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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흑인의 역사 (1) - 미국 노예제의 성립

맥거번197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1.11 16: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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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미국 흑인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어서 여기에다가 미국 흑인의 400년에 걸친 역사를 정리해볼까 한다.

1편은 1619년부터 1850년까지 흑인 노예제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에 대해 다룬다.

2편은 1850년부터 1876년까지 어떻게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왜 이때 흑백 평등이 이루어지지 못했는지 다룬다.

3편은 1876년부터 1948년까지 흑인이 겪은 어려움과 흑인 문화의 발달에 대해 다룬다.

4편은 1948년부터 1968년까지 마틴 루터 킹, 맬컴 X 등의 흑인민권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다룬다.

5편은 안쓸수도 있지만, 쓰게 된다면 1968년부터 현재까지 레이거노믹스와 마약과의 전쟁, 흑인 게토화, 제시 잭슨 목사의 Rainbow/Push, 현대 BLM 운동 등 현대의 흑인민권 운동과 흑인 삶의 어려움 등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건국 초기의 흑인들

미국의 역사적 정신을 하나의 단어로 요약하자면 프론티어(Frontier)의 정신이 될 것이다. 미국은 탐험가 컬럼버스에 의해 발견되었고,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왔으며 오늘날에도 닐 암스트롱이나 존 글렌과 같은 위대한 탐험가들을 배출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프론티어 정신의 국가이다. 하지만 위대한 탐험가의 역사 뒤에는 탐험가의 탐험을 가능하게 했던 것들의 역사가 있다. 대항해 시대 유럽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곳곳을 탐험하며 수많은 자원을 발견하고 거래했다. 거기에는 인간도 포함되었다. 유럽의 탐험가들은 아프리카 부족국가의 추장과 거래해 수많은 흑인들을 납치하거나 사들였고, 이들을 유럽 본국으로 보내 노예 시장을 만들었다.


한편 아메리카 식민지는 상대적으로 노예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15~17세기 미국은 너무 척박한 땅이었고, 초기 미국을 개척한 용감한 주민들은 대부분 굶어 죽거나, 인디언들에 의해 학살되었다. 이들에게는 노예를 구할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1619년 우연히 네덜란드 국적의 노예선이 아메리카 식민지에 잘못 상륙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은 20명의 노예를 헐값에 사들였고, 이들이 자신들을 대신해 척박한 농지를 개간하고 하기 힘든 일을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미국 식민지가 점차 발전할 수록 척박한 미국 땅을 개척하기 위한 노예의 수도 늘어났다. 단 100년만에 아메리카 식민지는 세계 최대의 노예 수를 거느린 지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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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의 흑인 노예들


미국이 독립하기 전, 노예를 필요로 한 지역은 북부 지역이었다. 미국 전체 인구에 대비했을 때 노예의 수는 3% 정도였지만, 북부의 대표적인 식민지인 프로비던스 식민지(오늘날 로드아일랜드 주)의 노예 인구는 전체 인구의 10%에 달했을 정도였다. 남부는 아직 개발이 덜되어있었던데다 항구도 발달하지 않아 노예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반면, 북부는 나날이 발전하는 산업과 이에 따른 노예를 구입할만한 여유가 있는 계급의 등장으로 노예 수가 폭증했다.


그러나 북부 지역의 노예 수가 늘어날수록 아메리카 식민지 내에서 노예제도에 대한 회의감이 높아졌다. 근본적인 문제는 노예 수가 너무 많아져서 노예 반란의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점이었다. 노예 반란에 대한 당대 미국인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첫번째로 식민지 정부는 노예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다. 일례로 뉴욕주는 17세기 말 입법을 통해 장례식이나 예배가 아니면 흑인이 3명 이상 모일 수 없는 법을 제정했다. 두번째는 흑인 노예를 "계몽"시키는 것이었다. 성공회, 청교도, 퀘이커교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흑인을 계몽시키고자 했는데 이중 퀘이커교도들은 가장 성공한 흑인 교육시스템을 구축해 북부 흑인 인권 개선에 기여했다.



독립혁명 시기의 노예제

노예 반란에 대한 우려로 백인 사회가 긴장을 타고 있을 때 일어난 또다른 중요한 변화는 미국 독립혁명이었다. 미국 독립 혁명때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독립전쟁이 장기화되었다는 점에 있었다. 독립혁명 초기에는 흑인들이 군에 입대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극초기에 입대한 흑인을 제외한 모든 흑인에 대한 징병을 거부하는 조치가 내려졌을 정도였다. 하지만 전쟁이 3년 이상 장기화되자 인력이 부족해졌고, 독립군은 어쩔 수 없이 흑인에 대한 처우개선을 약속하며 수많은 흑인들의 입대를 허가했다. 이는 영국군이 흑인에게 자유를 약속하며 회유를 권한 것에 대해 독립군 정부가 경계했던 것도 작용했다. 결국 흑인들은 독립군에 입대해 열심히 맞서 싸웠고, 그 보답으로 노예 지위에서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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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 폐지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존 제이.


흑인들이 독립군에 입대해 열심히 싸우자 많은 백인들은 감명을 받았다. 더구나 독립혁명은 존 로크의 자유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에, 건국의 아버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노예제도를 점진적으로 폐지하는데 동의했다. 예를 들어 후일 대법원장을 지낸 존 제이(John Jay)는 필라델피아에서 노예제 폐지 협회를 조직해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300명 이상의 노예를 보유한 것으로 악명높았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도 노예제 자체에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이었고, 유언을 통해 자신의 노예를 모두 해방시켰다. 이 시기 북부는 대부분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어냈고 농업 대신 상업이 번창했으므로 노예의 필요성도 점차 떨어진 상태였다. 결국 매사추세츠주를 시작으로 많은 북부 주가 노예의 권리를 신장시키거나 아예 노예제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남부의 상황은 다소 달랐다. 가장 대표적인 남부의 주인 메릴랜드 주에서는 노예제 폐지가 주의회 표결 결과 25표 대 32표로 부결되었다. 또 1784년 제퍼슨이 제안한 "오대호 남부 지역에서도 노예제를 폐지하는 안건"은 7개 주 중 6개 주에서 반대하며 부결되었다. 결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남부와 타협을 보아 남부 주가 노예제를 유지할 권리를 사실상 인정하게 되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남부에서 노예제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으므로 시간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올리버 엘스워즈(Oliver Ellsworth)는 "6년 내에 남부 모든 주에서 노예제가 자발적으로 폐지될것"이라고 예상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건국 이후 남부의 노예제

건국의 아버지들의 예상은 끔찍하게 빗나갔다. 남부 주가 갑자기 노예제 폐지에 부정적으로 반응한 것은 무엇보다 목화솜과 관련이 깊었다. 목화솜은 씨를 제거하는 작업이 너무 어려워서 효율이 극도로 떨어졌고 1700년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가장 큰 도시에서도 겨우 7 꾸러미 정도만 수출할만큼 산업 규모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1793년 목화솜 씨앗 제거용 기계가 발명되자 목화솜 산업은 말 그대로 폭발했다. 1794년에 대비해 1804년 목화솜 산업이 10배 규모로 커졌다. 그리고 목화솜이 자라는 지역은 주로 따뜻한 남부였다. 목화솜 산업의 규모가 커지자 남부는 더 많은 일꾼을 부릴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1807년 제퍼슨 대통령이 아프리카인의 인권 침해를 우려하며 노예무역을 금지했기에, 남부는 북부로부터 노예를 사들이는 전략을 취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40년동안 어림잡아 미국 북부에 거주하는 노예 중 60%(742,000명 중 445,200명)가 북부에서 남부로 팔리거나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부에는 노예가 너무 흔해져서 도시 노동자로 노예를 고용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가사 노동도 대부분 노예가 맡았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 흑인 노예들은 1800~1860년대 사이에 북부에서 남부로 이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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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지역의 노예 소유 정도를 나타낸 지도.


남부는 노예를 소유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상원의원 존 C. 칼훈(John C. Calhoun)은 라틴어도 못읽는 흑인이 백인과 똑같은 족속이 아니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우월한 백인이 흑인을 지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주의 제임스 해먼드(James Hammound)는 흑인의 운명이 노예로 부려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남부 주민들은 흑인이 노예로 부려질 때 가장 노예가 행복하며 자유로운 흑인들은 불행하다고 믿기까지 했다. 남부 개신교도들은 구약성경 구절을 임의로 해석해 노예 부리는 것을 정당화했다.


물론 모든 노예가 개처럼 다뤄진 것은 아니었다. 남부 노예의 상황은 각 지역별로, 또 주인별로 달랐다. 우선 미시시피 강 이남인 딥사우스 주(앨라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노예의 처지는 매우 끔찍했으며 모든 노예들이 이 주로 팔리는 것을 두려워했다. 반면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켄터키 등 상대적으로 북부에 가까울수록 노예에 대한 처우가 관대했다. 주인별로는, 예상과 달리 대부분의 흑인들은 부자 주인을 중산층 주인보다 선호했다. 부자 주인은 흑인에게 기숙사를 내주었고, 대규모 노예반란을 방지하기 위해 휴일이나 선물을 주곤 했기에 상대적으로 노예들이 자유로웠다. 반면 노예를 3-4명 정도만 부리는 중산층 주인들은 노예를 일일히 감시하고 직접 처벌했기에 훨씬 빡빡했다. 당연하지만 대노예주 중에서도 하인을 시켜 채찍질하는 막장 주인도 있었으며, 중산층 노예주 중에서도 노예와 한가족처럼 지내는 좋은 주인도 있었다. 또 생각만큼 가혹한 처벌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노예주들은 노예를 인간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재산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잘못을 저질러도 밥을 제때 주었고 사형시키는 일은 극도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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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의 노예들


그러나 주인이나 지역에 따른 차이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노예에 대한 처우는 개선되기 어려웠다. 가장 큰 문제는 노예 주인이 선한 사람이었더라도 노예 해방이 생각만큼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남부 주의 법에 따라, 노예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면 그 노예가 기존에 살던 주와 다른 주에서 살아야했다. 몸만 자유로워지고 경제적인 기반이 없다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으므로, 주인이 노예를 해방시키기 어려웠고 노예 또한 무작정 해방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노예주와 노예 간의 긴장된 관계가 남부에서 계속 이어졌다.


노예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반항했다. 이것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주"와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도주는 최후의 수단이었으며, 위험 가능성이 높았기에 상대적으로 적게 이루어졌다. 대신 노예들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반항했는데, 가장 유행한 방법은 인종차별주의를 역이용해 일부러 멍청한 척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힘들거나 귀찮은 일을 백인 주인이 맡길 때는 일부러 복잡한 농기계를 다룰 수 없다는 식으로 나왔고 백인들은 여기에 속아 넘어갔다. 또 꾀병도 유행했는데, 이 시기 백인 노예주들의 기록을 보면 매우 우연히도 휴일이나 명절때마다 흑인 노예들의 질병 발병률이 뚝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인을 암살하기도 했다. 당시 켄터키 주법에서 흑인 노예를 처형할 수 있는 11가지 조건 중 6개가 우유에 유리가루를 타는 것 같은 "백인 주인에 대한 살해 시도"였을만큼 남부 주는 노예의 반항에 주의를 기울였다.


자유흑인의 상황

이제 노예가 아닌 흑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관한 문제로 넘어가보자. 의외로 당시 미국의 모든 흑인들이 노예는 아니었다. 당시 미국에는 약 48만명 정도의 자유인 신분 흑인이 있었는데, 그중 23만명은 북부에, 25만명은 남부에 거주했다. 자유 흑인이 되는 방법은 1) 주인이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주거나, 2) 스스로 모은 돈을 바탕으로 "자기 스스로를 구매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북부 자유 흑인 중에는 아프리카에서 이민선을 타고 온 소수의 이주민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도시에 거주했으며, 상대적으로 노예에 비해서는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들 역시 차별의 대상이 되었는데 남부와 북부 별로 사정이 약간 달랐다.


우선 북부의 자유 흑인들은 노예제에서 근본적으로 자유로웠으므로 그나마 사정이 가장 나았다. 이들은 백인 공무원의 부당한 조치에 항의할 권리가 있었고, 결사집회의 자유도 제한적으로나마 주어졌으며, 언론을 통해 자유롭게 발언할 권리도 있었다. 따라서 북부의 흑인들은 남부의 노예를 구출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흑인도 소수나마 존재하였고 이들은 자신만의 기업을 만들어 백인을 고용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북부의 흑인은 여러 차별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었고, 오하이오나 오레건 같은 일부 주에서는 거주 이전의 자유조차 없었다.


남부의 자유 흑인은 주인이 없는 노예 수준의 대우를 받았다. 남부 자유흑인은 투표권도 없었고 공무원으로 등용될 수도 없었다. 또한 기본적으로 남부 주 법원은 유죄 추정의 원칙으로 모든 흑인이 잠재적 노예라는 입장을 준수했다. 자유 흑인은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는 증명서를 관청에서 받아 소지해야했으며, 경찰의 무작위 길거리 심문을 거절할 수 없었다. 불운한 일부는 노예상인들에게 납치당해 노예로 팔려나가기도 했다(영화 <노예 12년>이 이를 다룬다). 게다가 남부의 모든 주에서 자유 흑인들은 이주의 자유가 없었고, 결사의 자유도 제한되어 교회 예배 등을 제외하고는 6명 이상의 흑인이 백인 없이 모이는 것이 금지되었다.


미국 흑인의 역사 (2) - 남북전쟁 전후의 흑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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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 폐지를 위한 움직임

노예를 향한 가혹한 대우는 북부 흑백인 모두에게서 노예제 폐지를 위한 움직임을 일으켰다. 하지만 모두가 인종평등을 위해 싸운 것은 아니었다. 사실 당대 링컨을 포함한 대부분의 백인들은 흑인과 백인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꿈꿀 수 없었다. 일부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흑인들을 그들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되돌려보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본래 속했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기독교적 의무에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복잡한 부족 관계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그들은 라이베리아라는 나라를 만들고 그곳에 흑인을 전부 이주시킨다는 단순한 생각밖에 하지 못했고, 이는 흑인들에게 반발을 일으켰다. 초기에 라이베리아로 이주한 미국 흑인은 겨우 8,000여명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1,500명만이 자발적으로 이주했고 나머지는 남부에서 해방된 노예거나 노예 무역선에서 구출된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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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노예폐지론자의 전설,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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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노예폐지론의 전설이자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아버지, 프레더릭 더글러스.


백인 사이에서 진정으로 인종평등과 노예 해방을 위해 싸운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일리이어 러브조이(Elijah Lovejoy), 윌리엄 개리슨(William L. Garrison), 웬델 필립스(Wendell Phillips)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1830년대부터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활동했으며 전미 노예제 반대협회(American Anti-Slavery Society) 등의 조직에서 일했다. 백인 노예해방론은 주로 개신교 교회에서 이루어졌다. 그중에서 감리교와 퀘이커교가 적극적으로 노예해방론에 나섰으며, 이들은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노예 해방을 위해 분투했다. 흑인 해방론자도 존재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us)를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으며, 로버트 퍼비스(Robert Purvis), 프랜시스 E. 왓킨스(Frances E. Watkins), 윌리엄 브라운(William W. Brown)도 거론되며 이들을 묶어 흑인 노예해방론자 4인방이라 한다.


노예제 문제는 남부와 북부를 분열시켰고 북부 내에서도 분열이 일어났다. 모든 북부인들이 노예제 폐지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노예가 해방되면 자유 흑인이 되어 북부인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생각에 노예제 폐지를 반대했으며, 대니얼 웹스터(Daniel Webster)와 같이 북부 상원의원이었음에도 노예제를 옹호한 정치가도 있었다. 반대로 남부나 민주당도 일방적으로 노예제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민주당 내에서 노예제에 반대하는 일부는 자유토지당(Free Soil Party)을 창당하고 마틴 밴 뷰런(Martin Van Buren) 전 대통령을 당수 겸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는데, 이 당은 노예제 반대 정치인들의 중심이 되었다.



남북전쟁으로 가는 길

1850년대 들어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1820년 타협을 통해 미주리 주 이남의 주를 노예주로 확정하도록 했지만, 북부의 자유주와 남부의 노예주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남부 노예주가 추가되면 북부 자유주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수를 맞추려 했지만, 타협이 맺어진지 30년이나 지나면서 캘리포니아, 캔자스 등 새로운 주의 노예 문제를 어떻게 할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결국 1850년 헨리 클레이(Henry Clay) 상원의원은 노쇠한 몸을 이끌고 남부와 북부가 타협할 수 있는 새로운 자유-노예주 조정안을 내놓았다. 한데 이 조정안에는 도망친 노예를 더욱 가혹하게 단속하고, 이미 해방된 노예까지 다시 잡아들이는 조항이 포함되어있어(1850년 도망노예법) 노예제 폐지론자들을 자극했다. 도망친 노예를 길거리에서 채찍질하고 잡아가는 노예사냥꾼에 폐지론자들은 경악했으며, 이는 국가적으로 주류가 아니었던 노예제 폐지론이 급격하게 인기를 얻는데 기여했다. 또한 <톰 아저씨의 오두막> 등 노예제의 비인간성을 폭로하는 문학도 노예제 폐지론 여론에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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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노예해방론을 주장한 상원의원 찰스 섬너.


1854년의 캔자스-네브래스카 협정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캔자스 주를 노예주로 할지 자유주로 할지에 대해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도록 판결이 내려지면서 노예제 폐지론자와 존치론자가 캔자스 주로 위장전입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폐지론자와 존치론자들이 캔자스 주에서 혈투극을 벌이며 사태는 최악의 방향으로 흘러갔고, 양론의 대립은 더이상 말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특히 민주당과 양당 구도를 이뤘던 보수정당 휘그당(Whigs)의 분열은 더욱 심각했다. 휘그당은 노예제 폐지와 존치에 대해 명확한 의견이 없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찰스 섬너(Charles Sumner), 존 프리몬트(John C. Fremont)와 같은 노예제 폐지론자, 이른바 "양심 휘그당원"(Conscience Whigs)이 휘그당을 탈당, 노예제 폐지론을 당론으로 내건 공화당(Republican Party)을 창당하며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투쟁은 극에 달했다.


여기에 더해 흑인의 반란은 국가적 분열을 더욱 부추겼다. 가장 유명한 흑인 노예 반란은 냇 터너(Nat Turner)의 반란이었다. 냇 터너는 독실한 기독교신자 노예로서 자신이 흑인의 모세라고 생각했고, 폭.동을 일으키면 저절로 신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무모한 반란은 주변의 노예들이 합세하며 60명이 참여한 대규모 노예반란으로 이어졌고 수십명의 노예주가 학살당하고 뒤늦게 출동한 경찰에 의해 주모자 전원이 처형되며 마무리 되었다. 백인 폐지론자에 의한 반란도 있었는데, 급진적 폐지론자인 존 브라운(John Brown)은 가족과 함께 노예제 폐지를 위한 자경단을 꾸려 노예주들을 참수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이러한 모든 갈등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공화당 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자 극에 달했다. 남부는 노예제 폐지론의 정당인 공화당이 승리한 것에 참을 수 없었고, 연방 탈퇴를 결의했다. 남북전쟁의 시작이었다.


남북전쟁 때의 흑인들

남북전쟁 당시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상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노예제를 매우 싫어했으며 인류 사상 가장 끔찍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급진적인 노예 폐지론자는 아니었다. 남북전쟁 당시, 켄터키 주와 같은 일부 노예주가 북부 주에 잔류했다. 이를 "국경주"라고 하는데, 노예제를 허용하긴 하지만 분리독립을 할만큼 북부에 불만이 많은 주는 아니었다. 링컨은 더 많은 주가 남부에 붙을수록 전쟁에 승산이 없어진다고 생각했기에 급진적으로 노예제 폐지를 밀어붙이지 않았으며, 흑인들과 공화당 내 급진주의자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일례로 남북전쟁 당시 장군이었던 존 C. 프리몬트가 자신의 점령지 내에 모든 노예를 해방한다고 선언하자, 링컨은 국경주를 자극할 것을 우려해 프리몬트를 직권남용으로 해임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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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 그는 남과 북이 모두 타협할 수 있는 실용적인 노예 해방론을 지지했다.


링컨은 노예제 존치론자들에게는 너무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동시에 급진적 노예폐지론자들에게는 아주 온건하다고 받아들여졌다. 그는 처음에 30년동안 천천히 노예제를 폐지하고 금융적으로 남부 노예주에게 보상을 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또 파나마 지역이나 아이티 등으로 해방된 노예들을 이주시키는 방안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모두 흑인들의 격렬한 반발, 그리고 공화당 내에서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한편으로 링컨의 최우선 목표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의 목표는 미국을 통합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링컨은 모두가 만족할만한 "타협지점"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했다. 비록 처음에 흑인들은 그에 반발했지만, 미국의 통합을 위한 링컨의 노력을 존중했고 링컨에 대한 지지 입장을 강화했다.


북부군은 남부군에 비해 더 많은 흑인을 받아들였지만 그렇다고 흑인의 권리가 평등하게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북부군 내에서 흑인은 상당한 차별을 받았다. 북부군의 흑인들은 봉급에서 차별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직 1/3만이 실제 전투에 투입되었고 나머지는 후방의 보급책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흑인들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곤 했고, 사기도 뛰어났다. 흑인들은 북부를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길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경향은 전쟁이 진행될수록 거세졌다. 링컨이 점차 자신의 온건한 입장을 수정했고, 전쟁 과정에서 용감한 장군들이 계속 노예의 도주와 해방을 도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루이지애나를 점령한 벤 버틀러(Ben Butler)가 자신이 포획한 노예를 자신의 "전리품"으로 취급하고 노예주들에게 자신의 노예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비록 엄청난 논란이 있긴 했지만 미국 전역의 흑인들은 해방의 선언에 자극되었다. 반면 남부는 흑인들의 탈주로 인해 곤란한 지경에 빠져있었다.


1863년쯤이 되자, 링컨은 의미 없는 온건론보다 차라리 노예를 해방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득일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링컨은 모두를 놀라게 한 노예 해방선언을 발표했는데, 이는 흑인들의 링컨에 대한 여론을 반전시켰다. 1864년 쯤에는 흑인들은 대부분 링컨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1865년, 링컨은 노예를 폐지하는 수정헌법 제13조를 통과시키는데 성공했고, 이로서 노예제는 미국 전역에서 폐지되었다.


남북전쟁 이후의 흑인들

1865년, 남북전쟁의 종결과 동시에 링컨이 암살되었다. 링컨은 온건한 재건 정책을 표방했다. 어디까지나 그의 목적은 남북의 통합이었지 흑인과 노예의 해방은 그 이후의 목표였다. 링컨 암살 직후의 혼란기 동안, 남부는 이 점을 노려 흑인의 인권을 약화시키는 여러 법안을 만들었다. 이를 묶어 "흑인단속법"이라 하는데, 예를 들어 미시시피 주에서는 흑인이 열차 1등칸에 탑승할 수 없었고 플로리다에서는 흑인이 백인 교회에 출석하면 39대의 회초리를 맞아야했다. 이러한 법률은 공화당의 급진적 노예폐지론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찰스 섬너를 주축으로 한 공화당 급진파는 링컨의 사망으로 공백이 된 공화당 권력을 차지했고 매우 급진적인 인종평등 정책을 남부에서 추진했다.


공화당 급진파에 의해 테네시를 제외한 모든 남부 주에 군정이 실시되었다. 이들은 박탈되었던 흑인 투표권을 남부의 해방된 노예들에게 확대했고, 남부에서 공화당의 권력을 확장하려고 노력했다. 1868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율리시스 그랜트(Ulysess S. Grant)는 30만표 차이로 승리했는데 흑인의 표 45만표가 그랜트에게 향한 것으로 드러나며 흑인은 공화당에게 있어 잃을 수 없는 유권자 층이 되었다. 최소한 1874년까지 공화당은 남부에서 흑인, 북부에서 이주한 백인(카펫배거), 남부에서 흑인에게 동정적인 백인(스칼러웨그)를 엮는 유권자 연합(이른바 "애국동맹")을 구축했고, 무려 22명의 흑인 의원을 남부에서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헌법 14조를 포함해 여러 민권법안을 통과시키며 찬란한 흑백인종평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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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의 재건정책을 무너트린 남부의 내셔널리즘 운동


남부인들은 급진파의 "폭정"에 분노를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이 시기 북부에 대한 남부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KKK단과 같은 남부 내셔널리즘-백인 우월주의 조직이 싹트게 되는데 이를 리디머(Redeemer) 운동이라고 부른다. 리디머 운동은 남부 전역에서 일어났고 공화당의 유권자 연합을 붕괴시켰다. 남부 주를 지역구로 둔 현직 공화당 하원의원을 총으로 쏴죽이는가 하면, 흑인이나 인종평등주의자 백인을 길거리에서 매질하는 등의 행동으로 흑인을 내쫓고 인종평등을 주장하는 백인들을 북부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결국 1876년도에 이르러, 남부에서 당선된 공화당 하원의원이 고작 4명에 불과할정도로 남부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모든 권력을 독점한 상황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공화당은 이러한 부조리한 반동에 맞서 싸울 생각이 없었다. 찰스 섬너나 존 프리몬트와 같은 인종평등주의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떴고, 그의 후계자들은 인종평등보다는 관세와 같은 다른 경제적,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남부를 장악한 백인우월주의 정권에 대항할만한 세력이 없었고 흑인 노예 해방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게 된다.



출처: 백악관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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