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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참전경험담(2)

ㅇㅇ(203.123) 2020.05.03 19:44:07
조회 1343 추천 26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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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다짜고짜 '그러고 전쟁났습니다', 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면 많이 갑작스러울테니, 잠시 시계바늘을 조금 앞으로 돌려서, 보다 전체적인 진행상황을 살펴보는것이 좋겠다.


  6월 25일, 개전 시점에서 아군 7사단의 담당 섹터인 포천 - 동두천 축선 일대에서는 지연전을 골자로 한 아군의 작계아래서 순차적으로 주요 교량들의 폭파지시가 떨어지고 장애물 및 지뢰지대가 대대적으로 구축되었다. 물론, 개전 초의 혼란과 미숙한 훈련도 탓에 모든 사항이 예정대로 진행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적의 작전계획을 어그러트릴 정도는 되었다. 


  북괴군의 맹렬하지만 어설픈 포격이 지나가고, 단단히 엄폐된 유개호에서 모습을 드러낸 장병들은 1선 전초에서부터 완강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특히 포천 축선의 경우에는, 1선 바로 뒷편의 만세교가 적기에 폭파가 되면서 북괴군 주공의 첫 한발자국부터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포천 축선은 북괴군의 주공 방면중에서도 기갑부대가 대량으로 집중된 곳이었다. 25일 당일 투입한 120대의 전차중 80대가 포천 방면으로 들어가려했는데, 이것이 첫 단계에서부터 어그러진것이다.


  의외로 야무진 7사단 포병연대의 포격을 무릅쓰고 파괴된 교량과 그 주변의 장애물 및 그것의 잔해들을 북괴 전차부대가 극복한 시점은 25일 15시 30분경. 교량 폭파 순간에 스탈린 중전차 한 대를, 그리고 조막만한 산포 포격 따위에 중전차 한 대를 더 어이없이 파괴당한 북괴군 전차부대는 이미 독이 잔뜩 올라 있었지만, 그들에겐 애석하게도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스탈린 중전차를 앞세우며 43번 국도를 타고 남진하기 시작한 전차대가 진짜 시작점에 맞딱뜨리자 마지못해 다시 멈춰서기 시작했다. 2선 주저항선까지 가는 길목들은 그들이 1선 전초에 발이 묶인 십수시간동안 국군 공병대와 인접 주둔부대들의 노력으로 도로대화구와 낙석장애물, 지뢰지대가 급하게나마 나름 정성들여 구축이 되어있던 것이다.


  이제와서 전차를 다시 뒤로 돌려서 동두천쪽으로 투입해야한다, 아니다 거기도 막히긴 마찬가진데 그냥 여기를 뚫어야 한다, 북괴 지휘부는 자기들끼리 옥신각신하고 소련 군사고문단들은 복장이 터져 가슴을 쥐어뜯는 와중에 좁은 국도에 몰린 차량들로 인한 교통정체까지. 그것이 6월 25일 개전 당일날 북괴군의 주공이었던 포천 - 동두천 축선에서 벌어지던 촌극이었다. 


  만약 공군에 쓸만한 전폭기가 여남은대만 있었더라면, 아니 포병에 쓸민한 중포만 좀 있었더라면 이들을 도로 위에서 녹여버릴수도 있었겠지만, 애석하게도 포병과 공군이 앞서도 이야기했듯 너무나도 미약한 관계로 이 천혜의 기회는 그저 공세를 지연시키는 수준에 그칠수밖에 없었지만, 어쩔수 없는 일을 가지고 마음 써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기 마련이다.

  

  이 단계까지는 우리 전차들이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독립기갑연대, 그 중에서도 우리  기갑수색중대는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 의 핵심 예비대로서, 의정부지구 사령관을 겸임하는 7사단장 유재흥 대령의 결심이 있기 전에는 2선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131시부로 전시 주둔지인 의정부의 임시사령부 연병장에 도착한 우리는 중대장 지시로 야전식사를 시작했다. 사령부 임시 건물에는 인근 부녀회에서 나오신 아주머니들이 점심식사로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건빵봉지 대신 주먹밥에 삶은감자라도 따뜻한 식사를 그럭저럭 배불리 마칠 수 있었다. 그 다음엔 중대장 명의로 각 단차마다 한 명씩만을 30분씩 교대로 돌리며 새우잠이나마 숙면을 취할것을 명 받았다. 꼭두새벽부터 긴장하며 전선까지 장거리 운전을 한데에 대한 피로회복 차원의 조치였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포화를 주고받고 있을 전우들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엄청난 호사였다. 보병 애들이 눈치가 보여서, 차 내에서 쪽잠을 자게 만들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여러분들도 대충 그 사정을 알만하리라.


  너무 긴장되는 나머지 잠이 오지 않는다는 부류들도 꽤 많았다. 그럴만도 했다. 지척에서 쾅쾅대는 총성과 폭발음이 들려오는 판국에 아무렇잖게 눈을 붙일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신기한 일일 것이다. 뭐 개인적인 경험담으로는 전선에서의 그런 불면증(?)도 길어봐야 사나흘이면 싹 사라지기 마련이었지만 말이다.


  "너도 잠 안오냐?"


  "예, 뭐… 차 안은 너무 더워서 말이죠. 소대장님도 잠 안오십니까?"


  "오랜만이라 좀 긴장된다. 근데 몇 일 있으면 몸이 다 적응 할거야. 자네도, 나도."


  조종수 윤상영 하사와 그렇게 노가리를 까기 시작했다. 전쟁 경험은 없지만 맹훈련을 받은 햇병아리 정예병들이 다 그렇듯, 이 녀석도 긴장은 하고 있을지언정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 왜, '나를 제 자리에 데려다주기만 하면 적을 다 쓸어버릴수 있다.'같은 허세말이다. 사실 이 녀석이 느끼고 있다던 긴장은 '흥분'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기가 죽어있는 것 보다는 자신있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터라 굳이 기를 죽이려 애쓰진 않았다. 그런식으로 긴장하다가 결국은 육체적 피로가 정신적 각성을 압도해 결국 잠들고, 그럴때쯤 자던 녀석이 깨어나서 대신 무전기를 붙잡고. 25일은 그런식으로 지나갔다. 모든게 대책없이 꼬여서 머리를 싸쥐고 우왕좌왕하던 북괴놈들이나, 어쨌든 열세한 상황에서 기습까지 당해 고전하던 7사단 장병들에게는 이런 감상을 듣는다면 큰 위화감을 느꼈으리라.



* * * * *

  


  스탈린 중전차와의 대결은 참 끔찍한 일이었다. 적 전차의 포수 숙련도가 평균 수준만 되었어도 아마 소대 전차중 한두대는 격파되어 구난차량의 크레인에 끌려갔을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적들이 호기롭게 날린 초탄은 지근거리에서 흙먼지만 만들고 말았다. 


  위장이 잘 돼서 빗나간것은 아니었다. 슬프게도 우리의 임무는 미끼였다. 적 중전차의 공방능력은 우리 중전차의 그것을 한수 상회하는 수준. 43번 국도를 타고 쭉 내려오는 그들이 소련군이었다면 우리는 그저 지뢰를 밟고 전차가 멈추길 기대하는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은 그런 정예군이 아닌, 우리와 같은 신생 군대에 불과한 북괴군이었다. 충분한 포병이나 항공지원도 없이, 심지어는 보병 엄호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설프게 공병을 앞세워 지뢰지대를 걷어내며 느릿느릿 앞장서고 있었고,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국도 측면의 고지와 사면에 진지를 구축하고 매복해있던 보병의 육박공격이 현실성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지난 25일 하루동안의 서전을 통해, 우리 보병들과 수뇌부는 적 중전차에게는 대전차포와 2.36인치 바주카포가 모두 씨알도 안 먹힌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득했다. 


  그들로서도 중전차를 저지하려면 수류탄과 박격포탄을 TNT 블록과 엮어서 만든 급조폭약으로 육박공격을 하는 수 밖에 없었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제일 확실한 격파 방법이었다. 


  적 중전차연대(아측 기준으로 대대규모)의 공세는 첫 순간은 나쁘지 않았다. 공병대를 앞세운 적 중전차들은 상당한 거리의 장애물지대를 돌파하며 우리 보병들이 도로 좌우측 사면에 구축한 진지를 무시하고 남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적들 입장에서 봐도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았는데, 왜냐하면 아군의 포병 때문이었다.


  포병연대의 105밀리 경포 화력은 중전차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루 종일 적 기갑부대의 머리 위로 틈만 나면 포탄을 날려댔지만, 재수좋게 적  중전차의 엔진실 상부를 직격해서 잡은 한 대를 제외하면 효과는 영 시원찮았다.


  그러나 표적이 사람이라면 경포도 충분히 파괴적이었다. 개전 첫 날의 서전에서 장애물지대에 봉착해 그것을 극복하려 했던 적 보병과 공병들은 빈약하지만 잘 훈련돼있던 아군 포병대의 효력사에 상당한 피해를 보았고, 그것은 다음날 26일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안 남은 공병들을 다시 앞세워 무리하게 돌파를 시도하던 북괴군 중전차연대는 자신들의 진격을 위한 댓가로서 그 얼마 안 남은 공병들이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해야 했다.


  더구나, 장애물지대를 개척하던 북괴군 공병들은 미숙한 부대운용탓인지 전차부대와 지나치게 가깝게 붙어있는 상태였다. 북괴군 중전차의 전차병들은 그 모습을 보며, 어제 재수없게 포격에 맞아 박살난 자신들의 중전차와, 중상을 입거나 주검이 되어 후방으로 실려간 자신들의 '동무'들을 떠올리고는 몸서리를 쳤다.


  앞서도 가정했던 것 처럼 적이 소련군이었다면, 이런 미숙한 병력 운용을 하지도 않았겠지만 설령 눈 앞에서 공병대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고도 전차병들이 자신들의 생명에 대한 위협을 느끼며 동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미숙련병들이었고, 대부분은 안전할거라는 생각보단 자신도 재수없이 당할수 있단 생각을 먼저 떠올렸다. 


  이들 머리 위에 떨어지던 포격은 포탄이며 야포며 모두 모자란 국군 입장에서나 맹렬한 포격이었지, 2차대전을 경험한 소련군 군사고문단들이 보기엔 충분히 기갑부대가 극복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북괴군 장병들의 체감은 그보다 심각했다.


  그렇게 심리적 동요가 오는 상황에서, 공병대가 더이상의 손해를 감당할 수 없게되어 전멸만 면하고 다시 후방으로 빠지는 그 순간, 고지의 보병 진지에서 관측지점을 만들어놓았던 포병 관측장교들의 지시에 따라 포격이 전차대와 어설프게 거리를 두느라 지나치게 후방에 이격돼있던 적 보병들을 향해 옮겨졌다. 공병도 보병도 붙지 못하고 오롯이 중전차만 남게 된 직후, 아주 짧은 순간이 우리 전차소대의 차례였다.


  밤동안 은밀하게 차량을 전진시켰던 우리 전차소대는 꼼꼼하게 위장된 차폐진지에서 적 전차에 대한 매복아닌 매복을 시작했다. 적 중전차와 그다지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로 정면을 마주보는 가운데 벌어진 기묘한 매복었지만, 그도 그럴것이 주공은 어디까지나 보병이었기 때문이다.


  "많이는 바라지 않겠다.각 단차들 모두 세 발씩 쏠 동안만 버티자." 박 대위는 소대장인 나와 단차장들을 불러모아놓고 그렇게 지시했었다.


  "포병으로 혼을 빼놓은 상태에서 우리가 저놈들에게 도발을 걸면, 저놈들은 전방에 시선을 집중하게 될거다. 그러면 그 틈을 타 보병이 고지 양쪽 사면에서 폭약을 가지고 전력질주해서 전차에 접근할거다. 거리만 가까워지면, 보병 엄호가 없는 적 전차부대는 먹잇감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계획은 성공했다. 1950년의 반절을 긴장에 떨게 만들었던 적 스탈린 중전차들은 어이없게 녹아내렸다. 아무리 측면 방어력이 뛰어난 중전차라고 하지만 높은 곳에 진지룰 구축하고 엔진실 상부를  조준하는 대전차포와 바주카포는 적 전차에게도 무시못할 위협이었다. 


  쏘아대는 아군 대전차부대 입장에서는 바주카포 포탄이 씨알도 안먹히는 경우가 많아서(나중에 알고보니, 불발탄이 끔찍하게 많아서 생긴 문제였다고 한다.) 애를 많이 먹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주력은 결국 급조 대전차폭약을 들고 산비탈을 줄달음질쳐 내려가던 보병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보병이 적 전차대와 접촉하기까지의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각오는 했으나 간담이 서늘해지는것은 어쩔수 없는 무서운 경험을 해야했다.


  "포수, 고속철갑탄, 적 전차, 11시 방향!"


  "표적확인!"


  "장전 끝!"


  "쏴!"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사격 절차였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빠른 속도로 전 전차의 포탑에 격돌한 90밀리 철갑탄이, 형편없어 보일 정도로 맥없이 튕겨나가는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만 했다. 


  나는 빼곰하게 내밀었던 머리통을 잽싸게 차내로 숙이면서 해치를 닫았다. 잠금장치까지 걸을 것 없이 닫아 붙이기만 하고 바로 잠망경으로 눈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이쪽 방향으로 적 중전차의 포탑이 돌아가는것이 보였다. 포수녀석이 '적 전차 멀쩡합니다!'라고 보고하는 목소리가 전차병 헬멧의 인터컴과 육성을 통해 동시에 들려온다. 


  눈 앞의 적 중전차는 둥글둥글하게 생겼지만, 언뜻 그 위로 다부지게 각진 모습의 독일군 야수 전차들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래, 5년 전의 내가 포수 조준경의 눈금 너머로 식은땀을 흘리며 바라보던 그 광경. 이젠 차장석 바로 앞에서 쭈그려앉아있는 조준호 하사가 그 시야로 그 기분을 느끼고 있을것이다. 나는 나의 단차장이자 소대장이었던 조슈아 중위, 아니 이젠 소령인 그 양반의 시야로 다시 이 좆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꼴이었다.


  찰나의 순간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해치를 닫은 보람이 있게 적 전차들 쪽에서 이쪽으로 포탄이 날아왔다. 아측의 위장이 꼼꼼한 탓인지, 저쪽의 포수 숙련도가 수준 이하인것인지, 어쩌면 둘 다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조금 앞서서 떨어진 포탄들은 상당한 폭발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저 새끼들, 장난 아닙니다!"


  "고폭탄이라 폭발이 큰 거다. 쫄지 말고 차탄 장전해! 동일 표적에 한번 더 사격한다!"


  물론 처음에 못 뚫었던 철갑탄이 이번이라고 정면장갑을 관통해줄리가 만무했지만, 어차피 격파를 기대하고 쏘는것도 아니었다. 몇 년만에 다시 경험하는 첫 전차전에서도 여전히 이런 무력감을 맛봐야 한다니, 5년 전처럼 무력감과 공포심 섞인 기분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적 전차의 대응사격을 한 번 더 받긴 했지만, 다행히 그것으로 끝이었다. 적은 우리를 대전차포 진지라고 생각을 했는지, 차탄도 고폭탄을 이쪽에 대고 사격했다. 


  한 발이 소대 2호차에 명중했지만, 다행히 고폭탄이 포탑 정면장갑에 명중한 터라 격파되지는 않았다. 포수조준경 두 개와 동축기관총이 전부 파손되고, 포탑 구동에 문제가 생겨 신속히 후방의 정비반쪽으로 차량을 빼야했지만, 사람이 죽고 다치는거에 비하면 경미한 손상이었다.


  야포를 억지로 전차포로 전용한 탓에 끔찍하게 느린 적 중전차의 재장전 속도 덕분에, 그 이후로는 포격을 받지 않고 그대로 보병이 자연스럽게 공격을 이어받았다. 나는 다시 해치를 열고 고개만 내밀고서, 과거 2차대전때 노획했던 독일제 '짜이스' 쌍안경으로 그 현장을 지켜보며 우리 단차 승무원들에게 상황을 전달해주었다.


  이런 식의 방어전이 열흘 내내 계속 이어졌다. 전차도 결국 한 대가 격파되어 구난차량의 크레인에 걸려 끌려가고, 승무원 세 명이 전사, 차장과 부조종수 두 명만 목숨을 건지는 불상사도 벌어졌다. 그나마 차는 나중에 고쳐 쓸 수 있다는 판정이라도 받아 다행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 몇 가지는 있었는데, 첫째로는 죽자사자 시간을 끈 덕분에 후방, 특히 서울의 민간인들과 정부기관이 피난을 떠날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미군이 전쟁에 나섰다는 점이었다. 6월 29일,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그의 전용기 '바탄'호를 타고 왔다 간 직후부터 야전부대에 미군 장교들 소집단이 통역병이나 군속 통역사를 하나둘씩 데리고 나타나더니만, 지상의 국군과 하늘의 미 공군기 사이를 이어주기 시작했다. 전선에서는 미 지상군의 파병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는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군사원조가 시작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때가 7월 3일이었다. 꾸준한 지연전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울까지 밀린 우리는 예비대였던 수도사단 병력들을 주축으로 미아리에 방어선을 치고 후위 부대의 한강 도강을 엄호하고 있었다. 


  포천-동두천에서 축석령, 의정부에 이르기까지 우리 연대와 함께 상당한 전과를 올렸지만 피해도 컸던 7사단 전우들이 한강철교와 인도교를 건너는동안, 사흘간 이어질 서울 시가전을 준비하고 있던 나와 중대장 박 대위는 레이놀드 중령에게 반가운 소식을 남몰래 하나 들을 수 있었다.


  "7월중으로는 주일미군의 1기병사단, 24보병사단을, 그리고 8월까지는 미 본토에서 수개 전차대대를 한반도로 증원할 계획이야. 그리고 미군 증원이 도착하는 즉시, 기갑연대를 후방으로 빼서 재편하기로 결정됐네."


  "재편이라면 혹시……."


  "기갑부대와 관련해서, 2개 대대의 M26 중전차와 반궤도 장갑차 1개 대대, 자주포 등 기타 지원차량들의 원조가 결정됐네. 상부에서는 현 독립기갑연대를 모체로 이 장비들을 활용해 증편작업을 거쳐서 기갑여단을 편성할 예정이지. 자네들 둘만 알고 있도록."



* * * * *



  전차포의 포성이 차내를 꽉 채웠다. 대장갑 목표물과의 교전을 위한 90밀리 APC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1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를 순식간에 가로지른 포탄이 T-34 전차의 차체 전면에 명중하자, 북괴 전차는 그 전의 맹렬한 기세는 간데없이 그대로 멈춰서 움직일줄을 몰랐다. 쌍안경으로 확대된 시야를 통해 차장 해치가 열리는것이 보였다. 난 사람이 나옴과 거의 동시에 다음 명령을 내렸다.


  “포수, 동축기관총, 적 전차병, 적 전차 잔해 위치.”


  "어떤 잔해 말씀이십니까?" 격파만 확인하고 시선을 다른 데로 옮기고 있던듯, 포수 조준호 하사가 정확한 지시를 요구했다.


  "방금 잡은놈."


  나의 세부적인 지시에 이어서 기관총 총성이 들렸다. 간신히 상반신을 내밀던 적 전차병이 육신이 그대로 전차 속으로 푹 꺼졌다. 같이 뒤따라오던 다른 적 전차 두 대는 다른 아군 단차들이 한대씩 사이좋게 잡은 모양이었다. 우왕좌왕하는 적 보병의 머리 위로 박격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무리가 된 것 같다.


  세 차례에 걸친 적의 진입 시도의 마지막은 그렇게 싱겁게 끝났다. 처음의 격렬함을 생각하면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다. 적이 이 지역에서 상실한 전차만 스물 여섯대에 달했다. 세 대의 전차는 충분히 제 몫을 한 셈이었다. 


  "저 머저리들, 왜 중전차를 안 보내는걸까요?"


  조 하사가 겨우 눈을 포수조준경에서 떼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녀석의 헬멧을 가볍게 툭 치고는, "재수없게 그런 소리하지 마라, 말이 씨가 될라." 하고 대꾸했다. 탄약수 채종욱 일병의 표정도 썩 좋진 않은것이, 나랑 비슷한 생각인가보다. 나는 탄약수의 심정까지 대변해서 조금 더 말을 이었다.


  "그놈의 중전차, 다시는 꼴도 보기 싫다. 그나마 미 공군이 끼어들고 나선 좀 잠잠한데 말이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미 공군의 B-26 폭격기 편대가 어느덧 하늘을 메우며 퇴각중인 적 병력이 아직 꽤 많은 지상의 기동로상에 로켓탄과 기총소사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나와 다른 전차 두 대에게 다른 전차들과 임무를 교대하라는 무전이 온 것도 그 와중이었다. 


  전선에 도착한 중대장차와 소대 5호차를 향해 경례를 한번 박아주고, 우리는 오랜만에 목욕은 못해도 건빵따위가 아닌 따뜻한 밥에 오침을 기대하며 전차를 남쪽방향으로 돌렸다. 오가는 길가는 예전같았으면 사람들이 웅성대는 제법 큰 거리였지만, 이젠 민간인은 아무도 없이 군인들이나 주위를 배회하고 있어 위화감이 심했다.


  최전선에서 살짝 후방에 위치한 소학교, 아니 국민학교를 징발해 구축한 후방의 임시 연대본부로 돌아와보니 레이놀드 중령이 나를 보고 반색을 했다.


  "수원비행장에 전개됐던 미군 전투병력이 방금 도착했네."


  "증편된 1개 대대규모 TF였죠?"


  "경포따위가 아닌 제대로 된 105밀리 곡사포도 1개 포대가 배속돼있지. 지금 이 시점에선 연합군 최강의 포병화력이라네. 아, 찰리. 마침 잘 왔네. 이쪽은 한국군 독립기갑연대의 전차소대장 민선호 중위야."


  연합군이라, 그거 참 어감 좋다. 내가 그렇게 혼자 생각하는 와중에,  "이야기 많이 들었네, 중위. 2차대전때 유럽에서 싸웠다면서." 라며 낯선 미군 하나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 저 사람이 '찰리'인가보다.


  "어쩌다보니 그때는 미군이었습니다. 하하……."


  "민 중위, 이쪽은 TF 스미스의 대대장인 찰스 스미스 중령일세. 내 웨스트포인트 동기이기도 하지."


  그렇게 이야기 물꼬가 트였다. 요컨데 이제 갓 한국에 온 그는 막연하게 한국이나 일본이나 별 차이 있겠어? 수준의 무지함과, 북괴군이라 해봐야 얼마나 강하겠냐 정도의 막연한 오만함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는 적어도 남이 해주는 충고를 귀담아 들을줄은 아는 사람이었다. 제반 조건들이 너무 안좋아서 큰 도움은 못 됐지만 말이다.


  이틀 후, 그와 내가 다시 만난 곳은 그의 TF가 진을 치고 있던 주둔지에서였다. 


  긴급 지원요청에 따라 도보대대 1중대와 함께 출발한 우리 중대는 귀중한 105밀리 곡사포 포대를 막 유린하려던 북괴군의 T-34 전차 중대를 기습하여 간단히 제압한 뒤, 보병 B, C중대가 주둔중이라던 전방 주둔지쪽으로 향했는데, 도착해보니 전차소대의 증원을 받은 대규모의 보병 공세를 상대로 고전하던 이들은 포병지원이 되지 않아 당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야전 전화와 무전기가 모두 먹통이 돼서 포병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자체 화력으로 교전에 임했던 이들은 우리가 도착한 시점에서 붕괴 직전에 내몰리고 있었다. 개인화기와 공용화기의 탄약이 바닥을 드러내기 일보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우리가 제일 먼저 해 준 것은 무전기를 빌려주는 일이었다. 


  뒤늦게나마 재 연결된 통신으로 105밀리 포격을 불러오는 한편, 우리 전차의 직접 화력지원과 함께 우리 중대의 하차조나 도보대대 1중대같은 기보의 인력증원에 힘입어서 TF 스미스는 그들 예상 외의 위험천만한 첫 전투를 간신히 최악은 면한 채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자네들 말 대로, 우리가 가진 대전차화기들은 아무 소용이 없더구만. 어떤 적 전차는 바주카포 공격을 열 두번이나 받고도 멀쩡했다는 보고가 방금 도착했네."


  대전차포는 없이 무반동포와 바주카가 주력 대전차화기였던 이들 보병들은 역시나 T-34를 상대로도 상당히 고전을 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직사용의 HEAT라도 있어서 전차를 두어대 격파했던 105밀리 포대쪽이 나아보일 지경이었다.


  "아마 불발탄이 많아서 그런걸겁니다. 저희 보병들도 지난 몇 주간 바주카의 불발탄이 너무 많아 못 잡은 전차가 꽤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나마 자네랑 KMAG 보고서에서 말해준 대 약점을 노려서 이정도였어. T-34가 저 정도면, 중전차는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구만."


  그나마 TF 스미스의 핏값은 헛되지만은 않아 다행이었다.


  6월 말부터 빗발치듯 올라가던 KMAG의 한국군의 대전차전 결과 보고서들은 한국군의 훈련부족 탓일거라며 간단히 묵살되었지만, 대전차전의 훈련도 수준에서 국군과 별반 다를 것 없던 TF 스미스의 경험은 즉각 반영이 되어, 7월 말경에 더욱 크고 강력해진 신형 바주카포들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북괴군이 공세종말점에 도달하여 대전을 앞두고 전선이 정체된 것도 그 때 즈음이었고, 주일미군의 1기병사단과 24보병사단 본대가 긴급전개되어 한 숨 돌리게 된 시기도 이 즈음이었다. 


  그리고 미군 2개 사단의 증편 완료 이야기를 한 데에서 감을 잡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굳이 설명을 하자면 우리 연대가 경남지역으로 빠져서 재편성 및 증편작업에 들어간 것도 그 때 즈음의 이야기였다.


  기병대대가 해체되어 군마들이 경찰로 이관되고, 장갑대대의 정찰 장갑차들이 각 보병사단으로 분산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일부 기병들은 경찰로 적을 옮겼고, 그러지 않은 병력들은 신규편성될 기계화보병대대에 그대로 흡수되었다. 당장 기보대대 두개의 이름이 각각 전통을 살린다면서 ‘도보기계화보병대대’, ‘기병기계화보병대대’이니 말 다 했다.


  빈 자리는 곧 공백을  채우고도 한참 남을 물량의 M26 퍼싱 중전차들로 메꿔졌다. 우리가 전방에서 밤잠 설쳐가며 싸우던 시기에, 후방의 종합학교에 신설된 전차과에서 편하게(?)교육을 받던 인력들도 기존 기간병력과 더해져 순식간에 2개 전차대대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기존의 도보대대와 자주포나 자주대공포, 경전차, 구난차량, 트럭 등이 붙어서 구성된 여러 신규편성 직할대들이 모이고, 우리 부대는 8월 6일부로 '독립기갑여단' 증편식을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장비만 채운다고 끝이 아니었다. 부대의 행정적 편성이 완려되어 증편식을 치르자 마자, 장비들과 함께 제주도로 옮겨진 우리들은 곧 기존 장갑차 운용요원들의 전차 운용교육, 중대급에서 여단 전체에 이르는 전술훈련, 공군과의 공지합동훈련 등 현대 기갑부대가 상상할수 있는 모든 종류의 훈련을 다 소화해야했다.


  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훈련의 연속인 상황에서 말단 이등병들부터 하사관들은 물론, 나나 대대장들같은 장교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임시수도 대구에서 열린 연합군 작전회의 참석하고 온 여단장과 여단 참모들은 묵묵히 상부에서 내려준 빡빡한 일정의 교육훈련 스케줄을 곧이곧대로 소화할 뿐이었다.


  미 TF 스미스 지원 공적으로 계급뿐인 특진을 했던 나는 여단 증편과 맞물려서 드디어 대위답게 중대장이 되어 있었다. 비록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장갑대대를 근간으로 한 '장갑전차대대'가 아닌 신규편성 '제 1전차대대'에 부임하긴 했지만, 1중대장이란 자리는  결코 만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자넬 1중대장 시킨걸거야." 흡연장에서 같이 담배를 태우던, 한때 기갑수색중대장이었던 1대대장 박대경 중령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마저 이었다.


  "고군반 과정도 생략시키고 약식으로 중대장 달아줄만큼 급하다는 이야기겠지. 그리고 그렇게 급하게 필요하니까 1중대장 자리만큼은 가장 경험이 풍부한 인재에게 맞긴다는걸테고."


  "그렇게 급하다면 곧 저희를 써먹긴 하는겁니까?"


  "그렇겠지. 마치 내일이라도 전투에 투입해야 할 것처럼 들들 볶고있잖나. 레이놀드 중령 그 양반도 뭔가 알고 있는 눈치고말야. 아, 고맙네."


  "아는거 말은 안 해 주덥니까?" 나는 새로 담배를 빼무는 박 중령에게 잽싸게 라이터로 불을 붙여줬다. "그래도 중대장이랑 대대장이랑은 급이 다르지 않습니까. 분명히 뭐 한마디 해 줬을거같은데."


  아는게 있는데도 말을 안 해주는건지, 정말로 들은게 없는건지 결국 이 이상의 무언가를 알아내진 못하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복귀했다. 훈련은 피곤했지만, 적어도 정말로 사람이 죽는 전투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그리고 지금이 힘들수록 실전에선 한 사람이라도 덜 상할거라는 생각에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그나마 밥이라도 삼시세끼 고기반찬으로 잘 나와서 다행이었다. 왠지 노르망디 상륙날 아침이 진수성찬이었던 과거가 생각나 영 꺼림찍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9월 11일부로 전 병력이 기존 계획을 중지하고 비상대기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몇일 안 있어서 전차대대와 기보대대는 백사장으로, 지원부대는 항구로 분산되었다. 전차를 끌고 백사장까지 나간 우리는 눈 앞에서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들어앉은 전차상륙함들을 보며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 드디어 올라가는구나.


  덩치가 산만한 전차 상륙함에 탔음에도, 배는 허구헌날 출렁거렸다. 미국에 갈 때, 영국으로 갈 때, 프랑스로 갈 때, 다시 미국으로, 한국으로, 또 미국으로 그렇게 여러번 배를 타고 큰 바다에 나가봤던 나는 어느새 제법 항해에 익숙한 몸이 되어 있었지만, 육지 출신 병사 대다수는 어지럼증과 구토에 시달렸다. 


  그러나 속을 그렇게 게워내면서도 니글거리는 미국 짬밥은 죽어라 챙겨먹었던걸로 기억한다. 미련해 보일 정도라서 어느 날은 내 단차의 탄약수였고 지금은 조종수를 하고 있는 채종욱 하사를 불러다가 한번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대답이 그 뭐라더라, 고기를 차려놔도 못 챙겨먹는 놈은 빙신이라던가. 


  먼 훗날 미국 전쟁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딱 한번, 극장에서 첫 개봉때 봤었는데, 군대 취사병으로 입대했던 수병이 양질의 고기를 군 취사장이 어떻게 망쳐놓는지를 구구절절히 설명하며 분개하는 장면을 보았었다. 


  양키들 눈에는 그 날의 그 함내 병영식당 메뉴도 그런 짬밥에 불과했겠지만, 그런 짬밥 반찬으로 나오는 고기에도 눈이 돌아가던게 그 시절의, 그리고 그 한참 후에도 여전했던게 가난한 군대 한국 육군의 실상이었다. 


  아무튼, 배에 타고서도 몇 일이 지나도 계속 물 위를 달리자, 어느덧 항해와 배멀미에 익숙해져 생각을 할 시간이 생긴 병사들 사이에서 슬슬 우리가 단순한 증원목적으로 부산에 가는게 아니라 상륙작전을 하러 가는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륙 전날이 되어서야 우리에게 상륙지점이 통보되었다. 인천이었다.


  확실히 제일 적절한 장소였다. 나진은 너무 북쪽이고, 충청도 어디쯤은 전선과 너무 가깝다. 적당히 후방이면서 서울과도 가까운 곳은 인천밖에 없었다. 조석간만의 차가 어쩌네 기상조건이 어쩌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뱃전에 나와서 사전 준비 포격/폭격의 위력에 새삼 몸서리치고, 월미도를 향하는 상륙 1파의 상륙정들이 푸른 바다 위에 하얀 항적들을 그리며 땅으로 향하는 장관도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레드 비치'로 가는 1파를 볼수는 없었다. 왜냐면 우리가 레드 비치에 뒤어어 상륙할 차례라서였다. 9월 15일 낮의 일이었다.



* * * * *



  항공 지원과 포병 지원을 모두 검토해 보았지만, 요청한 후엔 둘 다 아군이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저 스탈린 중전차들을 직접 해치워야 했다. 차라리 서울 시내 진입을 앞두고 연희고지를 비롯한 일련의 고지대를 놓고서 쟁탈전을 벌이던 때가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군들은 뭐랍니까? 거기 원래 미 해병 5연대 담당 구역이잖습니까."


  "걔들이 우리보고 대신 좀 해달란다. 자기들도 피해가 컸대."


  "새끼들, 맨날 T-34하고만 부대껴봤지 스탈린 중전차는 처음이라서 당황했나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새삼 답답해졌다. 개전 첫 주간의 지연전 기간동안 다 녹아버렸을 줄 알았던 스탈린 중전차가 세 대 씩이나 중앙청 앞에서 진을 치고 있을줄을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냔말이다.


  결국 고심 끝에 우리가 결정한 파훼법은 예전의 응용이었다. 어차피 맞으면 죽기는 마찬가지라면, 작고 눈에 덜 띄는 보병쪽이 훨씬 성공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병 혼자만 나가몀 그거 역시 개죽음이긴 마찬가지였다. 


  포병의 연막차장 역시 아군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반려된 이상(알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포병의 연막탄종은 다름아닌 WP다. 아군 위에 떨어지면 아닌 밤중에 불벼락을 맞는 셈이다.), 결국 연막차장을 해주고 보병이 최대한 가깝게 다가갈수 있도록 우리 전차들이 도와줘야 했다. 그 결과가 지금같은 개판이었다.


  "쏴! 이후부터 차탄장전시 적 전차 시야부터 차단, 이후는 포수 재량아래 임의 교전!"


  나의 그런 명령에 포수 조 하사는 '장전 끝'이 들릴때마다 사격을 복창하고는 요소요소의 적 화집점과 전차를 향해 포탄을 날려댔다. 보통 포탄이 아니었다. 카트릿지, 나인티 밀리미터 스모크, 괄호열고 더블유 피 괄호 닫고, 엠 쓰리원쓰리. 어차피 적 전차를 격파할 수 없다면, 눈이라도 가려야했다. 


  임의로 교전할것을 지시한 나는 바로 열린 해치 너머로 상반신을 꺼내놓았다. 차장 해치 앞쪽에 중기관총 마운트를 새로 용접해 붙인 이유는 바로 지금같은 때를 위해서였다.


  [ - 여기, 3호차 피탄! 차장, 포수 전사! 탄약수 중상! 탈출하겠음, 이상! ]


  "4호차는 3호차 승무원 탈출 엄호! 각 단차들은 초기 계획대로 교전한다. 눈을 가려야 우리도 살고 보병도 산다, 이상!"


  이럴줄 알고 박격포로라도 백린연막을 어느정도 투사하고 전차를 내보냈던건데. 내 판단착오라는 생각에 속이 쓰렸다. 3호차 차장은 내 전차 조종수였던 윤상영 이등중사였다. 


  부대 증편 과정에서 기존 인력 상당수가 다른 차로 넘어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자기가 네 사람 명줄을 잡고 좌지우지할 자격이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도 그럭저럭 자기 일을 해 나가던 녀석이었는데. 한숨이 나오려는걸 의식적으로 차단했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하얀 연막을 뚫고 날아드는 예광탄의 위치에 .50구경 중기관총 총구를 지향하고, 방아쇠를 눌러댔다. 최대한 적의 기세를 꺾어두는게 중요했다. 누군가를 맞춰 죽일 총알에는 맞아 죽는놈의 군번이 써있다는, 오래 전부터 병사들 사이에서 구전되어온 전설이 있었다. 이렇게 뿌리다보면, 그중 한 발 쯤에는 군번이 맞는 상대가 있지 않을까.


  그 와중에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대기중이던 해병들이 착검된 총검 날을 번득이며 함성과 함께 자욱한 연막속으로 몸을 던졌다. 문득 방독면을 쓴 채로 저렇게 크게 소리지르면서 뛰어나가면 나중에 숨이 많이 찰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우리 해병들은 옷차림만 보면 미 해병과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중앙청에 게양할거라며 너스레를 떨던 대형 태극기를 온 몸에 두른채로 달려나가는 모습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틀림없는 한국 해병들이었다.


  "중대, 사격 중지!"라는 나의 명령에 격렬하게 불을 뿜던 포탄과 총알 세례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일제히 멎었다. 대신 저 뭉게뭉게 자욱한 흰 연막 너머에서 총성과 함성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중앙청 꼭대기의 화집점에 한 방 맞췄던 연막이 잦아들고, 조그맣게 생긴 둥그런 돔과 뾰족한 끄트머리가 언뜻 보였다. 중앙청에 걸려있던 태극기를 회수하고 철수길에 오르던 수도사단 병사 누군가의 분에 찬 얼굴이 언뜻 생각났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지금 이 자리에 그가 함께 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뜻 감상적이 되어 상념에 젖었다. 


  큼지막한 폭발이 연달아서 벌어지며, 폭압이 연막을 어느정도 가시게 만든 것이 그 직후의 일이었다. 연막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하여 전방의 물체를 분간이 가능한 정도가 되자, 나는 예하 전차들에게 전차포 사격을 중지하고 동축기관총으로만 지원할것을 지시했다. 중앙청 건물 코앞에 당도한 해병과 북괴군이 총알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잘못하면 아군이 다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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