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레인저대대)
영국군의 코만도는 미 육군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고 그들로 하여금 유사한 부대를 만들게 했다.
본토에서 주둔 중이던 제1보병사단 소속 인원들 중에서 자원자들을 받아 코만도들이 받던 특수한 훈련으로 육성한 제1레인저대대는 현대 최초의 미 육군 레인저 부대였으며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처음 데뷔한 이들은 이탈리아 전선까지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북아프리카와 시칠리아, 안치오까지 3차례의 상륙전에서 모두 선봉을 맡은 이들은 북아프리카의 사막을 강행군으로 돌파해 이탈리아군의 정예 경보병인 베르살리에리 대대를 기습해 대대 병력을 전부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는 등의 활약을 남겼고 부대가 해체된 뒤에도 남은 임원들이 제1특수임무부대로 넘어가 활약했다.
그 뒤로 창설된 제 2, 3, 4, 5, 6 레인저 대대는 모두 2차 세계대전에서 인상깊은 활약을 펼쳤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레인저 부대가 하나 더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제29임시레인저대대였다.
1942년 가을 당시, 정규 미 육군 보병사단 중 유일하게 영국에 주둔하던 제29보병사단은 실전과 떨어진 나날들을 보냈다.
비럭 사단장인 거하트 소장의 감독 하에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했으나 훈련은 실전과 같지 않았으며 영국은 전쟁과 떨어진 곳이었다.
영국 상공의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한 독일은 다시는 영국에 상륙할 엄두를 내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한들 병력에 열세에 놓인 연합군이 무작정 유럽 본토를 침공할 수도 없었다.
제29보병사단은 약 2년 뒤에야 찾아올 실전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계속 훈련에만 몰두하던 중 1942년 12월, 영국의 코만도와 유사한 부대를 창설하라는 공문이 미 육군에 떨어짐에 따라 제29보병사단은 부대의 일부 인원을 차출한 정예부대를 창설하게 되었다.
당시 미군에는 제1레인저대대만 존재했기에 제29보병사단의 인원들로 구성될 새로운 레인저 대대는 제2임시레인저대대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며 이들의 창설 목적은 앞서 창설된 제1레인저대대와 동일했다.
일반 소총병들을 특수부대원들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위해 제1레인저대대의 일부 인원들이 기간병과 교관을 맡아 제2임시레인저대대에 합류하는 한편, 영국의 코만도와 블랙와치연대에서 실전 경험이 풍부한 인원들도 기간병과 교관 자격으로 합류했다.
(영국인 교관의 통제 하에 훈련받는 제2임시레인저대대)
소총병에서 특수부대원이 되는 길은 험난했다.
레인저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지원 자격은 특등사수였으며 후보생들은 훈련을 통해 군사적 목적의 정찰 전문가이자 주야를 막론하고 기도비닉을 유지할 수 있으며 적진에서 식량과 물을 자급자족함은 물론 자신이 본 모든 것을 보고하는 능력을 갖춰야 했다.
그러지 못한 이들은 모두 냉정하게 탈락했는데 강행군, 사격, 장애물 극복 등 오만가지의 시험 중 단 하나라도 합격점을 못한 후보생은 즉시 원대로 복귀해야만 했다.
다른 레인저들과 마찬가지로 실전적인 전투 훈련을 받은 이들은 장전된 총으로 진흙탕과 철조망을 넘어 전진하다가 무작이로 튀어나오는 표적을 사격해야 했으며 일부 표적은 후보생의 코앞에서 튀어나오도록 설정되었다.
코앞에서 튀어나오는 표적을 재빨리 단검으로 찌르거나 개머리판으로 때려눕히지 못한다면 그 후보생 또한 실격이었는데 이는 레인저가 받은 훈련의 실전성을 증명한다.
코만도와 유사하면서도 더 보병의 성격이 짙었던 레인저는 소총, 기관단총, 자동소총 뿐만 아니라 기관총, 박격포를 도수운반했고 이들은 박격포를 짊어진 채 60km를 행군하는 엄청난 훈련을 받았다.
이런 훈련을 받은 제2임시레인저대대는 곧 제29임시레인저대대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으며 영국에서 시행된 연합군의 전술기동훈련에서 수십마일을 급속 행군으로 돌파해 대항군 역할을 수행하던 영국군의 지휘부를 섬멸하기도 했다.
이는 제1레인저대대가 지중해에서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을 상대로 수행한 기습작전과 거의 유사했고 훈련에서 제29임시레인저대대가 보여준 성과는 그들이 같은 방식으로 훈련받은 선배 레인저 만큼이나 뛰어난 전투원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제29임시레인저대대는 우샨트 섬의 독일군 레이더 기지를 기습해 기지의 거의 모든 독일군을 사살하는 놀라운 데뷔전을 치뤘으나 안타깝게도 이들의 활약상은 이게 끝이었다.
제29임시레인저대대는 별다른 이유 없이 해체되었고 모든 레인저 대원들은 원대 복귀 명령에 불만을 가졌으며 대대장 밀홀랜드 중령은 이들을 독립된 특수부대로 유지할 것을 간청했으나 결국 제29임시레인저대대는 해산했다.
레인저'였던' 인원들은 원래 보직인 소총수로 돌아가 이후 노르망디와 보카쥬, 독일 본토에서 격전을 벌였다.
혹독했던 훈련 덕분인지 레인저 출신 29보병사단 인원들은 많은 숫자가 오마하 해변과 보카쥬에서의 유혈이 낭자한 전투에서도 살아남아 단 11개월도 존속하지 못했던 잊혀진 레인저에 대한 기억을 후대에 남길 수 있었다.
(독수리 내리다의 제29임시레인저대대원들)
잊혀진 레인저들이었던 제29임시레인저대대를 직접적으로 다룬 매체는 해당 부대 소속으로 참전한 베테랑들의 회고록을 제외하면 전무하며 간접적으로나마 다룬 작품도 잭 히긴스의 소설과 이를 영화화한 '독수리 내리다'를 제외하면 전무하다.
다만 영국인인 히긴스의 미군에 대한 평가절하와 부족한 고증 덕분에 독수리 내리다에서 묘사된 제29임시레인저대대는 현실과 아예 다른 순수한 창작으로 봐도 무방한 처지다.
원작 소설에서 히긴스는 주변 인물들의 대화로 제29임시레인저대대를 '한 일이라고는 도버해협의 섬 1개를 기습하고 도망간 것 밖에 없는 부대'로 평가절하하지만 훈련과 단 1차례 뿐이었던 실전에서 제29임시레인저대대가 보여준 성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또, 소설과 영화의 이 부대의 대대장은 바탄에서 부하들을 내버리고 자신만 빠져나온 뒤, 공적을 독차지하고자 휘하 대대원들을 팔시름예거들에게 닥돌시켜놓고선 자신은 영국인 스파이를 잡으러 갔다가 사살당하는 머저리로 묘사되나 실제 제29임시레인저대대의 대대장 밀홀랜드 중령은 많은 부대원들의 존경을 받아 1944년 12월에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용맹한 장교로 명성을 떨쳤다.
극중에서 제29임시레인저대대는 팔시름예거가 주둔한 마을을 공격하다가 엄청난 피해를 입고 결국 이 사건의 은폐 목적으로 부대가 해체되었다는 설정이 나오며 히긴스는 사건의 생존자들은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 전출되어 대부분 입을 열 수 없어 제29레인저대대가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는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았지만 만약 제29임시레인저와 팔시름예거가 실제로 맞붙었다면 학살당하는 쪽은 팔시름예거였을 것이다.
팔시름예거들은 그저 낙하산 훈련을 받은 보병이었던 반면, 제29임시레인저대대원들은 무작위로 튀어나오는 표적을 사격하거나 온갖 전투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특등사수 기준을 충족하는 사격술을 갖춘 정예 전투원들이었다.
비록 레인저로서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레인저 훈련을 받았던 이들은 오마하 해변과 생울타리에서의 근접전이라는 시험을 맞아 많은 공을 세우면서 훈련의 가치를 입증했다.
아래는 29임시레인저대대를 지휘했던 랜돌프 밀홀랜드 중령이 1944년 12월 딸에게 보낸 편지 일부.
세상에! 그 대원들을 다시 지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렇다면 우리들은 독일군을 말려 죽여버릴 수 있을텐데...
그들은 이제 나를 떠나버렸지만 난 여전히 그들의 소식을 듣고 있는데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내고 있으며 그들과 함께 싸우는 병사들과 장교들에게서 한결같은 칭송을 받고 있단다.
그들은 진짜 사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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