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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사망한 배우 손창호와 마지막 삶의 투쟁 2부.

김팔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11.30 21: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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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3월 23일 경향신문 기사.


일본유학을 떠나기전 손창호의 마지막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영화 : 대학신입생 오달자의 봄.

드라마 : MBC 주간 연속극 시장 사람들.


위 기사에서는 손창호가 1년간의 유학을 떠날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손창호의 유학은 결국 83년초부터 87년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손창호는 일본 유학기간중에도 잊혀진 계절, 대학 괴짜들,

춤추는 청춘대학, 말괄량이 대행진, 서울 흐림 한때 비, 꽃밭의 나비등


다수의 영화는 물론,


MBC의 사이코드라머 당신, 수사반장,

주간 연속극 첫사랑등에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손창호는 4년간의 유학을 통해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손창호의 영화감독 도전은 후일 손창호의 인생에 있어 큰 파국을 가져오게 된다.


이후 손창호는 어학연수 및 니혼대학 예술학부 유학으로

인해 소식이 뜸해지게 되지만 방학때마다 한국을 찾아 연기활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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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7월 12일 개봉한 김응천 감독의 영화 대학괴짜들에 손창호가 잠시 귀국해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영화 대학괴짜들의 주연은 송골매의 배철수와 얄개 시리즈의 이승현.

그리고 전영록과 함께 청춘 영화 단골 출연자였던 배우 이미영 역시 열연했다.


밴드 송골매의 배철수는 특별출연이 아니라 진짜 주연이었고,

'술동네 시인' 역으로 출연했다. 당시 송골매의 높은 인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사실.



1984년 손창호가 출연한 삼양식품의 라면일번지 서울역 앞편 TV 광고 .


당시 자매품이었던 짜짜로니와 함께 선보였던

라면일번지 광고에서 손창호가 특유의 코믹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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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8월 30일 경향신문 기사.


손창호는 1년만에 일시 귀국해 MBC의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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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8월 13일 매일경제신문 기사.


손창호는 85년 일시귀국해 MBC 수사반장에서

전과자역을 열연했고, 사이코드라머 당신에도 출연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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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3월 3일 경향신문 기사.


손창호는 MBC 주간드라마 첫사랑에 출연하며 연기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같은해 손창호는 김송원 감독의 영화 '서울 흐림 한때 비'에

출연해 김진아, 전무송, 신성일등과 함께 주연으로 열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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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2월 10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서울 흐림 한때 비'영화 광고.


결국 손창호는 1987년말 4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영구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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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4월 6일 경향신문 기사.


손창호는 귀국후 MBC 라디오 즐거운 오후 2시의 DJ로 방송계에 컴백한다.

그리고 위 기사에서 밝히고 있듯 당시 손창호는 영화 감독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손창호는 유학이후 연기변신을 꾀한다.

더 이상 코믹배우이기를 거부하고 성격파, 개성파 배우로서의 도전을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바로 MBC 베스트셀러극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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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6월 30일 경향신문 기사.


손창호는 10년이 넘게 주로 코믹한 연기를 선보여왔으나,

MBC 베스트셀러극장을 통해 정통연기를 펼칠 것이라 말하고 있다.


80년대 당시 MBC 베스트셀러극장은 KBS의 TV 문학관과 함께

수준높은 작품들을 다수 만들어내는 이른바 TV 영화들이었다.


연기변신을 꾀하던 손창호에게 있어 MBC 베스트셀러극장은 놓칠 수 없는 기회였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해인 1989년이 되어 손창호는 연극에까지 도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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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월 20일 매일경제 신문 기사.


손창호는 자수성가한 중년남자의 삶을 연기한 연극 '블루스맨'의 주연을 맡았고,

니혼대학 예술학부 영화학과에서

공부한 영화적인 방법을 유감없이 보여주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연극 '블루스맨'은 손창호의 이미지변신을 위한 재기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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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월 20일 동아일보 신문 기사.


일본 유학이후 손창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손창호는 자신의 연기적인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다시한번 연극에 도전했고, 극단 '월촌'을 창단하겠다는 포부까지 밝혔다.

(손창호는 MBC 탤런트 데뷔 이전인 1968년에 이미
전국 학생 연극경연대회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인물이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초 당시 일본유학을 다녀온 손창호가
진지하게 연기와 영화감독등에 임했던 것이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
여론화 되었고, 나 역시 당시의 손창호에 대한 여러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3개월 후 MBC 라디오는 프로그램 개편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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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4월 13일 경향신문 기사.


손창호가 진행하던 프로는 코미디언 고영수와 가수 진미령이

새로운 MC가 되었고, 손창호는 MBC 즐거운 오후 2시의 마이크를 내려놓게 된다.


하지만 손창호에게 있어 라디오 진행은 본업이 아니었다.


손창호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화감독이었고,

영화제작사를 설립할 계획까지 이미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창호는 다시한번 MBC 베스트셀러극장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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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1일 경향신문 기사.


손창호의 두번째 베스트셀러극장 출연작은

이른바 '남자 매춘부'의 이야기를 다룬 '상어'였다.


당시 '상어'는 한국 방송 역사상 최초의

'미성년자 시청불가' 딱지를 달게 된 방송계의 문제작이었고,


손창호는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지만, 이같은 문제작에 동참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90년, 손창호는 MBC의

어린이 드라마 '별난 가족 별난 학교'에 학교 선생님 역으로 출연한다.


1990년은 이미 멕시코의 인기 어린이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이 한국에서 방영되며 큰 인기를 얻고있던 때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한국의 교육현실을 역설적으로

비판하는 어린이 드라마 '별난 가족 별난 학교'가 방영되었고,

손창호는 엉뚱하지만 새로운 교육을 펼치는 교사 '옹돌찬'역을 맡았다.


모든 상식을 파괴하는 '옹돌찬' 교사역은 손창호와 아주 잘 어울리는 역이었다.


손창호는 둥글둥글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고집이 세고,

타협을 하지않는... 어찌보면 파격으로 점철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0년은 손창호 인생의 있어 최대 분수령이자 일대 전환기였다.

손창호가 드디어 영화감독으로서의 데뷔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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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8월 24일자 동아일보 기사.


위 기사에서 손창호가 감독을 맡은 영화 '동경아라랑'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경아리랑은 어떤 영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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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8월 31일 경향신문 기사.


손창호가 제작, 각본, 주연, 감독 모두를 맡았던 영화 '동경아리랑'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손창호 (대평)의 구애로 손창호와 약혼한 우연희 (선희)는 결혼자금을 준비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 손창호와 연락이 끊기자, 약혼남 손창호를 찾기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에는 후배 미희가 살고 있었고,

우연희손창호를 찾아다니지만 손창호의 행방은 묘연할 뿐이었다.


후배 미희는 일본 술집의 호스테스였고, 우연희는 미희가 일하던

일본 술집 마담의 눈에 띄어 술집의 호스테스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 체류 비자가 문제였다.

결국 우연희는 일본 체류 기간을 늘리기위해 돈많은 일본 노인과 위장결혼을 한다.


우연희는 그 노인과 보석상에 갔다가 우연히 손창호를 만나게 되지만,

손창호는 이미 새로운 부인을 맞이한 상태였고,

손창호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본래 자신의 약혼녀였던 우연희를 모르는 채 하며 무시한다.


우연희는 손창호의 행동에 충격을 받아 분노하게 된다.

그녀의 현실에 있어 복수란 결국 돈을 많이 벌어 잘 사는 것 뿐.


우연희는 부자 노인에게 붙어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지만,

결국 자신은 일개 '첩'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닿게 된다.


국민학교 여교사 우연희의 인생은 몰락하고 있었고,

우연희가 서 있는 곳은 '현대판 정신대'인 일본 술집의 한복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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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작 손창호 제작, 각본, 주연, 감독의 영화 동경아리랑 포스터. 영화의 원제原題는 '노리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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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9월 4일 동아일보 광고. '그녀의 다리사이로 후지산이 보인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한국여성이 일본 화류계에서 철저하게 망가지며 금전과 욕망의

노예가 되는 모습을 그린 영화 '동경아리랑'은 나름의 화제성과

흥행성을 지닌 영화였지만 1990년 당시 한국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90년은 임권택 감독, 박상민 주연의 영화 '장군의 아들'이

관객 수 60만명 돌파를 기록하며, 방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해였고,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들 역시 화제작들을 쏟아내며 한국 영화시장에 총공세를 펼친 시기였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영화 사랑과영혼과 다이하드2가 개봉한 해 역시 1990년이었다.)


관련글

1990년 영화 사랑과영혼과 Unchained Melody.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80&no=1132&s_type=search_all&s_keyword=%EC%98%81%ED%98%BC&page=1


손창호는 20여년에 걸친 배우생활을 집대성하는 한편,

일본유학을 통해 공부한 것을 모두 담은 역작을 만들어내려 했지만,


홍보를 위한 마케팅은 결국 '완전 성인영화'로 귀결되었고,

영화 '동경아리랑'은 당시 난립하던 수많은 에로영화의 하나로 치부되고 말았다.


영화 '동경아리랑'의 실패는 손창호에게 큰 타격을 입히게 되었다.

재산을 쏟아부은것은 물론, 빚까지 얻어 제작한 영화였기에 아픔은 더욱 컸다.


결국 동경아리랑은 손창호의 마지막 영화가 되었다.


배우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손창호는 1990년

동경아리랑 이후 그 어떤 영화에도 관여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수는 없었기에 손창호는 다시한번 MBC 드라마에 출연한다.

흔하디 흔한 연속극이 아닌 무려 삼일절 특집 드라마에서 주연을 따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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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2월 27일 동아일보 기사.


MBC의 삼일절 특집드라마 고궁은 1991년 3월 4일부터 5일까지 2부작으로 방영되었다.

그리고 손창호는 고궁의 제2부 주인공 역을 맡았다.


그런데 손창호가 일본 유학을 다녀왔기 때문이었을까?

손창호가 맡은 배역은 악덕사업을 일삼는 일본인 야마나카였다.


손창호는 야마나카 역을 통해 한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반일감정과

사대주의 그리고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뿌리깊은 허위의식을 역설적으로 비판했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MBC의 어린이 드라마

'별난 가족 별난 학교'의 옹돌찬 선생역과 비슷한 배역이었다.


90년대초 손창호의 배역 결정에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당시 배우 손창호는

'일상적인 배역'이 아닌 한국 사회를 '꼬집고 비트는'역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 드라마 '고궁'은 일종의 단막극이었고 영화 '동경아리랑'의 실패를 통해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손창호로서는 일종의 생계형 활동이 필요했다.


결국 손창호는 라디오 DJ로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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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4월 14일 경향신문 기사.


본래 불교신자였던 손창호는 불교방송의 라디오 프로

'백팔가요'의 진행자가 되어 다시한번 본격적인 활동에 시동을 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손창호의 성격은 브레이크 없는 불도저와도 같았고,

남들과 쉽게 타협할 줄 아는 이른바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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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6월 1일 동아일보 기사.


위 기사에서 손창호는 윤리의식과 자질부족은

물론 국민정서에 해악을 끼치는 주범으로 묘사되고 있다.


실제로도 손창호가 진행하던 불교방송 BBS의 백팔가요는

1991년 5월 들어 방송위원회로부터 이미 2번이나 주의를 받은 상태였다.


물론 손창호의 입장은 단순 명료했다.


"하고 싶은말은 하겠다. 지나친 엄숙주의 보다는

현실적인 위트도 필요하지 않느냐? 내가 뭐 틀린 말 했냐?"


등의 매우 솔직하고도 진솔한 것이었지만 손창호의 방송 발언들은

90년대 초 사회 분위기를 감안했을 때 과격한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DJ란 가수 이름과 노래 이름 대면서 밥벌어먹는 치사하고 지저분한 직업."

"배꼽 위 가슴에도 옷을 조금 찢어봐. 냅다 내놓으면 재미없죠. 살짝살짝 비춰야 아이구~ 그러지."


따지고 보면 틀린말 하나 없지만 1991년 라디오에서 대놓고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발언들이었다.

더구나 BBS는 일반 상업방송도 아닌 불교방송.


위 발언들을 통해 거침없고 솔직한 손창호의 평소 성격을 어느정도는 느낄 수 있다.


영화 '동경아리랑'의 실패와 관련한 울화역시 한 원인이었을까?

손창호의 거침없는 입담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결국 손창호가 진행하던 백팔가요는 방송위원회로부터 '사과명령'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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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6월 26일 한겨레신문 기사.


당시 방송위원회는 비속어를 남발하고,

출연자에게 무례한 반말을 쓴 손창호에 대해 사과명령을 내렸다.


손창호가 문제였을까, 고리타분한 방송위원회가 문제였을까?

결국 손창호는 백팔가요의 진행자 자리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다음해인 1992년 손창호는 친정이라

할 수 있는 MBC 라디오에서 다시한번 진행자 자리를 얻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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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3월 31일자 동아일보 기사.


독설이란 과거에나 현재에나 필요악이다.


현재 독설의 절대 아이콘인 김구라는 1990년대 초에는

독설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는 무명 개그맨에 불과했었다.


김구라가 아직 무명이던 시절, 손창호는 이른바 90년대초의 김구라였고,

독설로 인해 욕을 먹을지언정 그 유머와 위트는 인정을 받고 있었다.


결국 손창호는 가수 노사연과 함께 MBC 라디오

'손창호 노사연의 100분쇼' 진행을 맡으며 다시한번 일어서게 된다.


사실 손창호의 이같은 기회에는 개그맨 주병진이 연관되어 있었다.


90년대초 주병진은 MBC의 일요일 일요일밤에를 통해

이경규, 노사연, 김흥국등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었고

손창호가 새롭게 참여하게된 라디오 프로는 본래 '주병진 노사연의 100분쇼'였다.


하지만 주병진은 내의 제조회사인 '제임스 딘' 사업을 본격화하며

서서히 방송활동을 줄이고 있었고, 이에따른 어부지리로 손창호에게 기회가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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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이경규라는 새로운 개그스타가 탄생하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80&no=1134&s_type=search_all&s_keyword=%EC%9D%B4%EA%B2%BD%EA%B7%9C&page=1


그리고 '손창호 노사연의 100분쇼'는 손창호의 마지막 라디오 방송이 되고 말았다.


손창호는 92년 4월 1일부터 100분쇼를

진행했지만, 불과 석달만인 7월 19일에 그만두게 되었다.


라디오프로의 새로운 DJ가 석달만에 방송을 그만두는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손창호는 영화제작에 몰두하겠다며 방송진행을 그만두었고,

결국 손창호의 자리는 90년대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MC 김승현으로 교체되었다.


영화제작을 하려면 최소한의 고정수입은 필요했을 것이고,

라디오 프로는 좋은 기회였을텐데 손창호는 왜 라디오 방송을 그만 두었던 것일까..


그리고 다음해인 1993년이 되어

손창호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대마초 사건이 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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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9월 17일 경향신문 기사.


대마초는 국가에 따라 그 유해성과 규제 정도에 차이가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완전한 불법이며, 어떤 나라에서는 느슨하게 용인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993년이나 2018년이나 여전히 대마초는 엄연한 마약이다.

그리고 손창호는 1993년 마약을 직접 재배해 피운 혐의로 구속영장을 받게 되었다.


당시 손창호는 MBC의 시트콤 김家이家에 감초역으로 출연중이었고,

MBC는 결국 손창호의 배역을 맹상훈으로 교체하게 된다.

(1986년 어린이 드라마 꾸러기의 그 맹상훈.)


그리고 손창호가 출연한 분량의 필름이 모두 폐기처분 되었음은 물론이다.


결국 두달 후, 손창호는 집행유예 처분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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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1월 24일 동아일보 기사.


손창호는 집예유예 2년을 선고받아 징역형은

면하게 되었지만 이미 배우로서의 이미지에 큰 치명타를 입은 상태였다.


손창호의 인생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고

한동한 손창호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2년 후...


손창호는 자신의 배우 인생에 있어 마지막 드라마에 출연한다.

1995년 MBC 삼일절 특집극 '노래만들기'에 조연으로 출연한 것이다.


'노래만들기'의 주연은 당시의 인기가수였던 심신이었고,

가요계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노래 표절행위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드라마였다.


손창호는 1991년 MBC 삼일절 특집드라마 '고궁'에 이어

4년만에 다시한번 삼일절 특집드라마에 출연한 것이었고,


특집극 '고궁'과 마찬가지로 '노래만들기'역시 한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반일감정과

그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뿌리깊은 허위의식을 역설적으로 비판한 작품이었다.


결국 90년의 영화 '동경아리랑'은 손창호의 마지막 영화 출연작이었고,

5년후의 '노래만들기'는 마지막 TV 드라마 작품이 되고 말았다.


이후 손창호는 그 어떠한 형태로든 더 이상의 연기를 이어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해인 1995년... 손창호는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TV 방송을 통해 공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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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


손창호는 90년대중반 인기있던 SBS의 토크쇼 '깊은 밤 전영호쇼'에

출연해, 결혼 및 영화제작 실패는 물론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게 된

사연등을 이야기하며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공개했다.


2년만의 방송출연 후 손창호는 다시한번 모습을

감추었고 이후 3년간 손창호의 소식을 아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리고 1998년이 되어 손창호의 충격적인 모습이 공개되었다.


1998년 사망한 배우 손창호와 마지막 삶의 투쟁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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