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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플레이그 워 - 12장 [원자로의 심장부]

톨루엔환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7.20 00: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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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는 목표지를 향해 전진하는 동안 전체적인 전투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었다. 다른 방향에서 세 분대가 펠릭스의 진격을 은폐하기 위해 원자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리버들은 다른 곳을 공격하기 위해 사라지기 전, 병든 시선을 끌어 모아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혔다. 펠릭스의 분대원들을 향한 저항이 거의 없는 걸 보아, 데스 가드가 초자연적인 감각에 의존하고 있을거라 의구심이 들었다. 아쉬라 보이의 존재덕에 사이킥 탐지를 피할 수 있었다. 간단한 오거 탐지로도 어뢰를 발견할 수 있을터인데, 이 모든 걸 보아 아직까진 들키지 않은 것 같다.


전진하는 동안, 펠릭스는 더 이상 이 건물에 평범한 기계는 남아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건물의 기계적인 부위는 거의 남아있지도 않고, 발전기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기괴한 종양이 가득 자라나 있었다. 펠릭스는 겉보기에는 저 종양들이 생명공학의 논리를 따를거라 생각한 자신을 질책했다. 부대원들은 물질 세계에서 만들어진 인공물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건 건물이 아냐. 광기의 놀이터일 뿐.” 팰릭스는 혼잣말을 되새겼다.


그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상황은 이미 그의 말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건물 중심부로 향하는 터널로 들어서자 무릎 높이까지 차오르는 진득한 점액이 느리지만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부대원들이 점액을 헤집으며 나아가는 동안 눈이 무수히 달린 벽, 병들은 폐처럼 뻗어나간 회랑과, 스쳐 지나가듯 볼 수만 있는 오물 위를 뛰넘는 기묘한 것들 같은 기이한 광경이 이들을 맞이해주었다.


펠릭스가 점액 속에서 장갑발을 뽑아 들자, 페인트가 벗겨지면서 그 아래 칙칙한 세라마이트가 드러나고 있었다. 머지 않아 부식되어 구멍이 생길 것이다.


“테트라크님.” 카스피안의 목소리에는 역겨움이 묻어났다. 그는 복도 끝에 있는 커다란 기계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안의 장치들이 동물과 식물 사이쯤 되는 맥동하는 잎사귀로 덮여 있어도, 서전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벽이었다.


펠릭스가 뒤를 따랐다. 기계실의 문턱은 복도보다 높았고, 강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테트라크는 드디어 흐르는 점액으로부터 벗어났다. 


카스피안이 총에 부착한 손전등을 벽에 비추자 둥그런 유기체 형상이 드러났다. 팔부터 팔꿈치, 얼굴까지 모두 인간의 모습을 띈 것들이 걸쭉한 점액층으로 덮여 있었다. 펠릭스는 잠깐 이 형상을 수백명의 사람이 서로 포개진 모습을 조각한 작품이라 생각했지만, 이내 자신이 있는 곳을 다시 되새겼다. 만일 이런 게 예술이라 해도, 보통 사람들이 받아들일 예술은 절대 아닐 것이라.


수백 구의 인체가 벽의 직물 속과 융합되어 있었다. 점액으로 뒤덮여 있던 지라 표면이 평평해 보였던 것이고, 그나마 옅게 덮인 곳에 카스피안의 빛이 비춰지자 배지, 도구와 다양한 색깔의 천이 있었다.


“시설 직원들입니다.” 카스피안이 말하며 빛의 원뿔을 더 위로 올렸다. “인간, 서비터에 기술자까지.”


펠릭스는 잠깐 그것들을 훑어보았다. 그의 신경은 화면 속에 펼쳐지는 전투에 쏠려 있었다. 저 밑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보고에 따르면 사상자가 늘어나고 있다.


“화가 치미는군. 하지만 저들이 죽은 건 다행이긴 하구나. 계속 나아가라.” 펠릭스가 말했다.


기계실을 지나니, 너덜거리고 점액질이 가득 찬 동맥 같던 공간이 조금씩 복도라고 알아볼 수는 있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펠릭스의 데이터 파일에 있던 지도는 갑자기 알아보기 더욱 쉬워졌다. 보아하니 원자로 노심에 가까워졌다. 단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파괴된 기술 장비들의 잔해들이 많아지고, 모든 곳에 녹과 진물이 쌓여 검게 변해도 플라스틸 벽만은 살점에 뒤덮이지 않았다. 너글의 삼각 문양이 새겨진 황동판은 오물 속에 파묻혀 녹색 산화물을 사방에 흘려대고 있다.


20분 정도 걷자 강물은 조용히 바닥을 가로질러 어두운 공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분대원들이 목표지에 도달했다. 복도는 플라즈마 원자로 제어 시스템을 수용했던 거대한 원통형 방으로 이어졌다. 원자로는 방 중앙의 페로크리트 구체에 둘러싸여 있고, 서로 겹겹이 쌓인 수많은 엔지니어링 갑판이 노심 주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펠릭스는 철망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역병의 제왕의 손길에 바닥은 살풍경을 이뤘고, 강물이 흘러내린 곳은 완전히 녹아내려 버렸다. 저 멀리에는 플라스틸이 원자로 노심에서 뻗어 나온 두꺼운 페로크리트 테두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견고해 보이기는 하지만 건너가는 길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덩굴처럼 두텁게 벽을 타고 자란 시커먼 혈관은 전망대를 온통 가렸지만, 끝없이 갈라졌다가 다시 엮어져 노심의 페로크리트를 뚫고 퍼져 나가는 그물망이 썩은 갑판 위에는 옅게 깔려 있었다. 저 망은 살아서 부드럽게 맥동하고 있었다. 혈관 사이로 구멍이 뚫려 있어 수천 피트 깊이의 바닥이 비쳐 보였다.


“원자로에서 판독 값은 나오는가?” 펠릭스가 물었다.


“없습니다.” 이어서 카스피안이 답했다.


“보이?”


흑요의 기사는 검을 바닥에 꽂고, 오른손을 칼자루에 얹고 왼손으로 수화를 했다. '저쪽. 워프의 에너지가 가장 강한 곳.' 그녀는 원자로 구체를 가리켰다. '플라즈마 원자로를 보호하듯, 페로크리트가 우리를 보호할 것. 접근할 때 주의하라.' 그녀는 한 손으로도 두 손을 쓰듯 효율적으로 수화를 했다.


“그럼 우리 정보가 맞는군요. 모두 전진하라.” 펠릭스가 말했다.


“바스크보, 서비터를 지켜라. 나머지는 발 밑을 조심하도록.” 카스피안이 경고했다. “버팀대를 따라 한 번에 한 명씩.”


분대원들이 차례로 갑판을 받치고 있는 대들보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었다. 바닥의 철망을 통해 밑이 훤히 보이는데다, 갑판보다 상태가 겨우 나은 수준이었다. 리버들이 이 위를 지날 때 마다 삐걱이고 흔들릴 정도였다. 아쉬라 보이가 건널 때는 거의 흔들리지 않았지만, 펠릭스가 발을 딛자마자 그라비스 갑주의 무게로 인해 버팀대가 위험할 정도로 신음했다.


“기다려 주십시오. 테트라크님.” 유파인이 말했다. “이곳에서 대기해주십시오. 저희 갑주가 더 가볍습니다.”


“나도 위험성은 알고있네.” 펠릭스가 말하고는 복도 입구에서 기다리는 서비터를 돌아보았다. “저 사이보그는 나만큼 무거워. 내가 건너지 못한다면 장치도 못하겠지.”


“대기하셔야 합니다.” 모드리아스가 말했다.


“안된다.” 펠릭스가 걸어 나가며 일정한 속도로 건너갔다. 바닥이 흔들리긴 했지만 그는 무사히 원자로 중심부의 페로크리트 외피까지 도착했다.


페로크리트는 기이한 모양으로 쥐어 파이고 있었다. 밟으면 표면이 바스라져 젖은 가루가 됐지만, 저 플라스틸 격자보다는 단단하게 서있을 수 있었다.


“서비터를 데려와라.” 펠릭스가 말하며 손짓했다.


카스피안은 사이보그에게 전진 명령을 내렸다. 서비터의 단순한 두뇌는 위험을 알아차리고, 궤도를 미세하게 조정하면서 불안정한 갑판 위를 지났다.


펠릭스가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음산한 밤하늘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 비슷한 층이 여러 겹 숨어 있었다. 서비터가 추락한다면 산산조각이 나지 않는다 해도 제때 장치를 회수하지 못할 것이다.


서비터가 도착하기까지 10피트 정도 남았을 때 버팀대가 부러지며, 견고해 보였던 철 갑판은 녹먼지를 일으키며 부숴져 내렸다. 사이보그는 갑자기 생긴 구멍에 앞으로 고꾸라졌지만, 다행히 떨어지지는 않았다. 사이보그의 앞 궤도는 끝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으로 향하고, 가슴은 구멍의 부서진 모서리에 부딪혔다. 금속이 몸을 꿰뚫은 부위에서 피가 새어 나온다.


서비터는 경고음을 내며, 인공 눈의 빛을 깜빡였다. 궤도가 앞뒤로 마구 돌아가며 몸을 흔들어 댔다. 갑판이 처지면서 바닥에 금속이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당장 꺼! 빨리!” 펠릭스가 명령했다. “일어날려다가 떨어지기 전에!”


궤도가 반대로 돌아가자 잡아당겨진 철판이 찢겨 나갔다. 서비터는 주변의 갑판이 더욱 크게 무너지기 전에 구멍에 걸리다가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장치가!” 펠릭스가 외쳤다.


산산이 부숴진 갑판덩어리들이 서비터를 집어삼키며 떨어져 내렸다. 리버가 발사한 쇠갈고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가고, 장치의 매끄러운 표면에 단단히 박혔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유파인은 펠릭스를 지나치며 끌려 나갔다. 테트라크가 손을 뻗어 유파인의 안정화 노즐 주변의 파워 팩을 붙잡자, 유파인은 페로크리트 가장자리에서 겨우 멈췄다. 서비터의 무게가 그와 펠릭스를 잡아당기고 있다.


“버텨!” 펠릭스가 긴장된 목소리로 명령했다. 활성화된 자석 결속기능이 페로크리트 외피에 고정되야 되건만, 발판이 썩어 뜯겨 나간 덩어리만 부츠에 뽑혀 올라왔다. 유파인은 가장자리로 더욱 가까이 끌려갔다.


모드리아스는 다른 쪽 줄을 잡고 있었다. 몸을 뒤로 젖힌 채 양손으로 그랩넬 총을 당기고 있었지만, 힘에 부쳐 부드러운 페로크리트에 긴 흔적을 파며 앞으로 끌리고 있었다. 


“화물 잠금 장치 해제!” 카스피안이 소리쳤다.


갑자기 무게가 절반 이상이나 줄어들자 스페이스 마린들은 뒤로 휘청였다. 서비터는 굉음과 함께 갑판과 갑판 사이로 떨어지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펠릭스는 유파인이 몸을 추스르도록 도우는 사이에, 두 리버의 그랩넬 총의 조용한 모터가 줄을 감으며 장치를 발판 위로 끌어올렸다.


보이와 카스피안은 구체로 가서 손상 여부를 살폈다.


'장치는 온전하다, 테트라크.' 보이가 손짓했다.


“남쪽에서 움직임 감지.” 카스피안이 말했다.


“적들이 들었을 테다. 잠복은 끝이다. 이제 서둘러 행동하도록.” 펠릭스가 말하고는 무음 작전 프로토콜을 해제해 갑주의 모든 기능을 활성화했다.


그는 복스 채널에 흐르던 침묵을 깨트렸다.


“베스파토르의 테트라크 펠릭스다.” 이 말을 하자니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아직도 새로운 직위가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퍼게이터 타격대에게 전한다. 우린 목표 위치에 도착했다. 현재 임무를 포기하고 내 위치로 재집결하라. 나머지는 후퇴하여 집결 지점에서 지원을 기다려라.”


리버들은 무기를 들었다. 조준 장치가 활성화되며, 기계령이 깨어나 새로운 힘으로 웅웅거렸다. 유파인과 모드리아스는 구체를 끌어올려 줄을 끊은 후, 자석 갈고리를 손잡이 삼아 들고 빈 손에 볼트 카빈을 쥐었다.


“이쪽으로.” 카스피안이 말했다. “원자로 격납실의 벽이 뚫렸으니 들어갈 수 있다. 달러, 바스크보, 후방에서 엄호하라.”


“마크라그를 위해 싸우리라.” 달러가 속삭이며 그의 형제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특수한 파워 아머의 고요한 모터는 이들의 존재를 숨겨주었다. 펠릭스의 지도에 깜빡이는 부대원 아이콘이 없었다면 위치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벽이 열러 있는 걸 보아 엔진이 보호막에 동력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군.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죽었겠지.” 펠릭스가 말했다. “조심히 나아가라.”


원자로 노심 주변에는 플라즈마 반응로의 열을 관리하던 제어판과 구조물들이 축축한 쓰래기 더미가 되어 쌓여 있었다. 제어반은 플라스텍, 깨진 유리와 녹조각으로 둘러싸인 연약하게 부식된 뼈대로 전락했다. 기계를 조작하던 수천 명의 인간과 서비터들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파르메니오는 침공당한지 얼마되지 않은데다, 점령당하기 전까지는 울트라마에 있는 다른 시설들처럼 잘 관리되고 있었지만, 지금은 마치 고대 유적지와 같은 모습이다.


분대원들은 원자로 노심에 있는 구멍으로 다가갔다. 페로크리트가 무너져 내린 거대한 균열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내부에서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은은한 어둠이 은빛 그림자를 드리우고 물체에 검은 음영을 비췄다.


카스피안은 먼저 들어가려고 나아갔으나, 펠릭스가 그를 불러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장갑이 더 유리하네.”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내겐 이것도 있지.”


정신적 자극이 펠릭스의 아이언 헤일로를 작동시키자,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푸른 에너지 장벽이 그를 휘감았다. 펠릭스는 볼트스톰 건틀릿을 속사 모드로 전환하고, 주먹을 가슴 높이로 치켜들며 앞으로 내밀었다.


“내 명령을 기다리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장치를 지켜.”


그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공간으로 밀고 들어갔다. 인공 태양을 가두고, 그 맹렬한 에너지를 동력이 필요한 모든 것에 공급하는 플라즈마 원자로. 헤카톤 시의 모든 중대한 사항을 해결하는 단 한 곳의 중요한 장소요, 한 번 가동된 후 연료를 제대로 공급하고, 관리만 잘하면 영원히 타오르는 원자로 노심로로 말이다.


하지만 그 별빛은 죽어 있었다. 펠릭스는 구형의 방에 들어선 순간 끔찍한 광경과 마주했다.


텅 빈 원자로실 내부에는 다섯 심실로 이루어진 거대하고도 시커먼 심장이 자라고 있었다. 숙주의 몸을 사로잡은 거대한 기생종양이 심장의 3/2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심장 말단은 펠릭스가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저 편에 눌려 맥동하는 살점과 부식된 기계로 둘러싸인 공동을 이뤘다. 여기 저기 보이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켰던 점화기는 녹이 피어올랐고, 다른 것들은 늘어져 썩은 피부에 파묻혀 있었다. 장기들을 묶고 있는 흿누런 근육 다발들은 하늘이 뒤흔들릴법한 맥박이 뛸 때마다 너울을 뛰며, 역겨운 액체가 방을 가득 채워갔다. 심장이 수축할 때마다 근육에 파문이 일고는 점액을 흘려댔다. 이 점액이 계속해서 흐르는 곳은 반응봉과 아다만티움 격납 플라스크, 그리고 뒤쪽의 페로크리트 벽을 좀먹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이 심장은 물리적 장기가 아니었다. 펠릭스의 뒤통수에서 무언가 느껴졌다. 우리에 갇힌 쥐가 철장을 씹어 벗어나려는 듯한 광기에, 역한 뒷맛도 입 안에 맴돌았다. 건물의 다른 기괴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넘어가줄 수 있겠지만, 이건 아니었다. 심장의 경련하는 대동맥으로부터 혼돈Chaos의 힘이 뿜어져 나왔다. 타락의 시작지다.


방 밖에서 볼트건의 총성이 울렸다.


“모타리온의 자손들에게 발각되었습니다.” 카스피안이 통신을 보냈다. “2 분대 있습니다. 더 오는 중입니다.”


“안으로 들어와라.” 펠릭스가 말하고는 나머지 소규모 타격대에게 자신의 데이터를 전송했다. “심장 가까이에 장치를 설치해야 되지만, 더 가까이 갈 수 없어 보인다.” 


“가져오겠습니다. 모드리아스와 유파인, 다른 형제들을 지원하도록.” 카스피안이 말했다.


“아직이야. 폭탄 설치 위치의 이론을 세울 동안 잠시 기다리게. 내가-”


뒤에서 재빠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쉬라 보이가 달려들어 뛰어드는 순간 펠릭스는 옆으로 피했다. 그녀는 갑주덕에 먼 거리를 가로지르며, 검을 역수로 쥐어 검끝을 아래쪽과 정면을 향하게 잡았다.


실리카 유리날이 소리 없이 심장을 베어 가르자 피가 솟구쳤다. 뒤이어 아쉬라가 장기의 옆구리를 내리긋자 검은 살덩어리가 쏟아져 내렸다. 장기가 경련을 일으키며 알 수 없는 곳에서 끔찍한 곡성이 터져 나오고, 악취가 진동하는 진물이 상처에서 흘러나와 원자로실을 가득 채웠다. 보이는 그 속으로 사라져갔다.


“흑요의 기사여!” 펠릭스가 울부짖었다.


피웅덩이가 끓어오르며 마치 살아있듯이 기성을 내질렀다. 보이는 이 격랑을 뚫고 나와, 진액이 차오르기 전에 검을 꽂아 넣고 망가진 반응봉 위로 뛰어올라 균열 가장자리로 되돌아왔다. 펠릭스와 카스피안은 오물에 뒤덮인 보이를 끌어올렸다.


'상처에 장치를 던져라.' 그녀가 손짓했다.


“알겠습니다.”


펠릭스와 카스피안은 장치를 던지려 힘을 합쳤다. 무겁고 불편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합심하니 20피트의 틈을 가로질러 균열 속으로 던져 넣을 수 있었다. 구체는 떨어지면서 네 바퀴정도 돌다가, 다섯 번째 회전을 하면서 아쉬라가 찢어 놓은 구멍에 부딪혔다. 심장의 상처가 점점 벌어지면서 떨어대더라도, 여전히 변함없는 박동과 함께 장치를 뒤삼켰다.


카스피안은 자신의 오스펙스를 살펴봤다. “활성화 확인. 5분 남았습니다.” 그는 탐지 장치를 넣어두고 인간의 도검만큼이나 긴 전투용 단도를 꺼내 들었다.


“적을 저지하여 장치를 파괴하는 걸 막아야 한다.” 펠릭스는 벽의 갈라진 틈을 통해 통제소로 밀고 들어갔다. 방 밖에서 볼트건 총성이 울려 퍼지더니 복도 저편에서 대응 사격이 이뤄졌다. “폭탄이 터져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렇다. 썩 좋지는 않을 것.' 아쉬라 보이가 손짓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버팁시다.” 펠릭스가 말하고 다른 대원들에게 장치의 폭발에 대비하라는 암호화된 통신을 보냈다.


도착한 데스 가드는 몇명뿐이었지만 터널 안을 깊숙이 메우고 있었다. 네 명의 리버들은 적이 오자마자 그림자 속에서 사격하여 다음 일격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다. 펠릭스는 매 사격을 가할 때마다 다른 위치로 이동하는 전사들의 아이콘을 지켜보면서, 이런 불안정한 환경에서도 높은 연사력을 유지하는 능력에 감탄했다. 그는 전면전의 베테랑들인 리버와 함께 싸워본 적은 거의 없었다.


“놈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썼던 터널의 반대편에서만 오고 있습니다.” 카스피안이 말했다. “덩치 한번 크게 불은 놈들인지 이런 불안정한 바닥을 밟고 싶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적들이 양쪽으로 오지 않는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펠릭스는 적에게 발각되어버렸다. 방 저편에서 녹슨 무기의 결핵성 기침소리가 터져 나왔다. 펠릭스의 이지스 쉴드에 부딪힌 볼트탄의 폭발이 그의 갑옷을 비추자, 방전으로 인한 빛이 신호탄이 되어 더욱 많은 탄환이 퍼부어졌다. 달러가 배반자의 머리를 볼트 탄으로 터트려 죽였다. 데스 가드의 옛 투구가 파열되면서 갑판 위로 쓰러졌다. 구조물 전체가 흔들렸지만 다행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이를 본 다른 적이 갑판에 볼터를 겨누고는 난사해댔다. 그 적은 잠시 사격을 멈추고 결과를 지켜보았다. 철판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자 몸을 때려 울리는 볼트탄을 무시하면서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데스 가드는 펠릭스를 광기에 찬 눈으로 올려다보면서 한번, 두번씩 밀어보고는 미친 듯이 웃으며 갑판 위로 걸어 올라갔다. 열 명정도가 더 뒤따르며 중얼거리거나, 불협화음으로 가득 찬 노래를 부르거나, 광인처럼 웃으며 갑판 위로 퍼져 나갔다.


적들은 사이에 엄폐물이 거의 없다는 점을 무시하며 갑판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명중은 쉬워도 죽이기란 굉장히 어려운 적들이다. 스페이스 마린을 죽일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총알을 받아내도 절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적 하나가 겨우 쓰러져도 다른 적들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체 위를 거침없이 밟으며 지나갔다.


제일 처음으로 죽은 분대원은 모드리아스였다. 펠릭스의 헬멧에서 사망 알림음이 울리면서 약도에서 분대원의 식별 표시가 사라졌다.


펠릭스는 다가오는 플레이그 마린에게 볼트스톰 건틀릿에 매달린 화기를 폭발적인 속도로 연사했다. 시스템은 무기가 과열된데다 탄약 급탄기가 거의 비어가고 있다고 경고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런 것 따위는 문제도 아니다.


플레이그 마린들이 펠릭스에게 다가왔다.


펠릭스는 첫번째 적의 발 밑에 깔린 갑판의 철망에 수류탄을 굴려 폭파시켰다. 반역자 스페이스 마린은 신비극 속 낙하문을 통해 사라지는 악마처럼 추락하며, 광기 서린 웃음은 분노의 포효로 변해갔다.

카스피안도 충격 수류탄을 던져 적을 교란시킨 다음, 즉시 크랙 폭탄 두개를 던져 넣었다. 스페이스 마린의 사방에서 볼트탄이 터져 나가면서 페로크리트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댔다. 크랙 폭탄이 폭발하여 갑판의 넓은 부분이 무너지고 세 명의 데스 가드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죽음을 맞이했다. 네 번째는 떨어지다가 플라스틸 가장자리를 붙잡아 구기면서 대들보에 밝은 분홍색 촉수를 휘감았다. 플레이그 마린이 거대한 몸집을 구멍에서 빼내는 동안 기괴한 급조 배기 장치가 엮인 파워 팩은 연기를 뿜어내고, 윤활이 제대로 안 된 전투판갑은 고통에 신음했다.


펠릭스는 빗발치는 볼트 사격으로 물렁한 촉수를 찢고, 헬멧을 쓰지 않은 머리를 터트려 플레이그 마린의 몸부림을 끝냈다.


제국군의 노고덕에 원거리에서 만족스러운 살상률을 기록했다. 이제 직접 맞붙을 차례다.


펠릭스는 거대한 몸집과 모터 달린 장식처럼 머리 주위를 시끄럽게 맴도는 파리 악마로 우월한 지위를 자랑하는 플레이그 마린 챔피언을 가로막으려 뛰어들었다. 펠릭스는 파리를 무시하고, 놈의 주인에게 퍼부을 분노를 아꼈다.


전사는 테트라크를 향해 옛부터 내려오던 거대한 파워 피스트를 휘둘렀다. 적의 일격은 펠릭스의 방어막에 튕겨져 나갔다. 챔피언은 즉시 세 발의 볼트를 발사하며 공격을 이어갔지만, 모두 동력장에 부딪혀 빛 한줄기로 사라져 갈 뿐이다. 펠릭스는 검을 세차게 내찔러 반격했다. 칼끝이 배반자의 썩은 흉갑을 꿰뚫으며 역장의 섬광이 내장을 태웠다. 챔피언의 갑옷에 난 구멍에서 악취 나는 액체가 새어 나왔지만, 죽지 않고 웃어대면서 다시 펠릭스의 머리를 향해 파워 피스트를 휘둘렀다.


이 공격이 펠릭스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뒤에서 나타난 번뜩이는 칼날이 적의 팔꿈치에서 녹슨 건틀릿을 잘라냈다. 펠릭스의 눈 앞에 스쳐 지나간 건 갑주와 부자연스럽게 눌러 붙은 살점과 뼈의 흉측한 단면이었다. 손이 그대로 들어있는 파워피스트가 바닥에 떨어지자 챔피언은 이를 갈며 공격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챔피언의 망가진 파워팩에서 불똥을 내뿜으며 등 뒤로 칼날이 튀어나왔다.


챔피언이 쓰러지자, 검을 들고 있는 보이가 드러났다. 파리가 비명을 지르며 그녀에게 달려들었지만,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기름기 가득한 연기로 증발해버렸다.


“고맙소.” 펠릭스가 말하고는 침묵의 수녀를 향해 다가오는 전사에게 볼트탄을 퍼부었다. 수많은 섬광이 부식된 갑옷을 비췄다.


보이는 고개를 숙이고는 거대한 검을 마치 작은 결투용 단검처럼 휘두르며 우아하게 전투를 이어갔다.


펠릭스는 다른 적을 볼트스톰으로 처치하자, 뒤에 서있던 적도 후폭풍에 휘말려 죽었다. 펠릭스는 잠시 검술 대신 건틀릿을 감싸고 있는 역장의 위력을 믿기로 했다. 느린 무기지만, 큰 파괴력으로 비정상적으로 튼튼한 적들을 확실하게 처치할 수 있을 것이다.


장치의 초시계는 계속해서 흘러갔다. 테트라크는 밑에 장착된 총기를 발사하고 있는 채로 주먹을 배반자의 가슴에 꽂아 넣어 피와 고름이 솟구치는 타락한 심장을 뽑아냈다. 수십 명의 적들이 원자로 통제소로 쏟아져 들어오고, 건물 자체가 제국군의 존재에 반응했다. 복도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물질이 쏟아져 나와 새로운 생체 바닥이 썩은 철망을 뒤덮고, 점액질 강이 펠릭스의 뒤를 따라 흘렀다. 갑판 위에 있는 데스 가드들의 무게를 합친다면 바닥이 무너지고도 남았겠지만, 살점이 바닥을 지탱해주고 있다. 살점이 퍼지면서 기이한 식물이 싹을 틔우더니, 꽃을 피우자마자 검게 시들며 죽어버렸다. 포자가 공기를 가득 메웠다. 펠릭스의 대기 여과 장치에서 새어나오는 소리가 들리고, 미세한 오염물이 그의 밀폐부위를 갉아먹고 있었다.


또 다른 데스 가드가 쓰러졌다. 살덩어리가 빛나며 원자로 중앙을 역겨운 녹색 빛으로 물들였다. 살점이 퍼져 나가면서 넓게 흘러내리는 점액질 강이 빛을 실어 나르며 아래층을 비췄다. 저 아래에선 갑판을 뚫고 떨어진 데스 가드들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펠릭스는 나직히 욕을 내뱉었다. 이런 흉물들을 죽일 수 있긴 할까?


세 데스 가드가 그를 공격해왔고, 펠릭스는 모든 기술을 동원해 싸워야 했다. 놈들은 펠릭스보다 살아온 세월이 많은데다, 펠릭스가 지난 1만 년 동안 가사상태로부터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던 삶을 지내는 동안 저들은 계속해서 싸워왔다. 적들은 그의 전투 기술을 알고 있으며, 펠릭스보다 더욱 위대한 영웅들도 쓰러트린 이들이다.


펠릭스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그 마린들은 녹슨 칼날을 휘둘러대며, 이가 나간 칼 끝에서는 땅에 닿기도 전에 일렁이며 증발하는 검은 독이 흘러나왔다.


초시계가 0에 달했다. 펠릭스는 순간 숨을 참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는 걱정을 느낄 시간이 다가왔다. 펠릭스의 뒤는 벽이 가로막고 있는데다, 유파인은 쓰러졌고, 달러도 한계에 다다랐다. 카스피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죽음을 알리는 사망 알림음이 울리지는 않았다. 실패가 펠릭스를 부르고 있다.


갑자기 엄청난 중압감이 펠릭스의 등을 짓눌렀다. 평범한 폭발의 후폭풍이 아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사이킥 공격이었다. 


원자로 안의 심장은 인간의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기묘한 빛의 장막이 펠릭스를 뒤덮었다. 빛이 바닥에 깔린 살점 위로 스쳐 지나가자 오그라들면서 녹슨 바닥을 타고 녹아내리는 묽은 점액으로 변했다.


어뢰와 마찬가지로, 그 장치에는 퍼라이어의 뼛가루가 들어 있었다. 


펠릭스는 퍼라이어에 대한 어두운 소문을 들을 적이 있었다. 영혼이 없는 자라는 소문을. 저들은 워프의 존재들에게 해로울 뿐만 아니라, 생명체의 영혼을 포함하여 다른 세계의 모든 에너지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와 같은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감각이 들지만, 이번 폭발은 이 감각을 수천 배나 증폭한 느낌이었다. 폭발의 여파가 펠릭스 내면의 무언가를 물리적으로 잡아당기고, 영혼을 들고는 육신과 정신 사이의 에테르 에너지를 뽑아 영원히 소멸시키겠노라며 위협했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이 극심한 고통. 영혼이 불타는 감각이다.


펠릭스는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악신의 힘에 절여진 플레이그 마린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컸다. 이들은 신음하면서 쓰러지거나, 몇몇은 완전한 죽음을 맞이했다. 다른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공포를 깨달은 듯 절규했다.


주위에는 비명소리뿐, 시간이 흩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펠릭스는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땅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토할 것만 같은 느낌, 온 근육이 쑤시고, 머리가 울린다. 망막 디스플레이를 켜보려 해도 기기가 응답하지 않는다.


길리먼의 탐지장의 목소리가 테트라크의 복스 비드에서 들려왔다. “테트라크님, 사이크아웃 장치의 폭발을 감지했습니다. 보호막이 무너졌습니다. 임무 성공 확인 바랍니다.”


“임무 성공.”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바닥에 검은 실핏줄은 쪼그라들고, 심장의 맥동도 고요하다. “원자로 파괴. 후퇴 후 폭격을 시작하라. 이곳에 도사리던 것들이 다시는 살아나지 않도록.”


“대성당을 조준중. 각하께서 후퇴하시는 대로 발전소를 폭격하겠습니다.” 탐지장이 말하고는 함선과의 통신이 끊겼다.



펠릭스는 위험한 바닥의 상태를 모른 채 비틀거리며 걸어가 신음하는 플레이그 마린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일부 플레이그 마린들이 살아남은 채로 갑판 위에 널브러져 있었지만, 카스피안이 일어서서 칼로 쓰러진 이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사이크 아웃 장치의 폭발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것 같은 보이는 그를 도왔다.


“내 전투 갑주의 시스템이 고장났다. 보고해라.” 펠릭스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카스피안, 달러와 바스크보는 살아남았지만 나머지 두 명은 죽었다. 마지막 볼트탄 몇 발이 터지면서 적들은 전멸했다. 배반자들에게 배풀 자비따위는 없으리라.


“떠나자. 우리가 지표면으로 가야 길리먼 주군께서 이곳을 더 빨리 파괴할 수 있다.” 펠릭스가 명령했다.


“움직임 감지!” 카스피안이 말하자 다른 리버들이 몸을 돌려 입구에 총을 겨눴다.


복도에서 쏟아져 나온건 울트라마린의 푸른 색을 두른 스페이스 마린들이었다. 빅트릭스 가드의 시카리우스 친위대장이 방 가장자리에서 펠릭스를 맞이했다.


“따라오시오, 테트라크.” 그가 외쳤다. “출구로 나가는 저지선을 세워놨다. 그게 제일 빠른 길이다.”


“이런 끔찍한 곳에서 만났군요, 대장님.” 펠릭스가 말했다. 


“이런 것보다 훨씬 처참한 것도 봤지.” 시카리우스가 답했다.






니들 리버가 멋지게 활약하는 거 똑똑히 봤지? 봤으면 리버 한 상자 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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