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애프터 스쿨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애프터 스쿨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싱글벙글 러시아 도시 vs 서방 도시 격차수준.jpg 휘문
- [단독] 사직 전공의들, 피부·성형 강연장에 몰려 의갤러
- 줄가자미 후기(씹스압) 금태충
- 사람 무는 개 이제 안락사 가능…news 특상。
- 각국의 저출산 대책으로 보는 우리나라 대책 ㅇㅇ
- 전두환이 북한 정권 맛탱이 가게 만든 방법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Carmichael
- 2024.04.27 R30 스카이라인 한강벙 후기 카나치
- 고물가 속 '버틸 수가 없다'…자영업 5곳 중 1곳은 폐업 테클란
- 기안84 "대학교는 연애하러 가는 곳이다" 야갤러
- 류수영의 만원 돼지갈비찜 레시피..jpg ㅇㅇ
- 참사, 또 참사, 또 ‘모르쇠’… 들끓는 정몽규 축구협회장 책임론 서부간선도로
- 감자대왕 프리드리히 1 김초콜렛
- 후쿠오카 다녀왔다! 사진봐주라! (사진 스압 주의) 이러개
- 싱글벙글 촬영현장.jpg Secretpie
- 뉴욕의 독특한 알바생 비대면 캐셔 테클란
[단독]방탄소년단 ‘음원사재기’ 사실이었나···재판부 ‘불법마케팅’ 명시
- 관련게시물 : 싱글벙글 케이팝 1황 사재기 논란5분전 뉴스다- 드디어 하이브 사재기+단월드 뉴스 막 올라옴하이브가 입장문을 내자 드디어 올라오기 시작한 기사들ㅋㅋ 심지어 공중파도 사재기 의혹 노래 제목까지 언급하면서 보도함ㅋㅋ 2015년 빅히트 측 해당 사재기 마케팅 판결문 그리고 KBS가 언급한 I NEED U 전후 방탄 성적 자기가 좆됨 감지한 시혁이면 개추ㅋㅋ - 단월드 사재기 역사가 생각보다 깊긔2000년대부터 신도 대상으로 한 사재기 노하우로 뿡을 키웠나보긔
작성자 : ㅇㅇ고정닉
CM PUNK IS ALL ELITE 스토리 6편
프롤로그https://gall.dcinside.com/wwe/31045481편https://gall.dcinside.com/wwe/31047832편https://gall.dcinside.com/wwe/31087353편https://gall.dcinside.com/wwe/31094964편https://gall.dcinside.com/wwe/31097385편https://gall.dcinside.com/wwe/31140555-5편(외전)https://gall.dcinside.com/wwe/3118682워크인지 슛인지 혼란만 주다가 결국 슛으로 결론이 나버린 2022 올아웃 사태.CM 펑크 인터뷰 논란으로 화가 난 영벅스와 케니 오메가가 펑크가 있는 락커룸에 찾아갔으나,이에 위협(?)을 느꼈다고 판단한 펑크가 그대로 닉 잭슨에게 펀치를 날렸고싸움은 그야말로 우당탕탕 애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물론 알고보니 제일 착한 케니 오메가는 애완견이 놀랄까봐 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피신시키려고 했다는 아름다운 여담이 밝혀지기도 했었다.이들의 싸움에 본격적인 원인은 행맨과의 대립이 원인이었다.(https://gall.dcinside.com/wwe/2362581)바로 대립과정 도중 서로 합의가 되었던 대본이 아닌, 즉흥적으로 펑크가 당황하게 만들었던 세그먼트가펑크와의 불화를 만들어낸 주된 원인이기도 했었기 때문. 이때 당시에는 화려한 전적이 있는 펑크를 까는 여론이많았으나 시간이 지날 수록 행맨 페이지도 잘한 건 없다라는 여론도 무게가 기울이고 있다.(엘리트와 콜트 카바나와 친분이 두터웠기에 이러한 세그먼트를 날린게 아니었냐는 추측)*콜트 카바나와 CM 펑크는 인디시절부터 베프였으나 사이가 틀어져서 거의 남남으로 지냄.*이를 두고 훗날 ECW, WWE 레전드 알 스노우는 행맨의 잘못도 크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었다." 우리 레슬러들끼리는 내부적으로 '잡을 한다'는 표현보다 '호의를 베풀어준다'라는 표현을 더 많이 써. 레슬러들 사이에서 호의는 베풀고 돌려받기를 반복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숀 마이클스와 브렛 하트 사이에 문제가 생겼던 거야. 숀은 브렛한테 '내가 당신하고 입장이 뒤바뀌었다면, 난 당신한테 져주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했어. 상부층에서는 브렛한테 숀을 띄워주라고 시켰는데, 숀은 브렛한테다가 대고 '나는 입장이 바뀌었어도 당신을 띄워주지 않았을 거야'라고 했는데, 이건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가장 모욕적인 말이었으니까. 그럼 브렛 입장에서는 '그래? 그럼 내가 너한테 왜 져줘야 하는데?'라고 나올 수밖에 없던 거지. 프로모에서 자유로움이 없어야 한단 말이 아냐. 하지만 기존에 협의한 내용을 다 파기하고 제멋대로 프로모를 하는 상대방하고 뭘 믿고 또 비지니스를 해? " -빈스 루소 팟캐스트-* 참고로 알 스노우는 AEW의 위험한 경기 운영 방식에 대해 ' 저러다가 진짜로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 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었다.참고https://gall.dcinside.com/wwe/3106673본론으로 넘어가 올아웃 다음 날 토니칸은 엘리트 3인방의 타이틀 박탈. 해당 관련된 인물들을전부 중징계를 하며 빠르게 수습하기 위해 나선다.공석이 된 월드 챔피언십은 토너먼트를 통해서 새로운 챔피언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때문에 올아웃 이후 휴가를 떠날 예정이었던 목슬리는 휴가를 취소하고또 피를 흘리러 가야만 하는 슬픈 후일담까지 들려오게 되었다.그러나올아웃 사태 이후 AEW는 예전만큼의 명성은 얻어내지 못하였다.이런 상황일수록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단결 되어도 모자랄 시기에 선수들간 백스테이지에서 크고 작은 마찰들이 일어나기도 했었으며,친펑크 파였던 댁스 하우드가 자신의 팟캐에서 AEW에 대한 불만등을 토로하는 등 오히려 분위기만 안좋아지는 여론들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 수습보다는 선수 영입에 목말라 있던 토니칸은FA로 풀려난 선수들을 대거 영입을 하며 분위기를 전환 하려는 시도를 보였으나CM 펑크 만큼의 파급력은 보여주지 못하였다.그러던 2023년 5월 31일CM 펑크의 복귀를 알리는 오피셜이 또 한번 알려지게 되는데 ...(7편에서 계속)
작성자 : ㅇㅇ고정닉
정성글) 아카데미 시상식은 어떤 일을 겪었을까?
전세계 영화인들의 축제 아카데미 시상식.요즘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TV를 통해 전세계 생중계를 하기 때문에 시상식의 다양한 면모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코미디언이 아내를 조롱했다고 싸대기를 맞는 장면 같은 것들.그렇다면 아카데미 시상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어떻게 변화했을까?아카데미 시상식의 역사는 1929년으로 올라간다. 그때 할리우드는 MGM, 즉 메트로-골드윈-메이어(Metro-Goldwyn-Mayer)가 주도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톰과 제리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은 사자가 으르렁대는 오프닝을 기억할 것이다. MGM이 바로 그 ‘사자가 으르렁 대는‘ 영화사다.그 당시 MGM의 사장은 루이 B. 메이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1927년에 영화협회의 필요성과 영화계에서 시상식을 열어야 함을 역설했다.그렇게 1929년에 루스벨트 호텔에서 최초의 시상식이 열렸다. 첫 시상식에선 작품상, 감독상, 남•여우 주연상, 각색상 등의 부문을 시상했다.1회 시상식은 처음이라 그랬는지 지금이랑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대표적인 것이 그 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자넷 게이너(Janet Gaynor)의 사례이다. 그녀는 아카데미 역사상 유일하게 3개 영화에 출연한 것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인물이다.[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노마 시어러(Norma Shearer). 그녀는 8년 뒤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처음엔 영화인들만의 조촐한 행사였던 시상식은 1930년 3회 시상식 때부터 녹화되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물론 TV가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따로 간단히 녹화한 뒤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형식이었다.이 시상식이 TV로 중계된 것은 1953년 시상식부터였다.https://www.youtube.com/watch?v=Kt0mgFtdQwk이것은 3회 아카데미 시상식 당시의 영상이다. 나중에 상영 목적으로 따로 녹화한 것이라 매우 간단하게 진행된다. 코미디언의 개그도 없고, 사회자의 발언과 수상자들의 소감만이 담겨있다.초창기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특이한 문화가 있었다. 주최측에서 시상식날 밤 11시에 수상자를 언론에 공개했던 것이다. 그런데 LA 타임스에서 시상식을 하기도 전에 수상자를 발표하자 수상자를 수상 순간까지 비밀에 부치고 있다.초회 시상식부터 1942년까지 시상식은 호텔에서 열렸지만, 참석자가 증가하면서 이러한 것은 비실용적인 관행이 되었다. 그 후로 시상식은 극장에서 열리는 것으로 바뀌었다.흔히 아카데미 시상식을 논할 때 ‘백인들만의 잔치’라며 비난하는 여론이 있다. 실제로 여우주연상 같은 경우 2001년 할리 베리가 유일하게 흑인으로서 수상했다.다만 조연상의 경우 말이 다른데, 1940년 시상식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가정부 역으로 출연한 해티 맥대니얼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녀 이후로 흑인 여배우가 다시 상을 타기까지 50년의 세월이 걸렸다. 맥대니얼 다음 흑인 여우조연상 수상자는 <사랑과 영혼>에 나온 우피 골드버그였다.(흑인 남우주연상은 1963년 시드니 푸아티에가, 조연상은 1982년 루이스 고셋 주니어가 최초 수상했다)아카데미 시상식은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기억에 남을 만한 퍼포먼스가 자주 보였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있다면 1973년 시상식일 것이다.그 해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대부>의 말론 브란도였다. 그러나 그는 수상을 거부하고 아메리카 원주민 한 명을 내보내 미국 정부의 원주민 탄압 정책에 대해 항의하게 했다.그가 이런 퍼포먼스를 했던 이유는 그간 영화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악당’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었다. 한 해 전인 1972년 시상식에선 아카데미에서 찰리 채플린에게 특별상을 시상했다. 이때 영화인들은 ‘매카시즘에 의해 쫓겨난 이 위대한 영화인’을 위해 12분간 기립박수를 했고, 이는 아직까지 아카데미 사상 최장 기립박수로 남아있다.마지막으로 윌 스미스 이전 아카데미 사상 최악의 사건을 뽑자면 1974년 시상식일 것이다. 데이비드 니븐이 작품상 시상을 위해 사회를 보는 가운데, 한 남성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뛰쳐나왔기 때문이었다.그는 시상식에 난입해 자신이 이런 일을 한 이유를 밝혔는데, 길거리 행위예술가로서 사람들이 나체로 활보하는 걸 부끄러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밝혔다.전세계인들의 영화시상식, 아카데미 시상식은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여러 사건을 품고 있다. 누군가 그랬던가, 오래된 것은 그것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다음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