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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ㄴㄷㅆ 2머전 팬픽)바덴 외전(36) -일년 후 3-

몬테레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4.21 22: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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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ㄷㅆ 2머전 팬픽)바덴 외전(33) -합구필분 2, 차원대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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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ㄷㅆ 2머전 팬픽)바덴 외전(35) -일년 후 2-



“총리!”


콤무나는 외쳤다. 당혹감과 반사적인 서운함이 함께 묻어났다. 그러나 그 말을 내뱉은 직후, 총리의 표정을 보고, 총리의 다음 말을 들은 후, 그 감정은 일종의 측은함으로 변했다.


“말해주게. 정말로, 정말로 내가 믿을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지? 자네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다시 한번 되묻는 총리의 얼굴은 절박했다. 이유 있는 절박함이었다. 동유럽을 전전하다 동맹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러시아에 돌아올 수 있었던 총리는 그 반대급부로 러시아 본토에 이렇다 할 자신만의 세력이 부족했다.


그런 그가 임시 과도정부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두 가지였다.


첫째로, 극우부터 극좌까지, 너무나 다른 이념 스펙트럼을 가진 이들이 오로지 독재자 축출이라는 기치 아래 뭉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색깔이 옅으면서도, 한때 독재자 밑에서 총리직을 맡아 보았기에 정무에 능한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두 번째 이유에 비하면 사소했다. 그 정치적 색깔이 옅다는 점을 눈여겨본 동맹에 간택된 것, 그것이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 동맹의 존재 자체가 과도정부의 존재 대전제였으니까.


동맹과 베타 지구 소련을 보는 러시아인들의 시선은 우호부터 증오까지 다양했지만, 그들 모두가 한 가지만큼은 동의했다. 독재자의 축출과 과도정부의 성립은 명백히 동맹의 작품이라는 것을.


“동맹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우랄산맥 서쪽에 행정권을 행사하고, 저기 극동의 자칭 시민군들, 하지만 그중 다수는 이미 군벌이 되어버린 작자들을 회유하고, 신연방 협정을 입에 담지도 못했겠지. 아니, 모스크바로 진군하기는커녕,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말라 죽었을 테고, 애초에 혁명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거야.


설사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지금도 언제 깨질지 몰라 노심초사하면서나마 금 간 찻잔과도 같은 이 러시아를 이어붙이려는 시도 자체를 못했을 걸세. 러시아는 갈기갈기 찢겼을 테고.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막막하게 만든다네. 이래서야, 동맹과 소련의 괴뢰라는 말을 들어도 반박하기 영 궁하지 않나.”


총리는 다시 한번 씁쓸하게 자조했다. 콤무나는 그런 총리에게 반박하지 못했다.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빌미 삼아 어떻게든 이 자리에 앉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늑대소굴, 그게 작금의 모스크바지.”


총리는 다시 한번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총리는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묻겠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군가? 자네까지 포함해서. 아니지, 질문을 바꾸지. 내 편은 얼마나 있는가?”


‘그리고 자네는 내 편인가. 지금 말하려는 비밀, 늑대들의 음모를 공유하기에 충분히 믿을 만한 사람인가.’


그 함의를 모르기에는 콤무나는 비밀경찰이 활보하는 시대를 너무나 오래 살았다. 의식을 자각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을지언정, 그 백 년간 그녀가 보고, 느낀 시대는 여전히 콤무나의 기억 속에, 강철의 본체에 생생히 새겨져 있었다.


“저는 당신의 편이 아닙니다, 총리. 저는 러시아와 이 러시아를 구성하는 국민, 그리고 그들의 자유로운 의지가 합의로써 만든 정당한 정부와 체제에 충성합니다. 저의 자매들과 후배들 역시 그렇고요.”


그렇기에 콤무나는 부드럽되,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자네답군. 그래, 그럼 됐네.”


그제야 총리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콤무나에 두꺼운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콤무나는 시간을 들여 그 문서를 꼼꼼히 검토했다.


“…이게 다 사실입니까?”


그 후, 경악했다.


“그렇네.”


총리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총리는 스마트폰을 조작해 MP3 파일을 하나 재생했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들은 지극히 불온했다.


-하, 이번에 ‘종전 협정’이라고 나온 것 들었소? 누가 들으면 우리 러시아가 패전국인 줄 알겠더군! 우리는 저 외계인들에게 진 것이지, 히홀들에게 진 것이 아니지 않소?


-누가 아니랍니까? 저기 시베리아에서 날뛰는 자칭 시민군이라고 하는 도적 떼들은 다 뭐랍니까?


-그뿐이겠습니까. 타타르스탄, 바시코로스탄… 옛날 같았으면 찍소리도 못할 것들이 할 말 못 할 말 다 떠들고 다니고 있지요. 심지어 명백히 우리들의 본토인 칼리닌그라드나 블라디보스토크조차도 독자 노선을 이야기하는 판국 아니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 쪽은 기회만 있으면 저 외계인 놈들에게 붙으려 알랑방귀를 뀌어대는 판국이고!


-제기랄, 차라리 그분이 계실 때가 좋았지…


-이보시오, 말조심합시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왜요, 내가 틀린 말 했습니까? 아닌 말로,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그렇게 생각 안 하십니까? 이 나라 꼴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아닌 말로, 지금의 정부가 러시아인들의 정부가 맞긴 합니까? 사람 거죽을 뒤집어쓴 파충류 도마뱀 같은 자들이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어요! 결단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이 나라를 구해야 해요!


“Сука Блять.”


콤무나는 자신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잊고 욕지기를 뱉었다. 언뜻 우국지사인 듯 자신들을 포장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지저분한 권력욕의 시궁창 냄새를 맡았기에. 그걸 똑같이 느꼈기에, 총리 역시 딱히 제지하지는 않았다.


독재자가 일으킨 잘못된 전쟁으로 인해, 그리고 그로 인해 촉발된 폭압과 내전으로 인해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땅이었다. 더는 이 동토에 붙여진 눈 내리는 아프리카라는 멸칭이 결코 단순한 빈정거림이 아니었다. 내전 종료 직후, 일시적이었긴 했지만, 러시아의 1인당 GDP는 옐친 시절의 기록 밑으로 붕괴하였을 지경이었고, 사실 지금도 그보다 조금 윗수준을 간신히 회복한 상태였다.


‘현실이 이런데, 흐를 피와 혼란을 최소화할 생각은커녕, 더 큰 혼란을 일으키겠다고? 그나마 이 나라의 생명줄을 유지해 주고 있는 소련조차 학을 떼면, 그때는 어쩌려고 이런 무모한 짓을! 지금 뭣 때문에 저 우랄 동쪽의 군벌 놈들을 어르고 달래고 있는데!’


콤무나는 분노를 간신히 참으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탐욕과 정확히 반비례하는 근시안이 경멸스러웠고, 또 그런 쥐새끼들이 이 나라의 꼭대기에서 자신과 자신의 자매들이 몸 바쳐 만든 나라의 유산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분노로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쥔 콤무나의 모습을 보며, 총리는 다시 한번 무겁게 한숨을 쉬고, 그만큼 무거운 자신의 심정을 고백했다.


“더 등골 서늘한 점이 뭔지 아나? 내가 이 사실을 안 건, 사블린 대사를 통해서였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임시 국가정보국장이라는 양반이 이 음모에 가담했다는 것… 아주 말하는 것만 들으면 애국자가 따로 없군. 독재자 놈의 비리를 가져다 바치는 조건으로 사면된 놈이 말이야.”


“...꼼짝없이 당할 뻔했군요.”


신랄하게 비꼬는 총리의 말을 들으며, 콤무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일단 독재자 타도가 급했던 상황에서, 어중이떠중이들도 받아들였던 것이 결국 이렇게 돌아왔음을 이런 방식으로 절감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제 와서 불평할 계제는 아니었다. 아무리 동맹의 지원을 받았다고 한들, 고작 상트페테르부르크만 가지고 출발했던 과도정부가 빠르게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고, 겨우 넉 달 만에 모스크바를 함락시켜 독재자를 축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어중이떠중이, 하이에나 떼라도 긁어모았기 때문이었으니.


당장 지금 모스크바에서 행정업무를 보는 자들 대부분은 독재 정권 때 그대로 일했던 공무원들이었고, 심지어 개중에는 독재자의 전횡이나, 압제에 깊숙이 관여한 고위급 인사들도 존재했다. 그들이 없으면 모스크바를 비롯한 이 나라 전체가 동맥경화에 빠질 판이었기에, 협력을 대가로 어느 정도는 책임을 사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쪽은 나았다. 그중에는 최소한, 진심으로 독재 정권에 회의감을 느끼던 이들도 제법 있었고, 기회주의자들 역시 현 과도정부 내의 여러 파벌에 줄을 대려 기웃거릴지언정, 독재 체제를 부활시키겠다는 반동적 행태를 대놓고 보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독재자는 그들에게도 그리 좋은 상사가 아니었고-당장 우크라이나에 굳이 쳐들어가서 이 사단을 만들고, 자신들의 업무량을 폭증시킨 게 누군데,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리는 것을 감수하고 굳이 독재자를 위할 의리도 그들에겐 없었다. 전형적인 보신주의였으나, 여전히 그 뿌리가 미약한 과도정부에는 그런 보신주의자들조차 감지덕지했다.


그러나 그런 보신주의는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대안부재에 따른 비판적 지지에 가까웠지, 민주정에 대한 제대로 된 충성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것이 사소해 보일 정도의 결정적인 골칫거리는 따로 있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현 ‘군부’에서 이걸 우리에게 알린 사람이 없었다는 건…”


“아직 그들에게는 여전히 독재자의 향수가 달곰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지. 비상사태, 아주 편리하고 유혹적인 울림 아닌가? 특히나 이런 시기에는 말이야.”


콤무나의 침통한 말을, 총리 역시 똑같은 심정으로 맞받았다.


현재 러시아 연방 과도정부의 주 병력인 시민군이란, 사실 기존 러시아군 출신 전향자들과 민병대의 한집 두 살림, 불편한 동거였기 때문이었다. 기실, 그뿐이면 차라리 나았다. 해외 망명자 군대도 있었고, 심지어 FSB나 GRU 출신도 종종 있었다. 그러니 독재자를 끌어내리기 전에도 심각했던 파벌 싸움과, 통제되지 않는 군대가 필연적으로 가지는 권력에 대한 탐심이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옛날의 프랑스 혁명이나, 당장 백 년 전 러시아에서 벌어졌던 볼셰비키 혁명 당시에도 그랬지만, 초창기의 혁명군이란 제대로 된 군대라고 불러주기 어려운 것이 역사적 전통이었다. 따라서, 기존의 체제에 복무하던 장교들을 회유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동맹의 군사 컨설팅만으로 그 많은 장교단 수요를 맞추기란 어불성설에 가까웠고, 러시아군 역시 일부 극단적인 충성파를 제외한다면, 독재자와 굳이 함께 죽기보다는 자기 살길 찾기를 바랐으니 가능한 연합이었다. 꼴 보기 싫은 특무군과 내무군 놈들을 이참에 치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독재 정권 하에서의 특권에 익숙해진 기존의 군, 정보기관 계통의 인사들이 정국 주도권을 민간 정부에 순순히 가져다 바칠 예정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아니, 민간 정부를 그저 ‘모자걸이’ 정도로 취급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독재자의 타도라는 일차적 목적이 끝나자, 기존 러시아군 출신 인사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다시 찾기 위해 이리저리 정계에 줄을 대고 있었다.


아니면, 아예 본인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되겠다는, 좋게 말해 야심이고, 나쁘게 말하면 망상이요, 흑심이라 할만한 불온함을 가슴 속에 품고 있거나. 심지어 이런 자들은 시민군 출신 중에도 적지 않았다. 혁명 직후란, ‘나폴레옹병자'들이 잉태되기에는 딱 좋은 순간이었으니.


올리가르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독재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였기에 정권 붕괴에 협조했다. 이들은 만약 새로운 민주 정부가 독재자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하려 든다면, 새로운 독재자의 압제 즈음이야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어차피 자신들은 그 밑에 깔린 이들과는 다르다는 근거 없지만, 차마 논박하기 어려운, 피라미드 위에 있던 자들의 오만한 믿음이 그 판단을 지탱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아직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물론이고, 현재 과도정부가 행정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역의 여론 자체는 ‘과도정부’ 자체에는 우호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민주주의, 자유주의 파벌에 대한 지지세가 탄탄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혁명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는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야 그래도 현 임시 총리가 창당을 준비 중인 ‘민주당’에 대한 지지세가 강했으나, 나머지 지역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동안 사회 시스템 전반을 장악하고 있던 독재자의 주구 모두를 축출할 수는 없었기에, 여전히 친독재자 세력은 간판만 갈아 끼운 채 정계에 다시 발을 들이밀려 하고 있었고,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권은 이익 정치의 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표를 동원할 수 있었다. 필요하다면, 정치깡패에 가까운 준 무력집단 역시도 그 동원 대상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과도정부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평화 유지군’으로 주둔중인 베타 지구의 소련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소련군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만 있었고, 그마저도 현 알파 지구 러시아의 내부정치에 대놓고 간섭하려 든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일단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며 말 그대로 ‘평화유지군’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했다.


그렇기에 총리는 되물었다.


“그러니 나는 우리 편이 누구인지, 지금 확실하게 알아야만 하네. 특히 지금 당장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는 자 중에 누가 우리의 편에 서줄지, 최소한 중립이라도 지킬지, 그걸 알아야만 해. 그래야 이제 막 겨우 꽃피운 이 땅의 민주주의, 자유, 그 불씨들을 지킬 수 있을 테니.”


“...혹시 소비에트 연방 측에서는 아무 언질이 없었습니까?”


“있었네. 하지만 그들의 말에 순수한 선의만 담겨있다고 덜컥 믿어버린다면, 나는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조차 없는 머저리겠지. 아무리 독재자를 축출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자들도 엄연히 이 땅에 궤도폭격을 쏟아부은 자들이지 않나? 교차 검증은 해야지.”


콤무나는 오로라를 비롯한 자매들을 구해준 동맹과 소련에 대해 긍정적으로 여겼지만, 이번만큼은 총리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그리고 그런 태도를 죽은 자매들도, 살아남은 자매들도 바랄 터였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로 정리해서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지.”


그렇게 콤무나가 무거운 마음을 안고 물러난 지 사흘이 지난 후였다.


***


“저를 찾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비서실장님.”


““네, ‘바리스타’ 연대장님. 당신께 긴히, 극비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콤무나는 VDV에서 자유 러시아군으로, 그리고 이제는 다시 시민군의 장교로, 꽤 파란만장한 소속 변경을 거쳤던, 콧수염이 인상적인 한 남자와 독대하고 있었다. 언뜻 얼굴만 보면 역전의 군인이라기보다는 평범한 바리스타처럼 보이는 남자가 직접 내온 라떼를 홀짝이면서.


“알렉산드르 니콜라예프 대령. 24시간 내로, 지금 제가 제시한 이 목록에 있는 자들을 긴급히 구속해 주셨으면 합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나누는 말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니콜라예프라고 불린 남자, 크렘린 벙커에 잠입해 자살하려던 독재자를 저지하고 직접 체포하는 업적을 세움으로써 영웅이 된 남자, 그러나 지금쯤 양 세계의 키이우를 오갈 준비를 하고 있을 한 함딸에게는 바리스타 학원의 원장으로서의 모습이 더 익숙할 남자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듯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누구의 명령입니까?”


“총리. 임시 총리가 직접 ‘명령’했습니다. 현시점의 군 통수권자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우리가 꽃피우고자 하는 것을 지키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그저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함입니까?”


니콜라예프의 말에, 콤무나 역시 잠시 생각했다. 결코, 가볍게 흘려들을 수는 없는 말이었다. 콤무나 개인은 총리를 믿지만, 사람의 심연은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법. 이것은 그저 권귀들의 아귀다툼일지도 몰랐다.


“의심이 가신다면,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단해 주세요. 저는 저의 양심에 따라, 우리가 이뤄내고자 하고, 꽃피우고자 하는 가치, 그 뿌리를 지키기 위해 선택했습니다.”


그렇기에 콤무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미간을 찌푸린 그대로 바리스타 대령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는 본래 정착하고자 했던 망명지에서 인연을 맺었던 한 함딸을 문득 떠올렸다.


‘그래, 도망치거나, 피하지 않기로… 그렇게 결심했지 않은가. 우리가 저지른 결과로부터 달아나지 않기로 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니콜라예프는 천천히 눈을 뜨고,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선택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총리의 극비 명령에 따라 작전을 시행하겠습니다. 부디 하나님이 우리와 어머니 조국과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보우하시기를.”


“...행운을 빕니다. 하나님이 대령과 우리 어머니 조국을,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보우하시기를.”


주사위는 던져졌다.


------


-부록 1. 29화에 삽화가 추가되었습니다. 사실 31화에 추가된 삽화하고 통일성을 위해 옷을 조금 수정하고 싶긴 했는데, 너무 귀찮아서...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689908&page=1

 




삽화 내용은 나싸우를 비롯한 자매 함딸들이 나치에 의해 산채로 해체되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보고 절망하는 장면입니다.


-이제 외전도 진짜 얼마 안 남았네요. 원래 길어야 10화 정도의 중편으로 끝낼 예정이다 130편 넘게 연재했던 바덴 본편도 그랬지만, 이번 외전도 이렇게까지 길어질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아마 3~4화, 길어도 5~6화 내로는 어찌어찌 완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 작품 준비하느라 연재주기는 엄청나게 비정기적이고 불규칙하겠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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