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하일드(Grimhilde).
디즈니를 조금 아는 사람들에게 백설공주의 빌런인 '이블퀸'의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는 단어이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접할 수 있는 이름이며 디즈니를 다룬 파워블로그나 구글의 캐릭터 소개, 혹은 디즈니 갤러리 내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있어보이는 이름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온걸까?
답은 의외로 찾기 쉽다. 디즈니 위키나 구글 한 번 검색해보면 알 수 있음. 바로 1937년도판 백설공주 코믹스를 비롯한 몇몇 책에서 여왕의 이름으로 쓰인 것이 바로 '그림하일드'.
하지만 이는 '비공식'이며 디즈니는 이 이름이 여왕의 이름이라고 확답을 내놓은 적은 없다.
디즈니의 여러 캐릭터들의 이름과 설정을 빌려다쓴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도 여왕의 이름은 레지나지 그림하일드가 아니다.
뭐 원스 어폰 어 타임의 백설공주는 초반에 쓰인 소재인데다 주인공들 가족이라 다른 동화와는 다르게 디즈니가 아닌 '백설공주 그 자체'를 모티브로 하였기에 굳이 디즈니의 설정을 빌려온게 아닐 수도 있다.
레지나, 라틴어로 여왕을 뜻하는 이 이름은 드라마 내에서 중요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그림하일드와 비슷하게 디즈니 비공식 설정으로 플로리안이란 이름을 가진 왕자도 드라마에선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아 그래도 디즈니 설정이 쓰인 백설공주 캐릭터가 하나 있긴 하다. 디즈니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사냥꾼은 코믹스판에서 햄버트라는 이름이 나왔는데, 이건 그대로 쓰였다.
그런데 이 이름은 사실 반쯤 공식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름이 있어보이기도 하고, 디즈니 백설공주를 소재로 만들어진 다른 작품에서 공식인 양 언급되는게 그에 한 몫 하기 때문이다.
디즈니 캐릭터들의 2세 이야기를 다룬 디즈니 채널 하이틴 영화, <디센던츠>에서 이블퀸의 딸 '이비'로 출연하는 배우 소피아 카슨은 여왕의 이름이 그림하일드라고 했고, 디즈니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한 아동용 애니 <7D>의 악당들 그림과 힐디의 이름 유래가 바로 그림하일드이다.
사실 위의 드라마말곤 어디서도 여왕의 이름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유일한 비공식 설정이 요긴하게 쓰일 수 밖에 없다. 필자도 이름이 간지나서 좋아한다.
하지만 이 이름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비공식'이기에 언제든지 갈아엎어질 수 있다. 라이온킹의 A tale of new brother처럼.
어쨌거나 이 이름을 대략 미녀와 야수의 아담과 같은 급으로 보거나 걍 지 편한대로 부르거나 꼴리는대로 하고.
이름의 유래에 대해 써보자. 일단 그림하일드라는 이름 자체는 북유럽 신화의 시구르드 전승에 등장하는 어떤 악당의 이름이다. 규키라는 나라의 왕비인 그녀는 사악하고 아름다운 마녀로 명예를 쌓기 위해 자신의 나라로 찾아온 영웅 시구르드를 유혹하여 독약을 먹인다. 그 약은 시구르드에게 마술을 하여 자신이 브룬힐데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했고 그림하일드는 그를 자신의 딸과 결혼시킨다. 북유럽 신화에서 이 인물의 이름이 'Grímhildr'라고 표기될 수도 있는데 이때는 'Masked battle(가면을 쓴 전투)'라는 뜻이 된다고 한다. 이를 디즈니의 여왕과 연결시키면, 독약을 다스리는 마녀라는 정체성과 아름다운 외모, 후에 변장하는 전개가 전승 속의 그림하일드와 연결되는 포인트가 꽤 있다.
한편 북유럽 신화와 관계 없이 단어 자체적으로 중세 유럽권 이름으로 취급되기도 하는데
그에 대해선 이 사이트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끔찍하다(grim), 대담하다(bold), 맹렬하다(fierce)'라는 뜻의 고대 독일어 혹은 색슨족 언어 Grim과 고대 아이슬란드어로 '전투'를 뜻하는 hildr.
할머니로 변장하는 게 대담하기도 하고, 악행이 끔찍하기도 그 태도 맹렬하기도 하며 최후에 난쟁이들과 나름의 전투도 하니 이것도 상통하는 면모가 꽤 있다.
클린갤을 위해 예전에 쓴 고전글 좀 더 보강해서 가져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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