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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이 쓴 이창호론.

미주알 2005.08.16 21:19:34
조회 1986 추천 0 댓글 4


<번쩍임이 없는 天才> 昌鎬(창호)를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여름이었다. 田永善(전영선) 7단이 우량아 소년을 데리고 왔다. 全州(전주)에 사는 아이인데, 棋才(기재)가 있는 것 같으니 테스트를 해보고 제자로 받아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昌鎬는 1975년생이니, 그때 아홉 살, 초등학교 3학년인가 그랬다. 나는 서른한 살이었다. 昌鎬는 어렸고, 난 젊었다. 만 18년 전, 그러고 보니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昌鎬를 만나기 전부터, 전주에 바둑 神童(신동)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나도 몇 번 듣고 있었다. 듣고는 있었지만, 관심이 크게 갔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동이란 말 자체가 그렇게 믿을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재이고 신동이었다가 秀才(수재)가 되고, 수재에서 凡才(범재)가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 아닌가. 昌鎬를 보는 순간 나는 내 생각이 역시 크게 빗나가지는 않았음을 느꼈다. 昌鎬에게 천재의 이미지는 별로 없었다. 보통 상식으로는, 천재라면 아무튼 뭔가 번쩍이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昌鎬는 번쩍이지 않았다. 오히려 보통의 소년보다도 덜 번쩍였다. 다만, 어린아이답지 않게 아주 과묵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면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우리나라 어린이들도 말을 또랑또랑 잘하지만,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어른 앞에서는 대개 말을 잘 못 했다. 수줍음을 타는데다가 말하는 훈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昌鎬는 그 이상이었는데, 한 가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은, 昌鎬의 경우 수줍음을 탄다거나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그런다거나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어린아이의 수줍음만은 아니었고, 어린아이의 어눌함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과묵이었다. 어떤 수련 같은 것을 통해 체득한 과묵이었다. 말하고 싶은데 참는 것, 아는 데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거기에는 의지의 작용이 있다. 그런 의지가 발동되려면 깊은 생각과 오랜 훈련이 필요한 것일 텐데 말이다. 바둑을 두어 보았다. 바둑도 그랬다. 번쩍이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자기 나름으로 바둑을 꾸려 가려는 모습이 보였다. 독창성이라고 할까, 「꿍심」이라고 할까, 그런 게 엿보였다. 昌鎬는 內弟子(내제자)가 되었다. 선생의 집에서 동거하면서 배우는 제자를 내제자라고 한다. 일본 바둑의 徒弟(도제)문화 같은 것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大식구였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셨고, 여동생도 출가 전이었다. 시부모 모시랴, 시누이 챙기랴 정신이 없었을 텐데, 거기다 昌鎬까지 들어오게 되어 나는 은근히 집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한 마디 불평도 없이, 기꺼이 내 의견에 따라 주었다. 한국 기원 주변에서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왔다. 『조훈현이 이제 겨우 서른둘인데, 벌써 무슨 제자냐』 하는 것에서부터, 창호네가 전주의 알부자라더라, 조훈현이 아마 돈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매달 상당액의 수업료를 받고, 입단을 하면 별도로 거액의 사례금을 받기로 했다더라 등등. 일일이 대꾸할 수가 없을 정도였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昌鎬가 들어오면서 연희동으로 이사를 했다. 강서구청 맞은편 국민주택 규모의 작은 단층집에서는 昌鎬에게 내 줄 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희동집은 괜찮은 집이었다. 그러자 거액을 받은 것이 사실로 굳어지는 것 같았다. 은행 융자를 받고, 빚을 얻은 속사정을 사람들이 알 리 없었다. 나는 아홉 살에 프로 입단대회를 통과하고 이듬해 열 살 때 日本 유학을 떠났다.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 선생의 內제자가 되었다. 선생 댁에서 10년을 머물면서 가르침을 받았으나 나는 수업료 한 푼, 월사금 한 번 낸 적이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內제자란 원래 그런 것이었다. 나는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거저 돌려 준다는 생각뿐이었다. 은혜를 거저 받았으니, 거저 베풂으로써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기본적인 양식이자, 도리요, 의무였다. <과묵이 天性> 昌鎬는 노력파였다. 번쩍이는 모습 대신 묵묵히 노력하는 모습을 昌鎬는 보여 주었다. 나도 日本에 있을 때는 그래도 공부를 했다. 놀기도 열심히 놀았지만, 공부도 남들 만큼은 하느라고 했다. 물론 남들 이상 열심히 해 본 기억은 없는데, 昌鎬는 분명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였다. 까불지도 않았다. 집을 떠나 있으니 가끔은 아빠 엄마가 보고 싶다는 소리를 할 법한데, 그런 말도 없었다. 밥 먹을 때가 아니면 방에서 나오는 일도 별로 없었다. 그저 바둑판 앞에서 바둑돌을 놓아 보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싫고 좋은 것을 표출한 적도 없었다. 처음에는 선생님 집이라 어려워서 그런가 보다 했으나 그것도 아니었다. 과묵은 천성인 것 같았다. 나도 성격은 밝은 편이고 아내도 그렇다. 昌鎬는 어둡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아무튼 가볍지는 않은 분위기였다. 우리 집 분위기가 昌鎬에게는 다소 이질적인 분위기였을 텐데, 昌鎬는 불편해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昌鎬는 도무지 학교 가고, 갔다 와서 바둑 놓아보고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세상 일에는 관심도 흥미도 없는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 불이 가장 늦게 꺼지는 방은 昌鎬의 방이었다.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고, 새벽을 밝히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아내는 가끔 『창호가 공부를 열심히 하네』 했다. 잠결에도 「딱, 딱!」 하고 바둑돌 놓는 소리가 들려온 적도 많았다. 어린 시절 듣던 「夜警(야경) 딱딱이」 소리 같았다. 정겨운 소리였다. 그러나 가끔은 막 잠이 들려고 하는 내 의식에 돌연 전구가 밝혀진 적도 있었다. 그러면 몇 분 동안은 뒤척이게 되었다. 아내는 昌鎬를 늘 관심 있게 지켜보며 돌보아 주었다. 그러나 아내는 昌鎬에게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무슨 반찬을 좋아하고 무슨 반찬을 싫어하는지, 저녁에 밥을 먹고 들어오는지 그냥 들어오는지, 그런 것은 좀 말해 주면 좋으련만 昌鎬는 그러질 않았다. 昌鎬를 위해 솜씨를 발휘해 別食(별식)을 준비한 날도 있었다. 그런 날 들어오는 昌鎬에게 『밥은?』 하고 물으면, 『먹고 왔는데요』 하고 짧게 답 했다. 그럴 때면 아내의 얼굴에도 슬쩍 짜증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昌鎬도 미안하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안함도 표현되지는 않았다. 昌鎬의 얼굴만 보아서는 미안해 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었고, 천상 말을 해야 할 것인데 과묵했으므로 알 도리가 없었다. 昌鎬는 과묵한데다가 표정도 없었다. 하긴 무표정과 과묵은 한 세트로 묶이는 것이리라. 공부는, 昌鎬가 낮에 연구생실에서 둔 바둑을 복기해 보이면, 한두 가지 이상한 수를 지적해 주는 식이었다. 昌鎬는 가끔 낮에 자신이 둔 바둑의 수순을 헷갈려하기도 했다. 나로선 이해가 좀 안 되는 일이었다. 日本에서 공부하던 시절, 프로기사의 공식 對局(대국) 기록을 맡는 것은 연구생들의 일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세 판을 동시에 기록하기도 했다. <師弟 대결> 昌鎬는 우리 집에 들어온 지 2년 만인 1986년에 입단을 했다. 예상보다 약간 빨랐다. 재주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노력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8년에는 속기 타이틀을 따냈다. 예상보다 조금 더 빨랐다. 속기 타이틀이란 것도 조금은 의외였다. 昌鎬가 빠른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1989년에는 나의 타이틀을 하나 빼앗아갔다. 다시 예상보다 더 빨랐다. 昌鎬는 나의 예상을, 그 시기를 점점 단축하고 있었다. 모두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 師弟 대결이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이제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타이틀 매치의 상대가 되었으므로 昌鎬도 우리 집에서 나올 때가 되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아내도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昌鎬는 좀더 머물렀다. 昌鎬가 우리 집에서 독립한 것은 1991년의 일이었다. 昌鎬는 충암중학교 3학년이었다. 나는 서른여덟 살이었다. 헤어지면서, 나는 평창동으로 이사를 했고, 昌鎬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앞 아파트로 갔다. 남북으로 갈라진 셈이었다. 그후, 昌鎬와 나는 더욱 자주 만났고, 나는 계속 졌다. 유리한 바둑도 지고, 불리한 바둑도 졌다. 昌鎬는 나의 타이틀 대부분을 가져갔다. 사람들은 내가 제자를 너무 빨리 받아들였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긴 서른한 살이면 한창 승부할 나이지, 제자를 가르칠 나이는 아니었으니까. <內的 天才> 昌鎬는 특히 끝내기가 강했다. 昌鎬 덕분에 한국 바둑이 끝내기가 강해졌다는 얘기도 있지만, 반은 맞고 반은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끝내기의 중요성, 계산의 중요성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 정도일 것이다. 昌鎬의 장점은, 끝내기가 강한 것이 아니라-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그런 끝내기를 할 수 있는 부동심, 혹은 평정심이었다. 프로라면 끝내기의 기술이나 계산에서는 대개 비슷하다고 보아야 한다. 기술과 계산력은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부동심, 혹은 평정심은 아무나 가지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으니, 나이 어린 昌鎬의 불가사의는 거기에 있었다. 아직도 나는, 昌鎬는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天才의 유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생각이 조금 바뀐 것은 있다. 부동심과 평정심이 뛰어난 것도 천재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동의한다는 것이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昌鎬는 겉으로 드러나는 천재가 아니라 안으로 감추어진 천재다. 굳이 말을 만들자면 「內的(내적) 천재」다. 內的 천재가 外的 천재보다 더 무서운 천재인지도 모른다. 昌鎬도 요즘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전에는 주로 기다렸고, 지켰고, 모험을 시도하는 일이 드물었으며, 확실히 이긴다는 판단이 서면, 안전하게 이기는 그 선까지는 죽죽 물러나 주었다. 수가 나는 것처럼 보일 때, 수를 내면 열 집은 이길 것 같은데 약간의 위험 요소가 있는 것 같고, 그냥 수를 내지 않고 안전하게 마무리하면 한 집 반이나 반 집은 확실히 이긴다는 판단이 서는 그런 경우라면, 昌鎬는 슬며시 안전하게 반 집을 이기는 길로 사라져 버리곤 했다. 진 사람은 반 집에 땅을 치지만, 그런 상대를 보고 창호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물러서서 그런 건데, 억울해 하실 것이 없는데?』 하면서 말이다. 나 같은 보통 사람과 昌鎬가 다른 점이 그것이었다. 나는 수가 나는 것처럼 보이면 결행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인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개의 프로기사들이 그럴 것이다. 수가 보이는 데도 외면하는 것은, 수를 만들고 수를 내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기사로서는 정말 힘든 일이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결국은 넘어가는 것이고, 昌鎬는 유혹을 떨치고 오던 길로 계속 가는 것이다. 昌鎬의 감각은, 아예 유혹이라는 것에는 철저히 닫혀 있는 것 같다. 그런 昌鎬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과격하기도 하고 격렬하기도 하며, 먼저 싸움을 걸기도 한다. 최근 지는 것이 약간 늘어난 것도 그러한 새로운 시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昌鎬는 아직 완성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원해서든, 주변 상황에 의해서든 앞으로도 꾸준히 변모를 거듭할 것이다. 昌鎬의 나이로 보아 그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바둑 외적으로도, 異性(이성)과의 결혼과 家庭(가정)이라는 것도 있다. 청춘의 요동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10년 정도는 頂上을 지켜낼 것 > 나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日本에 있었고, 돌아와서는 곧장 생활인이 되어야 했기에, 청춘의 요동이고 뭐고를 경험할 계제가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昌鎬의 경우, 그 과정에서 어떤 갈등을 겪고, 그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문제일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昌鎬라면, 그 정도의 부동심과 평정심이라면 나와는 다른 이유에서 청춘의 요동 같은 것은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변이 없는 한 昌鎬는 앞으로도 10년 정도는 頂上을 지켜낼 것이다. 李世乭(이세돌) 3단이 「포스트 李昌鎬」, 혹은 「李昌鎬의 라이벌」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재목으로 지목받고 있으나 속단하기는 어렵다. 핵심은 李昌鎬를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다 한 판 이기는 것을 갖고 「포스트 李昌鎬」, 「李昌鎬의 라이벌」 운운하는 것은 短見(단견)일 수가 있다. 타이틀이라면, 3번기에서 한 판을 이기고, 5번기에서 두 판을 이기고 하는 것도 결정적 단서는 되지 못한다. 공식 對局이라면 자주 이겨야 하고, 타이틀이라면 빼앗아야 한다. 그게 고비다. 그 고비를 넘지 못하는 한 「포스트 李昌鎬」, 「李昌鎬의 라이벌」 운운은 흘러가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승부, 혹은 승부세계의 요체다. 李世乭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로선 李世乭이 昌鎬에게 가장 접근한 적수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기풍과 스타일이 정반대라는 점에서 李世乭의 가능성이 가장 큰 것도 사실이다. 昌鎬와 비슷한 기풍, 유사한 스타일로는 昌鎬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다. 昌鎬를 이기려면 昌鎬에게 없는 그 무엇을 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相剋(상극)의 원리요, 승부나 技藝(기예)의 분야에서 통용되는 격세유전의 법칙을 대입해도 그렇다. 그런데 昌鎬에게 없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부처처럼 과묵했던 어린아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 관심의 중앙에서 변두리로 물러나던 어린아이, 세상 풍물에 도통 호기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어린아이, 남들은 평생 걸려서도 얻기 힘든 승리의 월계관을 수없이 차지하면서도 기쁜 내색조차 보이지 않았던 어린아이, 사물의 핵심을 직관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그 눈빛을 감추기 위해 눈을 내리깔던 어린아이, 불확실한 大路(대로)보다 확실한 오솔길로 숨어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어이없는 웃음을 웃게 만들던 어린아이,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아내면서도 어디까지나 우연이었다는 듯, 그 신비의 능력을 갈무리하던 어린아이, 그 아이가 지금 스물일곱 살의 청년이 되어 있다. 외적 천재를 능가하는 내적 천재. 외적 천재는 번쩍임으로 사람들을 매료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빛에 스스로 취해 산화하기도 하는데, 내적 천재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사람들을 매료시키지도 않고, 대신 산화하는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과연 어떨지. 외적 천재든,내적 천재든, 천재가 행복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고, 고통은 있을 것이고, 있다면 그 부피도 우리 같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클 것 같기도 한데, 그런 점은 또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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