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독립군의 흑역사 하면 킬구의 치하포 사건과 자유시 참변이 거론돼는데
치하포 사건, 자유시 참변과 격을 달리하는 최악 흑역사지만 세상에 잘 안알려진 사건이 있으니
청산리 전투의 지휘관, 김좌진 장군이 일으킨 빈주 사건임
1920년 후반대 만주에 자리잡은 독립군들은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를 설치하여 자치를 시작하는데
그 중 신민부는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이 차지하였음
이들은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재만동포들에게서 세금을 수취하고 군수품을 징발하는데
문제는 이 동포들이란게 거의 대다수가 현지 중국인들에게서 소작일을 해주고 받는 품삯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들이었단거
불만은 끓어올랐지만 북로군정서군은 무장보안대를 통해 불평분자를 색출하고 처벌함
1927년 2월, 그 와중에 일본군은 신민부를 공격하여 수뇌부 다수를 체포했고 신민부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어
지속적인 무장투쟁을 주장하던 강경파인 군정파와
우선 현지 동포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민중자치 온건파인 민정파로 분열됨
김좌진은 군정파의 우두머리를 맡고 동포들을 상대로 세금 수탈을 지속함
신민부 빈주현의 주민들은 참다못해 터져서 세금을 안내겠다 선언하고 군정파가 쳐들어올때를 대비해 대책회의를 시작함
이 소식을 들은 군정파는 군사를 보내 회의장을 급습, 비무장 주민들을 상대로 총을 난사, 학살했고
40~50명의 빈주현 주민들이 사망함
이게 바로 빈주 사건임
이 사건으로 김좌진은 재만동포들에게서 마왕, 폭군이란 칭호를 획득하게 됨
6개현, 16지역의 한국인이 모인 북만주민대회에서 궐석재판으로 김좌진에게 사형을 선고할 정도로 반감이 대단했음
김좌진은 훗날 같은 한국인인 사회주의자 김상실에게 암살되는데
빈주 사건으로 인한 원한으로 살해됐단 설이 있을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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