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내하라."

견뎌라. 밤이어도 새벽은 올지어니.

전진하라. 어두운 곳이 있다면 밝은 곳이 있기 마련이니.

버텨라. 제국의 미래는 너희의 손에 달렸으니.

...

날카로운 대낫이 반역자의 숨통을 끊어놓았고, 다음 먹잇감이 무엇인지 기대하며 그 날을 빛낸다.

지나치게 혹사된 신체는 휴식을 요구하지만, 호흡기를 통해 들어오는 각성제는 휴식의 욕구를 강제로 눌러버리며 전투를 강행한다.

반역자들의 공세는 끝이 없다.

후일 제1차 테라 공성전으로 알려질 전투에서 우주 공항을 탈환하기 위한 싸움은 계속된다.

부패한 역병의 손길이 우주 공항을 더럽히고 있고, 우주 공항에서 나오는 강력한 대공망은 아군의 공군 전력을 끊는다.

이 뿐만 아니다. 우주 공항을 통해 내려오는 반역자들의 군세는 끊이질 않는다.

허나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나는 데스가드. 위대한 여명공 모타리온의 아들이자 그 분의 친위대 데스슈라이드의 일각이니라.

황제 폐하께서 벼려낸 가장 튼튼한 갑옷과 무기를 들고서 인류제국의 적을 처단하는 자로다.

"네가 들고 있는 무기를 믿지 않으면 너는 무엇을 믿겠다는 것이냐?"

여명공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으니. 이는 내 신조이자 숙명이니라.

황제 폐하를 위해. 여명공 모타리온을 위해.

휘둘러라. 휘둘러라. 휘둘러라. 팔 뼈가 부러진 게 대수더냐. 겨우 팔 하나를 못 쓰게 됐을 뿐이다.

약물을 들이켜라. 목을 참수해라. 발을 움직여라.

반역자들이 질린 듯이 뒷걸음친다. 나약한 것들. 이 정도 수준이기에 황제 폐하에게 칼을 들이댄다는 오판을 저지른 것이다.

나는 가소로운 듯 그들을 비웃으며 말했다.

"왜 그러지? 아직 적은 너희들 앞에 있다. 방아쇠를 당겨라. 동력을 가동해라. 난 아직 살아있다!"

아직은 봐줄 만한 정신을 가진 녀석들이 볼터를 발사한다.

하지만 보인다. 녀석들은 그저 훈련받은 대로 행동할 뿐이다. 녀석들의 빌어먹을 아버지들이 교육한 대로 움직일 뿐이다.

리퍼를 휘두른다. 볼터 탄환의 폭발이 일어나 남은 한 팔에 금이 갔다. 하지만 금이 갔을 뿐이다.

반역자들이 파워 아머의 빈틈을 노리고 동력 무기를 휘둘러 금이 간 손목을 베어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난 원래 팔 같은 거 없었다. 이 망할 반역자들아."

덜렁거리는 한 손의 욱신거림을 약물로 씹어내고 투구를 벗는다. 리퍼를 입에 물고 전진한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 하지만 그것은 곧 익숙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반역자들을 죽이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우주공항의 탈환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전쟁의 승리를 위해. 모든 건 황제 폐하를 위해.

....

부러졌던 팔은 잘려나갔고, 멀쩡했던 다리는 볼터 탄환에 명중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때묻은 하얀색의 갑주를 입은 군단원이 내게 다가왔다. 볼터를 들이밀고서.

"훌륭한 싸움이었다. 데스 가드."

"...... 반역자들에게 훌륭함따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가 이런 꼴이 됐다고 방심하는 건 니가 전사도 아니라는 거다..!"

잘려나간 다리의 고통따윈 무시하고, 뛰어올라 그 녀석에게 박치기를 날렸다.

무의미할 정도의 박치기. 하지만 녀석을 향한 조롱은 충분했다.

헬멧 밖으로도 보일 듯한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녀석은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

"괜찮나.. 괜찮지 않아 보이지만.."

말랐지만 큰 키의 사내가 나에게 물었다.

외계인들에게 희롱당하고, 온갖 수치를 당하고, 끝에는 온갖 독을 강제로 먹은 다음 강제로 밖으로 쫓겨난 나에게.

사내는 나에게 뭔가를 먹였다. 독 때문에 감각이 마비되어 금방이라도 죽을 거 같았지만 입 안에 들어오는 이물감은 느껴졌다.

"해독제다. 참으로 악취미군..."

점점 몸에 감각이 돌아오며 그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인다.

바르바투스의 사람답게 머리카락은 한 올도 없었지만, 그 날카로운 눈만은 바르바투스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노예로써 굴려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우리의 눈과는 다른ㅡ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은 그 눈은 정말이지 인상적이었다.

"... 몸이 움직여질 때까지는 함께 있어주마."

그는 그리 말하며 거대한 낫을 내려놓으며 내 옆에 앉았다.

난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내 그에게 물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물을 수 없을 것처럼.

"당신의... 이름... 쿨럭... 은 무엇입니까...."

"모타리온."

그것이 여명공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

황금의 일격이 녀석의 목을 잘라냈다.

녀석의 목은 땅에 떨어지며, 헬멧 밖으로 굴러나온 머리는 그 일격을 눈치채지도 못했는지 날 향한 분노의 감정만이 가득하다.

"... 수고했다. 아들."

익숙한 목소리다. 언제나 들었던 그 목소리. 과거, 내가 죽어갈 때도 들었던 그 목소리.

군단의 아포세카리가 날 끌고 가는 감촉이 느껴진다. 아.. 저 분이 여기에 왔다는 것은..

"... 내 아들을 저런 꼴로 만들어놓고."

침묵이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랜턴은 금방이라도 성을 낼 듯 빛나고 있다.

회색의 연기가 파워 아머의 배출구에서 쏟아져나와 전장의 바닥에 깔린다.

그건 그가 반역자들에게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선물이다.

그건 그가 반역자들에게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자비이다.

그건 그가 반역자들에게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광명이다.

바로 침묵.

"몸 성히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던 건 아니겠지..?"

랜턴이 불을 뿜으며, 침묵은 사냥감을 쫓아간다.

...

나의 아버지 모타리온이시여. 내 영원한 주군이시여.

저는 어떤 모습이 되더라도 당신의 낫이 되겠나이다.

"녹스느니 벼려질 것이오. 죽음 속에서도 난 그 분을 섬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