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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알바니아-오스트리아 양자관계: 1900년대 초중반을 중심으로

제국의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23 01:26:35
조회 383 추천 6 댓글 6
														


https://en.wikipedia.org/wiki/Albania_during_World_War_I#Bulgarian_occupation_of_Albania_(1916%E2%80%931917)


https://de.wikipedia.org/wiki/Albanisch-%C3%B6sterreichische_Beziehungen#%C3%96sterreichische_Verwaltung_Albaniens_im_Ersten_Weltkrieg_(1916%E2%80%931918)


https://en.wikipedia.org/wiki/Arms_of_Skanderbeg


https://www.bundesheer.at/truppendienst/ausgaben/artikel.php?id=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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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분할 (1914~1916)



...알바니아의 상당 부분은 이중제국에 의해 점령되었다. 알바니아는 친근한 피점령국(Besetztes Freundesland)로 간주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인들은 지방 행정부를 떠나 알바니아 헌병대를 결성하고 학교를 열었다. 이탈리아의 영향을 경감시키기 위해 알바니아 언어와 철자법의 개발이 촉진되었다. 그들은 또한 도로와 다른 기반시설을 건설했다. 다만, 인기 없었던 것이 있다면 대부분의 민간인들이 소지하고 있는 무기를 몰수하려는 점령자들의 시도를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알바니아인이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의 편에 서서, 이탈리아 군대가 두러스에 상륙했을 때를 포함하여 협상국에 대항하여 싸웠다. 슈코더르에 군정청이 설치되었다...



사령관:

헤르만 쾨베스 폰 쾨베스하저Hermann Kövess von Kövessháza (1916년 2월 – 1916년 3월), 제3군 사령관

이그나츠 트롤만Ignaz Trollmann (1916년 3월 – 1917년 10월), 제19군단 사령관

루트비히 쾨넨-호라크Ludwig Können-Horák (1917년 10월 – 1918년 7월), 제19군단 사령관

카를 폰 플란처-발틴Karl von Pflanzer-Baltin (1918년 7월 – 1918년 10월), 알바니아 군단 사령관

아우구스트 리터 폰 크랄August Ritter von Kral, 민정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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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주둔군의 사령관들; 좌측부터 재임 순서대로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종교 보호국 (1912년까지)

장기전Langer Türkenkrieg이 끝난 후, 합스부르크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가톨릭 신자들이 그들의 종교의식을 행할 것을 보장한 지트바토록 조약Frieden von Zsitvatorok(1606)에서 터키인들의 동의를 얻었다. 이는 1615년의 또 다른 평화 조약에서도 재확인되었다. 더하여, 카를로비츠 조약Friede von Karlowitz(1699년)과 파사로비츠 조약Friede von Passarowitz(1718년)으로 오스트리아인들은 알바니아 북부 산악지대의 가톨릭 신자에 대한 보호조약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령 보호국의 형성은 알바니아인들의 민족의식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교회 건물과 보수 공사뿐만 아니라 성직자들도 문화 보호의 일환으로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다.


최초의 오스트리아 영사관은 1751년 두러스, 1801년에는 슈코더르에 설립되었다. 1860년 예수회가 슈코더르에 신학교를 설립하였고, 1870년에는 이중제국의 도움으로 프란치스코 교단의 신학문법 학교가 설립되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알바니아 북부에서 가톨릭 신자들의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세기 후반부터 2차 세계 대전까지 오스트리아는 바르, 두러스 및 슈코더르에서 "레반테 우체국Österreichische Post in der Levante"을 운영하여 유럽으로의 안정적인 우편물 배송을 보장했다.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는 오스만 제국에서도 우편 업무를 운영할 권리가 있었다. 1914년 9월 30일,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모든 외국인들에게 레반트 우체국은 폐쇄되었다.)


알바니아의 독립 (1912-1916)

제1차 발칸 전쟁 중이던 1912년 11월 28일 이스마일 체말리Ismail Qemal bej Vlora가 블로러에서 오스만 제국에서 벗어나 알바니아의 독립을 선언하고 알바니아의 첫 번째 수도로 삼았다. 알바니아 공국은 처음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공동외무장관 레오폴트 베르히톨트Leopold Graf Berchtold의 지지를 누렸다. 독립국가 알바니아는 이 지역에서 세르비아와 이탈리아의 팽창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서 빈 정부의 이익에 부합했던 것이다. 이중제국은 1912년 12월 런던 회의London Conference of 1912–1913에서 유럽 열강들의 알바니아 독립를 승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때 알바니아 지역은 그리스와 몬테네그로, 세르비아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있었다. 1913년 5월, 발칸 국가들은 알바니아 독립에 대한 런던 조약을 인정했다. 알바니아 국경의 결정은 국제 위원회에 맡겨졌다. 이중제국과 러시아는 사실상 '모든 부락'을 놓고 말다툼을 벌였다.


빈은 1914년 알바니아의 공작으로 6개월 동안 두러스를 통치했던 독일인 빌헬름 추 비트Wilhelm Friedrich Heinrich Prinz zu Wied를 지지했다. 알바니아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선언했다. 내전과 유사한 상황이 공국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만연하기는 했지만, 이같은 조치 덕분에 이탈리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와 같이 교전 상태에 있던 왕국들이 이 공국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는 것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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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인 소년이 꽃다발을 선물하고 있다. (1916년 3월 슈코드라)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의 알바니아 행정부 (1916~1918)

알바니아의 북부와 중부는 1916년부터 알바니아 주민들에 의해 '해방자'로 여겨졌던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중제국 또한 주민들의 눈에 보기에 적대자로 비치지 않고, 때로는 알바니아 국익의 수호자로서 보이기를 원했다. 슈코더르에서는 루이지 구라쿠치Luigj Gurakuqi가 교무부장으로, 페지 알리조티Fejzi Alizoti를 재무이사로 하는 이사회가 설립되었으며 지방행정이 허용되었다. 민정장관으로 아우구스트 크랄 오스트리아 총영사가 있었다. 이중제국 군대는 알바니아 지원자들을 모집하여 훈련시키고, 그들을 자신과 같은 군인처럼 대하였다. 알바니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 최고 사령관인 이그나츠 트롤만는 알바니아인들의 국가적 자부심에 호소했다.


"위대한 프란츠 요제프 황제국왕폐하의 군대와 함께 나는 당신들의 나라를 적들로부터 해방시켰고, 지금은 우리의 행정부에서 다스리도록 하였지만, 우리는 장차 모든 외적과 내적으로부터 이 국가를 지키고자 합니다. [...] 전장에 나가 잘 훈련된 우리의 병사들은 이제 당신들을 훈련시키고 교련하고자 하니, 익히 알려진 당신의 용맹과 더불어 현대의 전사와도 맞설 수 있는 기량을 갖추도록 하십시오. 용맹한 슈치파레인이라면 알바니아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잘 훈련된 병사들과 함께 알바니아 최고의 민중 영웅 스컨데르베우가 알바니아의 모든 적들에게 공포를 안겨주었던 시절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와 그의 용감한 전사들이 당신의 예가 될 것입니다! [...]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우리의 경험을 가져다 주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 1916년 3월, 슈코더르 황왕실kaiserliche und königliche 군단 사령관 트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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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치파레인들이여!



오늘날의 알바니아 사학자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행정부의 통치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 기간 동안 알바니아어는 법에 의해 유일한 공식어가 되었다. 공공 행정직장의 기본 요구 사항은 알바니아어를 사용하라는 명령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외무부는 모든 알바니아인 정착지의 통일을 촉구했다. 그들은 알바니아어 표준화를 위한 위원회를 설립했다. 의무교육제도 도입과 병행하여 수백 개의 학교가 설립되었다. 주민들과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오스트리아-헝가리 병사들을 대상으로 알바니아어 강좌가 열렸다. 알바니아인에 대한 민족 인식을 증진시키기 위해 알바니아 국기와 국경일의 제정은 오스트리아 측에서 분명히 희망하던 것이었다. 수천만 크로네가 경전철과 도로 건설에 투입되었다. 최대 10만 명의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인들이 건설 작업에 참여했다. 오스트리아인들이 철수했을 때에야, 알바니아의 주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Administrimi i Shqiperise nga Austro-Hungaria 1916-1918, Elena Kocaqi;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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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간기 (1918–1938)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는 알바니아를 보호국으로 삼을 만한 세력이 되지 못하고 퇴장하였다. 젊은 신생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1922년 2월 22일 알바니아와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전간기에는 양국의 내부 불안과 경제 문제가 두드러졌다.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독일 제3제국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24년부터는 다른 발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알바니아에서는 권위주의적 통치가 성행했고 젊은 의회 민주주의를 대체했다. 제1, 2차 티라너 조약Paktet e Tiranës의 체결과 함께 알바니아는 사실상 1927년 말부터 이탈리아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였다. 1939년 4월, 알바니아는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총지배하에 들어갔다. 피점령국 알바니아 왕국은 1939년부터 1943년까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Vittorio Emanuele III di Savoia가 이끄는 이탈리아 왕국의 보호국이자 속령이었다. 무솔리니의 항복 이후 알바니아는 나치 독일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알바니아보다는 의회 민주주의의 지푸락을 10년은 더 오래 쥐고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는 1934년 내전으로 절정에 달한 정치적 양극화에 홍역을 앓고 있었다. 그 결과, 오스트로파시즘Austrofaschismus은 이탈리아와 유사한 독재정권을 확립했다. 독일과의 병합을 통해 1938년 오스트리아는 지도에서 사라졌다.


1922년 총리, 1925년 대통령, 1928년 국왕을 지낸 아흐메트 조구 1세Mbreti Zogu I는 오스트리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의 대령이었지만, 빈으로 전근되었고, 그곳에서 당국에 의해 더 잘 통제될 수 있었다. 그는 대전 기간 동안 빈에서 반복적으로 머물면서 서유럽 생활 양식을 누렸으며, 때론 암살 시도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고, 오스트리아인 프란치스카 얀코와 은밀한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 시대에 오스트리아인들은 알바니아 군대를 구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 총참모장을 지냈고 1917년 알바니아 국경전투대대대장을 지낸 귀족 구스타프 폰 미르다츠Gustav von Myrdacz는 1921년 12월부터 왕립 알바니아 군대의 군사편성 훈련의 임무를 담당하는 선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1920년 대령 계급으로 은퇴한 후, 그는 알바니아의 도로 건설에 관여했던 합스부르크 군대 출신의 무리들을 지휘했다. 그는 알바니아 군에서 장군으로 승진하여 1939년까지 참모총장을 지냈다. 헤르만 키르치네르Hermann Kirchner는 1928년에 알바니아 군대에 입대했다. 제1총참모장교의 직무에는 국방의 대비가 포함되고 있었다. 조구 왕은 그의 공로와 기술을 인정해 1929년, 그에게 스컨데르베우 훈3등 훈장을 수여했다. 키르치네르는 1931년 알바니아 군의 구조조정을 거쳐 소령으로 진급해 육군 인사청장으로 임명됐다. 오스트리아의 조국전선Vaterländische Front 총사무국은 1935년 5월, 알바니아에 있는 조국전선 협회 회장으로 키르치너를 임명했다. 알바니아 내무부에게 제출하는 협회 승인 신청서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탈리아인들이 그들의 협회 '파시오'를 설립했고 독일인들이 알바니아에서 '국가사회주의자들'을 설립했듯이, 나는 귀하의 부처가 티라너에 어느 오스트리아인들의 협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개의치 않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스컨데르베우의 투구

페르디난트 2세는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알바니아 국민 영웅 스컨데르베우의 투구와 검을 구입했다. 이 병장기들은 그 이후로 줄곧 오스트리아에 있어왔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 유물들은 1806년에 인스브루크에서 빈으로 안전하게 이송됐다. 빈에 체류하는 알바니아인은 누구나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의 궁정 사냥과 무기고 등을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것이다. 스컨데르베우는 모든 알바니아인들의 정서에 중요하고, 유일한-상징적인 인물이며 알바니아 민족주의의 중심요소다. 2012년 알바니아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벗어난 독립 100주년을 기념했다. 오스트리아는 2012년 11월 19일부터 2013년 1월 13일까지 알바니아 국가영웅의 투구과 검을 처음으로 대여할 수 있게 했다. 100번째 국경일인 2012년 11월 28일에는 관람객 4만 명이 집계된 가운데, 전시가 끝날 무렵에는 약 17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으며 이는 알바니아 국립박물관의 입장에서 괄목할만한 기록이었다. 알바니아 정부는 계약 상 전시품에 대한 완전한 면책을 보장 하고 3천 5백만 유로의 보험금을 예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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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현대 알바니아와 오스트리아의 정치-경제-문화적 교류에 대해서는 위키문서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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