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알이 부어서 절간 입구에 보이는 화엄신장 같이 튀어 올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화면 속에서 모래가 위에서 한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알 속에 여러 개의 좁쌀이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수술한 실밥인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그걸 떼 내기 위해 손길이 갔다. 눈꺼풀이 그곳에 닿을 때마다 파란 불꽃이 이는 것 같이 따끔거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누운 채 시간이 갔다. 활자나 모니터를 보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 긴지 처음 깨달았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인 채 정체되어 있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밤새 몸을 뒤척였다. 누워만 있으니까 허리도 아팠다. 멀쩡할 때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던 눈이었다. 생각해 보니 눈을 너무 혹사시킨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매일 같이 어둠침침한 만화방에 드나들었다.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면서 잠시도 쉬게 하지 않았다. 영양제 한번 제대로 주지 않고 부려먹었다. 어떤 기계라도 그렇게 사용했으면 붉은 녹물이 흘러나왔을 것 같았다. 그 눈에 이상이 생기니까 세상이 없어졌다. 몇겹의 검은 썬팅을 한 것 같았다. 시간이 가지 않았다. 답답했다.
‘이럴 때는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야 하지 않을까?’
나는 벽에 기대 앉아 마음의 눈길을 내면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너는 안 보일까봐 벌벌 떨고 있지?’
내가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 그렇지.’
‘한번 생각해 봐. 왜 너만 아니어야 하는 거지?’
나는 잠시 침묵에 빠졌다. 고통이 닥칠 때 ‘왜 나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속에서 또 다른 내가 밖의 나에게 묻고 있었다.
‘왜 너만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 하는 거야?’
‘그건 그러네, 내가 뭐라고’
뇌리에 떠오르는 죽은 친구의 모습이 있었다. 그가 30대 초경 머릿속의 뇌수가 흐르는 미세한 관을 몸속에 떠돌아 다니던 기생충의 알이 막았다. 뇌압이 올라가자 그는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고 했다. 뇌수를 흐르게 하기 위한 수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시신경이 잘못되어 그는 시력을 잃었다. 그의 인생이 허물어져 버렸다. 그의 아내는 앞을 못 보게 된 남편에게 밥을 떠먹이면서 빨리 30년이 흘러버리면 좋겠다고 저주를 했다. 친구는 내게 자살을 하려고 더듬거리면서 벽에 혁대를 걸어 목을 맸는데 혁대가 끊어지는 바람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고 했다. 그 순간 너무나 아팠다고 했다. 은총인지 저주인지 그에게 암이 겹쳐서 덮쳐왔다. 그 친구는 암 병동에서 죽음을 기다리다가 저세상으로 갔다. 착하고 성실한 친구였다. 같이 법대를 다니고 법무장교생활을 했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빨리 그리고 힘들게 데려가시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게 세상이었다. 나라고 그렇게 되지 않는 예외이어야 할 이유를 나는 찾을 수 없었다. 나도 이제 보이지 않을 수 있고 죽을 수도 있었다. 나는 돌이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육십대 중반이면 살만큼 살아왔지. 아들딸도 다 자랐고 집착할 가질만한 재산도 명예도 아무것도 없는데 왜 너만 죽으면 안 되는 거지? 죽는다고 해도 세상은 전혀 지장이 없이 잘 돌아 갈 텐데’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 심연에 있는 존재가 부연해서 설명을 하는 것 같았다.
‘네가 지금 인생을 마감하나 십년 후에 마감을 하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신의 입장에서는 요절한 청년이나 백살을 산 노인이나 큰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나만 아프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살아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나만 아니어야 할 까닭이 전혀 없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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