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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렐리아안!!"

신은 존재한다.

허나 그 신은... 나를 미워하신다.

벼락이 내리쳤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벼락이. 

굴종의 욕구가 치솟았고, 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내 인생을 향한 부정이 시작됐다.

"너의 군단은 13번 군단을 제외하곤 그 수가 가장 많음에도 너의 진군은 고요하고, 그 속도는 너무나 느리도다. 짐이 너에게 명령한 것은 인류의 통일이지. 종교가 아니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그는 그 태도를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로가 아우렐리안. 고개를 들어라. 너는 죄인이 아니라 단순한 '배교자'에 불과할지니. 넌 짐을 신이라 칭하였도다. 그렇다면 신인 짐의 명령을 네가 거부하는 게 말이 되느냐?"

"허나 황제 폐하시여. 저의 아버지시여. 그대는 신이십니다. 어째서 모르시는겁니까?! 당신의.. 당신의 힘으로 이 은하의 모든 자가 볼 수 있는 불을 밝히나이다. 당신은 인류의 암흑기를 끝내고 계몽을 가져온 자입니다! 이런 자를.. 이런 자를 어떻게 신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신...."

"시끄럽다!!!"

다시 벼락이 내리쳤다. 이젠 나 뿐만 아니라 모든 군단원이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부정과 부정이 다시 이어졌다. 거기에는 날 말리지 못한 모든 군단원에 대한 모욕도 포함되었다. 

어떤 자도 그 누구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리고 에레부스는 말하였다. 진짜 신이 저 너머에 있다고. 

우리가 섬겨야 할 진정한 신이. 가짜 신 따위가 아닌, 섬기면 힘을 주며 명예와 인정을 내려주는 신이. 

허나 거기에 신 같은 건 없었다. 

이해가 됐다. 어째서 아버지께서 그리도 종교를 박해했는지. 살육만을 반복하는 다른 형제들보다 나에게 더 주의를 주었는지. 

그들은 우리의 욕망을 먹는다. 선한 것도 악한 것도. 모든 감정이 그들의 것이다. 

그들은 신이 아니다. 굶주린 짐승이었다. 

펜을 들었다. 

난 정복자가 아니다. 행정가도 아니고, 뛰어난 연설가도 아니다. 난 그저 사제일 뿐이다. 

황제 폐하께서 어째서 날 이렇게 만들었는지 의문을 품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답은 간단했다. 

혼돈이 감정을 먹는다면ㅡ 그들이 정신적인 측면에서 우릴 공격한다면 우리도 거기에 대응해야 한다. 

그게 내 역할이다. 이 은하의 모든 인류가 혼돈을 떨쳐낼 때까지 붙잡을 깃발이자 초석이 되는 것이다. 

이건 종교가 아니다. 종교는 인간의 본능이 이뤄낸 산물일 뿐이다. 누군가에 기대고 싶은 채로 편안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다. 

하지만 그 본능을 먹고 사는 이가 있는 이상ㅡ 그 자들이 우리를 먹어치울 먹이로 보는 이상. 본능은 버려야 하는 법이다. 

이성을 깨우쳐라. 본능이 아니다. 감정이 아니다. 우리가 가져야할 것은 자유요. 속박이 아닐지니.

황제 폐하가 그 이성의 화신일지니. 그 분은 힘과 신앙 그리고 혈통을 통합한 선구자요. 영원토록 칭송받을 군주일지니.

...

"신은 존재하며"

아니야.

"그 분은 우릴 사랑하신다."

아니야.

그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 

그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아. 

그렇기에 그는 인간을 위해 스스로를 바친거야. 자신도 사랑하지 않기에.

"현자가 말하거늘. 황제 폐하가 널 위해 무엇을 하였는지를 묻지 말거라."

"네가 황제 폐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는지를 묻거라."

그렇기에 난 그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많은 인간들이 그를 위해 피를 흘린다면, 그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저 옥좌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우리 사이에서 걸으시지 않을까? 

위험은 알고 있다. 혼돈을 마주한 나였기에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만약 폐하께서 일어난다 하시더라도 그건 스스로를 인간을 위해 희생한 폐하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인간을 위한 일이라면 난 기꺼이 행할 것이다. 

그도 이를 원할 것이다. 

시카트릭스 말레딕툼이 일어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이니라.

9명의 형제들이 다시금 칼을 들고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4마리의 혼돈이 그 아가리를 벌리고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버려진 제국의 반쪽이 도움을 원하고 있고, 우리가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한들 그들에게는 사막 위의 단 한 방울의 물 정도이니라.

그렇기에 그는 일어나야 한다. 

설사 우리 모두를 집어삼킬 다른 하나의 혼돈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혼돈이니라.

"황제 폐하를 위하여."

'아니야. 인간을 위해서일지니.'

저는 제가 죽는 순간까지도 당신을 위한 기도를 바치겠나이다. 나의 아버지시여. 

나의 황제시여. 

그것의 대가가 인류제국의 모든 것이라면 기꺼이 바치겠나이다. 

모든 건 인간을 위해.

혼돈을 잠재울 인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