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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대전의 서막- 사라예보의 반세르비아 폭동 (일부혐오주의)

제국의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16 0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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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반세르비아 폭동은 사라예보 사건 이후 1914년 6월 28일과 6월 29일 사이에 사라예보에서 크로아티아인들과 무슬림 보스니아인들에 의해 일어난 세르비아계에 대한 대규모 폭력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통치하던 오스카르 포티오레크 총독에 고무된 폭력 시위는 포그롬의 특성을 가미하여, 사라예보 역사상 유례 없는 민족 갈등을 야기한 것으로 여겨진다. 세르비아계 주민 두 명이 6월 28일에 죽었고 많은 이들이 폭행당했으며 수많은 세르비아계 사람들의 집, 상점, 시설이 파괴되고 약탈됐다. 이후 비세르비아계 주민 58명이 체포됐고 또한 세르비아계 주민 100명 이상이 사라예보 사건과 관련해 체포됐다.


https://en.wikipedia.org/wiki/Anti-Serb_sentiment

https://en.wikipedia.org/wiki/Anti-Serb_riots_in_Sarajevo#CITEREFBennett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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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에서 파괴된 세르비아인들의 물건들 주변에 모인 군중, 1914년 6월 29일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해 살해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Franz Ferdinand von Österreich-Este 부부 암살사건의 여파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전역에서는 반세르비아 감정이 고조되어 세르비아인에 대한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암살 당일 밤부터, 이중제국의 다른 지역, 특히 현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 영토에서 조직적으로 전국적인 반세르비아 폭동과 시위가 일어났다. 이들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총독 오스카르 포티오레크Oskar Potiorek에 의해 조직되고 고무받았다. 세르비아 민족에 대한 포그롬(특정 민족 또는 종교 집단에 대하여 학살과 약탈이 수반되어 일어나는 폭력적인 폭동. 대박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러시아어 "포그롬"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그 자체로 박해라는 뜻을 갖는다.)은 암살 직후 조직되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요시프 프랑크Josip Frank(1844년 4월 16일~1911년 12월 17일, 유대계 크로아티아인 법률가 겸 정치가였으며 크로아티아 의회의 저명한 권리당 대표.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크로아티아 민족 독립의 주창자였다.)의 추종자들이 이끄는 최초의 반세르비아 시위가 6월 28일 초저녁에 자그레브에서 조직되었다. 이튿날, 시내에서 일어난 반세르비아 시위는 더욱 격렬해져 '포그롬'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었다. 경찰과 지방 당국은 반세르비아 폭력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편, 프린치프의 공동 공모자들이 대부분 세르비아계 민족이었기 때문에, 이중제국 정부는 곧 세르비아 왕국이 암살의 배후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의 반세르비아 시위는 1914년 6월 28일에 시작되었는데, 자그레브에서의 시위보다 조금 늦게 시작된 것이었다. 보스니아의 로마 가톨릭 주교인 요시프 슈타들러Josip Štadler의 보좌주교인 이반 샤리치Ivan Šarić는 세르비아인들을 "독사"와 "먹이를 찾아 날뛰는-게걸스러운 늑대"라고 묘사하는 반세르비아 성가를 갈겨썼다. 크로아티아인들과 보스니아의 이슬람교도 군중들이 처음으로 대궐같은 슈타들러의 성심대성당Sacred Heart Cathedral에 모였다. 그리고 저녁 10시경 세르비아 상인 글리가리제 제프타노비치 소유의, 사라예보에서 가장 큰 호텔인 에브로파 호텔을 200여 명 가량의 일행이 공격해 파괴했다. 군중들은 주로 세르비아의 상점, 저명한 세르비아인들의 거주지, 세르비아 정교회 예배당, 학교, 은행, 세르비아 문화 사회 프로스브제타Prosvjeta, 스릅스카 리제치Srpska riječ 신문사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많은 군대 장교를 포함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상류층의 많은 구성원들이 폭력에 가담했다. 이날 두 명의 세르비아 인이 살해당했다.


그날 밤, 늦게 무장한 10명의 군인이 잠깐 개입한 후, 도시의 질서가 회복되었다. 또한, 오스카르 포티오레크가 이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동통치령 지방정부와 경찰, 그리고 슈타들러와 이반 샤리치가 '이 땅의 전복적 요소'를 근절하기 위한 합의를 도출하였다. 당국은 포고문을 발표하고 사라예보의 주민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거룩하고 신성한 의무를 다하고 전복적-파괴적인 요소들의 퇴치를 통해 수치스러운 것을 도시에서 정화하겠노라고 하였다. 이 포고문은 당일 밤과 이튿날 새벽 동안 시 전역에 배포되었고, 포스터로도 인쇄되어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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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르 포티오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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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프 슈타들러, "이 땅의 전복적인 요소들"을 근절하는 데에 동의했다


6월 29일

아침 8시경부터 더욱 공격적인 시위가 시작되어 재빠르게 포그롬의 특성을 띠게 되었다. 사라예보의 거리에서는 많은 이슬람교도들과 크로아티아인들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기(검정-노랑)를 걸치고 황제, 그리고 유명을 달리한 대공의 초상을 들고 다니며 소리지르고 노래했다. 현지 정치 지도자들은 군중들에게 연설을 했다. 요시프 반카쉬Josip Vancaš(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유고슬라비아 왕국의 건축가)는 폭력 사태가 터지기 전에 연설을 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이 날의 사건에서 그의 정확한 역할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정치 지도자들은 군중들을 모아 세르비아인 소유의 상점과 집들을 상대로 한 파괴 행위, 그들을 지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교활한 정치가들은 연설 후 홀연히 사라졌고, 다수의 소규모 크로아티아인, 이슬람교도 집단이 재빠르게 사라예보 내에 있는 세르비아인의 모든 재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한 세르비아 학교를 공격했고, 그 다음에는 세르비아인들에 의해 소유된 상점들과 기관들, 개인 주택들을 공격했다. 세르비아인 소유의 은행이 약탈되었고 세르비아인의 상점들과 주택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인도와 거리에 뿌려졌다.


그날 저녁, 포티오레크 총독은 사라예보를 시작으로, 나머지 지방에서도 계엄령을 선포했다. 비록 이러한 조치들이 법 집행 기관이 정규 업무가 아닌 활동을 관장하도록 허가했지만, 폭도들이 세르비아인들과 그들의 재산을 계속해서 공격했기 때문에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과 주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치안부대의 개입으로 인해 화를 면했다고 한다.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 초테크의 시신이 사라예보의 철도역으로 이송된 후, 도시의 질서가 회복되었다. 또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폭동 중에 저지른 살인 및 폭력 행위에 대해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사라예보 특별 법원의 설립을 명령하는 법령을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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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연설하는 요시프 반카쉬, 1914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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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이브로파Hotel Evropa의 파괴된 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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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가에서 세르비아인들에 대하여 가해진 폭력의 여파, 1914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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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중심가(오늘날의 티토 원수 거리), 1914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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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되고 강탈당한 세르비아인 소유 상점들, 베지스탄 근처 바슈카르지아Baščarši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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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사라예보의 세르비아계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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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동에 휘말린 세르비아인 재단사의 건물이 약탈당하고 그 잔해들이 도로에 던져졌다. 사진- 영국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1914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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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군중에 의해 파괴된 세르비아의 주택과 호텔, 사진- 영국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1914년 7월 11일


-반응-

사라예보의 군중들

사라예보의 3개 종교단체를 대표하는 조조 수나리치, 셰리프 아르노토비치, 다닐로 디모비치 등으로 구성된 정치인들이 포티오레크 총독을 찾아 세르비아인에 대한 폭력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포티오레크가 6월 29일과 30일 양일에 걸쳐 빈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사라예보의 세르비아 상점들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상류층 여성들까지 약탈과 강도행위에 가담했다고 진술했다. 사라예보의 많은 주민들이 창문을 통해 사건을 지켜보며 거리의 군중들에게 박수를 보냈고, 시위대가 도시의 비세르비아인 주민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작가 이보 안드리치는 "사라예보에서 증오의 광풍이 불었다"고 언급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남슬라브 정치인들

저자 크리스토퍼 베넷(유고슬라비아의 유혈 붕괴: 원인, 과정 및 결과, 1995)에 따르면 헝가리 당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제국에서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통제 불능 사태로 격화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분명, 이러한 포그롬은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당국에 의해 선동되었지만, 결국 제국 내에서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의 관계가 완전히 통제 불능이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헝가리의 개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슬로베니아의 보수파 정치인 이반 슈스터시치Ivan Šusteršič는 비세르비아인에게 "탐욕스럽고 거대한 과대망상증이 도사리는 세르비아인의 두개골을 부수어 버릴 것"을 선동했다. 미약한 극우 정치세력을 제외하고는 이중제국의 다른 남슬라브인들, 특히 달마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이슬람교 종교지도자들은 반세르비아 폭력에 가담하는 것을 자제하거나 비난했고, 이들 중 일부는 세르비아인과의 연대감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크로아티아 권리당Stranka prava의 기관지, 그리고 크로아티아-세르비아 연합Hrvatsko-srpska koalicija, 가톨릭 주교 알로지제 미시치Alojzije Mišić, 안톤 보나벤투라 제글리치Anton Bonaventura Jeglič. 7월 초까지, 정부의 반세르브아 입장에 대한 유일한 지지는 당국이 사주하는 반동주의자들로부터 나온 것이 분명해졌고, 세르비아인들과의 일종의 남슬라브 연대는 아직 분명하지 않은 형태로나마 존재했다.


그러나 작가 비들루스와 제프리(발칸 반도: 공산주의 이후의 역사, 2006)는 크로아티아의 정치 지도자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에 대해 '격렬한' 충성심을 보였다고 밝히고, 크로아티아인들이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이중제국 군대에 전반적으로 상당히 많은 수가 징병되었다고 언급하면서, 총인구에 대비하여 최전방에서 근무했던 병사들의 비율이 높았던 것에 대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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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의 보수파 정치인 이반 슈스터시치는 세르비아인에 대한 폭력을 조장했다.



언론과 외교관들

사라예보의 가톨릭 및 기관지는 세르비아인들이 폭탄을 숨겨두고 소지했다고 주장하며 적대적인 반세르비아 소책자와 유언비어를 발행함으로써 폭동을 선동했다. 사라예보의 신문은 세르비아 민족과 그들의 재산에 대한 폭력 행위가 "러시아에서 비롯된 포그롬의 여파"와 비슷하다고 보도했다. 6월 29일 빈의 한 보수 신문지는 "사라예보는 포그롬의 현장처럼 보인다"고 보도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사라예보의 경찰은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묵인했다. 사라예보의 세르비아인들이 살해되고 그들의 재산이 불타는 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 당국은 방관했다.' 반세르비아 폭동은 러시아 제국의 입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 신문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은 세르비아가 아니라 오스트리아를 보스니아로 밀어 넣은 사람들에게 있다. 그래서 러시아의 도덕적 의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슬라브 민족을 독일의 멍에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밀로라드 에크메치치Milorad Ekmečić에 따르면, 한 러시아 보고서에서는 사라예보에서 수천 개가 넘는 주택과 상점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사라예보 주재 이탈리아 영사는 이 폭력사건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에 의해 자금을 조달받았다고 밝혔다. 또 '세르비아인들의 친구일 뿐"이라고 묘사한 독일 영사는 사라예보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을 경험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여파-

다른 장소의 사건들

반세르비아 시위와 폭동은 사라예보와 자그레브뿐만 아니라 현대 크로아티아 및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자코보, 페트리냐 및 슬로본스키브로드, 차플리나, 리브노, 부고지노, 트라브니크, 마글라지, 모스타르 제니차, 투즐라, 도보이, 바레시, 브르치코, 보산스키샤마츠 등 많은 오스트리아-헝가리 대도시에서도 조직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가 달마티아에서 반세르비아 시위를 조직하려는 시도는, 비록 시베니크에서는 세르비아인이 소유한 많은 상점들이 약탈당했지만 스플리트과 두브로브니크에서는 소수만이 반세르비아 시위에 참여했기 때문에 가장 성공적이지 못했다.


슈츠크롭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당국은 약 5,500명의 저명한 세르비아인들을 투옥하고 송환했으며, 이 중 700명에서 2,200명이 감옥에서 사망했다. 460명의 세르비아인들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슈츠크롭스Schutzkorps로 알려진 이슬람 특수 민병대가 창설되어 세르비아인들의 박해를 수행했다. 결과적으로, 약 5,200명의 세르비아 가정들이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에서 추방되었다. 이것은 처음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민족성 때문에 다수의 시민들을 박해한 것이었이며 슬로베니아 작가 벨리코니쟈Narte Velikonja가 묘사한 것처럼 앞으로 일어날 일의 불길한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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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네에서 목 매달린 세르비아인들, 19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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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체고비나 지역에서 세르비아인을 목매단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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