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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숨을 죽이고, 숨어있으렴 1/2 (야겐사니)

ㅇㅇ(61.99) 2016.10.15 14:52:45
조회 3476 추천 63 댓글 7

 원본 :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7343769

 야겐x여사니와

 생각 외로 장편이라 넋 놓고 했더니 창작 왈도체 폭발인데스웅.... 번역기를 돌려도 이거보단 나을 것 같으니까 가급적 원본을 추천드림ㅠㅠ




 목욕용 세제가 다 떨어져서, 상점에 사러 가기로 했다.

 장바구니 안에 리필 팩을 두개 던져넣었다. 덤으로 세일 중인 비누도 같이 담는다. 대인원인 만큼 많이 사둬서 손해볼 것도 없다. 옆에 진열된 샴푸는…… 어느 정도 남아있으려나. 저번에 한꺼번에 샀던 것 같기도 하고…….

 함께 온 근시에게 기존에 사뒀던 것이 있는지 물어볼 생각으로,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쯤에, 문득 옆에 있던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사니와와 도검남사 커플이다. 바싹 붙어서, 손을 잡은 채 샴푸를 고르고 있다. 도검남사가 무언가를 속삭이자, 사니와가 간지러운 듯이 웃는다. 그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어찌나 달달한 지. 아―진짜 행복해 보이시네요! 부럽다 젠장.  리얼충 영원히 폭발해라.


 「대장, 간장이 특가 판매 중인데…… 뭘 보고 있는 거야, 대장」

 「야겐」


 뒤에서 말을 걸어와서 돌아보니, 근시인 야겐이 양손에 간장을 들고 서있었다. 연보랏빛 눈동자를 수상쩍다는 듯 가늘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샴푸를 살까 말까 고민하느라」

 「샴푸라면, 아직 사둔 게 남아있어」

 「컨디셔너는? 얼마나 남아있었더라?」

 「글쎄, 사용하질 않으니까 모르겠는데」

 「헉…… 안 쓰고도 이렇게 윤기가!? 부럽다~」


 대체 어떻게 된 구조인 거지.

 훌륭한 엔젤링이 빛나고 있는 야겐의 머리카락에 손을 뻗어 만져봤다.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빗처럼 얽어서 빗어 내린다. 얇은 명주실 같은 흑발은 상상 이상으로 부드러워서, 한 번의 걸림도 없이 미끄러진다. 마음껏 흐트러뜨려놔도, 한숨 소리와 함께 고개를 한번 흔든 것만으로도, 금세 원래대로 돌아와 버린다. 윤이 흐르는 흑발이 춤추듯 흩날렸다. 샴푸의 달콤한 향기에 섞여서, 약제 특유의 톡 쏘는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야겐의 향기다.


 「그래서, 대장은 샴푸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 거지?」

 「어?」

 「꽤나 열렬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잖아」

 「아―……아니. 샴푸를 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


 일단 커플들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러브러브한 커플이 즐겁게 장을 보고 있길래. 부럽네 하고」


 비뚤어진 솔로의 심리가 대놓고 드러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지만, 이 단도에게 숨기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한번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본심이 나왔다. 


 「아――――― 진짜, 부러워. 나도 연인이랑 데이트하고 싶어. 상점 가는 정도라도 좋으니까 손잡고 걷고 싶어. 거스름돈으로 빠삐코 사서 나눠먹으면서 혼마루에 돌아가고 싶다구」

 「하면 되잖아」

 「상대가 없는 걸」

 「만들면 되잖아. 대장이라면 바라는 작자도 많을 텐데」

 「……바보」


 조그맣게 중얼거린 말은, 야겐에겐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태연한 얼굴로, 특매 중인 간장은 일인당 한 병씩이니까 계산대에서 따로 줄 서자고 제안해오기까지 하는 마당이다. 아까 손을 잡고 계산대로 향한 커플과의 격차에, 한숨을 쉬면서 간장을 받아들었다.

 서로 다른 계산대에 줄 서려고 하던 중에, 조금 떨어진 계산대에서 아까 그 커플이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미형들이 가득한 도검남사에 지지 않을 만큼, 사니와 쪽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아, 저기. 있네 있어. 미남미녀. 되게 잘 어울리지―」


 그렇게 야겐에게 속삭이자, 야겐은 입을 떡 벌렸다. 도검남사와 사니와가 사귀고 있다는 부분에 몹시 놀란 듯했다.


 「커플? 저쪽의 둘 말인가?」

 「어떻게 봐도 그런 걸」

 「설마. 도검과 사니와인데?」

 「응? 최근에 많지, 도검남사와 사니와 커플.

 좁은 공간에 남자와 여자. 게다가 하루 종일 함께 있고, 어떻게든 된다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잖아」

 「남녀라고 해도, 검과 인간이라고? 어떻게든 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야겐은 뭔가 시큼한 걸 억지로 마시기라도 한 것처럼 눈썹을 찡그리면서, 대놓고 못마땅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야겐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워? 

 그야, 주명으로 맘에 드는 도검남사에게 밤 시중을 들게 한다든가, 반대로 도검남사가 사니와의 진명을 손에 넣고 무리하게 카미카쿠시 한다든가 하는 건 안 되겠지만, 합의 하에 이루어진 관계라면 괜찮지 않아?」


 긴장하면서도 은근히 떠봤지만, 야겐은 떨떠름한 얼굴인 채, 연보랏빛 눈을 날카롭게 빛내면서 즉답했다. 굳건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다.


 「검은 검. 인간은 인간이지. 어울릴 수 있는 게 아니야」


 야겐이 딱 잘라서 「아니」라고 한 것에, 내 심장이 덜컥 불안하게 내려앉았다.

 목 안쪽이, 따끔따끔하게 말라온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애써 밝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

 

 「음―…… 그래도, 검이라곤 해도 츠쿠모가미잖아? 현현했을 때는 인간의 모습이고, 웃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닿으면 따뜻해. 나는 그렇게 위화감 못 느끼겠는데 말이지」


 넌지시 반대 의견을 꺼낸 내게, 야겐은 쓴웃음을 띄웠다. 말을 듣지 않는 어린 동생을 타이르듯, 천천히 입을 열어, 한 마디 한 마디를 확실히 발음했다.


 「그 뿐만 아니라, 단도로 만들어낼 수 있고,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고, 공격을 받으면, 싱겁게 부러져버려.

 아무리 인간 흉내를 내봤자, 본질은 칼에 지나지 않아」


 단호한 어조로 말한 뒤, 야겐은 내 얼굴을 보고 「아직 납득되지 않는 건가?」하고 한쪽 눈썹을 내렸다. 역시, 이 검에게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느릿느릿 끄덕였다.


 「응…… 이라고 할까, 뭐랄까, 의외야. 야겐은 왠지 연애 쪽으론 방임주의란 이미지가 있었으니까」

 「기본적으로는 그렇지. 대장이 선택한 상대라면, 쓸데없이 참견하진 않을 거야.


 단, 상대가 도검이라면 얘기는 별개다」


 흠칫, 하고 살짝 몸이 떨린 나를 눈치채지 못하고, 야겐은 「그렇군」하고 중얼거리면서 턱에 손을 얹었다.


 「대장이 마음에 들어하는, 연분홍색 찻잔이 있지」

 「어……」


 갑작스럽게 찻잔 얘기가 나와서 당황했지만, 야겐이 진지한 표정이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있는데」

 「내게 있어선, 대장이 그 찻잔과 부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들려」

 「에―……」

 「아무리 찻잔과 온종일 함께 있어도, 연애 대상이 되진 않잖아?

 가령 된다고 쳐도, 찻잔과 맺어져서 대장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그러니까, 대장은 부디, 제대로 된 인간과 맺어져달라구」


 살풋, 상냥한 얼굴로 야겐이 웃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잔혹한 미소구나 생각했다. 마치 날붙이에 푹, 하고 단번에 찔린 듯이, 심장이 아프다.


 나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야겐 토시로에게 짝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입에 담는 것이 부끄러워서, 초기도에게도, 담당에게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안에서만 조용히, 하지만 소중하게, 길러온 사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쭉 끌어안아왔던 이 마음은, 「좋아해」라는 첫 마디조차 용납 받지 못한 채로 지금, 깊숙히 찔려, 질척질척하게 피를 흘리고 있다. 단 한번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숨을 다하려 하고 있다.

 ……너무하지 않은가요, 신이시여.


 「……대장? 왜 그래, 안색이 나쁜데」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는 야겐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맑은 연보라색 눈동자가,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 검에게, 감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늘 그랬었다.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는, 뾰루퉁하게 입술을 내밀고 야겐을 쏘아봤다. 


 「……제대로 된 인간과 만날 기회가, 아예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만」


 한이 맺힌 듯 새침한 목소리가 술술 흘러나온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자연스러웠다.

 지금까지 자신은 거짓말이 서투른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면 제대로 할 수 있는 타입이었는가 보다. 나 의외로 하면 되는 애라든가.

 부루퉁해 보이는 나를 보고, 야겐은 쾌활하게 웃었다. 「뭐어, 대장 같이 좋은 여자를 내버려둘 남자가 어디 있겠어」라니, 남의 마음도 모르고 가볍게 말하고 있다. 


 기운이 빠져버릴 만큼, 언제나와 같은 분위기.

 오래 품어온 마음이 실연당한 직후인데, 나는 야겐과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다른 계산대에 줄을 서고, 인당 한병 한정의 간장을 사고 있다. 지갑을 꺼내고, 비닐봉투는 거절하고, 에코백에 세제를 담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니, 실제로 아무 일도 없었다. 야겐에게 있어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다. 나의 수년간의 마음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것과 같은 거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계속.

 뭐야, 실연조차도, 아니잖아. 


 손에 들고 있던 세제가, 눈물로 뿌옇게 흐려져 보였다. 당황해서 몇 번 눈을 깜빡이면서 눈물을 꾹 억누른다. 미처 닦아내지 못한 눈물은, 세제를 담는 움직임에 맞춰 소매로 몰래 닦았다. 괜찮아, 야겐에겐 들키지 않았어.


 그렇다. 실연 확정, 이라는 것뿐, 실연을 당한 건 아니다.

 나는 가방을 묶으면서 생각했다.

 지금까지, 만약 야겐과 사귄다면, 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연인으로써 닿을 수 있다면, 같은 시시한 망상을 했던 적도 있다.

 그치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행복했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혼마루에 입성하게 됐던 내겐,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연인과 손을 잡아본 적도, 빠삐코를 나눠먹어본 경험도 없었다. 

 짝사랑만이,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의 전부다.

 실제로 사귄다는 것이 어떤 건지는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다. 진짜로 사귈 수 없어도, 괜찮아.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이 마음을, 계속 감춰두자.

 그러면 아직은, 이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다.


 「기다렸지, 야겐」


 간장을 팔에 든 야겐에게 손을 흔들면서, 웃었다.

 새어나가지 않게 잘 숨길 테니까. 조용히 마음에 담아두는 정도는, 용서해줄 거지?





2p


 실연 확정으로부터, 대충 2개월 정도가 흐른 어느 날.

 놀랄 만한 일이 있었다. 연련에서, 「사니와를 사랑하고 있는 야겐 토시로」와 만난 것이다.


 대전 상대편의 야겐이, 뭔가 애타는 시선으로 사니와를 바라보고 있기에, 설마하며 때려 맞춰본 게 정답이었다. 연심을 들켜버린 야겐군은 「같은 혼마루 내의 동료들에게도 들키지 않았는데」라면서, 야겐 토시로라는 검치고는 드물게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엄청 귀여웠다.


 이건 기쁘고 감사할 만한 놀라움이다. 즉, 「사니와와는 사귀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야겐 토시로라는 검의 근본과는 관련 없다는 것. 어쩌면, 우리 혼마루의 야겐도 생각을 바꿀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

 죽을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사랑에, 희망의 빛이 보였다. 이 두 달간 쓸쓸히 묻혀있던 연심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나는 다른 혼마루의 야겐군에게, 앞으로 가끔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나도, 자신의 혼마루의 야겐에게 짝사랑 중이라는 것을 밝히자, 야겐군은 망설임 없이 수긍해주었다. 서로, 상담할 만한 상대에 목말라있었다고 생각한다. 





 여차저차 해서, 이번이 다섯 번 째의 회의다.

 밀회는, 생각 외로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저쪽 혼마루는 연련 후에 늘 자유 시간을 따로 두고 있었다. 연련장 근처에 있는 쇼핑몰과 유흥 시설에서 자유롭게 지내고 오라는 지시가 있는 듯했다. 우리 혼마루도 그런 풍습을 배워놔서, 이후는 야겐군에게 미리 들은 연련 날짜에 맞춰두기만 하면,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커플이 자주 이용할 법한 분위기 좋은 카페를 골라두면, 우리 혼마루의 솔로(!) 도검남사들과 마주칠 염려도 없다.


 약속 시간보다 빨리 도착했기 때문에, 아이스 카페라떼를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딸랑하는 벨 소리와 함께 야겐군이 들어왔다.


 「미안. 기다리게 했군」

 「아니야, 연련 수고 많았지. 호마레 땄구나」

 「빨리 특을 달고 싶어」


 야겐군은, 최근에 드랍됐기 때문에, 아직 특이 붙기 전이었다. 살랑살랑 벚꽃을 흩날리면서, 부끄러운 듯이 웃고 있다. 으음~, 우리 야겐(극)에겐 여태껏 한번도 볼 수 없는 종류의 귀여움이랄까.


 마실 것을 한손에 들고 곧장 의견 교환을 시작했다. 오늘의 주제는 『가슴을 울리는 몸짓』에 대해서.

 야겐 토시로가 움직이는 모습은, 아름답다. 털털하긴 하지만, 어딘가 기품이 있는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첫째 둘째를 가리기 어렵지만, 나는 요새 넥타이를 느슨하게 할 때의 동작이 좋다고 말했다. 해질녘의 휴식 시간에, 서류를 한손에 들고 홱 끌러내는 모습이 최고로 섹시하다고 생각해. 저쪽의 야겐군은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덧붙여, 저쪽 야겐군은 몹시 고민한 끝에 「반해있는 여자라면, 어떻게 하고 있어도 아름답다고 생각해」라고 말씀하셨다. 은혜로우신 말씀 감사합니다.


 나는 발갛게 물든 볼을 얼버무리려는 듯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야겐군을, 싱글싱글거리면서 바라보았다.

 

 「근데, 야겐군은 언제 사니와님한테 고백할 거야?」


 쿨럭, 야겐군이 커피를 뿜어냈다.


 「왁, 얼룩! 얼룩지면 어떡해!!」


 당황해서, 테이블에 구비된 휴지를 뽑아서 내밀었다. 야겐군은 사레 기침을 하면서 받아들었다.


 「……아무 맥락도 없이, 갑자기 찔러 들어오는 건 자제해줘」

 「미안미안, 갑자기 신경 쓰여서. 그래서, 할 생각은 있는 거야?」

 「……그쪽은 어떤데?」

 「난 없어. 하면 차일 게 확실하구」


 시원스럽게 말하자, 야겐군은 괴로운 듯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쪽의 나는, 상당히 얼간이구만」

 「완전 그렇지. 고지식하지, 귀여운 구석도 없지. 기본적으로, 어리광도 안 받아주지.

 언제나 나를 걱정해주지, 남자답지, 최고로 멋있어. 하~ 너무 좋아」

 「열렬하네, 그쪽의 내가 부러울 정도야」

 「아하하. 평생, 묻어둘 마음이지만 말이지.

 ……난, 그쪽이 부러워. 적어도 그쪽의 사니와님은, 도검남사와 인간의 결혼에 혐오감을 느끼진 않는 거잖아. 부럽다……」


 불쑥 흘러나온 본심에, 야겐군이 살짝 곤란한 듯한 표정을 한 것을 눈치 채곤, 나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미안, 비뚤게 받아버려서.

 그치만, 야겐군이 고백해서, 잘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헤실, 하고 웃자 「당신은, 좋은 여자군」하고 마주 웃어준다.


 「야겐군도, 좋은 남자야」

 「그런가? 반한 여자에게, 고백할 용기도 없는 변변찮은 남자라고?

 그래도, 그렇군…… 특이 붙는다면…… 한번, 말해볼까 생각 중이야」

 「와, 진짜!?」


 야겐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보니 귀 언저리가 빨갛게 물들어있다. 왠지 나까지 심장이 두근대버린다. 이게, 살아있는 사랑인가. 부러워.


 「좋아 좋아, 빨리 특이 붙을 수 있게, 사니와 파워를 줄게」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테이블 위에 얹어져있던 야겐군의 손에, 스스로의 손을 겹쳤다.


 「고백이 잘 풀릴 수 있게 되길, 이 아니군?」

 「내 파워가 없어도, 성공할 테니까. 그 쪽은 걱정 없어. 그도 그럴 게, 야겐 토시로인걸?」


 괜찮아. 잘 될 거야.


 나는 그런 마음을 담아서, 야겐군의 손을 꼭 쥐었다.

 조금 후에, 「……고마워」하고 중얼거린 야겐군의 목소리는, 겹쳐진 손과 똑같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당신의 사랑도, 이루어지면 좋겠어」


 좁은 가게 안이다. 조그맣게 속삭이는 낮은 목소리도, 전부 귀에 들어와 버린다.

 어쩌면, 떨고 있었던 것은 내 손일 지도 모른다.


 「후후, 우리 야겐이 생각을 바꿀 수 있게, 상호 교환으로 야겐군 파워를 받아볼까」

 「응, 마음껏 가져가」


 떨림이 멎을 때까지, 우리들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말하자면 나와, 야겐군은, 전우였다.





3p


 야겐군 파워, 가공할 만한 위력이다!


 회의부터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인가.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언제나처럼 정부 제출용의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더니, 장지문 건너편에서 야겐이 말을 걸어왔다.


 「일하는 중에 미안. 지금, 잠깐 얘기해도 괜찮아?」

 「괜찮긴 한데…… 왜?」

 「대장, 내일 일정은 비어있어?

 들리고 싶은 곳이 있는데, 함께 가주지 않겠는가 해서(*원문:つきあってくれねぇか=사귀어주지 않겠냐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


 함께 가주지 않겠는가 해서.

 함께 가주지 않겠는가 해서.

 함께 가주지 않겠는가 해서.


 무의식중에, 몸이 떨렸다. 알람음으로 설정해두고 매일 아침 이 말을 들으면서 깨고 싶은 대사다. 난 바보야, 왜 녹음해두지 않았던 거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건 그거다. 표현이 살짝 의미심장할 뿐, 언제나 들리는 상점에 같이 장보러가자는 얘기겠지. 대사의 여운을 고막에 되새기면서, 대답했다.


 「응, 좋아~. 장보러 가는 거지? 화장실 휴지도 다 떨어져가고 있고」

 「아니…… 그쪽은, 하세베 나리가 가주기로 했어」

 「헤? 그럼…… 어디에」

 「어디에 가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꾸미고 와줬으면 해.

 뭐, 굳이 치장하지 않아도, 대장은 미인이지만」


 정부에 제출할 서류가, 손 안에서 부스럭하고 소리를 냈다. 나도 모르는 새 힘이 들어가서 꽉 쥐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아니, 그래도 상대는 야겐이다. 성급하게 기뻐하는 것은 금물.

 나는 목소리만큼은 평온을 가장해서 대답을 돌렸다. 장지문이 사이에 있어서 엄청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하하, 여전히 야겐은 말솜씨가 좋네.

 장소는 비밀인 거야? 신경 쓰이는데……. 그럼 멤버는 누구랑? 아와타구치 형제들?」

 「나와, 대장 둘뿐이다. ……그래도, 괜찮겠어?」

 「헤에~ ……응, 알겠어. 기대하고 있을게」

 「아아」


 야겐의 기척이 완전히 멀어진 것을 확신하자마자, 나는 다다미 위에 털썩 쓰러져 엎드렸다. 비명을 지르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입을 막았다. 볼이 뜨겁다. 온몸의 피가, 지글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둘뿐이고, 꾸미고 간다고……??

 데이트잖아, 이건. 100명 중 120명이, 데이트라고 답하겠지.

 야겐과, 데이트……??

 뭐야,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데굴데굴 고속으로 다다미 위를 구른다.

 퍼뜩 정신이 들었을 땐, 제출용 서류는 이미 보기에도 무참한 모습이 되어있었지만, 나는 조금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방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들어온 야마토노카미가 다다미 위를 굴러다니는 장면을 봐버리고, 절대영도의 눈빛을 보내왔을 때는, 아무리 그래도 조금 우울해졌지만.





 꾸미고 오라는 말을 들은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발휘했다.

 「아니 뭐, 야겐이 그러라고 했고……」라는 면죄부가 있으니까, 무서울 것도 없다.

 목욕을 마친 뒤엔 팩도 해보고, 일찍 자고, 제대로 먹고.

 카슈한테 부탁해서 매니큐어를 발랐다. 머리카락은 미다레가 묶어주었다. 옷은, 무려 카센에게 「미야비구나, 무척 잘 어울려」라는 칭찬을 들었던, 좋아하는 감색 원피스.

 야겐과의 외출을 가정하면서,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것이, 이렇게 즐거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솔직히 너무 들떠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사랑에 빠진 여자다운 짓을 해보다니.


 드디어 약속 시간.

 야겐은, 전투복을 걸치고 있었다. 장비만을 뺀 상태다. 사복을 입고 있지 않아서 어라, 싶었지만, 뭐, 최고로 어울리니까 문제없나.

 야겐은 나를 보더니, 연보라색 눈동자를 순간 크게 떴다가, 슬쩍 가늘게 좁혔다.


 「이거야, 놀랐는걸. 상상 이상으로 미인이야」

 「헤헤, 고마워. 빈말이라도 기뻐」

 「빈말이 아니야. 역시 대장. 이 정도면, 절대로 괜찮겠어」

 「……뭐가?」

 「……뭐, 즐거운 건 나중으로 미뤄두고. 가자, 대장」


 야겐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손을 내밀어주었다.

 함께 상점에 갈 때에는,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 행동이다. 멍해져있는 내게 몸이 달은 듯, 야겐이 먼저 내 손을 잡았다.


 「오늘은 모처럼 예쁜 구두를 신었으니까. 혹시라도 넘어지지 않게, 손을 잡고 있게 해줘」


 구두양, 네가 오늘의 MVP다. 힐 만세.

 장갑 너머로 야겐의 체온이 전해져온다. 손끝이 열기를 띠고 욱신거렸다.

 꼭 잡은 손에서, 내 짝사랑이 전달돼서 들켜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야겐의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야겐이 나를 데려간 곳은, 한눈에 보기에도 격식이 높은 요정이었다. 심지어 타당, 하는 대나무 통이(*鹿威し)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여기, 절대로 예약해야 되는 데다…… 유키치씨(만엔권)가 두 셋은 필요한 곳이다…….

 진짜 여기 맞아? 라는 의문을 담아 야겐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야겐은 이미 문을 넘어서 척척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 대장. 엄청 큰 잉어가 있어. 봐봐」


 ……라며, 웃는 얼굴로 손짓을 하면, 나도 따라갈 수밖에 없잖아.

 이렇게 나와 야겐은 고급 요정에 발을 들였다.


 예약은 미리 해둔 모양이었다.

 다리를 건너 정원을 구경하면서 건물에 도착하자, 마중을 나와준 가게 사람이 곧장 안내를 해주었다. 야겐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가고 있었지만, 나는 어쩐지 심란했다.

 이렇게 격식 높은 요정에서 식사, 라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야겐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어째서 도착지를 감춰야만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무언가가, 목 안에 걸린 기분이었다.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에 방에 도착한 듯했다. 점원이 멈춰 서서, 복도에 무릎을 대고는, 문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일행 분이 도착하셨어요」


 일행 분……? 야겐은, 둘만이라고 했었는데.

 일행이라는 건 대체, 누구일까. 의문을 담아 야겐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지만, 당사자는 시치미 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실례합니다」


 안에서, 누군가의 대답이 들렸다. 모르는 목소리다.

 드르륵, 하고 가벼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눈에 들어온 광경에, 나는, 숨을 들이켰다.

 우리들을 맞이한 것은, 야겐과 똑같이 정장을 갖춘 마에다 토시로와, 젋은 남자 사니와였다. 연련에서 몇번인가 시합을 한 적이 있는 중견 사니와다. 마에다도 사니와도, 긴장한 얼굴로, 정좌를 하고 있다.

 그런 그들과 마주하는 형태로, 테이블 세팅이 되어있었다.


 「저…… 오랜만입니다. 오늘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이쪽이야말로」


 대충 얼버무리는 것만큼은, 나름 특기다. 쑥스러운 듯이 꾸벅, 고개를 숙이는 남자 사니와에게 적당히 얘기를 맞춰주고, 이쪽도 인사를 돌린다. 옆에서 분위기를 엿보고 있던 야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입술에 미소를 띠우면서도, 내 머리 속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분위기 좋은 요정에, 젊은 남녀 두 사람. 연애 경험 제로인 나라도 깨달을 수 밖에 없다.


 이건, 맞선이다.

 나는 맞선 자리에 끌려온 것이다.


 전신을 덮친 떨림을, 주먹을 꽉 쥐면서 어떻게든 참아냈다.





 자리에 앉아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죄송해요, 전화가 왔네요」


 나는 가급적 상냥하게 말하면서, 짐을 챙겨 일어섰다.


 「……미안, 나도 따라가지」


 뒤에서 야겐이 당황해서 일어서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빠른 걸음으로, 긴 복도를 걸어간다. 예상대로 가벼운 발소리가 뒤를 쫓아왔다.


 「……대장, 어디까지 가는 거야. 전화라면 여기서도……」

 「돌아갈래」


 돌아보지도 않고, 짧게 전했다. 야겐이 숨을 삼켰다.


 「잠, 깐 기다려줘 대장. 어째서……」

 「진짜 최소한, 상대에 대한 도리는 다했잖아?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아쉽지만 먼저 돌아가겠다고 전해놔줘.

 거기다, 얼마나 들었어, 여기? 비용은 전부 내가 지불할 테니까……」


 점원은 어디에 있는 거지, 출구에 있으려나.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출구로 향하고 있자,


 「……대장, 기다리라니까!!」


 팔을 꽉 붙잡혀서, 억지로 세워졌다.


 「……놔줘」

 「……싫어」


 두 세번 당겨봤지만 빠져나올 방법은 없어보였다. 역시 겉모습은 어릴지언정 훌륭한 도검남사다. 더는 앞으로 갈 수 없게 된 나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면서 몸을 돌렸다.

 돌아본 내 표정을 본 야겐이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

 그 어떤 때보다도 나는 야겐에게 화가 나있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것만 같은 분노를 온 힘을 다해 억누르는 것이, 그나마 내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런데도 평소에 비해 강한 말투가 나와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있잖아 야겐. 이거, 선 자리지」


 의문형이 아니라, 확신이다.

 야겐은 미간을 질끈 모으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런 얘기 들은 적이 없는데…… 어째서, 이런 짓을 한 거야?」


 연보라색 눈동자가 주저하는 듯 이리저리 방황한다. 그대로 얼마 있다가, 주뼛주뼛 입을 열었다.


 「대장, 연인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기회가 없다고 말했었잖아?」


 ……원흉은, 나인가. 그러고 보면, 그런 말을 한 적도 있었지.

 야겐은 다소 서투른 어조였지만, 최선을 다해 자세히 얘기를 들려주었다. 설명하는 것은 특기가 아니어도, 그 성의라도 보이려는 것 같았다.


 「요전 연련에서, 아까 그 마에다와 대전했던 건 기억하고 있어? 그 때 마에다한테, 저쪽의 나리가 결혼 상대를 찾고 있다고 들었어.

  마침 나이도 딱 맞고, 좋은 사람 같았으니까, 우리 대장은 어떻겠냐고 말을 꺼내봤었어」

 「……내가 언제까지고 독신으로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했던 거야?」


 확실히 사니와라는 건, 새로운 만남과는 전혀 연이 없는 직업이다. 한번 취임하게 되면, 만날 만한 이성이라고는 정부의 담당자라든가, 연련 상대 정도밖에 없다.

 나는 2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슬슬,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동급생도 있을 정도다. 야겐의 평소 성격으로 봤을 때 이번 일은 약간 오지랖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소중한 대장이 혼기를 놓치기 전에 어서, 라고 생각한 거겠지. ……짝사랑 상대한테, 혼담을 추진 당하다니, 나는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저지른 것일까.


 시선을 내리자, 무릎 근처에서 흔들리는 감색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들떠서 잔뜩 치장한 스스로를 비웃듯이, 살랑살랑 춤추고 있다. 진짜, 바보 같아.


 「속이고 데려와 버려서, 미안해.

 그래도, 맞선이라고 먼저 알려주면, 낯가림이 심하니까 와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니까, 어디 갈 건지는 숨기고, 겉모습만 대충 꾸미게 해서, 아무 얘기도 없이 데려온 거구나?」

 「……미안」


 야겐답지 않은, 작은 목소리다. 풀이 죽어 눈을 내리뜨는 야겐의 모습 같은 건, 처음으로 봤다.

 나는 다시한번 한숨을 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속아서 따라왔다고는 해도, 그만 너무 가시 돋친 말투가 되어버렸다. 애초에 내 분노는, 데이트에 대한 기대를 배신당했다는 데서 발단한 것이다. 멋대로 기대를 한 이쪽에도 잘못이 있다. 야겐이 내게 연애 감정을 가질 리 없다는 거, 알고 있었는데도.

 화가 좀 가라앉자, 이번에는 슬픔의 파도가 덮쳐 와서,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목이 꽉 메여오는 것을 꾹 참고 말을 꺼냈다.


 「야겐.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러니까…… 이런 건, 곤란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지금의 내게는 최대였다. 목소리는, 한심하게도 떨리고 있었다.

 자, 말해버렸다.

 헤에, 어디의 누구냐며, 흥미 위주로 질문해올까.

 그것도 모르고 촌스런 짓을 해버렸군, 하고 쓴웃음을 지을 지도 모른다.

 응원하지, 라면서 특상의 미소를 지을 가능성도 있다.

 각오를 다지고, 고개를 들었다.

 야겐의 반응은, 예상했던 어느 것과도 달랐다.


 눈앞의 야겐은, 무언가를 참는 듯이, 꾹, 입을 다물고 있었다. 붉은 혀로 입술을 가볍게 훑고는, 천천히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알고 있어」

 「……어?」


 멍하니 입이 벌어졌다.

 ……지금, 야겐이 뭐라고 말했지? 귀에 들어온 말이 믿겨지지 않아서, 망연히 야겐을 바라본다.

 야겐은 맑은 연보라색의 눈을, 올곧게 내게 향하고, 말했다.


 「대장이,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 ……그것 때문도 있어서, 이 자리를 마련한 거야」

 「……뭐야, 그게」

 「미안, 그래도…… 대장은, 역시 인간과 맺어져주길 원해」


 인간과.

 야겐의 그 말을 들은 순간, 숨이, 멈췄다.


 「야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어?」


 머리가 백지장처럼 변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된 자신의 입에서, 스르륵 말이 흘러나온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내 입을 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크게 뜬 눈에 비친 야겐은, 곤란한 듯이 눈썹을 조금 찡그렸다. 그런 표정조차도 아름다우니까, 야겐 토시로는 정말로 비겁하다. 야겐은 살짝 망설인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기증이 난다.

 거짓말이지, 응, 야겐.

 부들부들 입술을 떨면서,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누군지 알면서……. 그런데도, 이런 자리를 만든 거야……?」


 이런 식으로 NO를 표현하는 게,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바보처럼, 아까 야겐이 말한 그대로를 반복해서 물어본다. 정해진 대답이 돌아오리란 걸 알면서도, 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도저히 믿기가 어려웠다.


 「대장의 마음도 묻지 않고, 멋대로 저질러버렸다곤 생각해.

 그래도 말이지, 대장」


 야겐은 한층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지마. 정말로 좋아하는 그 눈으로, 그 입술로, 그 이상 말하지 말아줘.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목구멍이 묶여버린 것처럼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나쁜 말은 하지 않을게, 검 같은 건, 그만두는 게 좋아. 쓸 만한 게 못 돼」


 눈을 깜빡인 순간, 또르륵,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쳤다.

 이러니까 감춰뒀었는데. 결국, 들켜버렸다.

 나의 첫 사랑은, 흙 밑에서 끄집어내진 순간,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당해버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두 눈에서 주륵주륵 눈물을 흘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언제부터, 알았어?」


 맞선 자리를 계획했으리라 생각되는 연련보다 전날을 떠올려봤지만, 특별히 실수를 한 기억은 없다. 언제나처럼, 평범하게 행동했었다고 생각한다. 흐느끼면서, 묻는다.

 야겐은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체념하고 입을 열었다.


 「알게 된 건, 전전에 있었던 연련 때다. 

 미다레를 따라서 쇼핑몰 안을 걷고 있다가, 우연히 봐버렸어」


 봤다, 는 건, 무엇을 봤다는 걸까……. 내 연심을 겉에서 보고도 알아차릴 만한 무언가를, 남기고 있을 리는 없는데.

 그때, 짚이는 게 있었다. 전전 번의, 연련.

 설마.


 야겐이 말을 이었다.


 「미다레가, 멋진 카페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 하니까. 그랬더니……」

 「그런가. 그걸 본 거구나……」


 야겐의 말을 끊고, 덮어씌우듯이 말한다. 아마, 저쪽 혼마루의 야겐군과 손을 맞잡고 있던 장면이라도 목격한 거겠지.

 그래서, 저쪽 혼마루의 야겐군과 내가, 교제하고 있다고 오해한 것일까.


 「나를 지독한 놈이라고, 생각하나」


 야겐이, 슬쩍 말을 거듭했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 대장의 행복을 바라면서 움직인 거야.

 울릴 생각은 없었지만, 후회는 안 해」


 그저 대장이, 행복해지길 원해.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그렇게 말을 마친 야겐을 보고,


 「……하핫」


 마른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게, 이상하잖아.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나 때문에, 야겐이 당황한 것 같았다. 

 상관없다. 나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후, 아하하핫……!!

 검과 맺어져봤자, 행복해질 수 없다고.

 그러니까 적당히, 인간 상대를 찾아서, 붙여주겠다고? 역시, 신이란 건 오만하구나」


 야겐은,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속눈썹에 맺힌 물기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말야, 야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는 행복해질 수 있는 거야?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거. 그런 게 행복?」

 「……아아, 그래. 적어도, 검과 해로하는 것보다는」

 「이해가 안가. 내 행복을, 왜 야겐이 결정하는 거야?

 아니야, 내가 바라는 건 달라.

 그건 대체 누구의 행복이야? 야겐은 아까부터, 누구 얘길 하는 거야?」


 거친 호흡채로, 토해내듯이, 말한다. 닦아도 닦아도, 솟아오르는 눈물이 또 다시 뚝뚝 넘쳐흘렀다. 끝이 없다.


 「내 행복은, 그런 게 아니야.

 제대로, 나를 보면서. 내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말해줘.

 나는 말이지, 야겐……」


 울고 있는 탓인가, 웃고 있는 탓인가, 호흡이 흐트러진다. 씁, 하고 폐까지 들이마시곤, 단박에 쏟아냈다.


 「나는 말이지, 별로 상대와 사귀고 싶은 게 아니야. 몰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키스도 포옹도 필요 없어. 손 같은 것도 안 잡아도 돼.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고, 눈이 마주치면 하루종일 행복해.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최고고. 

 이런 게, 내 사랑이야. 내 행복인 거야. 그러니까……」


 부탁이니까, 내버려뒀으면 해.

 끝 부분에 가서는, 아예 제대로 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엉망으로 얼굴을 적신 채 그렇게 말하는 나를, 야겐은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도, 야겐의 맑은 연보라빛 눈동자는 아름다웠다. 

 이윽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아까의 내 말을, 야겐이 반복한다. 야겐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장. 그건, 거짓말이잖아」


 아아. 역시.

 이 검에게, 거짓말 따위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치밀어 오르는 오열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 말대로였다. 거짓말인 게, 당연했다.

 오늘, 처음 손을 잡았다. 그것만으로도, 바보같이 행복했다.

 그래서, 깨달아버린 거다. 이제 더는 스스로를 속일 수 없었다.

 계속 마음에 담아두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는 건, 거짓말.

 사실은, 좋아한다고 말해주길 바라고, 끌어안아주길 바라고, 키스도 하고 싶었다.

 보답받길 원해. 되돌려주길 원해.


 하지만, 분명 이 마음은, 평생 충족될 수 없겠지. 야겐 토시로를 좋아하는 이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다정한 목소리로, 야겐은 나를 지옥으로 밀어뜨렸다.


 「대장. 부디 알아줘.

   나는 대장이 행복해지기만을 바랄 뿐이야」


 야겐의 손이 뻗어 와서, 머리에 살짝 닿았다. 아와타구치의 연장조인 만큼, 절묘한 힘 조절이다. 툭툭, 달래듯이 쓰다듬어진다. 눈앞에서, 온화한 연보라색 눈이 누그러졌다.


「그러니까, 응?

 검에게 사랑 따위…… 야겐 토시로에게 사랑 따위, 그만둬」




 주인의 배를 절대로 베지 않은, 발군의 예리함을 지닌 단도.

 이 얼마나 잔혹한 검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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