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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넘치는 가미카제 특공대원의 편지..jpg
https://www.youtube.com/watch?v=gol5dFrv4Ao2015년 여름 오키나와 전투 70주년을 맞이해 미국 하와이주 진주만에 있는 전함 미주리 기념관에서 가미카제 기념회가 열렸다. 이 역사적인 전시를 통해 미국과 일본 양국은 굳건히 함께 서서 화해와 상호 이해의 정신으로 그 과거를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출격 전야에 남긴 편지들은 많은 미국인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한 특공 대원의 편지 소위 아나자와 토시오 (23) 후쿠시마 현 출신으로 주오 대학에 다녔고 육군 특수 사관후보생 조종사 훈련 프로그램의 1기생이었다. 그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실행될 대규모 가미카제 공습인 기쿠스이(菊水) 3호 작전에 포함되어 출격을 준비한다. 1945년 4월 12일, 아나자와 토시오는 제20신부 특수 공격 비행단의 일원으로 꽃다발 배웅속에서 미소를 지으며 하야부사 1형 전투기를 타고 치란 공군 기지에서 이륙하여 오키나와 서쪽에서 특수 공격으로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오키나와 전역에서 가미카제는 44년 이후 기존 공격으로는 달성 할 수 없는 엄청난 피해를 입혔고, 조종사들의 희생은 미군의 본토 상륙작전을 재검토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본토 가족들에 대한 공습을 어느정도 저지시켰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태평양 전역까지 넘보는 소련에 경계심이 생길때 까지 버텨냈기 때문에 일본은 전후에도 독일처럼 분단되지 않았다. 미해군의 공식 자료에 의하면 전쟁말 미해군의 발전한 대공방어를 상대로 가미카제는 통상적인 공격 대비 명중률이 10배이상 높았고, 명중까지 필요한 조종사 및 기체는 1/2이었다. 한마디로 조종사와 비행기를 덜 잃고 피해를 주는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아나자와 토시오는 학생시절 처음 만난 약혼자가 있었다. -출격하기전 약혼자에게 썼던 마지막 편지- 63년이 지난 2008년, 일본의 한 다큐에서 이제는 백발노인이 된 약혼자 치에코는 여전히 잊지 못하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때 토시오 소위가 피우던 담배꽁초까지 보관... 괜히 서양에서 특공대원을 사무라이로 묘사한 책까지 나오고, 직접겪은 미해군조차 그 투지와 용기를 인정하는게 아니다. 백인들은 끝까지 맹렬하게 싸운 행위를 높게 평가한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leeloo고정닉
지금까지 모은 유벤투스 30장 유니폼 모음입니다
유벤투스는 제 해외축구 첫사랑 팀입니다. 2002년 가을, 그러니까 02-03 시즌서부터 유벤투스를 응원하게 됐습니다. 유벤투스에 입덕한 계기는 파벨 네드베드 (체코), 잔루이지 부폰 (이탈리아) 덕이었습니다.05-06 시즌까지 세계축구를 군림하던 유벤투스, 하지만 그 시즌에 일명 ‘칼치오폴리’ 에 적발돼 리그 우승 2회를 반납하고 세리에 B 리그로 강등돼버렸습니다. 저는 그 당시 유베가 2부 리그로 강등됐더라도 꿋꿋이 유벤투스 공식 홈페이지의 경기결과와 경기리뷰를 읽으며 팬심을 붙잡았습니다. 결국 06-07 시즌 세리에 B 리그 우승으로 한 시즌 만에 다시 1부 리그로 돌아온 유베, 하지만 여기서 제가 너무 유벤투스에 질려버렸던 건가요. 07-08 시즌서부터 대략 10-11 시즌까지 유벤투스 축구 응원을 포기했습니다. 그냥 없는 팀이라고 생각하고 유벤투스를 잊고 살았습니다. 다시 12-13 시즌서부터 유벤투스를 응원하게 됐고, 그렇게 유베 축구를 붙잡게 해준 은인이 안토니오 콘테 현 나폴리 감독입니다. 콘테가 유베 축구를 다시 재밌게 바꿨기 때문에 제가 다시 유벤투스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겁니다. 여기에 불을 붙인 건 18-19 시즌, ‘신두형’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유벤투스에 깜짝 입단한 대사건이었습니다. 세상 살면서 호날두가 유베 유니폼을 입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UCL 우승에 목 말랐던 유벤투스였기 때문에 ‘윈나우’ 로 큰 돈을 들여 영입한 게 호날두였습니다. 호날두는 비록 유베를 UCL 우승으로까지 이끌지는 못했지만, 세 시즌 동안 무려 100골 이상을 터트리며 월클 스트라이커로서의 덕목은 다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저에게 ‘유벤투스에서 제일 좋아했던 선수는 누구냐’ 고 묻는다면 저는 당연히 호날두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물론 좀 더 올드비인 척, 유식한 척 하려면 네드베드나 부폰을 언급했겠죠. 하지만 호날두가 저의 유베에 대한 애정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제 마음속 유벤투스 넘버원 스타는 다름 아닌 호날두입니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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