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다시 쓰는, 미스티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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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나고 태욱은 검사에서 변호사로, 혜란은 여전히 뉴스 나인 메인 앵커를 맡고 있었다. 혜란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시청률이 예전에 비해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정도였다.
뉴스 나인의 회식 자리.
“오늘도 수고했어,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방송국 근처 고깃집에서 회식하고 있었다. 혜란은 오랜만에 사람들과 부대에 끼며 있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주량을 넘어섰다.
“혜란 선배- 취하시는 거 아니에요?”
“취하긴. 괜찮아!”
“취하신 것 같은데 선배는 그만 드세요.”
걱정하는 후배들.
“괜찮다니까. 다들 마시자고.”
혜란은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어느새 하나둘씩 술에 약한 후배들은 넉다운되어 갔다.
“혜란 선배, 괜찮아요?”
옆에서 혜란을 챙겨주는 기석.
“괜찮아.”
“아무래도 강 변호사님께 전화를 드려야...”
“하지 마.”
“네?”
당황하는 기석. 그녀의 진짜 결혼생활을 아는 사람은 송이 뿐이기에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빠, 그 사람. 괜히 오라 가라 하지 마.”
“그래두요. 선배 진짜 괜찮겠어요?”
“내가 알아서 마셔.”
타박하는 혜란. 그런 혜란이 걱정되는 송이와 기석이다.
“야 고혜란. 적당히 마셔라. 또 만취돼서 우리 집에 가지 말고?”
“알았다니까. 기분도 좋은데 송이야 나 한 잔만 더!”
회식이 끝나고. 이미 회식 자리의 대부분 인원은 집에 가버렸고, 송이는 혜란을 부축해 자신의 차로 태워 혜란의 집으로 향했다. 차에서 잠든 혜란. 송이는 안 되겠다 싶어 혜란을 깨운다.
“혜란아- 도착했어. 일어나.”
“도착했어? 벌써? 고마워, 송이야.”
혜란은 송이의 차에서 내리고 비틀비틀하며 아파트 출입구로 가는데, 굽이 높은 힐을 신은 채로 비틀비틀 걷다 보니 발을 삐끗하며 풀썩 넘어진다. 차를 돌려 가려다 말고 혜란이 넘어진 모습을 보고 차에서 내린 송이.
“혜란아, 괜찮아?”
“어어... 괜찮아. 나 혼자 갈 수 있어.”
비틀거리며 두 걸음 가자마자 또 넘어지는 혜란. 송이가 부축해서 가려고 해도 한사코 거절하니 송이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전화기를 들어 태욱에게 전화하고, 전화를 끊은 지 30초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바로 내려온 태욱이다.
“강 변호사님!”
“혜란이는요?”
손끝으로 혜란을 가리키는 송이.
“왜 이렇게 많이 마셨습니까? 많이 마시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 뉴스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기자 시절에 취재했던 내용을 오늘 처음에 뉴스로 내보내서 혜란이가 기분이 좋았나 봐요.”
“혜란아. 일어날 수 있겠어?”
“히힣- 당연하지!”
벌떡 일어서는 혜란. 그리고는 또 한 발짝 가자마자 비틀거리며 쓰러지려 할 때 태욱은 본능적으로 혜란을 받았다. 혜란의 치마를 자신의 겉옷으로 감싼 후 아예 공주님 안기로 드는 태욱.
“윤송이 기자님.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혜란이 데리고 와주셔서.”
“뭘요. 얼른 들어가 보세요.”
“네.”
혜란은 자꾸 태욱의 품에서 발버둥 치고.
“내려놔아. 내려놔아 나쁜놈아. 나 혼자 갈 수 있어.”
“조용히 가자, 혜란아.”
아파트 출입구로 들어가는 혜란과 태욱.
"쯧쯧- 저게 어딜봐서 쇼윈도 부부야? 고혜란도 참 인생 피곤하게 산다."
멀어져 가는 혜란과 태욱을 보고 나서야 출발하는 송이.
곧장 혜란의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어주고 나가려는데 혜란이 누군가를 불렀다. 가까이 다가가는 태욱.
“ㅁ...명..ㅇ..우...야... 안...돼...안 돼... 명우야...”
때때로 혜란이 완전 만취 상태일 때 잠결에 부르는, 태욱에게도 명우는 익숙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유별나게 고개를 자꾸 저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태욱은 명우라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사실 혜란이 처음 명우라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저 악몽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 도대체 고혜란에게 어떤 존재길래 혜란이 울면서까지 명우의 이름을 불러대는건지 혜란 몰래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 머리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혜란.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나가 물을 마시려는데, 해장국이 끓여져 있고, 식탁에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다.
해장국 먹고 출근해. -태욱-
간결하지만 그의 마음이 느껴지는 포스트잇. 그의 성격이라도 반영한 듯이 글씨체는 아주 정갈했다. 혜란은 태욱이 끓인 해장국을 식탁에 앉아 조용히 먹는다.
회사에 출근한 혜란. 국장실 호출이 있어 바로 올라간 상황이다.
“고혜란, 너 지금 한방이 필요한 거 알지.”
“네.”
“큰 건이 하나 들어왔어. 케빈 리 인터뷰 따자.”
“네? 프로 골퍼 케빈 리는 미국에 거주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제 귀국했어. 원래도 케빈 리랑 접촉하려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썼는데 드디어 접촉됐어. 근데 조건이 있다네. 고혜란, 너를 먼저 만나고 싶대.”
“절요?”
“고혜란과 만나서 얘기해보고 인터뷰 결정하겠대.”
“제가 만약 인터뷰하지 않으면요?”
“고혜란의 한방은 없어지는 거지. 이런 경우 잘 없어. 그냥 만나기만 해봐. 그건 아무것도 아니잖아.”
“국장님! 사전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편파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쯤은 국장님도 아시잖아요.”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지금 cnn측에서 케빈 리와 인터뷰 따려고 눈에 혈안이 되어있어. 우린 잡기만 하면 된다고.”
“국장니임!”
“그렇게 알고 내려가서 케빈 리와 어떻게든 인터뷰 따와.”
“하아….”
고혜란의 뉴스 나인 케빈 리 인터뷰 일주일 전, 회사 내의 카페. 혜란이 먼저 카페에 도착했다. 그때 똑똑하고 혜란의 테이블을 두드리는 사람, 케빈 리였다.
“오랜만입니다, 고혜란 앵커님ㅎ”
능글맞게 인사하는 재영.
“만나서 반갑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저랑 이야기하고 싶으셨다 국장님께 들었습니다.”
“아-주 할 얘기가 많죠. 그 전에 자리를 옮겼으면 하는데요.”
“아뇨. 여기서 얘기하죠.”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제 진실한 이야기를 털어놓질 못하겠는데, 이거 어떡하죠?”
째려보는 혜란과 웃으며 얘기하는 재영.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재영이 혜란을 이끌고 간 곳은 다름 아닌 바였다.
“지금, 여기서 얘기를 하자는 말입니까?”
“사람들도 없고,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커피숍에 비해 적고. 딱이죠.”
“이봐요, 케빈 리씨.”
“요즘 전 세계에서 날 인터뷰하려고 난리인 거 아시죠? 그러니까 앉아요.”
케빈 리를 째려보다가 마지못해 앉는 혜란.
“어디서부터 얘기하면 좋을까요, 고혜란 앵커님?”
“우리 뉴스 나인과 인터뷰를 할 건지, 말 것인지만 답해주시면 됩니다.”
“잘 지냈어요?”
“...”
“나 안 보고 싶었어요? 난 당신 한번도 잊은 적이 없는데.”
“미친.”
혜란은 재영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작게 욕을 내뱉었다.
“그럼, 내 몸이 그리웠던 적은? 우리 아-주 뜨거웠잖아요.”
혜란은 재영과 육체적으로 사랑했던 그 순간이 스쳐 지나가고.
“3년만에 나타나서, 그것도 프로 골퍼씩이나 돼서 한다는 말이 고작 이따위라니.”
“그럼 이따위 말에 고혜란 앵커가 흔들리는지, 안 흔들리는지 한번 검증해 볼까요?”
혜란에게 훅 다가가는 재영.
“이게 뭐 하는!”
재영은 씩 웃으면서, 혜란에게 속삭인다.
"여전하네요, 당신은. 아주 매혹적이야-”
“이것 보세요, 케빈 리씨!”
“흫- 고혜란답지 않게 왜 이렇게 당황해요? 아마추어처럼.”
“...”
“술 한잔해요- 내가 따라줄 테니까.”
센 양주를 따라주는 재영. 재영이 따라주자마자 스트레이트로 마셔버리는 혜란.
“목이 타죠? 내가 무슨 말을, 무슨 짓을 할지 겁도 나고.”
“빨리 얘기나 하죠.”
“나는 미국으로 가기 전에 당신 가장 친한 친구와 만나 결혼했고, 보란 듯이 성공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당신이 나한테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죠. 그게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이네요. 앞으로 방송까지 2주 정도 남았을 텐데 자주 봐요, 우리.”
“무슨 소리를!”
“국장한테도 말해놓을게요. 인터뷰하겠다고. 단, 2주일 동안 당신과 만나지 않는다면 인터뷰는 없다고.”
“좋습니다. 대신 나도 조건 하나 걸죠. 뉴스 나인 인터뷰 끝나면 아예 한국 떠나기로, 그리고 다신 내 눈에 띄지 않기로요.”
예상치 못하게 상황이 역전되자 당황한 재영과 당당한 혜란.
"나랑 딜을 할 때는 이정도는 각오했어야죠. 어떻습니까? 하실래요, 말래요?"
"...좋습니다. 딜, 하죠."
"그럼 오늘 얘기는 끝난 거죠? 내일 뵙겠습니다, 케빈 리씨."
혜란은 당당하게 술을 마저 마시고 나갔다. 재영이 무슨 속셈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가 없었다. 재영은 과거의 남자였고 그건 아무 문제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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