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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던 오브 파이어 : 어벤징 선] 제37장

말카도르(210.204) 2021.05.10 16: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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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장


[워프의 승천자]

[불경한 분노]

[사냥꾼과 먹이]



지옥선이 공격해 온 순간 성 아스테르는 매 순간마다 늘어나는 악마들에게 쫓기며 소행성 하부로 향해 더 이상 블랙스톤 장치를 시계에 두지 못한 상태였다. 놈은 그림자로부터 솟아나 성 아스테르가 회피할 여지를 가질 수 없는 순간 닥쳐들었다.


놈의 입이 큼직하게 벌어진 채 울부짖음을 토했다. 그 포효는 물리적 법칙을 거슬러 공기 없는 우주를 지나 보이드 쉴드와 함체를 뚫고 승조원들의 뇌를 파고들었다. 애서지의 머릿속에서 고통이 백열했다. 무시무시한 격노가 그녀를 움켜쥐었고, 애서지는 비명을 지르며 자기 자리로 쓰러지다시피 했다. 끔찍한 광경들이 심중에 차고 흘렀고, 거부할 수 없는 살의가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애서지는 저항했다. 다른 이들은 그렇게까지 강한 의지를 발휘하지 못했다. 갑판 먼 구석에서 총을 쏘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이 광기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다음 순간 애서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놈의 쩍 벌어진 입이 함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거였다.


충격에 대비하라!


성 아스테르의 포격 사관들은 평소 쌓은 맹훈련 덕분에 지옥선이 물어뜯기 직전 일제사격을 퍼붓는 데 성공했다. 놈의 입 깊숙이 폭발이 번지며 금속과 육신의 기괴한 혼합 깊숙이를 빛냈다. 하지만 놈을 늦추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쩍 벌어지는 입이 영상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그 가장자리를 넘겨 화면을 어둡게 물들였다.


그 충격으로 애서지는 지휘석에서 굴러떨어졌다. 가장자리로 넘어진 애서지는 계단 아래로 튕겨지며 쓰러져 하부 지휘 연단 주변의 난간에 기댄 채 겨우 몸을 일으켰다.


성 아스테르가 지옥선에 들이받히며 함체의 금속들이 신음하듯 떨렸다. 온 사방에서 경보가 울리고, 승조원들이 지휘 갑판 온 사방에 쓰러진 채였다. 겨우 버텨 선 애서지는 온몸에 멍이 든 것 외에는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보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광기 속의 총격전과 충돌 충격으로 인해 사상자가 꽤나 발생했다. 수병들이 총을 쏘아대며 분노에 사로잡힌 마지막 승조원을 제압했다.


“당장 피해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애서지의 지시가 내려졌다. 지휘 체계 사슬의 중간을 이루고 있던 부하들 몇이 죽거나 부상을 당한 채였고, 부관들 역시 이제야 제 몸을 수습하고 있는 판이었기에 지휘 갑판 곳곳을 돌며 직접 확인해야 했다. 지휘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휘 연단 일대를 돌아다니며 애서지는 명령을 쏘아붙이고 부상당한 장교들을 위한 의무대를 소환했다.


“갑판 다수가 뚫렸습니다.”


소위 한 명이 보고했다.


“14번 갑판, 승함 공격입니다. 악마들입니다.”


다른 장교가 보고했다.


“울리니우스 중대장의 중대를 파견해 처리하도록. 이 불생자 놈들이 황제 폐하의 천사들에게 어떻게 맞서는지 보자.”


애서지는 지시를 내리며 자신의 좌석에 착석해 있는 피눌라에게 다가갔다. 뺨의 상처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울리니우스 중대장은 현재 16번 갑판에 고립된 상태이고, 16번 갑판 역시 승함 공격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곳 외에도 총 4곳의 갑판이 뚫린 상태입니다. 스페이스 마린이 동시에 그 모두를 커버할 수는 없습니다. 루터넌트 이베르손(Iverson)과 부하들을 재배치할 수 있습니다만.


피눌라가 갑판 후방에 여전히 자기 결속된 채 고정되어 있는 스페이스 마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의 뼈에 걸고, 절대 안 된다!


애서지는 여전히 지옥선이 심어넣은 분노와 맞서면서 다짐을 굳혔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무방비상태가 된다. 놈들은 곧 여기까지 밀고 올 거야. 갑판 침입에 대해서는 일단 다른 곳에서 인력을 동원하도록.


애서지가 명령을 내렸다.


“승함 공격당한 영역에서 전원 후퇴하라. 후퇴가 어려운 인원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최대한 엄폐 가능한 지역으로 이동하도록. 각 갑판과 구역을 봉쇄하라. 불생자들을 우주 저편으로 밀어낼 순 없더라도, 최소한 가둬는 놔야 한다. 나머지 함대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주 통신 마스트가 망실되었습니다.”

“지옥선은 어디 있는 거야?”


바로 다음 순간 금속을 찢는 것과도 같은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그녀에게 답이라도 하듯이 울려퍼졌다.


놈은 우리를 물고 있습니다. 우리 위치가 지옥선의 위치나 다름없습니다.


피눌라가 답했다.


성 아스테르가 뒤흔들렸다.


아아, 폐하여! 대체 저 망할 자식이 어떻게 입도 있는 거야?


애서지는 중얼거리며 다시 연단의 계단을 올라 지휘석에 앉았다.


“주둥아리 참 크네. 위치를 대략이라도 확인해 고정하도록. 포격 사관들에게 포격을 지시해라. 저 망할 자식을 다시 우주로 던져버린다.”

“그랬다간 우리도 피해를 입을 겁니다. 사실상 영거리입니다.”


피눌라가 우려를 표했다.


“신경 안 쓰네. 저 망할 놈을 내 배에서 떼어내야 해.”


명령은 내려졌다. 성 아스테르는 지옥선의 아가리에 밀려 대형에서 밀려난 채, 사실상 먼 눈으로 우주를 나서고 있었다. 아거 센서는 손상을 입기도 하고, 균열에 근접하며 뒤엉킨 채이기도 있다. 균열의 가장 깊은 곳을 직시하고 있기에 관측창 역시 폐쇄된 상태였다. 그걸 들여다보는 건 워프를 직시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긴장으로 가득찬 몇 분 동안, 성 아스테르의 승조원들은 피해를 회복하고 지옥선의 정확한 위치를 탐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모두 대기 상태로. 옥좌의 축복을 받은 갑옷에 걸고, 모두 대기하라!”


애서지가 속삭이듯 명령을 발했다. 잠시 후, 성 아스테르 전역에 걸쳐 보고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른 함선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 보고였다. 사격 최적화 작업 역시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사격 갑판에 더 많은 명령이 내려갔고, 준사관 한 명이 양피지 서류를 들고 다가왔다.


“전 포대 준비 완료했습니다.”

“그럼 즉시 발포하도록.”


성 아스테르가 자신을 붙든 지옥선을 향해 일제히 주포를 뿜어내며 경련했다. 지옥선의 이빨이 함체를 짓씹어 장갑판과 무기를 뜯어낼 때마다 경보가 울렸다. 압력 경고가 십수 개의 갑판에서 일제히 터져나왔다. 분노 서린 포효가 온 함체를 휘감듯이 우렁차게 성 아스테르를 뒤흔들었다.


옥좌시여, 놈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피눌라가 소리쳤다. 애서지가 놈의 머리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볼터 세 정이 동시에 그녀의 뒤에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루터넌트 이베르손이 경고를 뱉었다.


승함 돌격이오!


공기가 희미하게 빛나며, 애서지의 영원한 악몽이 될 정경이 스며나왔다.


빛나는 공기 사이로, 근육질로 길게 뻗은 사지에 검은 뿔과 검은 혀를 내민 채 새카만 검을 든 괴수들이 발을 디뎠다. 스페이스 마린만큼이나 거대한 놈들이 지휘 갑판을 지키던 돈의 아들들을 공격하며 피비린내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스페이스 마린 한 명의 투구가 피의 원호를 그리며 함교에 나뒹굴었다.


망했군. 지옥선은 잊어버려. 다들 무기를 꺼내라.






멜타 폭탄이 잠겨 있는 함교 정문의 잠금장치를 날려버렸다. 테크마린 데스니우스는 열린 패널에서 작업을 진행하며 큰 목소리로 악성 스크랩코드와 타락한 머신 스피릿에 대한 보호 주문을 외웠다. 내부 무장들이 마운트에서 연기를 뿜으며 매달려 있었다.


“적이 후방에서 밀려오고 있습니다.”


아레이오스의 부하 한 명이 보고했다.


“데스니우스!”

“거의 완료됐습니다.”


테크마린의 갑옷에 장착된 추가 사지가 기계 안팎을 계속 오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함선이 더럽혀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다시 성화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족감을 담은 작은 소리가 들렸다.


“됐습니다. 옴니시아께서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시는군요. 문을 열 준비가 됐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 초병을 놈들이 확인했습니다. 필멸자들 뿐입니다. 헤러틱 아스타르테스는 없습니다.”


서전트 한 명이 보고를 보냈다.


“이카린(Icarin) 분대와 데이모스(Deimos) 분대가 저지하도록. 나머지는 대형을 갖춰라. 문 쪽으로 사선을 형성한다.”


어그레서들과 인터세서 지원 부대가 초병을 지원하기 위해 함미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남은 스페이스 마린들 중 20여 명은 문을 향해 무릎쏴 자세를 취하고, 나머지는 그 머리 위로 무기를 들어올려 겨누기 시작했다.


“준비는 끝난 겁니까?”


데스니우스의 서보 암은 지휘 갑판으로 이어지는 문을 향해 회전했고, 그의 팔은 문 개방을 위해 조작부에 얹혔다. 아레이오스의 지시를 기다리는 채였다.


“준비 완료, 개문하도록.”


데스니우스가 벽 안의 무언가를 비틀었다. 기어가 뒤흔들리며 문이 진동했다. 핵융합 천공기가 부스러뜨린 금속 재질이 팅팅거리며 깨져나갔다. 멜타 플라스크가 잠금 핀을 뽑아낸 곳이 체리빛 붉은색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문이 진동하며 열려 벽으로 수납되었다. 퀴퀴한 공기가 신음하듯 빠져나왔다. 세월의 흐름 속에 진행된 부패의 내음이 실려왔다.


“모두 투구를 봉해라.”


아레이오스의 지시와 함께 면갑의 입 부분에 장비된 그릴이 철컹이며 닫혔다.


어둠이 저편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투의 소음이 후방에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후위대 상태는?”


아레이오스가 후방 상태 감시를 맡긴 서전트에게 물었다.


“필멸자들의 압박이 증대하고 있지만 우리 전사들이 아직 전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럼 전진한다.”


다른 타격 팀과의 교신은 없었지만, 지휘 갑판을 점령하고 나면 피의 왕을 둘러싼 교전은 끝을 맺을 것이다. 적 함대에서 가장 잘 조직된 전단을 이끄는 핵심을 제압하게 되면, 다른 놈들은 충분히 분단시켜 제압할 수 있었다.


아레이오스는 각 분대별로 나눠 전진을 지시했다. 렌즈에서 뿜어지는 빛이 어둠이 펼쳐진 공간을 휘감았다. 평범한 제국식의 지휘 갑판이었다. 하지만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온 사방에 두껍게 먼지가 깔린 채였다.


“대체 놈들이 어디서 함을 지휘하는 거지?”


아레이오스가 데스니우스에게 물었다.


“여기여야 하는데.”


테크마린이 잠시 멈췄다.


“대체 승조원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다들 제 자리에 있습니다.”


전사 한 명이 시일이 흘러 노랗게 된 늑골 덩어리를 들어올렸다.


“모두 죽었습니다.”


전사들이 흩어져 지휘 갑판을 살폈다. 모두 마찬가지였다. 너덜너덜한 제복을 입은 뼈만 남은 시체들이 지휘 갑판 사방에 널려 있었다. 대부분은 자신의 자리에서 죽은 것 같았지만, 몇몇은 바닥에 엎드린 채 팔다리가 널브러져 있거나 혹은 제 얼굴을 가려 보호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해골이 사라진 채였다.


“모두 제국 군복이군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데스니우스가 물었다.


“지휘 연단을 확인하자.”


아레이오스의 시선이 관측창 쪽을 향했다. 폐쇄되지 않은 채, 함선들로 가득한 우주가 펼쳐진 채였다. 베타리스 전단이 적 함대 깊숙이 파고들어 온 사방으로 포화를 퍼붓고 있었다. 알푸스 전단이 발사한 노바 캐논 포탄이 연이어 폭발하여 적함들을 찢어내고 있었다. 수 마일에 육박하는 전함들이 측면을 내놓고 포격을 교환하며 온 우주를 화염으로 물들이는 채였다. 사방에서 보이드 쉴드가 작동하며 시야를 교란하고 일그러뜨렸다. 함대 사이의 간극으로 어뢰가 날았고, 테르티우스 함대의 일부 전력만이 투입되었음에도 수백여 기에 달하는 우주 전투기들이 공간을 뒤덮었다.


피의 왕이 기동을 감행하며 시야가 흔들렸다. 관측창 너머 펼쳐진 정경 전체가 옆으로 기울어지며 굴러나갔다. 피의 왕이 다른 측면을 내세우며 뒤흔들렸고, 아레이오스의 눈에 피의 왕이 뿜어내는 함포 세례가 들어왔다. 상부구조물 전방에 장착된 랜스 포탑이 목표물을 조준하고 발사되었다. 어떤 승조원의 지시도 없이 말이다. 그 기동에서 시야가 약간 트였고, 아레이오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송가의 계율과 그 휘하 함대였다. 의심의 여지조차 없었다. 그들이 적의 주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반레스쿠스는 이 함선을 파괴할 거다. 지로누스(Gyronus), 당장 복스 작동시켜. 브라더 테크마린 데스니우스, 명령 신호가 여기서 나오는 게 확실한가?”

“제 탐지에 따르면 확실합니다.”


데스니우스가 콘솔에 꽂아 넣은 휴대용 장비를 확인하며 말했다.


“흑마술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조타 설비와 무장, 그리고 보이드 쉴드 통제 장치를 파괴할 수 있게 조작해 두도록. 만약 여기서 명령이 내려오고 있다면, 멈출 수 있겠지.”


아레이오스가 계속 지시를 내렸다.


“에티엔(Ettien) 분대, 후방으로 물러나서 아군을 엄호하도록. 데스니우스, 송가의 계율에게 메시지를 전해 주게. 우리가 함교에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

“루터넌트!”


함장의 지휘 연단으로 올라선 부하 두 명이 소리쳤다. 이 함선의 지휘 연단은 다른 승조원의 좌석과 콘솔을 모두 살필 만큼 높은 곳에 있었다.


“이걸 보셔야겠습니다.”


아레이오스는 가지고 있는 수류탄으로 함교 폭파 작업을 수행하는 전사들의 곁을 지났다. 다른 이들은 아예 기계 케이스를 뜯어내고 배선들을 뜯어내는 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수행하고 있었다. 곳곳에 연기가 흐르며, 음침한 침묵은 전술적인 파괴 행동의 소음과 자리를 바꾸었다.


아레이오스가 계단을 디딘 순간, 뭔가 발 아래서 구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발 바닥에는 바스라진 해골이 가루가 되어 매달린 채였다. 계단 위까지 수십여에 이르는 해골이 널려 있었고, 지휘 연단에는 먼지 쌓인 해골 수백여 개가 쌓여 있었다.


“여깁니다, 브라더 루터넌트.”


인터세서는 지휘석이 자리했어야 할 곳을 가리켜 보였다.


마치 잔물결이 치는 듯한 황동 덩어리가 자리한 채였다. 아랫부분은 마치 지휘석 위에 그대로 황동이 쏟아부어지다 어떤 방식인지는 몰라도 순식간에 굳어버린 듯이, 금속제 커튼처럼 휘날리듯 보였다. 그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무언가 규칙적인 형태를 따르고 있었다. 마치 지휘석을 움켜쥐고 있는 거대한 손의 형상을 떠올리게 했다. 아니, 다른 형태를 떠올리게도 했다. 어쩌면 저 부분은 가슴이고, 확실히 어깨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가장 확실한 건, 입을 쩍 벌린 채 뿔이 돋아 있는 해골의 형상이었다. 송곳니가 튀어나온 턱이 벌어진 채, 관측창을 향해 있는 형상이었다.


아레이오스는 함장으로 보이는 이 형체를 계속 응시했다. 이런 형체를 본 기억은 그의 현생에서도, 긴 동면 중에서도 전혀 없었다. 이 금속 덩어리는 그보다 두 배는 크고, 몇 배는 무거운 악마를 추상적으로 빚어낸 조각처럼 보였다. 그리고 목까지 천으로 둘러진 느낌이랄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것이 조각일 리 없다는 거였다. 놈에게서 뿜어지는 사악한 느낌은 이데오스에서 목격한 눈 달린 괴물에게서 받은 느낌과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강력한 느낌이었다.


“이게 뭐건 당장 파괴하지.”


다음 순간, 연단이 뒤흔들리며 주갑판으로 해골들이 굴러떨어졌다.


“브라더 루터넌트!”


부하 한 명이 소리쳤다. 황동으로 둘러진 듯한 부분이 시커멓게 갈라지며 금을 만들었고, 접혀진 금속 위를 질주하며 서로 만나 쩍쩍 벌어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녹아내린 빛이 금 사이에서 번져나오며, 조각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메시니우스는 늘 무모했다. 그가 스카웃 마린이던 시절부터 듣던 소리였고, 그는 늘 그래왔다. 부하들을 기다렸어야 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저 사제들은 그에게 너무도 강력한 도전이었다. 어쩌면 저 맥동하는 기계 사이로 드리워진 혈신의 분노의 영향이라 스스로를 납득시켰으리라.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그가 인퀴지터를 지나쳐 윤기 가는 블랙스톤 바닥을 쾅쾅 울리며 질주하는 것은 오직 그의 자부심 때문임을.


황제 폐하를 위하여! 복수하는 아들을 위하여!


메시니우스가 포효하며 플라즈마 피스톨을 난사했다.


플라즈마 피스톨의 일격이 사제 한 놈의 복부를 강타했지만, 워프의 화염이 그 힘을 그대로 받아냈다. 놈의 흉갑판에 살짝 그을린 자국이 남는 정도였다. 메시니우스는 빠르게 놈들에게 달려가 눈구멍을 찾을 수 없는, 시커먼 금속 재질에다 뿔이 달리고 길쭉한 투구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놈들 모두 워드 베어러 출신이었다. 그들의 갑옷은 각각 개인의 취향에 맞춰져 있었지만, 울부짖는 악마의 입으로 장식된 채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자주색 테두리를 두른 짙은 붉은색의 갑옷 위에 뭔가 구불대는 작은 글씨로 뒤덮여 있었다. 펄럭이는 피지 위에는 같은 글자들이 수놓여 있었고, 몇몇에는 손이나 얼굴의 흔적이 그대로 붙은 채였다. 자신을 후원하는 신들의 더러운 축복에 물든 채, 자신을 집어삼키는 힘 속에서 환희하고 있었다. 메시니우스는 이제야 악마들이 왜 물러났는지 새삼 깨달았다. 코른의 피조물들이 마법사에 애정을 품을 리 없잖은가? 무슨 흉악한 동맹을 체결했기에 워드 베어러들이 살육의 성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냐는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의문은 사제의 지팡이 자루가 그의 투구 입 부분을 두들기며 흘러 지나갔다.


놈들은 여덟 명이었다. 그의 갑옷은 그가 마주한 모두를 높은 위협으로 평가했다. 그들 중 반은 기계들이 몰린 구역 가장자리에서 총격을 쏘아대는 스페이스 마린 인터세서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었고, 그 덕분에 메시니우스가 상대해야 할 것은 넷이었다. 놈들이 천천히 메시니우스 쪽으로 다가오며, 포스 웨펀이 불가사의한 힘으로 타올랐다.


나는 늘 무모했다. 내 형제들의 대열에 다시 돌아가게 되면 그것을 속죄해야겠지.


메시니우스는 사제의 일격을 옆걸음질로 피해내며 말을 이었다.


그때까지, 내 사죄는 이것으로 대신하겠다.


갑작스럽게 도약한 메시니우스는 그대로 사제 한 놈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파워 피스트의 역장이 폭발하며 반역자의 투구를 그대로 산산조각냈다. 그 뒤를 따른 주먹의 힘이 그대로 놈의 머리를 깨끗하게 날려버렸고, 놈의 갑옷에 달린 파워 팩의 반 가까이를 비틀어 버렸다. 사제가 그대로 쓰러졌다. 남은 셋이 대형을 이루고 메시니우스에게 맞섰다. 도전의 외침도, 모욕의 욕설도 없이 팔을 들어올린 그들은 자신이 모시는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비명을 내질렀다.


메시니우스는 그 셋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그가 내딛을 수 있는 걸음은 몇 피트가 한계였다. 놈들의 지팡이가 뿜어낸 검은 벼락이 메시니우스의 목과 허리, 그리고 왼팔을 휘감은 채 조여들었다. 메시니우스를 얽어매고 짓부수려 들 만큼 단단하게 느껴졌지만, 파워 피스트는 그 벼락을 마치 허공 가르듯 통과했다. 가운데 있던 사제가 한 발을 내딛으며 지팡이를 뒤로 휙 당겼고, 메시니우스가 서서히 땅바닥에서 들어 올려졌다.


어떤 가면도 쓰여 있지 않은 짐승과도 같은 얼굴, 워프에 거하는 카오스의 기운으로 일그러진 놈의 얼굴은 마치 어린아이의 악몽에나 나올 형상이었다. 눈구멍과 해골같은 입에서 불길이 일렁이며 놈은 웃었다.


네놈의 거짓 황제께 네 죽음을 지켜봐 달라고 하고 싶더냐?


놈에게는 혀가 없었다. 일렁이는 불꽃이 그의 크롬빛이 도는 이를 말할 때마다 핥아댔다.


메시니우스는 필사적으로 왼팔을 낮춰 목표물에 플라즈마 피스톨을 겨누려 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손가락을 움찔거릴 수 있는 정도였고, 그렇게 기계 쪽으로 발사된 플라즈마 피스톨은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블랙스톤이 다음 공격을 위해 힘을 충전하면서 공기가 뒤흔들리고, 사제들의 윤곽도 뒤흔들렸다.


네 잘난 황제는 지금 어디 있지?


검은 벼락이 조여들며 세라마이트가 삐걱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분은 모든 곳에 계시다, 콜키스의 타락한 아들이여.


로스토프였다.


아무것도 없던 마법사의 뒤에서, 인퀴지터가 불쑥 나타났다. 생명을 얻어 포효하기 시작한 파워 소드가 반역자의 백팩 쪽 접합부에 꽂히며 놈의 허리를 뚫고 들어갔다. 파워 소드가 점점 위로 뚫고 올라가 흉갑 너머에 구멍을 뚫고 튀어나왔다. 파워 소드의 역장에 휘말린 물질들이 산산이 부서지고, 피가 폭발적으로 끓어올랐다. 마법사는 예상치 못한 적에 맞서려 했지만, 움직임을 마치기도 전에 생명이 다했다. 놈의 무거운 육신이 그대로 쓰러지며 로스토프의 손아귀에서 검을 앗아갔다.


사제 하나가 로스토프를 향해 비틀린 에너지 덩어리를 내던졌다. 로스토프는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폭발을 막기에는 충분치 않아 그대로 뒤로 내던져졌다. 그 덕분에 메시니우스의가 움직일 수 있었고, 메시니우스는 그대로 플라즈마 피스톨을 날려 한 놈의 주 심장을 불태우는 구멍을 뚫어버렸다. 마법사가 비틀거리며 사이킥 빛이 흐릿해졌다. 놈은 부무장을 더듬거리려 들었지만, 메시니우스는 검은 기운이 흐릿해진 틈을 타 몸을 빼내고 반역자의 갑옷까지도 말 그대로 부숴버리는 일격을 날렸다. 생명을 잃은 반역자의 육신이 내던져졌다.


이제 단 한 놈이 남았을 뿐이었다. 메시니우스와 놈은 서로를 응시했다. 놈의 지팡이 끄트머리에서 주황색 기운이 일렁거렸다. 메시니우스의 총은 아직 코일 충전이 완료되지 않았다. 메시니우스는 자신이 사이커가 힘을 내뿜기 전 피하기엔 너무 멀리 왔음을 직감했다.


다음 순간, 라스건 사격과 플라즈마 줄기, 그리고 펄스 탄환이 동시에 사이커를 두들겼다. 각각 주심장과 2번째 심장, 그리고 머리를 노린 일격이었다. 라스건 사격은 뚫고 들어가지 못했고, 플라즈마 줄기 역시 갑옷을 뚫는 데 그쳤지만, 머리를 노린 펄스 탄환은 완벽하게 놈의 왼눈을 뚫고 들어갔다. 놈은 그대로 쓰러졌다.


로스토프의 제노로군.


메시니우스가 중얼거렸다. 인퀴지터의 수행원들은 악마와 초인이 누비는 전장에서 너무도 약한 존재들이었지만, 웅크린 채 빠르게 전진하고 있었다. 그런 용맹은 드문 것이었고, 그들은 용맹만큼이나 치명적인 역할을 해냈다.


나한테 빚 한 번 더 지셨어, 영웅 양반.

그건 타우제 총이잖나.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메시니우스가 답했다.


그래? 그래서 뭐? 타우 총이 최고라고. 당신 종족이 매달리고 있는 퇴보한 기술보다 훨씬 낫지.


어깨를 으쓱이며 킬셰는 자기 우두머리에게 뒤뚱거리듯 걸어갔다.


로스토프는 자기 발로 일어섰다. 갑옷에 흉측한 구멍이 뚫렸지만, 다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안토니아토가 메시니우스에게 입을 열었다.


“너무 신경쓰지 마십쇼, 각하. 저한테도 늘 저렇게 툴툴대며 자랑합니다. 제가 본 저 녀석의 사격 중에 최고의 사격이었습니다.”


블랙스톤 기계가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모두가 휘청거렸다. 또 한번 에너지가 거칠게 하늘을 뚫고 솟구쳤다. 이번에는 스페이스 마린의 타격 순양함 한가운데를 강타했고, 그 일격에 맞은 순양함의 동력이 한순간에 끊겨 버렸다. 순양함이 소행성에서 표류하기 시작하자, 수백만을 헤아리는 악마들이 함체 안의 고기를 찾아 닥쳐들어 장갑을 찢어내려 들었다.


이제 승리가 목전에 있다.


로스토프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의 이는 자신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전혀 부상이 없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킬셰, 그 유물을 주게.



* 윤문하면서 다듬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오타가 계속 보이네.


* 킬셰는 역시 개그담당인 거 같음.


* 미안. 내가 36장 올린다는게 37장 먼저 올려버렸다. 그래서 이거 다음에 36장 올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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