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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작품에 영혼을 담아

운영자 2017.05.29 10:02:25
조회 154 추천 0 댓글 1
작은 작품에 영혼이

  

고교동창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 법률자문도 하고 이따금씩 식사도 하는 친한 친구였다.

“우리 아버님이 그리신 대작이 두 점 있는데 기증할 데를 한번 알아봐 줄래?”

그의 아버지는 화가였다. 평생을 산과 들을 떠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림시장에서 잘 팔리는 유명한 화가는 아닌 것 같았다. 

“알았어.”

문득 작가들은 대작은 왜 만드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화가들은 대작을 왜 만들지?”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이상한 질문이었다.

“왜 만들다니? 전시하려고 만들지. 그리고 공공장소에 자기 작품이 걸리면 그만큼 명예로운 거잖아? 대신 완성도는 좀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 

나는 몇 군데를 알아보았다. 의외로 기부하기도 힘들었다. 국립미술관이나 서울대학교 같은 공공기관에 기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신청자가 밀려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국제기관에서도 대작을 걸 만한 공간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백년의 신화’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그 전시회에는 화가 이중섭이 6.25전쟁 무렵 담배 갑의 은박지에 그린 작은 그림들이 소개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신문 사진에서 은박지 그림을 보면서 언젠가 헌책방에서 사다가 읽은 수필속의 화가 이중섭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명동의 작은 다방으로 이중섭은 매일 나오고 있었다. 잡지 속의 삽화 한 장이라도 그릴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다. 어둠침침한 다방 구석에 앉아있던 이중섭은 옆탁자의 손님이 버리고 간 담배 곽의 은박지를 빼내어 울퉁불퉁한 나무탁자 위에 올려놓고 평평하게 폈다. 그리고는 바닥에 버려진 구부러진 녹슨 못을 주워 장난삼아 기하학적 추상같은 그림을 그렸다. 더러는 못이 긁고 지나간 자리에 재떨이에 남은 담뱃진을 발라 색이 스미게 하기도 했다. 지나가던 다방 여종업원이 보기에는 장난 같았다. 다른 탁자의 룸펜들은 성냥통의 성냥들을 쏟아놓고 우물모양으로 쌓아올리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중섭은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거기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나무탁자의 갈라진 틈이나 튀어나온 부분을 자연스럽게 그림속의 선이나 면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잡지사 직원이 오면 급히 그리던 그림을 멈추곤 했다. 그때 남은 은박지 그림들이 60년 후에 뉴욕 현대미술관 안에서 세계적인 작품이 되어 있었다. 진짜 작품이란 그림의 크기가 아니라 그리는 순간 자신이 없어지는 그런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순수한 창조의 기쁨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 말이다. 예전에 백발백중으로 활을 잘 쏘는 궁수가 있었다. 영주가 화살을 과녁에 맞출 때 마다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그 순간부터 화살은 제대로 맞지 않았다. 궁수에게는 두 개의 과녁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나는 진짜 과녁이고 다른 하나는 상금이었다. 그렇게 되면 화살은 제대로 맞을 수 없었다. 돈과 바꾸기 위해서 라든가 이름을 날리기 위해 자랑하기 위해 제작되는 작품은 과녁이 두 개가 되어 버린다. 나는 매일아침 성경을 조금 읽은 후 워드 프로세서 화면을 앞에 놓고 손가락 끝에 흘러나오는 생각을 담아 자판을 두드린다. 화가 이중섭이 은박지에 못으로 장난삼아 그림을 그리듯 말이다. 그냥 하루의 즐거움이자 기도삼아 그렇게 한다. 남기기 위한 것은 아니다.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아이처럼 그냥 써 본다. 나중에 세월의 바닷물이 다 없애버릴 것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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