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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숲의 아들 라이온] 3부 : 속죄 (4)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5.22 12: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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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브란 산맥은 놀라우리만큼 아름다웠다. 내가 움브란 산맥에 도착했을 때, 두 번째 여명이자 정오가 밝아오고 있었다. 모행성의 조수간만에 붙들려 있는 감마 II는 트레베눔 감마의 그림자에서 갓 벗어나 머리 위로 떠오르는 항성의 힘을 온전히 받을 수 있었고, 그 위치가 바로 움브란 산맥이었다. 수 세기 동안 은하계를 여행하며 기이한 장면은 수도 없이 보았지만, 트레베눔 항성이 감마가 빚어낸 거대한 암흑 구체 위로 떠 오르면서 상층 대기가 성광의 역광을 받아 두 번째 위성의 험준한 바위 풍광을 비추는 이 장면은 그중에서도 손꼽을 만했다. 물론, 내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 사건 중에서는 말이다.


블러드 엔젤 중에는 대성전 시기에 예술 작품을 만들던 이가 있었다. 이 풍광에서도 영감을 받았을까? 그들의 후손 중에도, 여전히 예술 작품을 빚어내는 이가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현대의 내 형제들과 사촌들은 인류로부터 이어받은 혈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기원과의 연결을 상실한 것일까? 그것이 그들의 실패를 의미할까? 아니면,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우리야말로 인간을 넘어선 무기라는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고 결코 매달려선 안 될 정체성에 매달렸던 것일까?


형제들이 내게 배정해 준 수송기는 민간용 왕복선 RE-45였다. 수송기는 바위가 많은 계곡에 착륙했다. 승조원들은 임무나 목적지에 그리 인상을 받지 못한 듯싶었다. 아마 스페이스 마린을 태우고 간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유압식 랜딩 기어가 울퉁불퉁한 땅에 불평하는 것도 한몫했으리라. 어쨌든, 그들은 조용히 효율적으로 제 일을 해냈다. 나는 그들을 왕복선에 남겨둔 채 능선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무주지 한 가운데서 기다려야 했음에도, 저들은 내가 자리를 비우는 것에 감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산맥 일대는 스페이스 마린의 변화한 생리 체계가 특히 두드러지는 지역이다. 우리는 특별히 민첩하다고는 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파워 아머 덕분에 힘과 행동은 강인해지지만, 무게도 많이 늘어난다. 바위는 우리 무게가 실리는 순간 쉽게 굴러떨어지고, 바위로 된 능선을 오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는 보다 덜 지친다. 그와 동시에, 순수한 힘은 숙련된 필멸자 산악인들조차 기겁할 등반을 하는 데 있어 훌륭한 도구가 된다.


무슨 뜻이냐면, 내가 베베단의 은거지를 향해서 특별한 능력이나 우아함 따위는 없이, 그저 꾸준히, 데스 가드라도 된 것처럼 느릿하게 거듭해서 올라갔다는 것이다. 이미 풍광에 대한 짧은 감탄은 버린 채였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분석하고 유리하게 활용해야 할 지형이었다. 최적의 경로와 잠재적 위험을 따지고, 저격수가 제 이점으로 활용할 만한 지점을 염두에 두는 그런 분석 말이다. 이곳에 적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스페이스 마린 치고 가능성이라는 것을 무시하는 존재는 없다.


베베단은 아마 서쪽을 향한 높은 능선의 동굴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거친 길을 따라 등반을 이어갔다. 이 길이 사람이 만든 길인지, 동물이 만든 길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말이다. 현지인들이 말하던 구름깡충이라는 동물 한 쌍과 마주쳤을 때는 나조차 깜짝 놀랐다. 대략 1피트 반 정도 크기에, 두 다리로 걷는 털투성이 짐승은 나를 보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화를 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절벽 쪽에서 뛰어내려 거친 산바람을 타고 안전한 곳을 향했다. 펼쳐진 피부를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수단으로 쓰는 놈들이었다. 더 큰 동물의 흔적도 보였다. 모래 먼지 틈으로, 적어도 야드 이상 너비로 펼쳐진 키틴질 다리를 가진 다족 보행 동물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발바닥과 희미한 발톱 자국으로 봤을 때 포유류 포식자로 보이는 동물의 깊고 묵직한 발자국도 보였다. 나는 칼리반에서 긴 세월을 보내면서 그 안의 저주받은 숲, 그리고 그 안의 다채로운 생물학적 위험들에 제법 익숙해졌고, 사냥과 추적에도 어느 정도 숙달되었다.


하지만 30분 정도 지나자, 내 것과 같은 세라마이트 부츠 특유의 독특한 자국이 같은 방향으로 이어진 평범한 흔적을 보게 되었다. 바람 때문인지 가장자리가 닳아 있었지만, 여전히 선명한 발자국이었다. 아마 얼마 전 스페이스 마린이 움직였던 흔적 같았다. 라운시엘과 갈라드의 정직성을 의심했던 것은 아니지만, 베베단이라는 그 스페이스 마린이 뭔가 별난 구석이 있어 그들이 말한 마지막 장소에 있다는 보장이 없었던지라, 헛된 등반이 아니었다는 증거에 절로 기뻐하게 되었다.


감마 II의 모행성을 도는 공전 궤도, 즉 낮은 40시간 정도였다. 그렇기에, 아마 이곳에서 유일하게 큰 초목이라고 할 수 있을 저 울퉁불퉁한 나무 덤불을 뚫고 나와 목적지인 동굴을 보았을 때는 아직 해가 지평선의 절반 정도를 지났을 무렵밖에 되지 않았다. 얕은 흙으로 된 계단식 선반 위에 농작물이 심어진 것을 보아, 베베단은 교역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그저 자급자족의 농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고립된 상황 속에서, 대체 누구와 대화를 하는 것인가?


투구의 오디오 수신기가 스페이스 마린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희미한 소리를 잡아냈다. 하지만 아직 그 의미를 파악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가 대화를 들으려 했다. 내가 다가가는 곳의 위험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라운시엘과 갈라드는 베베단이 전투를 포기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주를 두른 이방인이 등장했을 때 격렬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리란 뜻은 아니다. 나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과, 군단 생활을 하며 쌓았던 습관과 수 세기 동안 나를 안전하게 지켜준 본능에 반하기로 했다. 개방적이고, 직접 다가가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최선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시끄럽고 눈에 띄는 이방인은 환영받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암살자로 오해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테니까.


‘베베단!’


나는 충분한 거리를 두고 소리쳤다. 뭐, 여전히 각각의 단어를 정확하게 알아듣기는 어려울 거리다. 


“여기 그대와 대화를 원하는 형제가 있습니다!”


목소리의 메아리가 가라앉은 순간, 어쩌면 내가 조심성 없이 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산에서 큰 소리를 질렀을 때, 낙석이나 눈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번에는 들어맞지 않았다. 다음 순간, 나는 동굴 안에서 나던 대화 소리도 멈췄음을 깨달았다. 잠시 후, 검은 갑주를 두른 형체가 볼터를 들고 총구를 아래로 향한 채 빠져나왔다.


“베베단 형제?”


말하면서도, 나는 그 순간 그가 베베단일리 없음을 깨달았다. 라우니엘과 갈라드는 베베단이 여전히 갑주를 습관처럼 두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밝힌 것은 그가 왼손이 없고, 이를 대체할 의수나 증강물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 전사는 지금 두 손으로 볼터를 들고 있었다.


이 전사는 들은 바 없는 존재였다.


나는 볼트 피스톨을 뽑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총을 맞을 수도 있으니까. 만약 이 전사를 죽일 셈이라면, 불필요한 총격전을 벌이느니 가까이 다가가서 바로 총을 뽑은 뒤 쏘아 죽이는 게 낫다고 여겼다. 게다가, 사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모든 아들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던가. 검은 갑주 위의 문양에 따르면, 이 전사 역시 내 형제 중 한 명이었다.


동굴에서 또 다른 형상이 빠져나왔다. 손은 하나뿐이었고, 간단히 천으로 몸을 가린 채였다. 베베단이었다. 금발에 창백한 피부, 완전한 무채색의 회색 눈이었다. 침울함을 틀로 두른 냉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그의 입술이 오므라들었다. 후회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내 존재가 즉시 환영받지는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고, 내가 무엇에 끼어든 것인지 의아해졌다.


“그리고 그쪽은 누구신가?”


베베단이 나를 부르며 손짓했다. 잘려 나간 왼손 그루터기로 가리킨 거였고, 오른손에는 무기가 들려 있지 않았다.


“더 가까이 오시게, 먼 곳까지 찾아오셧군.”

“저는 자브리엘입니다.”


나는 대답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최대한 시선이 베베단에게 고정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사실, 베베단이 무언가 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오직 다른 형제가 적대감을 드러내는지에 온 신경이 쏠린 채였다.


“사자께서 보낸 메시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베베단의 시선이 옆에 선 갑주 두른 형제를 향했다.


“사자가?”

“그렇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니, 형제 역시 당연히 포함됩니다.”


다음으로, 나는 처음으로 수수께끼의 전사에게 공개적으로 말을 걸었다.


“다른 이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소만. 이름이 뭐요?”


그리고 그가 손을 뻗어 투구를 벗자, 내가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자브리엘, 오랜만이군.”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똑같이 투구를 벗었다.


“바엘로르? 다크 엔젤에게 잡혔다고 들었는데.”

“네필림 구역에서 내 뒤를 쫓더군.”


바엘로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하지만 날 더 추격한 배짱은 없는 것 같더군.”


우린 칼리반에서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며 서로의 존재를 아는 정도였을 뿐. 가끔 훈련장에서 그와 겨루기도 했고, 각자의 분대가 함께 정화 작전에 나섰을 때 얼굴을 마주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좀 혐오감이 치밀기도 했다. 아스텔란이 제거하라고 지시했던 소위 반역자의 우두머리들이 정말 위험하거나 불충했다는 확신이 없었기에. 내가 보기에 바엘로르는 거의 나 정도로 늙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알던 견고하고 의지할 만한 전사의 형상에는 변화가 없어 보였다.K


“사자가 귀환하다니, 분명 대단한 일이로군.”


베베단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나는 동의했다.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


나는 라운시엘과 갈라드에게 전했던 것과 동일한 메시지를 재생했다.


우리 동족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두 형제가 내비친 반응은 전혀 달랐다. 베베단의 입술과 콧망울은 계속 움찔거렸다. 마치 어떤 강한 감정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읽을 수 있는 본질은 그저 주체할 수 없는 기쁨 정도였지만. 반면 바엘로르는…


그의 얼굴은 완전한 무표정을 띄고 있었다. 흡사 임페리얼 피스트가 설계한 요새의 방벽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그래서 뭐랄까, 솔직히 화가 좀 치밀었다. 사자의 아들이, 어떻게 저런 메시지를 보고 들으면서도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믿음이건, 안도건, 혹은 분노건 말이다. 만약 홀로리스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거나, 역겨워서 침을 뱉는다거나, 나를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버러지 같은 거짓말쟁이라 욕하거나, 아니면 그 중간쯤의 어떤 행동이라거나, 이런 식이라면 이해한다.


아니, 바엘로르는 분명 무언가를 느꼈다. 다만, 그것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그를 불신하게 되었다.


“확실히,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목소리 같군.”


베베단은 뭔가 더듬듯이 말했다.


“우리도 살아남았는데, 그가 살아남지 못할 것은 뭐란 말인가? 다만, 내가 믿기 어려운 것은, 우리가 그런 반역을 저질렀는데도 아직 자네가 살아 있다는 걸세. 그리고 이 메시지는 다소 애매하네만, 어떤 원한도 없으심을 암시하는 것 같네만?”


베베단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 이것이 정말 사자가 보낸 메시지라면, 솔직히 우리를 한꺼번에 처형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을 끌어모으는 것처럼 보이네.”

“어떻게 처형한다는 말입니까??”


내가 베베단에게 물었다.


“필멸자 추종자들로? 제가 떠나고 나서 성과가 있었다고 해도, 그의 깃발 아래 모인 형제들은 기껏해야 십여 명 남짓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제 늙으셨습니다, 베베단. 물론 그분께서 일만의 눈 소속 터미네이터 다섯을 끝장내는 것을 보긴 했지만, 만약 그분께서 우리에게서 등을 돌린다면 우리가 그분을 충분히 압도할 수-”


다음 순간, 베베단의 시선이 바엘로르에게 고정되었다. 나는 그래서 말을 멈췄다.


“제가 놓친 것이 있습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자를 죽이려 했다는 것은 왜 입을 다물고 있었나, 바엘로르.”


베베단의 차분한 목소리 아래 위험한 기운이 깔려 있었다.


“날 설득하러 왔을 때 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 말에 대해 생각한 뒤, 당연한 결론을 내렸다.


“바엘로르, 자네 누굴 섬기는 건가?”


내가 물었다.


“내가 늘 섬겼던 이를 섬기고 있지.”


바엘로르가 대꾸했고, 그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기사단장 세라팍스일세. 대성전 때에도, 그리고 칼리반의 유배 내내 나를 지휘한 존재가 아니던가.”

“그리고 일만의 눈을 이끄는 우두머리기도 하지.”


베베단이 덧붙이고서 손을 쳐들었다.


“형제들이여, 나는 분쟁을 피하고 마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왔네. 부디 무기를 드는 것은 참아 주게나. 내가 오각성의 군세와 함께했던 시절은 이미 먼 옛날의 이야기지만, 그대들 중 누구라 해도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워프의 숨결을 끌어들일 수 있지. 그리고, 방아쇠에 손을 거는 순간 확실히 그렇게 할 걸세.


나는 얼어붙었다. 라운시엘과 갈라드는 베베단이 한때 사서부에 속해 있었음을 언급한 바 없었다. 어쩌면 그들은 전혀 몰랐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걸로 베베단이 고독에 대해 품은 욕망이 설명되는지도 모른다. 사이커에 대한 내 이해는 물론 제한적인 수준이지만, 어떤 사이커들은 훈련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신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철저히 불쾌하게 여길 수 있다고 들은 것 같았다.


“일만의 눈과 함께하는 것인가?”


나는 바엘로르에게 물었다. 묵인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루서나 아스텔란은 반역자였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거리가 먼 고위 지휘관들이었고, 둘 다 잘 알지도 못했다. 다른 형제들에 대해서 불길한 소문을 들은 적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소문은 현대의 혈족들이 그들을 추적할 단서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리 많이 듣지도 못했고 말이다. 내가 아는 이름도 거의 없었다. 더욱 거대한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다수의 원정 함대로 쪼개져서 활동하는 대형 군단이었으니까. 그래서 내 시절에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얼굴도 본 적 없는 수많은 다크 엔젤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바엘로르는 내가 아는 이였고, 나는 그 이름과 카오스의 신에 대한 충성심을 동치로 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나는 이전에도 파멸의 힘이 부리는 종과 대면하지 않았던가. 바엘로르는 그들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물론 갑주에 새겨진 식별 표식을 대부분 지워놓기는 했다. 만약 그게 남아 있었다면 일전에도 알아봤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의 갑주는 비틀림도 없고, 변형도 없었다. 카오스와 엮을 수 있는 사악한 문양들도 전혀 새겨져 있지 않았다.K 얼굴조차, 내가 기억하는 것과 거의 비슷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나는 세라팍스와 함께하네.”


바엘로르의 어조는 단순한 진실을 반복하듯 지루했지만, 나는 그의 내면에서 긴장감을 느꼈다. 그는 내가 베베단이 개입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를 죽이려 들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장담하겠네, 형제들이여. 세라팍스는 사자가 진정 돌아와다면 그를 죽일 생각이 전혀 없어. 그것을 시도한 승함 공격은 그의 직명을 어긴 거였네.”


뭔가 제자리로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자네가 그 순양함을 지휘했군. 교전하지 않은 그 함선. 테라의 옥좌시여. 바엘로르, 자네 그 미치광이 같은 더러운 놈들과 한패인 건가? 사자의 말씀을 듣고, 사자의 형상까지 보았으면서, 그들에게 매달리는 건가?”

“내가 보고 들은 것은 자네가 사자라고 주장하는 것의 형상일 뿐이지.”


바엘로르가 대꾸했다.


“이해하네. 옛 신화 속의 인물에게, 지금 은하계에 거하는 인류가 매달리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나? 그러면 다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엄청나게 관심을 끌겠지. 우리 동생들의 관심들조차 말이야.”


내가 지적했다.


“솔직하게, 내가 옳지 않았다면, 내가, 아니, 우리가 이런 짓을 할 거로 생각하나? 나는 지난 400년 동안 다크 엔젤의 칼을 피했어. 내가 그들에게 몸을 내맡기고 싶다면, 가짜 프라이마크를 세우는 것보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겠지!”

“우리 ‘동생’들이 아직 살아있다고 여기는군.”


바엘로르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그 친구들은 저들 생각보다도 더 불친절한 은하계에서 표류하고 있는 천 명의 애송이에 불과하네. 그들이 그 은하에 아직 삼켜지지 않았노라고 어떻게 보장하겠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저들이 지금의 우리와 다른 지점이 있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친구들은 우리 꺾이지 않는 고집을 물려받았네. 상처를 입었을 수도, 그 수효가 줄었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일만 년 동안 은하계의 어둠과 맞서 싸운 그 친구들이 지금 와서 굴복하리라 생각하나? 최소한, 우리 동류 모두가 먼저 죽지 않고서야, 죽는 것조차 거부할 아이들일세.”

“난 은하계 최악의 존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저 친구들은 날 잡기엔 강인함이 모자랐지.”


바엘로르가 비웃었다.


“우리 이름을 쥐었을지는 몰라도, 우리가 상대한 것들은 그치들이 상상조차 못 할 공포 아니었나.”


나는 하늘을, 그리고 그 위의 은하계를 가리켰다.


“글쎄, 이제 그 수준을 그 친구들도 따라잡고 있는 것 같네만. 자네 말을 더 낭비할 필요는 없네, 바엘로르. 나는 일만의 눈이 하는 짓을 보았네. 자네가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리고 사자에게 자비를 구할 리 없음은 잘 알겠어.”

“그의 자비를?”


바엘로르가 쏘아붙였다.


“그는 우리를 배신했어. 그가 무슨 자비를 베풀 권리를 가졌단 말인가?”

“그분은 우릴 배신하지 않았네.”


베베단이었다. 우리 둘 다 그를 바라보았다. 베베단의 표정은 침울했다.


“자네 둘 다, 그걸 알 만한 선임은 아니었지.”


베베단이 입을 열었다.


“사자는 칼리반 착륙을 허용받지 못했네. 우리 지휘관 중 몇은 그가 황제에게서 등을 돌리고서, 황제가 없는 동안 우리가 축적해 둔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돌아왔다 여겼지. 무너진 바 없는 군단을 확보해 제 형제들을 압도하고, 제국의 남은 땅을 차지할까 봐 두려워했네. 내 생각이지만, 아마 몇몇은 그분께서 귀환한 이후에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두려워했던 것 같기도 하군. 나는 칼리반에서 니케아 칙령을 어긴 바는 없었네. 하지만 칙령을 어긴 친구들이 있었지. 당시에는 그 의미를 정확히 몰랐던 의식과 관습에서 위안을 찾는 이들이 있다는 소문도 돌았었고. 의심할 여지 없이, 몇몇은 호루스가 정확했다고 여기기도 했어. 하지만 그 시절의 우리 대부분은, 분노했었다네. 버림받고, 방치되었다는 데 분노했지. 은하계가 전쟁으로 물들고 있는데도, 신뢰받지 못해 도울 수조차 없음에 분노했다네.”


나는 충격 속에 그를 응시했다.


“그러면… 칼리반이 먼저 발포했단 말입니까? 우리 프라이마크를, 우리 손으로?”

“우리가 싸우게 두느니, 제국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그저 지켜본 프라이마크지!”


베베단이 날카롭게 내뱉었다.


“호루스는 황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제가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었네. 그런데 사자는 3만의 아스타르테스를 그저 뒷전 바위에 치워 놓았고!”


베베단의 눈이 나를 직시했다.


“그래, 우리는 전쟁을 위해 빚어진 존재들이었네. 그런데 인류 사상 최대의 전쟁에서 무시당했지. 우리는 그래서 무적의 이성에게 발포했네. 우리 유전 아비는 배신자이거나, 무능하거나 둘 중 하나였어. 아니면, 우리를 그 둘 중 하나라고 여긴 거겠지. 그런 뒤에, 어떻게 화해라는 게 있을 수 있겠나?”


나는 말 그대로 충격을 받았다. 물론 유배의 시간 동안, 나 역시도 원한을 품었다. 하지만 그 원한이 제 전투 형제를 지워버리려는 짓으로 이어진다고? 더불어, 나는 바엘로르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느 최소한 사자가 우리를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믿고 있음을 받아들였고, 우리 지휘부에서 배신자가 있었을지도 모름을 받아들였다. 내가 진실을 모른다 해도, 나는 내 프라이마크의 믿음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바엘로르는 지금까지 그가 억울한 꼴을 당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의 옛 전투 형제 중 하나가, 사자의 함대에 대해 가해진 공격이 의도적이었을 뿐 아니라 계획적이라고 말한 것 아닌가.


잘못된 원한이 일만 년 전 벌어진 제 형제들에 대한 배신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면, 그 원한 때문에 지금 여기 거하는 인류에 대한 배신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리라. 나는 다시 바엘로르를 돌아보았다. 이 덕분에, 그의 기질이 다시 균형을 찾았기를 기대하면서.


“이제 알겠나, 형제여? 사자께서 우릴 추방한 것은 사실일세. 우리를 완전히 믿지 못하셨을 수도 있지. 하지만 칼리반을 깨고, 우리가 시공으로 흩어지게 된 전투는 그분의 손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네. 우리였지. 하지만 사자께선 지금 그런 것을 다 기꺼이 제쳐둘 생각이시네. 사자 같은 이가 아직 존재하는 한, 인류에게 희망은 있어. 자네의 길을 떠나,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나?”


잠시마나, 내 호소가 통할 것 같았다. 바엘로르의 뺨이 경련을 일으키며, 확신이 서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의문은 완고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인류에게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네 하는 짓에서 그 희망이 나올지는 의심스럽군, 자브리엘. 설령 자네의 그 ‘라이온’께서 진짜라 쳐도-”

“그렇게 말하지 말게.”


내가 그의 말을 끊었다.


“부정하지 말게! 자네도 그분이 진짜임을 알잖나! 자네 목소리에서, 그렇게 믿음을 들었네!”

“설사 그가 진짜라 해도, 자네와 그는 한물 간 생각에 집착하고 있을 뿐이야!”


바엘로르가 소리쳤다.


“지금의 은하계를 보지 못했나, 자브리엘? 이제 인류에게 남은 것은 몇 안 되는 불씨뿐이야. 그 불씨가 꺼지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급진적인 새로운 길을 택할 수밖에 없어!”

“카오스 신을 숭배하는 걸 새로운 길이라고 말하나?”


나는 경멸을 감추지 않은 채 내뱉었다.


“놈들을 추종하는 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뻔히 봤네.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바엘로르가 고개를 저었디.


“자네 생각은 너무 폭이 좁군. 세라팍스라면 더 나은 설명을 했을 텐데, 여기 없어서 아쉽군. 난 그보다 말솜씨도 좋지 않지.”


바엘로르가 베베단을 바라보았다.


“자네, 나와 함께 가겠나? 자네가 강력한 동맹이 될 수 있기에만 오라는 것이 아닐세. 자네가 세라팍스의 설계에서 확실한 목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에 이리 청하네. 그에게 자네와 이야기할 기회를 주겠나, 형제여?”


베베단이 고개를 저었다.


“세라팍스가 나를 그렇게 원한다면 직접 찾아왔어야지. 난 이유가 있어 여기 정착했고, 막연한 희망을 약속한다 해서 떠날 생각은 없네. 만나서 반가웠네, 형제여. 하지만 나는 자네와 함께 가지 않을 걸세.”


바엘로르의 입술이 비틀렸다. 다음 순간,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내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네, 자브리엘. 하지만 자넨 너무 성급하게 판단을 내렸어. 세라팍스는 자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걸세. 우리 군단이 늘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지. 그를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지만, 자네가 이해하는 그 동맹이라는 개념에 일치하지는 않아.”


황제 폐하, 도와주소서. 저치의 말을 믿고 싶어질 지경 아닙니까. 바엘로르 역시, 그저 내 형제 중 하나에 불과할 수 있었다. 늙고 지친 채, 한두 세기 가까이 홀로 남아 사냥당하다 보면 스페이스 마린조차 필연적으로 피로를 느끼게 되지 않던가. 그가 워프의 힘에 오염되었음을 암시하는 흔적은 전혀 없었지만, 나는 그가 속한 세력이 한 짓을 보았다. 그런 비뚤어진 본성을 가진 이들과 함께 어깨를 맞대면서도 타락하지 않을 수 있다고? 최소한 어리석음이고, 더 나아가면 고의적인 무지에 가까운 일이다.


“동맹이고 뭐고, 난 세라팍스와 함께 어깨를 맞대지 않을 거다.”


내가 말했다.


“형제여, 다음에 우리 길이 서로 마주할 때가 오면, 그저 겨루기로 끝나지는 않을 걸세. 그게 두렵군.”

“그거 재미있군.”


바엘로르가 조심스레 대꾸했다.


“또한, 수치스러움이기도 하겠지. 어쨌든, 나는 자네 두 사람 곁을 이만 떠나도록 하지.”


투구를 고쳐 쓴 그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어떤 인사도 없었다. 나는 어떤 기만이나 기습을 예상했지만, 바엘로르는 그저 내가 택했던, 그리고 그가 택했을 길을 따라 다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리고 뒤틀린 나무의 얽힘에 이른 그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카오스를 섬기는 종이라면 좀 더 극적으로 퇴장할 줄 알았는데.”


나는 침묵을 깨기 위해 베베단에게 말을 걸었다.


“그가 저렇게… 떠나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궤도에 함선이 있다더군.”


베베단이 답했다.


“아마 어딘가에 왕복선이 있겠지.”


나는 베베단을 응시했지만, 그는 내 우려를 떨쳐냈다.


“안심하게, 형제여. 바엘로르는 자네에게 함포 사격을 가하거나 하진 않을 걸세. 그랬다간 라운시엘과 갈라드를 화나게 만들 테니까. 아마 그 둘은 싸움을 시작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의 존재를 허락했을 걸세.”

“그 둘이 바엘로르가 여기 있는 것을 알았다고요?”


나는 소리쳤다.


“심지어 상륙을 허가했단 말입니까?”


두 사람을 만난 뒤 사라졌던 의심이 다시 몰려오는 게 느껴졌다.


“그 역시 우리 형제 아닌가, 그렇지?”


베베단이 물었다.


“모든 의견이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말일세. 뭐 요약하자면, 우린 여전히 서로를 죽이려 애쓰고 있군. 라운시엘과 갈라드가 궤도에 닥쳐드는 카오스 함대를 용인할 리는 없지. 하지만 다른 폴른이 지휘하는 함선 한 척이라면? 말썽을 부리지 않는 한, 그 둘은 절대 방어선에 교전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을 걸세. 같은 이유로, 트레베눔 감마와 그 위성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적수들이 있다 쳐도, 일만의 눈은 그 명단에서 가장 마지막을 차지할 걸세.”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아니던가. 어둠의 힘을 섬기는 종들을 죽인 적은 있지만, 나는 프리아벨의 행위들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손을 든 바는 없었다. 그저 그를 떠나, 다시 홀로 여정을 떠났을 뿐이다. 물론 그가 불쾌해했겠지만,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유대감이 있었다. 그 시절의 은하계에서 내가 아는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경험했는지 이해해 주는 이가 없지 않았던가. 물론, 우리 목숨에 위험에 처할 게 두려워 은하계의 그 누구에게도 알려줄 리가 없었지만.


바엘로르가 만약 내 형제 중 하나가 아니었다면, 그의 사이킥 힘이 내 편을 들었을까? 알 수 없다. 만약 베베단이 내 형제가 아니었다면, 방해했다는 이유로 내가 그를 먼저 죽이려 들지 않았을까? 역시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항상 내 형제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논리를 따지고, 충돌로 이어지지 않는 길을 찾고자 노력한다. 최소한, 충돌을 벌이지 않아 왔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결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어쩌면 다른 선택지를 고려조차 않은 것이 우리의 결점일수도.


나는 다시 베베단에게 돌아섰다.


“아마 합류 제안에 대한 답을 이미 들은 것 같군요. 사자께서 당신을 원한다면 직접 왔어야 한다,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특히나, 이미 죽이려 시도했던 상대니 말입니다.”


베베단의 표정이 바뀌었다. 나는 내가 그저 진실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자극해 공격하도록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순간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그저 한숨을 쉴 뿐이었다.


“바엘로르는 나를 일만의 눈에 합류시키려고만 온 것이 아닐세. 그는 사자가 돌아왔다는 은하계의 소문에 대해 경고하러 온 거였어. 그 소문으로 나를 조종하려 드는 이들을 경계하라는 소리를 했지.”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일만의 눈이 사자와 싸움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엘로르가 전체를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 솔직히, 이미 짐작하고 있었네.”


베베단이 미소를 지었지만, 그저 입꼬리만 올라간 식이었다. 웃음기를 찾을 수는 없었다.


“우린 결국 다크 엔젤 아니겠나. 알파 리전은 다들 똑같은 이름을 쓰며 자기들이 기만의 주인이라 생각하지.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정신을 그대로 드러낼 비밀을 갖추고 있지 않나. 개방적이고 정직한 다크 엔젤이라니, 문명화된 스페이스 울프 만큼이나 희귀한 존재지.”


나는 코웃음을 쳤다.


“공정한 평가군요.”

“사자가 칼리반에 돌아왔을 때, 나는 분노했다네.”


베베단이 대꾸했다.


“물론, 우리가 행한 바처럼 구는 곳이 옳다고 여겼는지는 모르겠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들에게 목소리를 높여 반박할 정도로 강하게 느낀 바는 없어. 그저 군인처럼, 당연히 그래야 하듯이 명령을 따랐을 뿐인 것 같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황제 폐하의 권위 아래 군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계십니다.”


베베단이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라운시엘과 갈라드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겠지?”

“그렇습니다.”

“뭐라고 하던가?”

“저와 함께 가겠다 했습니다.”


나는 베베단에게 말했다.


“그 둘은 사자께서 트레베눔을 보호해 주시기를 바라더군요.”

“라운시엘이 가겠다 했으니, 갈라드 역시 함께 하겠지.”


베베단이 입을 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가 그 공격의 일부였음을 후회하고 있네.”


베베단이 몇 초 더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그 시절에, 무엇이 진정 옳은 일인지 판단하기 쉽지는 않았네. 하지만 그것이 잘못이었음을 알았어야 했어. 사자가 반역자라 쳐도, 사자를 따르는 모두가 반역에 동참했다고? 우리는 모두의 위에 파멸을 불러왔네. 우리가 무슨 짓을 했고,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았더라면 동참하지 않았을 모두에게 말이지. 그걸 바로잡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 내 옛 형제들 중 몇이나마 사자의 곁에 서 있다면, 그들이 직면하게 될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나.”


예상치 못한 희망의 온기가 가슴에서 피어오르며, 나는 깜짝 놀라 눈을 깜빡였다.


“함께 가실 겁니까?”

“직접 사자를 뵈어야겠어.”


베베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가 진짜 사자일지 아직 알지 못하겠네만, 내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만 하겠네. 일단 확인하고 나면,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겠지. 자네가 말한 게 맞다면, 뭐 그 이후라도 떠날 수도 있겠지. 만약 거짓이었다면, 우리 유전 아비의 복귀가 거짓이었음을 밝혀야 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교통편은 있나?”

“계곡에 왕복선이 있습니다.”


나는 저 아래 서쪽으로 손짓하며 답했다.


“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갑주 입는 걸 좀 도와줬으면 싶네만.”


베베단은 왼쪽 팔뚝의 그루터기를 들어 올리며 침울하게 말했다.


“아직 잘 맞는다고 가정하고 말일세.”

“다시 맞춰 드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시죠, 이제-”


다음 순간, 팍스 포르티투디니스의 최우선 알림이 복스에서 울렸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복스를 작동시켰다.


- 죄송합니다, 자브리엘 경. 아주 급한 일이 아니라면 연락하지 말라고 한 것은 기억합니다만, 이번 일은 거기 해당하는 것 같아요.


몬타라트 함장이 내 귀에 직접 말을 전했다.


- 아스트로패스들이 구조 신호를 포착했습니다.


물론 구조 신호는 임페리움 니힐루스에서 아주 흔한 일이었다. 너무 많아서, 아스트로패스 통신이 고통으로 들끓는 사이킥 소음 너머로 전해지는 게 어려울 지경이다. 최소한 내가 아는 바로는 그랬다. 함장이 이 신호가 내게 중요하다고 여겼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디서 온 구조 신호요?”




점심 맛있게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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