하면서 굶어죽는 우리 동포가 그렇게 많습니다. 이건 사업이 아니라 민족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 백두산 아래의 산림벌채 사업은 이해타산을 떠나 인수해 주셔야 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사정했다. 김연수 사장은 남만방적에 와서 임원이던 큰아들 김상준(金相駿), 경리주임으로 와 있던 둘째 아들 김상협(金相浹)과 의논을 했다. 얼마 후 김연수 사장은 삼척기업을 만주국 화폐 100만 원에 인수했다. 사업지는 함경북도의 국경도시 무산에서 50리 정도 떨어진 북간도의 화룡현 대모록구의 원시림이었다. 드넓은 숲의 바다였다. 빽빽한 삼림 속으로 햇빛조차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중국계 주민들도 살지 않는 황막한 곳이기도 했다. 

그곳의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무렵이었다. 벌써 굵은 눈송이가 매일 쏟아지고 있었다. 기온은 영하 40℃를 밑돌고 있었다. 김연수 사장의 명령을 받은 임원들이 두꺼운 누비옷을 걸친 채 눈 덮인 원시림 속을 돌아다녔다. 150가구 정도 이주시키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막상 현장을 확인해 보니 수백 가구를 이주시켜도 하늘이 보이지 않는 삼림지대에서 사람들이 어디 박혀 있는지도 모를 것 같았다. 조선인을 이주시켜도 당장 먹을 양식과 부식(副食), 그리고 특히 산간지역에서 살기 위해서 필요한 소금의 공급이 문제였다. 식량도 문제지만 전매품인 소금은 관청에서 배급해 주는 것 외에는 구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원시림을 벌채한다고 해도 워낙 추운 곳이라 겨울에는 조선 북쪽의 도시들로 옮길 방법이 없었다. 강이 몇 미터의 두꺼운 얼음으로 얼어붙기 때문이었다. 벌채를 해서 그걸 한 곳에 두었다가 봄에 해빙(解氷)이 되면 뗏목으로 만들어 강에 떠내려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벌목할 나무를 운반할 소만 해도 150마리 이상이 필요하다는 계산이었다. 결국 현지에서 스스로 식량을 만들어 생활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김연수 사장은 유랑 조선인들 중 150가구를 선정해서 한 집에 소 한 마리씩을 주고 백두산 지역으로 보냈다. 

극한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산등성이의 펑퍼짐한 곳을 골라 정지작업을 시작했다. 낙엽이 두껍게 쌓여 썩은 비옥한 땅이었다. 수량이 많은 계곡 물을 끌어들여 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수확에는 실패했다. 가을이 되기가 무섭게 찬 서리가 내렸다. 벼는 제대로 익지도 못하고 시들어 얼어버렸다. 워낙 추운 지방이라 가을이 되기가 무섭게 겨울처럼 기온이 급강하했다. 소들 역시 전염병으로 대부분 죽어버렸다. 다음해에도 벼농사는 실패했다. 결국 백두산 아래서는 벼농사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김연수 사장은 농업학교 출신 기술자를 보내 백두산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게 했다. 계곡물은 여름에도 찼다. 그 물은 가을이 되면 얼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농사에 적합하게 하기 위해서는 물의 온도를 올려야 했다. 제방을 쌓고 길다란 수로를 만들어 물이 그곳을 지나는 동안 햇볕으로 온도가 올라가게 했다. 벼를 심었다. 땅이 기름진 부엽토라 벼는 금방 무성하게 자랐다. 여름과 가을이 짧은 곳이었다. 벼는 자라기만 했을 뿐 이삭도 패기 전에 겨울이 다가왔다. 결국 수확에 또 실패했다. 기존의 농법으로는 수확이 불가능했다. 

김연수 사장은 삼양사의 농업기술자들을 모두 동원해서 다시 논을 만드는 일을 시도했다. 돈을 백두산 개발에 쏟아 붓고 있었다. 농업기술자들의 피땀 흘린 노력으로 3년 만에 드디어 곡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연수 사장은 이어서 산림개간에 도전했다. 일손이 부족했다. 동포들 상당수는 지팡살이를 하고 있었다. 지팡살이란 중국인 지주에게 예속되어 사는 속수무책의 삶이었다. 삼양사 직원들은 송화강 연안 곳곳을 다니면서 뗏목노동자들을 모집했다. 조선인 노동자 중에는 하루 3원이라는 임금만 노리는 게으름뱅이들도 많았다. 모집해 온 사람들 중 상당부분은 나무를 자를 때도 허리를 굽혀 밑둥을 찍지 않고 꼿꼿이 서서 나무 중간을 찍어대는 불성실한 사람들도 많았다. 

벌목한 나무들을 통나무로 다듬어 소가 끄는 썰매로 끌어냈다. 가을에 삼림을 벌목해서 겨울에 눈을 이용해 목재를 웅덩이에 모아 놓았다. 여름 홍수철이 오면 뗏목으로 묶어 두만강으로 흘려 내리고 이것을 함경도 회령에 집결시켜 제재소에 넘기는 작업이었다.

그 무렵 오늘날 대한민국의 최고재벌인 삼성그룹의 이병철(李秉喆) 회장은 어땠을까. 이병철은 1910년 2월12일 경남 의령군 중교리에서 천석꾼 지주 이찬우(李纘雨)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경성으로 올라온 이병철은 수송보통학교, 중동중학교 그리고 일본의 와세다대학을 다녔다. 와세다대학을 중퇴한 그는 마산에 정미소를 차렸다. 이어서 그는 운수회사를 인수해 트럭 20대를 굴렸다. 

그는 식산은행 마산지점장인 하라다와 친밀했다. 이병철은 식산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김해평야 일대의 땅을 사들였다. 넓디넓은 김해평야에는 팔려고 내놓은 농장이 즐비했다. 대출만 얻으면 얼마든지 땅을 넓힐 수 있었다. 은행에서 50원을 빌려 논 200평을 사면 소작료로 연 12원이 들어왔다. 대출받은 돈의 이자인 3원65전을 은행에 지불하고도 8원35전이 고스란히 남는 장사였다. 게다가 은행에서는 평당 25전에 불과한 토지가격을 38전으로 감정해 감정가의 70퍼센트인 27전씩을 무제한 융자해 주겠다고 제안하던 시절이었다. 은행융자로 땅을 사면 돈이 오히려 남았다. 적당한 전답(田畓)을 찾아 계약하고 싶다는 의향을 통고하면 은행은 바로 감정하고 융자를 해주었다. 명의변경이나 담보권 설정 등 복잡한 절차까지도 모두 은행이 알아서 처리해 주었다. 이병철의 토지 투자사업은 순조로웠다. 1년이 지나자 이병철은 200만 평의 대지주가 되어 있었다. 

간척을 해서 땅을 늘리는 김연수 회장이 오히려 당당한 모습이었다. 당국의 보조금이 친일(親日)이 될 수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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