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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플] 은정(隱情)_ 이혁 번외3

..(118.42) 2019.07.21 02: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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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隱情) : 감추어서 숨기는 마음.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올 겨울 들어 보는 두 번째 눈이었다.

이혁은 궁에서 회사로 이동하는 중에 하늘에서 흩날리는 눈을 보고

문득 써니의 문자를 떠올렸다.


- 첫 눈이 와요, 전하.


써니는 어쩌면 눈과 닮은 여자였다.

깨끗하고 맑은 얼굴이 인상적이어서 누구라도 처음엔 차갑다 느낄 만한.

하지만, 사람들이 눈에 대해 시린 기억보다 따뜻한 추억을 먼저 떠올리는 것처럼

써니는 겪으면 겪을수록 따스함이 느껴지는 여자였다.


“도착하자마자 오써니에 대해 보고해.”

“알겠습니다, 전하.”


한팀장은 무심한 이혁의 말투에서 작은 변화를 느꼈다.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혁에게서 따뜻한 기류가 흘렀다.

연인들의 날인 크리스마스 이브를 앞두고,

한팀장은 내심 해가 지나기 전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길 바랐다.





창을 바라보고 앉은 이혁이 탭에 담긴 사진을 손가락으로 휙휙 넘겼다.

업무를 보고, 식사를 하고, 옥상에 올라가 혼자 커피를 마시고, 다시 업무를 보고.

집과 회사를 쳇바퀴 돌듯 생활하는 써니의 평범한 일상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바삐 움직이던 이혁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다시 움직여 사진을 확대했다.

사진 속의 써니는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훌쩍이고 있는 어린 고객 앞에 손 안의 초콜릿을 내놓으면서.


“그래서, 오써니 직급이 아직 팀장이라고?”

“네, 전하.”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편인가?”


“아닙니다. 회사 내에서 평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고, 일 잘하고, 신사업에 대한 기획 능력도 있고.

다만, 오회장이든 서관장이든 라인을 잘 타야하는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이혁이 웃고 있는 써니의 사진을 얼굴을 중심으로 확대했다 축소했다를 반복했다.

그가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잠시 후, 확대된 써니의 얼굴에서 손을 멈추고 무심코 혼잣말을 내뱉었다.


“귀찮지는 않겠어...”

“네?”

“한팀장은... 황후로서, 오써니... 어떻게 생각하지?”

“나무랄 데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무랄 데 없다...... 더 지켜 봐.”


이혁의 말에 한팀장이 목례로 답을 대신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혁이 써니의 사진을 다시 넘기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진에서 써니는 이렇다 할 표정이 없었다.

세상에 무심하다는 듯 제 할 일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흡사 무채색 같은 느낌을 줬다.

그러다 간혹 얼굴에 생기가 돌며 미소를 띠우는 때가 있었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친절을 내보일 때가 그랬다.

호텔리어로서 가지게 된 직업적인 미소가 아닌 가식 없는 웃음,

이혁의 눈길을 끄는 건 그런 써니의 미소였다.

그 속내가, 진심이 어떤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었지만, 이혁은 나쁘진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자신의 번호를 가지고 있음에도 귀찮게 하지 않은 여자는 써니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제 위치를 알아 적당히 처신할 줄 아는 여자 같았다.





“네, HS호텔 경영지원팀 팀장 오써니입니다.”


- 나야, 이혁.


무심하게 노트북을 향해 있던 써니의 눈이 깜짝 놀라 동그랗게 커졌다.

재빨리 핸드폰 액정을 확인했다. [이혁 전하] 그였다.

그를 만나고, 어언 일 년여만의 전화다.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 듣고 있어?


“네, 말씀하세요.”


- 오늘 몇 시에 끝나지?


“여섯 시가 퇴근이긴 한데... 좀 늦을 수도 있고...”


- 여섯 시까지, 호텔로 한팀장 보내지.


“네?”


- 늦지 않도록 준비해.


그리고 툭... 끊긴 전화는 써니로 하여금 허탈과 무력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사실 써니는 이런 식의 일방적인 통보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제 아버지 오회장으로부터 지금까지 줄곧 당해왔던 일이니까.

그는 이혁과의 정혼 사실을 알릴 때도 그랬다.

저녁 식사 도중 툭...


‘언제가 됐든 황태자와 혼인할 것이니, 부모 욕먹지 않도록 몸가짐 조심해라.’


오회장은 자신이 한 결정에 대해 써니의 어떤 의견도 허용하지 않았고,

자신의 뜻과 계획에서 써니가 조금도 벗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런데 오늘 써니는 이혁에게서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봤다.

그렇다는 건 그도 역시 자신을 이용하기 좋은 도구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써니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눈물만 흘리지 않을 뿐 이미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지러운 심정을 애써 부여잡으며 다시 노트북으로 눈을 돌렸다.

여섯 시 안으로 업무를 마치려면 속도를 내야했다.





가까스로 여섯 시 안에 업무를 끝내고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한 써니는

자신의 행선지를 알지도 못한 채 한팀장과 함께 차에 올랐다.

자신이 탄 차가 궁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목적지에 당도할 때가 돼서야 알았다.

궁에 도착하자 한팀장이 차에서 내려 써니를 궁 안으로 안내했고,

태후전의 홍팀장이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태황태후는 이혁과는 달리 소탈하고 포근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긴장했던 써니는 태황태후의 배려 덕분에 마음이 안정이 됐고, 식사 내내 나누던 대화도 즐겁게 여겨졌다.

사실 이 자리는, 손주 며느리가 궁금했던 태황태후의 고집스런 설득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어쩌면 써니는 남편이 될 이혁보다도 태황태후 때문에 이 관계를 유지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써니는 태황태후 앞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돼버린 이혁에게 내심 놀랐다.

태황태후가 묻기도 전에 자신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 관해 조곤조곤 말해주기도 하고,

태황태후의 재미없는 아재개그에 맞장구치며 웃기도 했다.

써니에겐 모든 것이 꿈만 같은 두 시간이었다.


하지만, 태황태후의 또 다른 배려로 이혁과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됐을 때, 그 꿈은 깨졌다.

이혁은 금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권위적이고 차가운 그로.

태황태후의 명으로 써니와 함께 궁 안 뜰을 거닐고는 있지만,

썩 내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써니의 가슴으로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저와 혼인을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이혁이 걸음을 멈추고 써니를 돌아봤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할마마마가 간절히 바라던 일이셨어.”

“아...”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조금은 다른 식으로 표현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짐작하는 것과 직접 듣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마음이 시렸고, 참담했다. 써니가 잘근 제 입술을 깨물었다.


살짝 물린 써니의 입술이 이혁의 눈에 들어왔다.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또 막상 둘러댈 말도 생각나지 않아 그냥 두었다.

써니가 이혁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앞서 나가자, 이혁이 써니의 뒤를 따랐다.

보폭이 커 써니와 가까워질라치면 이혁이 보폭을 좁혀 거리를 유지했다.

아직은 이 만큼만. 그래서 제 마음도 아직은 여기까지만.


이혁은 자칫하면 태풍에 휩쓸리듯 순식간에 맹목적으로 변하는 제 속성을 알기에 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치기 어린 사랑은 열여덟 그 때 한 번으로 족했다.





이혁과 써니는 태황태후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관계의 진전 없이 새해를 맞았다.

설 전후의 해외고객 유치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는 써니에게 사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늦을 새라 서둘러 사장실로 향한 써니는 사장실에서 막 나오던 기획팀 상무와 마주쳤다.

서관장의 사람답게 그는 항상 써니를 마뜩찮게 여겨왔었다.

하지만, 오늘은 유독 인사하는 써니를 노골적으로 째려볼 정도로 날이 서 있었다.

써니가 의아해하며 사장실로 들어갔다. 사장도 기분이 언짢은 듯 보이기는 상무와 마찬가지였다.


“오팀장, 앉지.”


써니가 소파에 앉았다. 사장이 유독 뜸을 들이며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나간 조상무가 횡령 및 배임 행위로 오늘 사표가 수리 됐어.

그래서, 내일 날짜로 현 상무보가 상무로, 오팀장은 상무보로 승진될 거야.

너무 갑작스럽지만,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써니는 눈만 끔뻑거렸다.

잠시 후, 써니는 사장과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업무에 복귀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창 밖에 시선을 둔 써니의 얼굴에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 나한테 황실 미디어 보도국 국장이 찾아왔어.

재밌는 게... 대학 동문이긴 한데, 그다지 친분이 있거나 하진 않았거든.

그런데, 제보가 들어왔다면서 usb를 내놓는 거야.

난 당연히 회장님께 보고를 올렸고, 회장님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별 말씀이 없으셨지.


“황실 미디어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여자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자신을 본 체 만 체 하는 써니를 향해 밝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팀장님!”

“안녕..하세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뭘, 축하한다는 거지...

의아한 얼굴로 유라를 바라보던 써니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얼른 내렸다.

문이 닫히고, 유라가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 사장실 비서에게 들은 바로는, 내일부로 상무보로 승진될 거라 합니다.

팀장님께선 방금 통보를 받으신 듯 하구요.


전송이 완료되자, 유라가 씨익 웃었다.


“팀장님 덕분에, 나도 승진하시구요!!”




p.s. 이 상플에서 이혁은 사실 좋은 놈은 아니야. 감안하고 봐 줘. ㅠ



은정(隱情)_ 이혁 번외2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109&no=18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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