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뭘 읽을까하다가 그냥 재미있는 책을 읽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모리미 도미히코의 유정천 가족이다.

모리미 도미히코는 적어도 내게는 정말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름만으로 믿고 보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유정천 가족은 모리미 도미히코의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이 교토를 무대로 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 주인공이 너구리가족이다.

이 너구리들은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둔갑도 할 수 있는 존재다.   아니 인간으로 둔갑하는걸 넘어서 큰 사물로도 둔갑한다.

어떤 너구리는 거대한 산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어떤 너구리는 전철로 둔갑을 하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텐구라는 초자연적 존재도 나온다.

텐구는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라다니며, 바람을 부르거나 천둥을 치게 할 능력이 있다.   이 정도면 논리를 완전히 벗어난 판타지가 맞다.

주인공 너구리는 너구리 대장의 세째 아들인데 모리미 도미히코 소설 주인공 답게 무위도식하면서 재미있게 살 생각만 한다.

하지만 아버지 너구리가 음모에 빠져서 인간들의 전골요리가 된 후에는 어쩔 수 없이 사건에 말려들 게 된다.   그렇다고 심각해 보이지는 않아.

소설은 시종일관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심각한 상황인데도 작가 특유의 문체 때문에 가볍게 보이는거지.

주인공 아버지 너구리를 죽게 만든 원수가 알고 보니 작은 아버지고 이 너구리는 나중에는 주인공 가족 전체를 멸문의 위기로 몰거든.

거기다가 원수의 딸은 주인공 너구리의 전 약혼자인데 자기 아버지 눈을 피해서 주인공 너구리를 도와주지.   이렇게 써놓고 보니 통속적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 소설은 그런 통속적인 분위기는 나지 않아.   모리미 도미히코가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를 씨줄과 날줄로 하여 독특한 문체를 보여주기 때문이지.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너구리 가족의 끈끈한 가족애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나 형제간의 사랑이 이 소설의 주된 주제라고 해도 될 정도야.

순전히 가볍고 즐겁게 읽으려고 선택한 소설이었는데 다 읽고 나니 뜻밖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