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영화가 다 무상이어라
아는 의뢰인이 요즈음 시청률이 높다는 ‘귓속말’이라는 드라마를 보라고 했다. 자기가 검찰청과 법정에 드나들면서 당한 억울한 내용들이 드라마 생생하게 들어있더라고 했다. 힘을 가진 판검사들이 그렇게 썩어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의 상대방측은 검사출신 변호사에게 거액을 제공하고 그의 기소를 부탁했다. 경찰도 검찰도 정의의 여신도 눈을 감고 그를 법정에 올려놓았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힘없는 정의보다 정의 없는 힘이 더 강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판검사출신의 한때의 영화도 영원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변호사 모임에 나갔다. 서초동 근처의 소박한 한정식 집에서 소식을 나누고 정보도 얻곤 한다.
“박한수 변호사가 며칠 전에 죽었다고 하더구만 췌장암이래”
모임의 좌장인 손 선배가 말했다. 죽은 박한수변호사는 검사로 날리던 사람이었다. 그 시절은 검사들이 사냥꾼처럼 매일 몇 명씩 수갑을 채워 감옥으로 보내는지 실적경쟁이 있기도 했다. 그가 살았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넓은 이마에 키가 컸다. 그가 법원 앞 거리를 성큼성큼 걸어가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 자리에 있던 검사출신 박선배가 말했다.
“박변호사가 부장검사를 할 때 어떻게나 입담이 좋은지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줬죠. 내가 검사시절 그 어머니를 뵌 적이 있는데 구변이 대단 하시더라구. 죽은 박변호사는 어머니 DNA를 가진 것 같았어. 내가 죽은 걸 알았으면 상가에 갔을 텐데 죽은 걸 몰랐어.”
가을 낙엽이 떨어지듯 이제 주위에서 한명씩 두 명씩 죽어간다. 죽은 사람들은 이상하게 곧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가 법조주변 소식을 계속 말했다.
“로펌 아가페를 대형 법무법인으로 만든 양변호사가 뇌졸중이 와서 병원에 있대요. 그래서 사람들이 병문안을 가려고 해도 그 부인이 어떻게나 차단을 하는지 사람을 볼 수가 없다는 거야. 양변호사가 이제는 치매기운이 심하다고 하더라구.”
양변호사는 법원장을 오랫동안 한 분이었다. 그는 로펌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로펌의 이름도 아카페였다. 더러 비판도 있었다. 그의 로펌을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 로펌계의 ‘김앤장’이라고도 불렀다. 그건 비아냥이 섞인 소리였다. 하나님은 그 분에게 이제는 과거의 기억을 모두 털어버리고 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있던 박선배가 상위에서 빈대떡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간장을 찍더니 입에 넣고 씹고 나서 말을 이었다.
“황재운 변호사가 징역 8년을 다 살고 출감을 했대요. 판사를 할 시절 참 호방하던 사람인데. 전국 판사 중에서 골프 실력이 아마 최고였지? 변호사를 개업해서도 돈을 잘 벌어 최고의 빌라에서 풍족하게 살던 사람인데 말이야. 그런데 출감후 지금은 반 지하방에서 살면서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생활보조금으로 살고 있대.”
“판사를 하고 그렇게 돈 잘 벌던 사람이 어떻게 징역을 오래살고 그렇게 가난하게 됐죠?”
내가 박선배에게 물었다. 인생이란 의외로 굴곡이 심한 것 같았다. 젊어서 청운을 누렸다고 노년까지 행복이 계속되는 건 아니었다.
“연해주 땅을 사주겠다고 하면서 다단계처럼 사람들한테서 돈을 끌어 모았는데 그게 사기죄가 된 거지.”
돈에 대한 탐욕이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젊은 시절 그 분들은 고시에 합격했다고 고향사람들에게서 스타가 됐다. 판검사시절 사람들은 그들을 ‘영감님’이라고 부르며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빌었다. 그런 좋은 시절을 누리던 판검사들도 늙고 가난해지고 병들고 죽어간다. 부귀영화와 청운이 모두 무상하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제 그런 모습들이 주변에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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