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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3차 창작] 라이오넬 헤러시 - 우로보로스

20번리멤브란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7.30 22:47:13
조회 1148 추천 21 댓글 10
														



"당신들은 무얼 구하려 이곳까지 온겁니까. 이런 변방에. 이곳엔 아무것도 없나이다."


철로 된 손가락이 움직여 엎드려 절하는 포로의 목을 두들긴다. 

포로는 밀려오는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남자는 떨림을 즐기기라도 하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무것도 없지 않다. 필멸자여."

"모든 행성에는 심장이 있는 법. 모든 행성에는 시작이 되는 것이 있도다."

"무슨 말씀이신지..."


포로는 주제를 모른 채 고개를 들었다. 

남자의 모든 건 단단했다. 그의 모든 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인조 시각 기관에서 나오는 붉은 빛이 그의 얼굴을 노려보았고, 그는 붉은 빛에 얼얼함을 느꼈지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의 모든 근육은 뇌에서 내리는 필사적인 명령을 거부한 채 굳어버렸고, 오로지 그의 미각 기관만이 고요한 긴장 속에서 나오는 침을 삼킬 뿐이었다. 

남자는 그의 상태를 알아차린 것인지 비웃음을 날렸다. 고작 자신의 모습을 본 것만으로 굳어버린 필멸자가 참으로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을 앞에 두고 고개를 든 포로의 강함? 아니면 무모함을 마음에 들어했다. 


"핵이다. 필멸자여. 시체 황제를 따르는 나약한 자여. 우리가 필요한 것은 그것이다."

".. 그것을 어찌 하겠다는 것입니까....."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스스로 아는 자를 칭찬하는 바이다. 스스로 알아내거라. 필멸자."


그리고 엎드려 있는 몸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미약하기 짝이 없는 진동이었다. 

하지만 그것의 배수가 될 듯한 진동이 찾아왔고, 그것의 곱, 또 그것의 곱, 또 그것의 곱이 되는 진동이 거듭하여 찾아왔다. 

그와 남자를 둘러싼 도시의 풍경이 무너지고 있다. 마치 훌륭하기 그려낸 그림에 물을 들이붓듯이, 모든 게 무너져가고 있었다. 

포로와 남자는 그것을 가장 상등석에서 보고 있었다. 모든 게 무너져가고 있음에도 그들이 있는 위치는 안전했다. 

의도적인 것일까. 아니면 우연이 겹쳐서 그런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설마."


포로의 뇌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불가능한 일이 떠올랐다. 이들의 위력은 그들이 침공을 시작하면서 잘 느꼈다. 하지만 그 일만큼은 불가능했다. 불가능해야만 했다. 

그런 힘을 갖고 있는 자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됐다. 그런 강인함을 갖고 있는 자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됐다. 


"당신들은... 핵을 무너뜨리려는 겁니까?"


포로의 입 속에서 공상에서나 가능할 법한 발상이 튀어나왔다. 그의 생각대로였다. 그건 불가능하다. 

설사 황제 폐하께서 이 세상에 돌아오신다 하실지라도 그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맞지만, 틀렸다. 아버지께서는 핵을 잡아먹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너무나 가벼운 말투로 그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증명에 대한 근거는 충분했다. 

길고 긴, 철제 덩어리가 너무나도 많은 손을 달고 이 행성의 지하로 파고드는 것은 포로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닌가? 


"... 대체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대체 무엇을...! 무엇을 위해서!!"

 

포로는 이제 엎드리지 않았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벌떡 일어나 남자, 아니 고도로 기계화된 강철이나 다름없는 이를 바라보았다. 

발칙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로봇은 즐거운 듯 포로를 바라보았다. 그의 군단은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는 이를 혐오하니까. 비록 시체 황제의 충견이라 할지라도 두 다리로 일어나 목이 베이는 자들을 좋아했다. 


"그것이 우리의 신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원하니까 할 뿐이다."

"...."


포로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저 욕망만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이해라는 감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포로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추스르면서도 자신의 심정을 해체해보았다. 

이것이 자신이 원하던 것인가? 이 망할 행성의 노동자로 살면서 자신이 바래왔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거대하나 불규칙한 진동이 지각을 관통하고 자신의 발 밑을 두드리고 있음에도 포로는 복잡한 심경에 그것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 당신들을 더 보고 싶나이다. 저의 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추스르고 싶나이다. 제가... 제가 더 강해지면 이런 심정을 느낄 필요가 없나이까...? 강한 자여....?!"

"그렇다. 네가 강해지고 싶다면 강해져라. 네가 원하는 바가 있으면 행하라. 그것이 어둠의 군주께서 원하시는 바일지니. 우리의 아버지께서 바라는 바일지니."


강철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포로는.. 그 손을 잡았다.


...


방대한 수의 손이 뜨겁기 짝이 없는 핵을 부순다. 그리고 부숴진 핵 조각들은 컨베이어 벨트의 역할을 행하는 손으로 넘겨져 본체의 심장부로 옮겨진다. 

메두사는 그것을 먹는다. 입으로 넘어간 조각들은 핵의 열기로 손상되어 가는 손을 수복하고,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더. 더. 더. 더. 더.

더 강해져야 한다. 

더. 더. 더. 더. 더.

더 먹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더 강해진다. 더 먹을 수 있다. 

핵의 조각들이 메두사의 날개를 더욱 크게 만든다. 메두사의 강철 육체를 더 강인하게 만든다. 


모든 건 그의 아나테마를 없애기 위함일지니. 모든 건 과잉의 군주를 위해서일지니.

행성의 깊디 깊은 지하에서 메두사는 주체 안 되는 비명을 내리질렀다. 


"펄그리이이이임!!!!!"


그것은 이 행성의 마지막이 되는 소리요. 그의 아나테마를 죽이는 곡의 서곡일지니. 

메두사의 심장에 찍힌 과잉의 문장이 밝게 빛나며 서곡의 조명을 밝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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