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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9:ix 카오스의 도구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2.06 17: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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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ix 카오스의 도구



당신은 항상 이 순간을 상상해 왔다. 거의 탐욕에 가까운 기대감으로, 이 가능성을 음미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여기 도래한다.


그래서, 그러면, 당신의 아비가 발하는 분노는 어디에 있는가? 그가 풀어 놓는 공포는 어디에 있는가? 그의… 모든 것이, 대체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분노에 찬 가부장의 격렬한 분노를, 혹은 상심에 찬 부모의 고통스러운 탄원을 기대했다. 하지만 당신의 아비는 지금, 그냥 저기 서서 당신을 바라볼 뿐이다.


당신의 발하는 영광을 보고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아비를 긴 시일 동안 보지 못한 채다. 당신은 변했다. 성장했다. 당신은 더 이상, 당신의 아비가 기억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어쩌면, 당신의 아비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아비 역시 변한 채다. 작아 보인다. 일전의 그에 비기면 그림자에 불과한 느낌이다. 사실, 당신은 이 재회를 남몰래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던가. 당신이 기억하는 당신의 아비는 위엄을 담은, 거대하고 끔찍한 힘 자체였기에 그러하다. 당신의 아비는 항상 당신을 압도하는 존재 아니었던가. 오래전 아비의 곁에 있던 시절, 그 완벽한 30년의 시절 동안, 당신은 항상 안전하다는 느낌을, 그리고 그와 함께, 그와 똑같은 수준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던가. 당신의 아비는 정말 모든 것이었다. 당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아비에게 전적인 애정을 보냈다. 그리고 당신은 아비가 입을 열어 꺼낸 한 마디에 전율했다.


하지만 당신의 아비를 보라. 아비를 볼지어다. 당신의 아비는 여전히 인상적이다. 황금의 갑주가 발하는 섬광 속에 번득인다. 어깨에 두른 망토는 가장 뛰어난 다마스크(Damask, 각주 1) 천에서 잘라내어 만든 것처럼 보인다. 황혼이요, 가장 풍성한 왕실의 피로서 자아낸 망토다. 위업이요, 평온이다. 길고 빛나는 머리칼. 고귀하고 후광이 드리운 얼굴. 그 위에 씌워진 광휘의 왕관까지. 제국의 표상 그 자체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아비는 실로 작아 보인다. 당신은 그것이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있어 아버지는 완벽하고 확실한 거인으로 보이리라. 하지만 아이는 자란다. 완벽하고 확실한 거인으로부터 결점을, 불완전함을 알아보게 된다. 아이는 성숙해지고, 아버지는 더욱 작아지고 연약해진다. 당신은 스스로가 아비에게 겁을 먹었던 적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에 빠진다. 당신은 이미 당신의 아비를 뛰어넘은 채다. 이것이, 고작 이것이 당신이 두려워했던 존재인가? 이 골동품 갑주를 두른 이가, 여기까지 이르러 당신에게 항의하고, 당신에게 제 권위를 발하겠다고? 당신의 아비는 여전히 한 번의 시선으로, 말 한마디로 당신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더는 아닌데 말이다.


당신은 이제야 깨닫는다. 당신이 항상 두려워했던 것은 아비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생각한 아비의 형상이었음을. 당신은 아비의 침묵이 아비 역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기에 이어지는 것이기를 바란다. 이제, 당신의 아비가 당신을 두려워할 시간이다.


아마도, 당신의 아비는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고-


+내 아들을 죽였구나.+


그래, 아비가 드디어 입을 연다. 그 충격 때문에 말을 잃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소, 아비여. 내가 그랬소. 내가 숨길 것이 무엇이리이까? 그 시신은 모두가 볼 수 있게 저기 있었거늘. 나의 의지를 밝히는 표현이라 생각하시오.


당신은 후회스러운 격통을 느낀다. 생귀니우스가 그렇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그가 그렇게 생귀니우스처럼 굴지 않았다면, 글쎄, 아마 이 순간은 더 만족스러웠으리라.


“내 옆자리를 제안했소.”


제법 진실한 슬픔에 찬 목소리로, 당신이 입을 연다.


“나는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소. 당신이 그러하듯, 그 역시 내 옆에 설 자격이 충분했으니. 하지만 그는 유감스럽게도 거부했지. 그리고 그 거부로 인하여, 그의 죽음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되었소. 그것이 유일한 선택지였지. 이해하시리라 믿소, 아비여. 당신은 전적으로 합리적인 이가 아니더이까. 나 역시 당신으로부터 합리성을 물려받지 않았소. 가련한 생귀니우스, 그의 처형은 유일하게 가능한 합리적인-”

+내 아들을 죽였구나.+


이건 또 무슨 꼴인가? 당신의 아비가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외에 무엇도 하지 못하는 것인가? 왜 당신의 아비는 당신의 말을 듣지 않는가?


“나는 그에게 새로운 질서 속에서의 권력을 제안했소.”


당신이 다시 입을 연다. 연민은 덜하다. 당신의 아비가 당신을 화나게 하고 있기에. 당신은 저기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다섯 옥좌를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손짓한다.


“그는 화신의 오른팔이 될 수도 있었겠지.”


당신이 계속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소. 이 우주가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 내가 아니라면 오직 무가 있었을 따름이오. 그리고 그는 무를 선택했고, 그 결과가 죽음이었을 뿐이외다. 아비여, 당신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오. 다시 말하오만, 당신이 전적으로 합리적인 존재 아니더이까. 이 상황에서 당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이해하시오. 내 제안을 전심으로 수용하소서. 아비여, 이제 내가 인류의 주인이외다. 내 우편에서 함께 미래를 만들어 주시기 바라오.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있으리까. 긴 세월 전에 그러했듯, 우리는 함께 설 것이오. 하지만 이번에는, 당신이 진 짐을 덜겠소. 그 수고를 덜겠소. 인류를 위해 너무도 오래 봉사하셨으니, 그 보상으로 평안과 안식을 취할 수 있게 하겠소. 그저 옥좌에 앉기만 하면-”

“내 삶의 왕께서는 네 요구에 응하거나 항복의 제안을 수용치 않을 것이다.”


이건 또 누구인가? 누가 감히-


아, 당신의 아비는 다른 이들을 이끌고 있다. 당신은 이제야 그들을 발견한다. 너무도 하찮아, 거의 알아보지도 못한 정도다. 아비가 작아 보일 지경이니, 저들은 숫제 개미나 다름없어 보일 지경이다. 당신의 군대는 어디에 있소, 아비여? 당신의 자랑스러운 군대는, 온 은하를 정복한 군단들은 어디에 있소이까? 고작 두 명의 아스타르테스 스페이스 마린에, 커스토디안 한 명을 이끌고 오셨소? 그것이 최선이오? 그것이 남은 전부요? 오, 아비여. 실로 강자의 말로가 이러하구나.


지금 말한 것은 커스토디안 파수대원이다. 육 위로 생귀니우스의 선혈이 묻은 채 앞으로 나선다. 아스타르테스 중 하나는 천사의 시체를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를 이어가고, 나머지 한 놈은 당신의 아비 곁에 움츠러들 뿐이다. 실체 없는 것들. 이곳에 저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내 삶의 왕께서 너에게 즉시 항복하실 것을 명하신다.”


빌어먹을 커스토디안이 점점 무례해진다. 갑주를 보니, 놈은 프로콘술이리라. 항상 냉담하고 독재적인 것들이었지. 당신은 놈의 이름을 붙든다. 놈의 사고의 표면 위로 떠 있는 이름이다. 카이칼투스 더스크, 자랑스러운 헤타이론. 네가 입을 열 곳이 아닌즉. 이곳은 옥좌실이 아니다. 오직 당신의 궁정일 뿐.


“침묵하라.”


당신이 입을 연다.


“지금 내 아비와 내가 말을 나누는 중 아니더냐.”

+왜냐?+


실로 기이한 질문이로다. 당신의 아비가 무엇을 이해치 못하는 것인가?


“왜냐고 물으셨소?”


당신이 입을 연다.


“무엇이 왜냐는 말이오?”

+왜냐?+

“아비여, 너무 큰 충격을 받으신 것 같소이다.”


당신이 부드럽게 말한다.


“전혀 말을 완성치 못하고 계시오. 나에게 무엇을 묻는 것이오이까? 내가 왜 천사를 죽였는지요? 아니면 내가 왜 당신에게 제안을-”

+왜냐?+


아, 그래. 이제야 당신은 알아차린다. 정말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 30년 동안 당신은 수많은 의미를 담아 넣은 아비의 속기를 익혔고, 이해하기 어려운 금언에 가까운 아비의 말을 읽는 법을 배우지 않았던가. 당신의 아비는 30년 동안 당신이 자신이 발한 뜻 사이의 틈을 메우고, 당신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로 뜻한 모든 것을 이해하기를 기대하지 않았던가. 당신의 아비가 말하는 왜냐는 물음은, 근본 중의 근본을 따지는 물음인 것을.


“왜 우리가 전쟁을 벌여야 하는지 묻는 것이오?”


당신은 묻는다. 그 수천여 년의 세월이 당신의 아비에게 무엇도 가르친 바 없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인가? 혹은 스스로의 권위를 숙여, 당신이 말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그래, 그럼 기쁘게 만들어 드리지. 이 정도의 배려는 받을 자격이 있을 테다.


“아비여, 왜인지 아시지 않소.”


당신이 입을 연다.


“무언가, 어쩌면 어떤 소심함 때문에, 그대는 카오스의 힘을 엮지 못하였소. 카오스에 마구를 채워 종으로 쓸 수도 있었건만,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켰지. 인류를 위해 궁극의 힘을 차지할수도 있었거만, 그렇지 않았소. 그렇기에 내가 행했을 뿐이오. 당신이 할 수 없었던, 혹은 하지 않았던 일을 내가 해낸 것이외다. 나는 워프의 힘을 하나로 묶었고, 당신이 이끌지 못한 곳까지 인류를 이끌 것이오. 새롭고, 끝없이 이어지는 우월의 시대로 말이지. 이제 당신이 내 제안을 받아들일 때가 된 것 같소이다. 이제 당신이 내 승리를 받아들일 시간이란 말이오. 무릎을 꿇으시오, 아비여, 부디, 그리하면 살려 드리리다. 그렇게만 하면 이 모든 것이 끝날 것이오.”

“지금까지 대지를 누볐던 누구도 카오스를 지배할 수 없다.”


다시, 건방진 프로콘술이다. 감히 제 왕을 대변할 수 있다고 여기는 놈.


“침묵하라 했다.”


당신이 입을 연다.


“당신은 폐하께서 약하시기에 이 길을 걷지 않았다 믿으십니다. 소심함이라고 했지요.”


이제는 아스타르테스 놈까지 입을 연단 말인가! 천사의 피로 손을 흠뻑 적신 전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네놈이 나설 곳이 아니다!”


당신은 거칠게 소리친다.


“이곳은 제가 속한 곳이었습니다.”


그가 대꾸한다.


오.


오, 아비가 제 아들을 다시 보는 순간이 이렇게 비통하다니! 그 긴 세월이 지나고, 아들이 이렇게 변하였구나! 가비엘이다. 한때 당신이 가장 아꼈던 아들, 가련한 가비엘이다.


당신은 침을 꿀꺽 삼킨다. 당신은 이런 바를 기대한 적 없다. 당신은 아들이 당신의 이런 모습을 보거나, 혹은 이 순간의 증인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 모든 것이 끝난 후였다면, 가련한 로켄을 품에 안아줄 수도 있었을 텐데. 혹은, 그가 긴 세월 전에 죽어, 이곳에 아예 오지 못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가비엘…”


당신은 중얼거린다.


“당신께서는 스스로를 속이셨습니다, 위대한 루퍼칼이여.”


로켄이 당신에게 말한다.


“당신께서는 카오스의 종이지, 주인이 아니십니다.”

“네가 이것에 대해 무엇을 알더냐, 가비엘?”


당신은 그의 말에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되묻는다.


“이제, 모든 것을 압니다, 아버지시여.”


그가 답한다.


이 순간은 망쳐졌다. 당신은 로켄이 여기에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가슴이 아프다. 아비와 아들이 이 모든 시간 후에 만났는데, 아들이 저런 말을 하다니. 그리고 저들 모두가, 당신을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아끼는 아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당신, 그리고 당신의 아비, 당신의 빌어먹을 아비, 가장 아끼는 아들의 너덜너덜한 시신이 갑판 위에, 자기 발치에 처박혀 있는데도 여전히 무표정에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은 것 같은 당신의 아비! 


“부디 누그러지소서.”


로켄이 당신에게 말한다.


“너무 늦기 전에 말씀입니다. 당신께서는 현혹당하셨습니다.”


당신은 그를 무시하려 한다. 당신의 아비는 분명 당신의 감정을 이용해서 경계를 늦추게 만들려는 속셈으로 그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리라. 싸구려 속임수나 다름없다. 그리고 당신의 아비를 보라! 당신의 아비는 어떤 감정도 드러내고 있지 않잖은가.


“말하시오!”


당신이 쉿쉿거린다.


“아비여, 제발 말하시오. 뭐라도 말하시오. 뭐든 상관있는 말을 해 보시오. 뭔가 중요한 말을 해보란 말이오. 우리에게 진실을 감춰서 미안하다고 말하시오! 이 전쟁을 일으키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말하란 말이오! 뭐라고 말하시오! 뭐라도 보이시오! 무릎을 꿇으라고! 최소한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소! 무릎 꿇고 항복하시오!”

+왜냐?+


당신은 그를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리라고 추측은 했다. 그리고 그런 결과는 후회스러우리라는 생각 또한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당신은 이제 전혀 유감스럽지 않다. 전혀. 당신의 아비는 변한 바 없다. 변한 것이 있다면, 나빠졌다고 해야 하리라. 당신의 아비는 무표정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아니다.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아비는 당신을 보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내, 당신의 아비는 당신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의 아비가 궁정에 발을 들인 이래 토한 모든 말 또한 당신을 향한 것이 아니다. 마치, 당신이 여기 없다는 것처럼.


당신의 아비가 던지는 시선은 당신 너머를 향한다. 당신 너머의 그림자를 볼 뿐이다.


당신은 돌아선다. 도대체 무슨 매혹적인 것이 있어 아비의 시선이 그리 향하는지를 본다. 당신에게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할-


저기, 저들이 있다. 물론이다. 당신은 저들이 거기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저 다른 이가 저들을 볼 수 있음을 몰랐을 뿐이다. 저들은 저 그림자 아래 숨은 채다. 당신 뒤에서 끓어오르는 사이킥의 프랙탈이 새겨낸 어둠 속에 말이다. 오래된 넷. 그들 모두가 여기 있다. 당신조차 이리도 가까이에서 본 바는 없다. 당신조차 이리도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낸 꼴을 본 바는 없다. 저들은 거대하다. 너무도 아름답다. 저들이 이 순간의 증인이 되기 위해 이른다.


당신의 아비는 저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저들을 지켜보며 말이다. 그가 ‘내 아들을 죽였구나’라고 한 순간, 그 어리석은 이가 뜻한 것은 생귀니우스가 아니었다. 당신의 아비는 저들에게, 당신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었다.


당신의 아비는 당신이 죽었노라고 생각한다. 죽었고, 잃어버렸노라고.


아비는 자식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그래, 아비여, 관심을 가져야 하실 것이외다.


당신은 발톱이 뻗친 오른손을 든다. 가비엘과 오만한 프로콘술이 경고를 외치는 것이 들린다.


당신의 아비는 당신이 품은 힘의 진정한 본질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후에도, 한번 저들에게 당신이 기만당했노라고 말해 보라지.


당신이 힘을 뻗는다.


당신은 아비를 쓰러뜨린다.





각주 1 : 이슬람 권역의 비단 직물 가공 양식. 화려한 수를 놓은 비단이라고 보면 됨. 다마스커스에서 만든 것이 주류가 되면서 다마스크라는 이름이 붙음.


황제와 호루스의 첫 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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