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신선...
그들은 신림동의 수호자들 답게 주변과 사방에 지대한관심이 있으며, 그들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마치 정령처럼 나타나곤 한다.
정령처럼 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들이 정말 어느순간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인데 필자가 여러번 경험한 기억이 있어 간단하게 풀어볼까한다.
때는 2012년..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원룸을 구해서 살던 난 원룸과 독서실에서의 공부가 지겨워 신림동에 위치한 관악구의 모대학 도서관을 사용한적이 있다.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된 곳인지라 정답게도 나는 그곳에서 수많은 인간군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뚜벅이는 발자욱소리를 남에게도 들려주고싶어하는 탭댄서들이나, 15초에한번씩 코를 훌쩍여대는 훌쩍이(이들은 그 15초를 듣는이가 신경쓰게 만들어서 15초가 지났는데 훌쩍이지않으면 그를 바라보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열람실내에서 모든걸 지워버리겠다는 의지로 혼신의 지우개질을 하여 그 열의 책상을 모두 흔들거리게 만드는 흔들흔들열매를 먹은 흰수염지우개, 그리고 자신의 연필끝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아보기위해 받침따위는 치워 버리고 종이한장만 책상위로 올려 글을 써보는 딱따구리들.
모두 하나같이 우리에겐 친숙한 인물들이다. 우리의 신선은 저 위의 예들 중 한가지나 두가지 이상은 기본적으로 갖춘 도인들이기에 특별할건 없지만 신선들의 비범함은 이런것들이 아니다. 말했듯이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보살핌'이 필요한 유저들을 찾아내는데 그 일가견이 있다.
나는 그때 경제학을 공부중이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경제학은 인류사에서 손꼽는 천재들이 그 예민한 감각의 영역으로 돈을 어떻게 벌어볼까해서 나온 학문이다. 당연하게도 나같은 둔재는 그 영역을 이해하는데 무척이나 애를 먹고있었는데, 이를어쩜.
내 옆자리에 신선이 앉아계셨던것이다!
나는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부여잡고 솔로우모형을 이해하려 지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던걸 옆자리 신선께서 무척 안타깝게 보신모양이다. 잠시 머리에 산소를 넣어주기위해 로비로 나와 바람을 쐬며 음료 한잔을 마시는데 그 신선이 나에게로 다가와 말하셨다.
"경제학이 많이 어렵죠? 허허, 저도 초반엔 고생 많이 했습니다 허허"
??
그 때 당시엔 초시생인데다 신림동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때라 신선의 존재에 대해서 나는 모르던 때였다. 하지만 그 때에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신선의 모습을 본 순간 직감적으로 느꼈다.
'오래 공부하신 분이구나!'
"하하;;네 좀 어렵네요..하하;"
걸어오는 말에 대꾸를 안 할 수 없어 나도 옅은미소와 함께 대답을 해드렸는데 그게 바로 신선의 부성애를 자극했던지 신선께선 한껏 고양된 표정으로 자신이 가진 지식들을 지하철 잡상인마냥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까 잠깐 보니 솔로우쪽 거시경제에 대해 공부하는거 같던데, 그 부분은 사실 어려운 부분은 아니예요. 많은 수험생들은 거시부분에서 많이 애를 먹지만 사실 경제학이라는게 그런식으로 접근하는게 아니거든~ 그런문제는....~~~..."
약 5분간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 내용이 지금 기억이 나질않는다. 단지 기억나는건, 그 분의 한껏 고취된 얼굴과 참 안 되었다는 듯한 표정, 거기에 얼핏얼핏 첨가된 자신감어린 눈빛 이정도다.
"어때요? 이제 이해가 좀 되요? 경제학 강의는 누구껄 들어요? 미시는 황xx가 유명하지만 거시는 좀 다를텐데? 강사선택이 중요한건 알죠?"
"......."
고백하자면, 난 그의 말을 단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해가 된척, 그의 말에 깊이 감명을 받은 척, 거기에 그의 지식에 감탄하는 척 까지 섞어 3척의 조화로 그의 흡족함을 이끌어 내었다.
그렇게 자리로 돌아왔을때 나는 솔로우 모형보다 그의 존재가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가 5분마다 한번씩 나를 쳐다보았기 때문인데, 간혹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려운거 말해요 내가 다 해결해줄테니' 라는 말을 애정어린 눈빛으로 대신 하곤 했다.
사실 '제발 물어봐줘' 라고 느낀 건 그냥 기분 탓이다.
음...
그 날 저녁을 집에와서 먹지 않은게 내 실수라면 실수다. 신선께서는 내가 밥먹는것까지 보살피셨기 때문이다.
"아휴. 아가씨가 밥을 그렇게 적게 먹으면 어떡해요. 수험생활이란건 마라톤이거든. 마라톤 선수가 밥 적게먹는거 봤어요? 쭉쭉 잘나가는 디젤차가 기름 안먹는거 봤어? 그러니까 마르는거고, 그러니까 아가씨가 경제학이 어려운 거야. 여자들 수험준비하면서도 다이어트 어쩌고 한다고 하는거 보면, 나는 참 안타까워~. 합격하고 빼면 되잖아? 안그래요?"
모두 맞는 말이다. 너무나 당연하고도 옳은말이라 나는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아마 딱히 반박할 말이 없을거라 생각한다. 신선들의 대화방식은 늘 그렇다. 틀린 말이 없어 반박할 수가 없는게 그들의 공통된 점인데, 이상하게도 그 자리가 불편하다. 분명 아무 영양가없는 친구들과의 시시콜콜한 농담따먹기보단 나에게 피가되고 살이되는 말일진데 그 자리가 영 가시방석이다.
"...하하;;네..오늘은 제가 속이 좀 안좋아서요 하하;"
이 말을 들은 신선께선 또 다시 한껏 찌푸린 얼굴로 "아유, 저런..쯧쯧"
하시며 혀를 찬다.
그리고 다시 수험생에게 건강관리란 또하나의 수험과목이라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으셨다. 자신은 매일 한시간씩 신선로를 거닌다는 말을 버무려가면서.
느끼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내가 말을 바보같이 한면도 있긴하다. 좀 노련하고 감각이 있는 분들이라면 저런자리를 야무지게 빠져나올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신선의 영역은 나에겐 개미지옥과도 같았다. 허우적댈수록 그의 영역에 더더욱 가까워져만 갔다. 개미지옥에 빠져들어 한참을 허우적대다 '아아...난 끝났어' 라며 포기할때 쯤되서야 신선께서 먼저 일어나셨는데, 오늘은 저녁에 약속이 있다고 하셨다.
꽤나 들뜬 모습으로 말이다.
'무슨 약속이길래 저녁을 먹고 만나는거지?'라는 쓸데없는 물음이 내 뇌리를 스쳤지만 난 감히 궁금함을 표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오늘 조언들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민트향처럼 쿨한 제스처를 한 번 보이신 후 그분은 구름처럼 발을 놀리며 멀어져갔다. 축지법을 사용하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빠른걸음으로 사라져간듯한 착각은 덤.
그 이후로 가끔 도서관에 갈때면 신선께서 친히 나에게 친밀함을 표하곤 했는데 그런 날은 난 집에서 밥을 먹고 오곤했다. 아, 내가 어려워 하는 경제학 문제를 아주 쉽게 설명해준 적도 몇번 있다. 아주 탁월한 강의력을 지니셨길래 놀란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신선께서 나를 매우 귀찮게 한다거나,중년들이 젊은 아가씨에게 찝적대는듯한 느낌을 준 건 전혀 아니다. 단지 그 분은 같은 걸 공부해온 선배로써 후배에게 지식을 나누어 주는게 기뻐보였을 뿐이다.
신림동 신선들은 대체적으로 신사적인 편이다. 최소한 같은 고시공부를 하는 후배들에게는 말이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도 2차 스터디를 하며 들은 적이 있는데 그건 다음 편에서 상세히 다루어 보고싶다. 나도 매우 흥미롭게 들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러번 그들을 보며 느낀건 신선들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들역시, 당연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사회적 동물이었으며, 오랜 수험생활로 인해 대화를 나눌 상대가 부족하기에 나같은 고시수험자들을 보면 기뻐하며 대화를 걸곤 했던 것이다. 나중에 그런 것들을 깨달았을 땐 나도 그분들이 해주는 보살핌에 악의없이 고마움을 표하곤 했다. 그러한 일종의 '반응'만으로도 신선들에겐 충분한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잠시 다른이야기를 하자면, 신선들만의 커뮤니티가 있다는 풍문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본적은 없지만,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그 커뮤니티엔 여자신선도 나타난다고 한다. 드문일이나, 그런 모임을 한번가질때면 여자신선은 '홍일점'으로서 인기를 독차지한다는 걸 들은적이있다. 여자신선도 분명 존재한다는게 중요하다.
그들은 신림동에서 많은 수험생들을 관찰하고 돌보며 밤의 자경단처럼 수험생들에게 호의와 애정어린 오지랖을 부리곤 하는데 나는 그것을 '보살핌'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에게 고시생활이 평탄하고 즐거울 수 없다는 걸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영화'다크나이트'를 보면 영화 말미에 배트맨에 대해 이런 설명이 나온다.
He's a silent guardian, a watchful protector.
A dark knight.
좋아하는 장면이라 이 글을 마치며 첨부하고싶다.
'신림동 신선'
그들은 침묵의 수호자이자, 자애로운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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