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폐하시여. 당신의 빛으로 절 보호하소서.."

핏방울이 떨어진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여덟 방울...

방울이 뭉쳐 웅덩이가 되며, 웅덩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것은 흐름이 되었으니.

흐름은 바닥의 글자를 따라 흐르며 그 색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붉게 붉게. 다른 색은 필요없으니. 필요한 것은 붉은 색이다. 다른 게 아니다.

"포기하라."

마치 종잇장을 보는 듯한 창백한 피부. 하지만 화려한 금발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은 치장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채워져 가는 붉은색을 보며 입꼬리를 올릴 뿐이다.

그런 그의 표정은 마치 악귀와 같아 창백한 피부와 어울려져 섬뜩함을 자아냈다. 

"여기에 빛은 없으니. 너는 무엇인가? 말하라. 필멸자."

필멸자의 눈에 색다른 풍경이 보인다. 

전지(全知)한 폐하. 제 말을 들어주소서.

전능(全能)한 폐하. 제 말을 들어주소서.

수많은 악마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오로지 그만이 검을 놓지 않은 채 적들을 베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손이 그의 손목을 붙잡고, 그는 결국 검을 놓고 말았다. 

수많은 유혹이 그의 귀를 간지럽힌다. 

수많은 고문이 그의 몸을 괴롭힌다. 

그는 말한다. 결코 굴복하지 않으리라고.

필멸자도 말하였다. 결코 굴복하지 않으리라고.

하지만 더욱 더 많은 유혹과 고문이 그에게 찾아왔다. 

시간은 무한하다. 그리고 그를 위해 준비된 선물은 더욱 더 많다. 

그는 말한다. 그만두라고.

필멸자도 말하였다. 그만두라고. 

그러나 더욱 더 많은. 너무 많은. 지나치게 많은 유혹과 고문이 그를 감싸안았으니.

결국 그는 말하였다. 당신을 따르겠다고.

필멸자도 말한다. 당신을 따르겠다고. 

필멸자의 눈이 점점 뒤집혀진다. 그에게 더 이상의 빛은 허락되지 않으니. 

"... 오로지 피로써 우리는 이 세상에 우리의 말을 전하고."

"오로지 피로써. 우리는 이 세상에 우리의 존재를 알리리라."

더럽혀진다. 피로 물들어간다. 머리의 정상부터 다리의 끝까지. 

남자의 입꼬리는 더욱 더 올라간다. 그는 손을 뻗는다. 

필멸자의 피로 얼룩져가는 머리를 잡고서 남자는 그에게 속삭였다. 

"우리는 무엇인가?"

".... 우리는 블러드 엔젤. 피의 천사요. 우리를 기만한 황제를 죽일 검이다...."

석관이 피로 가득찬다. 

입을 통해, 코를 통해, 귀를 통해. 온 몸의 구멍을 통해. 피는 필멸자를 탐한다. 

몸 속에 들어온 피가 단 1cm의 공백도 용서치 못한다.

피는 필멸자를 잡아먹는다. 

그리고 석관의 문이 닫힌다. 

다시 기억이 떠오른다. 

수많은 검들이 그를 향해 겨눠졌다. 

경전을 몸에 새긴 자가. 그리고 흉측한 손톱을 머리에 단 자가. 

하지만 그는 핏방울이 떨어지는 포효를 내지르며 피를 탐한다. 

"... 황제를 죽여라."

석관 속에서 필멸자, 아니 블러드 엔젤은 중얼거렸다. 

코른께서 원하시니. 아나테마의 아들을 모조리 죽여라.

코른께서 원하시니. 아나테마의 영토를 모조리 불태워라.

코른께서 원하시니. 아나테마의 숨통을 끊고 그 피를 빨아라.

핏방울이 떨어진다. 

피의 천사가 하나 더 태어났으니. 아나테마의 촛불은 다시 한 번 폭풍을 맞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