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시계 브랜드 로만손은 그 이름을 산하 쥬얼리 브랜드였던 '제이에스티나'로 변경합니다.

이는 더 이상 로만손이 진지한 시계 회사로서가 아닌 패션 브랜드로서의 전환을 의미하며, 한국 시계산업을 상징하던 빅3(삼성시계, 오리엔트시계, 로만손)시계사(史)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로만손 자체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골수 시계회사로서의 종말을 말하는 겁니다.)

(관련기사: 로만손 '오늘부턴 '제이에스티나' 랍니다' (sedaily.com))

사실 시계 회사로서의 로만손의 몰락은 예견 된 것이었습니다. 80년대 까지만 해도 스위스, 일본과 더불어 "세계 3대 시계 강국"이었던 한국 시계 산업은 스위스와 일본에게는 기술력으로, 중국에는 가격 경쟁력으로 이미 밀린지 오래였고 이는 국산 시계의 마지막 보루였던 로만손도 피할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오히려 부업으로 시작했던 주얼리 사업의 매출이 메인 이었던 시계 사업의 매출을 훨씬 상회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였죠.

(관련기사: 10년새 반의 반 토막…명맥 끊기는 한국 시계산업 | 한경닷컴 (hankyung.com)

이렇게 골수 시계회사로서의 로만손의 시대는 끝나버렸지만 한때는 로만손도 시계에 정말 열중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바로 2000년대 중반~ 2010년대 초반 까지가 그 시기인데요. 이 기간동안 로만손은 정말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정말 다양한 디자인의 시계를 만들었었습니다.

로만손 프리미어, 아델, 오푸스 등등 정말 다양한 라인업을 구비했었고, 그 중 가장 유명한 모델은 바로 이 로만손 프리미어 라인이었습니다. 로만손의 최상위 라인이며, 여러 공격적인 광고를 통해 가장 유명한 모델이 바로 이 프리미어 라인업의 시계들이었죠.

더불어 현재 로만손을 상징하는 모델인 '로레게' 이전 시계 매니아들을 열광케 했던 가성비 모델도 있었습니다. 바로 로만뚜기 입니다.

2010~2012년도 사이였었나요? IWC 포루투기즈 디자인이 꽤 유행을 타면서 파니뚜기, 로만뚜기, 포체뚜기와 같은 가성비 오마쥬 제품들이 시계 커뮤니티를 휩쓴 적이 있었습니다. 로만뚜기는 그 중 가장 만듦새가 좋고 믿을만한 시계였죠.

저 또한 이무렵 제작된 로만손의 시계를 몇 가지 소장하고 있습니다. 로만손 아델 라인의 빅데이트 크로노그래프 시계인데요. (모델명: TL/TM6109 -L은 가죽 모델에, M은 메탈 모델에 적용되는 코드입니다-)제법 괜찮은 쿼츠 크로노그래프인 Ronda 5050.b가 탑재되어있는 모델이고 독창적이고 뭔가 빈티지한 디자인이라 제가 가진 로만손 시계 중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녀석입니다.

빅데이트가 꽤 인상적이지 않나요? 운좋게 검판과, 흰판 두 가지 모델을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웃긴게 검판 모델은 숫자 인덱스에 야광이 발려있고 흰판은 숫자 인덱스에 야광이 발려있지 않습니다. 뭔가 초기형, 후기형 개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간간히 로만손엔 이런식으로 모델명은 동일한데 세부적인 디테일 다른 모델이 종종 발견됩니다.

(야광샷은 제 카메라론 담기 어려워 타 포럼에서 사진을 퍼왔습니다)

이처럼 재미난 시계를 여럿 만들고 시계에 진심이었던 로만손.

하지만 당시 시계들을 살펴보면 아쉬운 점들도 몇가지 보입니다. 제가 소개한 로만손의 시계는 당시 리테일가가 약 20만원 정도에 형성되어있는 시계였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 가격대의 시계에 사파이어 글라스가 아닌 semi sapphire 글라스가 장착되어있습니다. 일반 미네랄 글라스에 불소 코팅을 입혀 기스가 덜 나게 만들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미네랄 글라스죠. 더불어 더 위에 언급했던 로만손 프리미어 시계들은 거의 7~80만원 정도의 리테일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계에 미요타 8시리즈 무브를 넣는 이해가 안가는 짓을 로만손은 했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입문용 세이코의 모델들만 생각해봐도(일꾼, SARB, 스누피 등등) 가격에서나 성능에서나 로만손은 이길 수가 없었겠죠. 로만손을 비롯한 국산시계의 몰락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이제 더 이상 진지하게 시계다운 시계를 제작하는 시계 기업은 한국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몇몇 소규모 공방급 마이크로 브랜드들이 고분분투하고는 있지만 메이져 시계 브랜드나 가성비로 공략하는 중국계 마이크로 브랜드와 비교하였을 때 아직까진 전 Korea made라는 점 외에는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겠구요.

갈수록 좁아지고 치열해지는 시계시장...... 이런 시계시장에서 한국 시계산업의 등불이 다시 켜질날이 올 날이 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