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크그로드의 전장은 현재 난장판이었다.

"전진! 무조건 전진해라!"

"목숨을 아끼지 말아라, 강철의 전사들이여!"

임페리얼 가드의 3분의 2가 날아가고, 기계교 측 군대의 절반이 날아가는 막대한 희생과 데스 가드의 보병력, 아이언 워리어의 화력과 루나 울프의 맹공으로 대신전으로 향하는 길은 점진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모타리온과 페투라보는 궤도 폭격에 가까운 효과를 가진 대량살상용 핵, 생물학, 화학 병기들과 소이탄 등의 각종 폭파물들, 거대 섬멸병기 오디나투스까지 무차별적으로 동원해가며 스페이스 마린의 약 25% 가량을 갈아버리면서까지 돌파구를 몰아붙였고, 악전고투 끝에 성전군은 마침내 대신전 궁전의 인근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데스 가드와 아이언 워리어 특유의 인명경시적 희생전략은 잔혹하지만 성전군은 신전엔 점차 접근해갔고, 이 처절하고도 냉혹한 투쟁 끝에 나름 안정적으로 전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난잡한 상황이 어느 정도 재정비되자, 두 프라이마크는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며 언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페투라보 이 망할 자식! 진작에 지원 병력을 불렀어야지! 너의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2할이 넘는 내 자식들이 무의미하게 죽었다!"

중갑 보병이 주류인 데스 가드 군단은 물러가는 법 없이 항상 최선두에서 돌격했고, 그렇기에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상황이었다.

"작전을 완수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 이건 작전을 위한 희생이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게냐!!"

병사들의 무의미한 죽음에 격노한 모타리온은 페투라보의 말에 사일런스를 움켜쥐곤 그의 목에 겨누었고, 강철의 군주는 여명공의 맨 리퍼를 특수 아다만티움 합금 팔로 잡아챘다.

"야만인들처럼 감정에 몸을 맞기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뭐라고? 이-"

"진정하시오, 여명공! 여긴 지금 전장이오!"

보다 못한 아바돈의 일침에 모타리온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 씩씩거리며 맨 리퍼를 거두었다. 모타리온이 감정을 삭히는 동안 아바돈은 페투라보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물론 아바돈 또한 유전-형제들의 수많은 죽음에 내심 격노한 상태였지만, 아직 로드 커맨더를 향한 존중이 이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로드 커맨더, 이제 어쩌실 겁니까?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모든 작전이 실패한건 아니네, 리전 마스터. 시간끌기는 실패했지만, 침투 부대와 합공을 벌여 워로드를 제거하기만 한다면 승리할 순 있어."

'그게 작전 실패 아닌가?'

"...알겠습니다."

아바돈은 굳이 자신의 어처구니없음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큼..."

겉으론 태연해 보였지만 페투라보도 착잡한 심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페투라보의 기존 계획은 전선 유지력이 강한 데스 가드와 아이언 워리어, 루나 울프가 모루의 역할을 하는 틈을 타 기동력이 뛰어난 나이트 로드와 알파 리전이 워로드를 암살하고 적군의 후방을 치는 망치의 역할은 하여 적들을 섬멸하는 것.
  
그의 생각엔 이토록 완벽한 계획이 예상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물량과 화력 앞에 무참히 실패했다는 현실을 그는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무한한 지성을 가진 내가 작전을 실패하다니! 그것도 이 야만적인 초록-짐승들에게..!!'

페투라보는 주변의 모든 것을 깨부수고 싶은 분노를 간신히 다스렸다.

* * *

한편, 고크그로드의 대신전.

본대는 도시 바깥으로 대기시켜둔 채 고크와 모크의 신전에 잠입을 성공한 2백여명의 나이트 로드-알파 리전 합동 별동대는 오크들의 눈을 피해 열심히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대신전 안에는 말그대로 엄청났다. 일반적인 워보스의 덩치와 버금가는 수천 이상의 메가놉들이 메가 아머와 각종 첨담 병기들로 무장한 채 집결한 상태였고, 그 중심엔 제국이 지금까지 -심지어 대성전 시절에도 전혀 보지 못한- 어마무시하게 거대한 메가 가간트가 위치해 있었다. 최소 엠페러 타이탄 이상의 크기의 메가 가간트의 위용에 별동대 전원은 저 거대한 전쟁병기 안에 오크 워로드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콘라드 커즈는 그린스킨의 위세에 흥분한 듯 입맛을 다시며 미소지었다.

"거참 살벌하군! 쏙쏙 골라 죽이는데 아주 재밌겠어..."
"시간이 없다, 커즈. 어서 시작하지."
"킥! 둘만 있을 땐 서로 솔직해지자고, 유전-형제."

오메곤의 건조한 재촉에 커즈는 그의 태도를 비꼬며 사이킥 능력으로 사방에 보이지 않는 어둠을 더욱 진하게 흩뿌려 별동대의 모습을 감추었고, 여기에 오메곤의 은신 능력이 더해져 별동대의 기척을 완전히 제거해주었다.

"사냥 시작이다..!"

-밤의 군주를 경배해라.

나이트 로드 소속 별동대원은 나즈막히 전투함성을 말하며 -오메곤과 알파 리전은 그저 침묵만을 유지했다- 본격적인 암살 작전에 나섰다.

"켁-!"

"끅.!"

"꾸엑!"

"크억..."

이들은 은밀하면서도 민첩하게 메가 가간트로 접근했고, 별동대의 기척을 감지할지도 모르는 위어드보이들은 커즈와 영혼 구속 의식(Soul-Binding)을 치러 막대한 WAAAGH! 에너지로 가득차 있음에도 안정적인 통제가 가능한 라이브러리안들의 사이킥 능력을 통해 미리 탐색하여 먼저 하나둘씩 암살했다.

그렇게 이들이 메가 가간트의 입구까지 접근했을 때, 오메곤과 커즈에게서 긴급한 통신이 들려왔다.

[나이트 로드와 알파 리전은 들어라! 지금 당장 무리해서라도 작전을 속행해라! 우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으니 신전으로 진격하겠다!]

통신을 들은 두 프라이마크는 별동대에 신호를 보내고 서둘러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만약 신전이 아군의 공격을 받는다면 즉시 전장이 되어 변수가 일어날 확률이 너무나도 높았기에, 그 전에 일을 완수해야만 했다.

별동대가 마침내 메가 가간트 내부로 잠입하자, 이들은 메가 가간트가 얼마나 거대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기잉! 기이이잉!

내부의 거대한 통로와 홀들에는 밖에서 보았던 워보스만큼이나 거대한 오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스톰파들까지 배회하고 있는 것이었다.

"쯧... 이건 예상 밖인데?"

"흠."

메가 가간트의 거대함에 질린 커즈는 짜증을 내며 투덜거렸으나, 오메곤은 사주 경계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잠입에 제일 능한 프라이마크들의 초인적인 능력 덕분에 아직까진 발각되진 않았지만 언제 어디서 적들이 별동대를 감지하고 공격할 지 몰랐다.

'아직까진 너무나 순조롭다. 왜지?'

그러나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위어드보이 같은 사이킥 감지자가 메가 가간트 내부에는 없었던 것인지, 잠입에 어려움은 없었다. 이 순탄함은 오메곤의 의심에 불을 지폈으나, 어차피 워로드 암살이 목적이었기에 애써 무시했고, 주저없이 길을 헤쳐나간 끝에 메가 가간트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높이가 수백 미터는 넘는 홀은 인류제국의 옥좌방만큼이나 화려했고, 이 오크 제국으로부터 유린당한 인류제국군의 상징물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으며, 이 메가 가간트의 주요 동력을 담당하는 거대한 오크식 동력 발전기와 속히 10m는 넘어보이는 무시무시하고 위압적인 오크 우상이 우뚝 서 있는 상태였다.

"허... 오크들도 우상 숭배를 하는건가?"

근처에 적이 없음을 확인하자, 나름 공예에 조예가 깊은 커즈는 작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우상을 흥미롭다는 듯 면밀히 관찰했다.

프라이마크들에게도 위압감을 선사한 이 오크 우상은 마치 가간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수많은 화기들과 병기들이 장착된, 거대하고 두꺼운 메가 아머를 얼굴을 포함해 빈틈없이 두르고 있었고 왼손에는 파워 클로가, 오른손에는 거대 회전포들이 부착되어 있었으며, 머리를 두른 황소 해골 형상의 헬멧은 큰 강철 뿔과 엄니로 장식되어 있었다.

또한 특이하게도 흑백 체크 무늬라 채색된 우상의 어깨 양 옆에는 거대한 황동구체가 달린 서보-암과 같은 기계장치가 달려 있어 보는 이의 눈길을 쉽사리 끌 수 있었다.

우상을 향한 짧은 관찰을 마친 커즈는 이어 홀의 가장자리까지 시선을 돌렸지만 무언가 작업에만 열중하는 멬-보이들을 제외하곤 워로드라 볼만할 오크 개체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워로드는 어디에 있는거지?'

커즈와 오메곤이 오랜만에 같은 생각을 하며 다시금 홀 전역을 세심히 둘러보았고, 홀에 들어온 직전과 다른 변화를 깨달을 수 있었다.


구그그그-!


이들의 앞에 있는 막강한 오크 우상이, 전류와 함께 움직이며 몸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 '우상'이 바로 울라노르의 워로드였다.

이 광경을 바로 앞에서 포착한 두 프라이마크와 별동대원들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거대하고도 무시무시한 '괴수'는 지금껏 아스타르테스가 만난 그 어떤 적보다 더욱 끔찍한 존재이며, 이 거대한 괴수를 죽여야만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암녹빛 전류를 온 몸에 두른 저 거대한 워로드는 프라이마크의 능력을 꿰뚫곤 별동대를 또렷히 노려보고 있었다.

-밤의 군주를 경배하라!

-히드라가 지배하노니!

아너 가드 전원을 포함한, 최정예로 선별된 별동대답게 이들은 몰려오는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함성을 외치며 볼터와 사이킥 공격을 대괴수에게 퍼부었다.

하지만.

"Waaaaaaaaaaaagh!!!!!!!!!!!"

절망스럽게도 이 용감한 맹공은 무용지물이었다. 대괴수는 거대한 사이킥 함성을 내지르며 볼터와 사이킥 공격을 상쇄시켰고, 이어 믿을 없을 정도의 무지막지한 힘으로 마치 인간이 벌레를 때려잡는 듯이 별동대원들을 학살했다.

"망할, 도망쳐!!"

"전원 후퇴하라!"

별동대의 절반이 곤죽이 되어버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