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동래

전쟁 이후 동래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해안가에 주로 몰려있던 시설들은 읍성 근방으로 이전되었고, 읍성은 유사시 시민들이 대피할수 있는 시설로 개조되었다. 전쟁의 기억을 여전히 가지고있던 동래 시민들과 지역 유지, 정치인들은 모스크바 삼중벽을 본따 동래에도 대규모 장벽들을 건설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었다.

그중 제1성벽이자 최외곽 장벽으로 있는 해안가 장벽은 동래 전투에서 매우 중요한 목표였다. 지금은 쇠락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자리를 가지는 해운대에서 나와 김대붕씨는 저 장벽들을 보며 다시한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맨처음에 작전 개요가 나왔을때는 속으로 탄식했더랬죠. '와, 저 사지로 끼어들어갈 인간 샌드위치는 진짜 불쌍하다.' 근데 그게 시팔 제가 될줄은.

구체적인 작전 개요를 알수 있을까요?

원래 계획은 장갑열차 우르르 끌고가서 동래에 있던 놈들을 외곽 역쪽으로 유인해 뚝배기 깨는게 목적이더랬죠. 읍성쪽이랑 정 반대 방향으로 해서 말이에요. 당시 인도에서 꽤 쓸모있게 실시했지만 결국 탄약 부족으로 실패한 RS방진법을 장갑열차에 맞게 전술 개량하고 장갑열차 짐칸이나 심지어 탑승칸 빈곳까지 탄약박스들 꽉꽉 채우고 가다고했죠. 거기까지는 좋았어요. 전주 완전 해방작전이랑 진주성 수복작전때도 쏠쏠하게 써먹은 방식이니까.

근데 문제는 동래가 좀비놈들의 상륙지가 되어버렸다는 점입니다. 동래 시내에 있는 놈들을 유인해도 바다속에서 또 얼마나 몰려올지 감도 안잡히는 상황이었고. 필연적으로 장갑열차의 탄약이 먼저 떨어져 철수하면, 자극받은 좀비들이 돌아다니다가 동래읍성에 눈길이 돌아가면 그대로 게임 오버인거죠.

읍성에서 사람들을 철수시키면 수월하지 않을까요?

당시 읍성에 최소 250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을 어떻게 철수시킬까요? 헬기? 그 특이하게 생긴 헬기는 끽해야 10대정도밖에 없었고 10여명이 타면 다행이죠. 다른 헬기도 마찬가지지만은. 그래도 작전 시작 전까지 1000여명을 탈출시켰다고 하지만 여전히 1500명이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작전은 2파트로 나눠집니다. 1파트는 원본대로 동래 시내에 있는 좀비놈들을 외곽 역사로 유인하여 장갑열차로 격멸합니다. 여기까지는 동일해요. 2파트는 외곽으로 좀비들이 빠진 틈을 타서 해안가로 침투, 임시 방벽을 세운 다음에 읍성 병력과 합류하여 도시 내 잔류한 좀비들을 퇴치하는겁니다.

해안가 침투요? 하지만 그렇게되면 바다속 좀비들이-

타이밍이 모든걸 가릅니다. 도시 내 좀비들 중 적정한 수가 유인되고 저 바다속 파인애플 좀비들이 눈치채기전에 침투하면 '적절한 무력제압'이 가능할 정도의 수만 남게 될거고 그놈들을 적절히 대응하면서 빠르게 방벽을 세우는게 목적이었죠. 한마디로 어디 하나 삐끗나면 해안침투팀은 다죽는 계획이었다는겁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저나 동기한데 권유하는걸 들었을때 ㅈ박았음을 깨달았죠. 해안 침투팀은 말그대로 소수 정예만 데려가는 거였는데 적절한 공병 경력과 오랜기간 대좀비전을 최전선에서 겪었던 이들을 최우선으로 뽑는다하더라구요. 공병경력이라 함은 비행장 까는걸로 충족되고 최전방 경력은 그 비행장 깔러 간 곳들이 죄다 최전방들이었으니 자격은 되긴 되는거였죠. 근데 사지중에 사지를 가라는 말에 누가 덜컥 동의를 한답니까.

네,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저희 읍성에 자원해서 온 예비군들만 200여명에 그중 연세 많으신 분들이나 병치레 하시는분들을 제하고도 100여명이 남더군요. 다른 읍성, 특히 한양 공항이나 남한산성에서는 거의 전원이 가겠다면서 난리였다고 합니다. 뭐, 그 친구들은 화성 때 제일 가까운데 있던 친구들이니 눈돌아간건 이해하지만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무섭다고 저혼자 빠지면 뭐가 됩니까. 그때는 아직 젊은 혈기가 남아있으니 잘못되도 죽기밖에 더하겠어?란 생각에 바로 고를 외쳤죠 뭐. 지금 생각하면 참 겁대가리 상실한건데.

최종 브리핑때 신문이랑 라디오에서만 보고 들은(전쟁당시 TV보도는 전기를 아끼기 위해 TV방영은 하지 않았었다.) 장군들에 처음보는 장군들도 여럿이 나왔더군요. 김유진 장군에 이원철 장군에 그 동래 담당관이 누구였더라? 아무튼 그 분들도 직접 작전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은 안심되더랬죠. 흠. 그래도 저승길 가는 길 선도하는 장교들이 있으니 편하겠구나.

자리에서 일어난 김대붕씨는 장벽쪽에 천천히 다가가며 말을 이어나갔다.

원래 이 성벽이 아니었습니다. 이거보다 낮았죠. 3-4m정도에 밑부분이 두꺼운 조립식 장벽이더랬죠. 김유진 장군이 이걸보고 '베를린 장벽' 운운하던데, 베를린에 장벽이 있었던가요?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 넘어가고. 이걸 조각으로 나눠서 헬기로 운송, 바닥에 곧바로 박아버리는 방식으로 설치하는 거랬죠. 이걸 들고 이륙하면 헬기가 동래 오기도전에 퍼진다길래 해군까지 동원한다고 했습니다. 백두산함이나 한라산함뿐만 아니라 일본측의 지원을 받아 아카기, 소류에 프랑스 전함까지 총 동원해서 이 장벽들 실고 해상에서 공수를 한다는 겁니다. 그 이야기 듣고 오, 여차하면 헤엄쳐서 그 배까지 튀면 되겠네라고 생각했다가 아 맞다 저 장벽 쌓는 이유가 저 바다속 파인애플 새끼들 때문이었다는걸 깨닫고 다시 시무룩해졌죠. 그 뒤로 전 세계가 지켜보니 어쩌니 같은 소리도 들었는데 잘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다음날 작전일인데 누가 그런게 귀에 들어올까요. 

그리고 그 때 제대로 못들은걸 두고두고 후회하게 됩니다.

---------------

깨달았다. 군밤뽕이 빠진게 아니라 좀비뽕이 빠진거였어. 다음편에 본편 끝나고 에필로그 편쓰고 끝낼게. 나눠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