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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글) 추축국의 속사정.

dd(112.154) 2017.01.22 00:34:51
조회 5732 추천 55 댓글 10

출처는 제러드 L. 와인버그의 2차세계대전사 3권.





연합국들이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를 겪었다고 하지만 3국 동맹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렵다. 3국 동맹에는 영-미 합동참모본부나 다른 합동 위원회들과 같은 기구가 없었다. 3국 동맹 군사위원회가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의해 1941년~1942년 겨울에 설치되었지만, 홍보 외에 뚜렷한 역활이 없었다. 동맹국들이 지리적 거리 문제로 인해 협력할 수 없었다는 주장은 이웃나라였던 독일과 이탈리아가 전쟁 초반부터-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영국도 구축했던-협조체계를 구축하지 못했고, 만약 양국이 원했다면 충분히 조직할 수 있었음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없다. 추축국 가운데 어느 나라도 협조체계를 구성하려 시도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상대방에게 방해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전쟁을 치르려 했다.


추축 세력 내에서 이탈리아의 지위는 그리스와 동부 아프리카, 북부 아프리카의 연전연패로 크게 흔들렸다. 이탈리아는 더 이상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없었고, 독일은 이탈리아의 붕괴로 연합군의 남부유럽 침공을 우려하게 되었다. 그 결과 독일군은 연합군이 상륙하는 장소마다 일일히 병력을 보내야 했고, 프랑스와 남동부 유럽의 이탈리아 주둔군을 대신할 병력도 준비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은 이탈리아가 다시 전열에 복귀하도록 유도하려 했으나 끝내 실패했고 이탈리아가 언제 추축 세력에서 이탈할지 불안 속에 주시해야 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관계는 언제나 긴장을 유지했다. 1차 대전 당시 두 나라는 적국이었다. 이탈리아는 독일인들을 야만인 취급했고 독일은 이탈리아인들을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민족으로 여겼다. 독일은 이탈리아가 원하는 수준의 석탄을 공급하지 못했고 독일로 끌려간 많은 이탈리아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대했다. 특히 노동자 문제는 독일-이탈리아 관계를 꾸준히 악화시켰으며 특히 이탈리아군 병사들이 무장해제 당하고 독일군에게 가혹한 취급을 받은 끝에 독일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투입되자 양국의 관계는 극단적으로 악화되었다.


두 나라 간의 개인적-이념적 문제도 있었다. 개인적 문제는 이탈리아군을 상대하는 독일의 고위급 지휘관들, 특히 롬멜 원수 등이 이탈리아인들을 상대하는 자세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었고, 이는 곧 공공연하게 확산되었다. 이념적으로는 유대인 문제가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무솔리니는 1938년에 여러 종류의 반 유대인 법률을 만들어 독일과의 이념적 유대를 과시하려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작은 유대인 사회에 강요된 이 법률들은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에 도입된 거위걸음-'로마식 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조롱당한-만큼이나 인기가 없었다.


추축국 간의 갈등은 전쟁 중에 더욱 심해졌다. 독일은 다른 문제들이 그랬듯이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도 이탈리아와 아무런 상의를 하지 않은 채 이탈리아의 협조만을 요구했다. 무솔리니는 대체로 독일과 보조를 맞추려 했지만 이 문제에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프랑스와 유고슬라비아, 그리스의 이탈리아군 점령지역에서는 독일군의 만행을 잘 알고 있던 현지의 이탈리아군 지휘관들이 독일군에게 유대인들을 넘기지 않았고, 양국은 이 문제에 대해 끝까지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인들은 독일인이 야만인이라는 확신을 굳혔고 독일인들 역시 이탈리아인이 무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독일과 이탈리아 간의 가장 심각한 갈등의 원인은 전략 문제였다. 이탈리아에 대한 연합국의 위협은 1942~1943년 사이 심각해졌다. 1942년 11월에 몽고메리의 엘 알라메인 공세가 시작되고 며칠 후 미군이 북서 아프리카에 상륙하자 이탈리아는 독일에게 소련과 단독으로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영국-미국과의 전쟁에 집중하자고 탄원했다. 이탈리아는 1942년 12월에 히틀러에게, 그 뒤로는 다른 독일 지도자들에게 청원을 보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일본의 유사한 제안 역시 여전히 거절당하고 있었다. 독일 역시 지중해의 위협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무솔리니가 원하던 반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1941년 초반에는 추축 세력이 지중해 지역에서 많은 기회를 살릴 수 잇었지만, 히틀러는 이곳이 이탈리아의 생존 영역이며 독일이 전력을 집중할 가치가 없다는 판단 하에 소규모 전력만을 파병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가 재앙에 직면하자 독일은 이탈리아가 연합군의 폭격기지로 사용되거나 연합군이 이탈리아가 장악중인 남동부 유럽을 점령해 독일의 광물공급을 차단하는 상황을 우려하게 되었다. 따라서 히틀러는 튀니지의 독일군 증파를 위시한 대규모 전력 파병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 전력증강은 이탈리아 지원보다는 독일의 남방을 방어하려는 목적이 더 강했다. 히틀러는 여전히 이탈리아와 일본의 주장에 따라 전략을 재검토할 의향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스탈린그라드에 투입되었어야 할 많은 수송기들은 시칠리아에서 튀니지로 물자를 보내는 데 사용되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동부 전선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으며, 역으로 새로운 하계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유고슬라비아 역시 이탈리아와 독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이탈리아는 미하일로비치에게 무기를 지원해 파르티잔에 대항하도록 한 후 미하일로비치를 진압하려 했으나 독일은 두 세력 모두와 싸우기를 원했다.


1943년 7월에 시칠리아 방면에서 저항하던 이탈리아군이 무너지고 7월 하순에 파시스트 정권 자체가 붕괴되면서 독일과 이탈리아는 완전히 결별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전쟁에서 어설프게 물러난 결과 독일은 이탈리아 국토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많은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구출된 무솔리니는 독일의 지원 하에 북부 이탈리아에 괴뢰정권을 세웠지만 독일의 전략이나 정책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1945년 당시 이탈리아의 독일군이 무솔리니와 상의 없이 진행한 연합군과의 항복 교섭이었다. 그간 독일군은 수많은 이탈리아인들을 보복이라는 명분하에 총살했으며 끝내 무솔리니도 이탈리아인들의 손에 처형당하도록 방치했다.


유럽의 추축국들과 일본의 관계도 독일과 이탈리아의 관계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정치적으로 일본과 유럽의 추축국들은 거의 협력하지 않았다. 일본은 독일이 유럽의 점령지 주민에게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일본은 자신들이 아시아에서 그랬다고 주장한다) 촉구했으나 독일은 이 조언을 듣지 않았다. 3국 동맹 회원국들 사이에는 연합국들이 진행한 것과 같은 전후 세계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주독 일본대사 오시마는 1942년 11월에 유럽의 일본 외교관들을 대표해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가 연합국들처럼 효과적인 협조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추축국들은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도 상당한 진통을 겪었고 독일과 일본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태도를 거의 바꾸지 않았다.


1943년과 1944년에도 양국의 전략에 대한 견해는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독일은 일본이 다시 영국이나 미국, 소련을 상대로 공세를 실시하기를 원했지만 일본은 소련을 공격할 의사가 없었다. 일본은 1939년에 소련에게 크게 패한 이후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으려 했으며, 공격을 받은 소련이 미군의 폭격기들에게 전진기지를 제공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그 결과 일본은 근해를 지나 소련으로 향하는 미국의 원조물자 운송도 방해하지 않았다. 일본은 1943~1944년에도 변함없이 독일에게 소련과 강화하고 영국-미국과의 전쟁에 집중해줄 것을 주문했다.


일본은 영국과의 전쟁에서도 1944년이 되어서야 2년 전에 점령했던 버마에서 인도 방면으로 공세를 개시했다. 독일의 관점에서는 중요성도 낮고 시기적으로도 뒤늦은 공격이었다. 만약 일본이 1942년에 말라야와 버마를 점령한 여세를 몰아 인도를 공격했다면 전쟁에 큰 영향을 끼쳤겠지만 1944년에는 전략적으로 별 의미가 없었다.


일본이 1944년에 실시한 또다른 대공세는 중국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공세는 중국 비행장에서 발진하는 미국 폭격기들을 저지하고 미국 잠수함들로 인해 위태로워진 해로를 대신할 육상 교통로를 개척하기 위한 공세였을 뿐, 거시적인 전략 하에 실시된 진격이 아니었다. 일본은 1943~1944년에 이미 미국과의 싸움에서 철저한 수세에 몰려 있었다.


독일과 일본이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는 해전이었다. 독일은 일본의 연합군 상선 공격을 유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잠수함을 적 해군과의 전투에 주로 동원했으며, 이후에는 미군과 오스트레일리아군의 진격으로 고립된 일본군들에게 군수를 공급하는데 사용했다. 일본 해군 수뇌부는 독일이 왜 적국의 보급로 차단에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은 적 해상보급로에 대한 잠수함작전과 대잠전 분야에 비정상적으로 무능했다.


폰 리벤트로프와 오시마는 1943년 5월 19일에 개최된 회담에서 명백히 악화되고 있는 당시의 전황과 전쟁 양상에 대한 긴 대화를 나눴다. 유럽의 추축 세력은 아프리카의 마지막 거점을 잃었으며 동부 전선의 독일군도 간신히 소련군을 막아내고 있었다. 일본도 과달카날과 키스카 섬에서 병력을 완전히 철수시켰다. 일본은 소련과 독일의 관계를 개선시켜 보려는 부질없는 희망을 위해 오카모토 기요토미 장군이 이끄는 특별 사절단을 소련을 거쳐 독일로 파견했다. 오시마와 리벤트로프의 회담에는 오카모토 역시 배석했다.


이들의 회담 내용은 독일과 일본의 전략이 얼마나 상이했는지, 그리고 양국이 서로를 얼마나 잘못 파악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오시마는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와 독일-소련 휴전을 중재하려는 이유를 설명했다. 폰 리벤트로프는 자신들이 동부 전선에서 새로운 공세를 실시하는데 필요하다는 이유로 일본에게 새로운 공세를 재촉했으며 독일과 소련의 휴전을 중재하려는 오시마의 노력을 비난했다. 오시마는 리벤트로프에게 독일이 소련에게 승리하지 못할 것임을 시인하고 일본이 버마와 필리핀에서 그랬듯이 우크라이나와 발트해 국가들의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리벤트로프는 즉시 거절했다.


이 대화를 보면 두 사람이 1935~1936년간 방공협정을 주도하고 여러 해에 걸쳐 개인적 친분을 축적했음에도 상대편 국가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독일은 일본군이 6년에 걸친 전쟁과 최근 미국에게 입은 피해로 쇠약해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독일은 동아시아에서 진행중인 전쟁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으며 독일군의 수뇌부들도 일부를 제외하면 태평양 전쟁의 양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일본 역시 독일이 중시하는 요소나 인종적 편견의 심각성, 그리고 여기에 영향을 받은 독일 정책의 진행 양상 등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합국들과 같은 협조체계를 구축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상황은 패전이 목전에 닥친 시점에서도 개선되지 않았다. 독일은 일본에 일부 신무기에 관한 기술자료를 제공하려 했으나 일본의 산업은 이미 이런 자료를 제대로 할용하기도 힘겨운 상태였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오간 통신 암호문은 미국과 영국에게 해독당하면서 적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3국 동맹의 가맹국들은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각자의 파멸을 향해 홀로 걸어갔다.




굴라그에도 올렸는데 굴라그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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