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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상맞은 노인들

운영자 2017.11.13 10:14:40
조회 255 추천 1 댓글 0
궁상맞은 노인들
  

탑골공원 뒷골목에 따뜻한 가을 햇볕이 내려쬐고 있다. 나는 거리의 변호사중 한사람인 젊은 김 변호사 옆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세상의 물결에서 벗어난 가난한 노인세대가 흐르고 있다. 초점 없이 흐트러진 모습들이다. 육십 대 말쯤의 남자가 거리변호사 앞의 나무스툴에 앉으면서 다짜고짜 묻는다.

“카드회사에서 이자 삼백만원까지 보태서 천 삼백만원 내라고 통지서가 날라 왔는데 안 갚아도 되는 거 맞죠? 그걸 갚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건 정부가 갚아주는 거 아니 예요?”

빚을 지면 갚아야 하는 게 법치의 기본이다. 복지의식이 법의 원칙을 넘어선 것 같다. 확인을 하러 온 그 남자는 대답이 시원치 않자 그냥 일어서 가버렸다. 점쟁이 앞의 인생상담을 기다리는 고객같이 요번에는 턱이 뾰족한 다른 남자가 앞에 다가와 앉았다. 

“내가 망해서 단칸 셋방을 살고 있었는데 주인새끼가 강제집행을 했어. 내 물건을 다 밖으로 내다놓고 문을 자물쇠로 잠가 버린 거야. 정말 나쁜 새끼지?”

“왜 강제집행을 당했죠?”

거리의 변호사가 묻는다.

“월 세 안냈다고 그래”

“월세를 못 냈으면 방을 내 줘야하는 거 아니예요?”

“아니야 그 주인 놈이 하여튼 나쁜 놈이야.”

“그럼 주인은 뭘 먹고 살아요?”

“그건 내 알 바 없고, 하여튼 나는 망해서 노숙자 신세가 됐는데 이번에는 동사무소에 가서 떼를 쓸까 하는데 어떨까? 기초 지식을 알기 위해 왔어.”

그가 계속 교활해 보이는 눈빛을 반짝였다. 

“요건이 되세요?”

“내가 아들이 있어서 안 돼. 예전에 컴퓨터가 없을 때에는 동사무소에서 아들이 있는 줄 모르고 돈을 줬는데 요즈음은 컴퓨터를 찍으면 당장 우리아들이 나온다는 거야. 그래서 떼를 쓰려고 하는 거지.” 

“그러면 아들보고 좀 도와달라고 하시지 그래요?”

“그렇게는 못하지, 아들 여섯 살 때 내가 고아원에 버리고 갔는데 벼룩도 낯짝이 있지 안 그래? 겨울은 다가오고 나라가 나를 먹여 살려달라고 해야지.”

“요즈음은 기준이 많이 완화됐어요. 형식적으로 아들이 있어도 부양받을 입장이 아닌 게 증명이 되면 주민 센터의 위원회에서 결정을 해서 도와드리기도 해요. 제가 전화해 드릴까요?”

“아니요, 됐어. 하지 말아”

“왜요?”

거리의 변호사가 되물었다. 

“사실 떼를 써서 벌써 받았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 같은 사람 여럿 돈을 받게 변했어. 우리한테는 좋은 거지 뭐”

“그럼 조금 전에 한 말 거짓말이시네? 못 받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냥 지식 얻으려고 물어본 거야”

그는 씩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골목 저쪽으로 사라졌다. 늙은 거리의 변호사가 된 나는 혼자 자문자답을 해 보고 있다. 힘이 조금이라도 남았다면 폐지 한 장이라도 줏는 노동을 통해서 밥을 구하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빵도 중요하지만 영혼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늙은 거리의 변호사인 내가 그 노인들을 보면서 젊은 거리의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우리가 할 법률상담 내용은 간단한 것 같아. 빚을 졌으면 갚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웃이나 국가에 폐를 끼치면 안 됩니다. 그것부터 선언해 가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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