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먼저 이야기 하자면 난 술을 처음 만들어 보는 거고 전문적인 지식이라던가 요령 그런거 하나도 없어서 어금니 부서질 짓을 좀 많이 했어, 이해하고 봐줬으면 좋겠다.
때는 이번주 화요일. 학교에서 실습을 마치고 할게 없어서 폰이나 보고 있던 한가희는 한 주붕이가 술을 만든걸 념글에서 보게 되는데, 그 때 생각난게 맨날 집에서 배나 벅벅 긁으면서 게임이나 하는데 나도 저거 한 번 해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 마침 할머니도 지난 3년간 술을 담아 식당 6곳에 납품하셨다 하길래 할머니도 했는데 손자인 나도 뭐 쉽게 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쿠팡 앱을 열어서 찹쌀 4키로 누룩 1키로 그리고 발효죠 10리터를 사게 돼.
다시 생각해도 이 멍청이는 4키로를 4리터랑 했갈려서 10리터 발효조를 샀다는 게 정말 이새끼가 왜 수학 0점을 맞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일단 수요일 8시 즈음에 일어나 새벽 늦게 온 찹쌀을 통에 담고 물을 부어 불려주기로 했어, 이미 씻어서 나온 찹쌀이라 귀찮게 한 번 더 할 필요 없이 그냥 물만 넣어주면 되서 그렇게 힘든 작업은 아니였어. 이렇게 10시간 동안 불려줘야 하기에 학교 가기 전 작업을 한거야.
학교를 다녀오니까 생각보다 쌀이 많이 불어나 있더라고, 딱딱했던 쌀들이 크기도 커지고 엄청 말랑말랑해져서 조금만 힘을 줘도 으스러지길래 혹 쌀에 상처가 나서 술이 잘 안 될까봐 조심조심 물을 버리고 체 두 개에 옮겨 담아서 1시간 정도 물을 빼줬어.
이거는 이제 누룩 1키로랑 물 5리터 정도를 섞어서 불리고 있는거야, 쌀을 찌고 식히는데 몇 시간 정도 들 것 같아서 찌기 전에 섞어주었고 틈틈히 잘 저어줬어. 물은 왜 5키로를 썼냐면 물이랑 쌀 양이 비슷할 수록 술의 단맛이 늘어난다고 하길래 그냥 적당히 비율 맞춰서 해봤어. 술은 만드는데 정답이 없기도 하고 사람마다 비율도 다 다르니까 이게 맞다고 하기에는 좀 그래, 우리 할머니도 나랑 비율이 좀 다르더라고? 그래서 나중에는 할머니 비법으로 함 만들어보려고 생각중이야.
이제 쌀을 찔 시간, 찜기에 물 적당히 붓고 면포 덮어서 쌀 찌면 돼. 정말 쉽지? 일 줄 알았는데... 물을 끓어넘쳐서 쌀에 닿으면 질어지니까 안 돼고, 불이 너무 약해서 물이 안 끓으면 찌는데 오래 걸리고. 불조절 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한 시간 내내 찜기 앞에서 불조절 하고 쌀 고루 익으라고 섞어주고 했어.
결과는? 꽤 잘 됐어! 질은 부분 설익은 부분 아주 작게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꼬들꼬들한 밥이 잘 됐어, 일단 10분 정도 뜸을 들여주면서 다음 준비를 했어.
이제 넓게 펴고 식히면 끝, 위에 면포는 혹 밥이 마르면 큰일나니까 물을 적셔서 올려둔거야. 한 시간이면 식겠지 했는데 양이 양이기도 하고 넓게 펼 곳도 없어서 세 시간 넘게 걸린 것 같아. 추운 베란다에서 계속 뒤집어주고 면포 갈아주고 온도계로 온도 측정하고... 진짜 이 세 시간이 정말 지옥 같았어.
이제 25도 이하로 잘 식은 쌀을 발효조 안에 넣어주고 누룩물을 부어주면 끝이야! 온도는 20도 정도 됐고 이대로 담요를 잘 감싸서 맛있는 술이 되기를 기다리면 끝인데...
어라? 여기서 이제 한가희가 멍청한 띨빡이라는게 증명이 됐어. 4키로 4리터 1키로면 대충 10리터에 담으면 되겠지라는 기적의 수학공식을 사용하면서 생겨난 결과가 이거야. 술을 저어주면서 뚜껑을 열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뭣됐다 라는 생각을 하며 급하게 다른 통을 가져와 허겁지겁 옮겨담았어, 이래서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하나봐.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저게 어제 찍은 사진이야, 위에 뜬 쌀이 가라앉기 시작해서 작은 통은 걸러주기로 했어.
일단 술을 걸러줄 체랑 면포를 준비하고 통의 뚜껑을 열어줘, 뚜껑을 열자마자 올라오는 향긋한 술내에 감탄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어.
술을 천천히 붓고 손맛 가득히 쪼물딱거리며 걸러주면 끝이야! 이제 이걸 병에 담아주기만 하면...
이렇게 뽀얗고 이쁜 술이 완성이 돼! 맛은 뭐라 해야할까... 맨 처음에는 약간의 새콤한 맛이 느껴지다 고소하면서 달달한 쌀과 누룩의 향이 느껴지고 마지막에 톡 쏘는 술의 향이 은은하게 받쳐주는 맛이었어. 하지만 부모님도 나도 입을 모아 이야기한 단점은 단 하나, 숙성이 부족했는지 맛이 조금 부족해 아쉽다는 것 이었어.
약간의 씁쓸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를 보냈고 드디어 오늘! 큰 통의 술을 거르는 날이야. 이 녀석은 겨우 하루만 더 숙성 한 것 뿐인데 하루 차이도 그냥 차이가 아니라는듯 어제와 다른 강렬한 향기를 내뿜었어.
작은 통과 다르게 압도적인 양이기에 두 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술만 만져댄 것 같아, 아직도 허리가 욱신거리고 키보드를 만지는 손에서도 술내가 나는 기분이야. 심지어 어제와는 다르게 좀 더 걸쭉해져 진짜 탁주라는 느낌이 나 곱게 걸러주는 작업도 혼자 힘들게 했어.
결과는 7병 반 이라는 성과를 이뤄냈고 이렇게 내 술 만들기는 끝이 났어. 중간에 살짝 맛을 봤는데 탁주라는걸 증명하듯 술맛이 확 나면서 고소하고 시큼한 맛은 어제보다 더 강해졌어. 어제가 애기 술이라면 오늘은 정말 다 큰 어른 술이라는 기분이 날 정도로 강했어, 도수도 높았는지 한 잔 마신 것 만으로도 주흥이 확 올라오는게 정말 좋았어.
이 정도면 난 성공이라고 생각해, 빚어서 만드는 술 중에서도 가장 쉬운 술이라는 동동주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술은 얼마나 힘들까. 술을 직접 수제작으로 만드는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알게 되었고 묘한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껴서 나중에는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만들 것 같아! 양도 양이겠다 한두 병 쯤 꺼내서 나눔 할 것 같은데 그 때 많이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구 길고 재미없는 글 봐줘서 고마워. 다들 안온한 하루 보내고 즐겁게 마시길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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